전쟁의 참상, 또 다른 피해자인 여성 이야기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전쟁에 심신이 파괴된 두 여성 서로가 ‘희망’이 필요했는데

영화 '빈 폴'의 스틸 컷
영화 '빈 폴'의 스틸 컷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들으면서 전쟁의 참상을 다시 떠올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전쟁을 직접 경험해본 세대는 아니지만, 영화와 다큐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면서 그 기억은 깊이 각인돼 있다.

떠오르는 영화가 한 편 있다. 2020년에 개봉한 <빈폴(Bean Pole)>이라는 영화다. 빈폴은 마르고 키가 큰 사람을 뜻한다. 이 영화 주인공인 ‘이야’라는 여성의 별명이기도 하다. 이야는 180㎝가 넘어서 키다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 영화는 기이한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눈썹이 하얗고 키가 큰 한 여성이 넋이 나간 듯, 진땀을 흘리며 서 있다. 고장난 기계가 끼익거리듯 목이 이상하게 움직인다. 뒤에서 누군가 이야라고 부르지만 여자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다른 사람이 뺨을 찔러도 반응이 없다. 주변에서 다른 여성들이 이야가 굳은 지 한참 됐냐는 말을 주고 받는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이야는 눈을 깜빡이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아까 이야를 불렀던 여성이 “이제 돌아왔어?”라고 말하자 이야는 미소를 짓는다. 관객은 첫 장면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의 레닌그라드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후유증은 엄청나다. <빈폴>은 전쟁의 참상을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보여준다.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은 참전했다가 팔이 잘려 나가거나, 전신이 마비된 육체를 지니고 있고, 의사 역시 자식들을 잃어버린 상처를 안고 있다. 이야가 잠시 전신이 굳어지는 증상을 갖게 된 것은 전쟁터에서 뇌진탕을 겪은 후에 생긴 후유증 때문이다.

이야에게는 ‘파슈카’라는 아들이 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아이이며,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웃음을 주는 존재다. 흰 머리와 흰 눈썹을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탓에 늘 눈에 띄는 이야는 냉정하고 무심해 보이지만, 환자들에게 매우 친절한 간호사다. 그런데 집에서 아이와 장난을 치다가 그대로 몸이 굳어지는 상태가 된다. 뇌진탕 후유증은 어떤 전조증상도 없이 수시로 나타난다.

갑자기 동결돼버린 이야의 몸 밑에 아이가 깔리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커다란 이야의 몸에 깔린 채 아이가 힘들어하는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바뀐다. 이야가 멍한 모습으로 전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아이는 어떻게 된 걸까 궁금해하는 사이에 누군가 이야의 집에 찾아온다. 그리고 진짜 이야기가 그때부터 시작된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 얼굴부터 나오는 것과는 달리 군화를 신은 다리만 보여준다. 파슈카가 어떻게 됐는지 설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3의 인물이, 그것도 다리만 나오니 관객의 불안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장면에 앞서 이야가 방에 들어오기 전에 자기 방앞에서 뭔가 다리에 걸려 당황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야는 당황한 듯 곧장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근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 군화를 신은 다리가 등장한다. 다리의 주인은 방 앞에 놓여 있던 가방을 세우고 잠긴 방문을 두드린다. 이야는 그 가방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를 부르는 누군가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섬뜻하게 느껴진다. 방문객은 마샤라는 여성이며, 두 사람은 전우 사이인 것으로 밝혀진다. 매우 절친한 친구 사이다.

그런데 왜 이야는 문을 잠근 채 열어주지 않았을까. 이야의 몸에 눌려 죽은 파슈카는 사실은 마샤의 아이였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친구의 아이를 죽게 했으니, 차마 얼굴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쟁의 상흔은 이 두 여성을 통해 드러난다. 이 영화의 감독인 칸테미르 발라코프는, 2015년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 책은 전쟁을 겪은 여성 200명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영화는 두 여성의 몸을 통해 전쟁의 고통을 짐작하게 한다.

빈 껍데기뿐인 삶, 서로가 희망이었다

여성의 몸에는 남성과 다른 상처가 남아있다. 마샤의 아랫배에는 가로로 두꺼운 흉터가 있다. 이야는 그 상처에 대해 묻지만, 마샤는 대답하지 않는다. 마샤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른바 군대용 부인 역할을 하느라, 수많은 낙태를 해야 했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됐음을 털어놓는다. 이야는 전쟁터에서 겪은 뇌진탕의 후유증 때문에 어린 생명을 죽게 만들었고, 마샤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 됐다.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빈 껍데기 같은 육체뿐이다. 그래서 텅 빈 육체를 채울 방법을 찾는다.

마샤는 새로운 생명을 원한다. 하지만 자신은 할 수 없는 일이라서, 이야에게 자신을 위해 아이를 낳아달라고 한다. 자신의 아이를 죽게 했으니 그렇게 보상을 해달라는 뜻이다. 이야는 마샤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제안을 마지 못해 수락한다. 그리고 임신하기에 집착하지만 임신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심신이 망가진 두 사람은 앞으로 살아나가기 위해 허상 같은 희망을 잡으려 노력한다. 두 사람의 육체는 살았다고도 죽었다고 말하기 힘든 상태다. 마지막 장면이 그런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전차가 급정거를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웅성대면서 누군가 전차에 치었다고 말한다. 키다리가 치었다는 소리를 들은 마샤와 관객은 이야를 떠올리게 된다. 죽은 사람은 이야가 아니었다. 마샤는 시체를 확인한 후,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방 안에는 이야가 빨간 색 옷을 입고 뒷모습을 보인 채, 굳어진 상태로 앉아 있다.

이야는 수시로 죽음과 삶을 오가고 있는 셈이다. 굳은 상태에서 돌아오자, 이야는 “내 속이 텅 비었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샤는 계속 이야가 임신 상태라고 믿으며 폭력적으로 이야의 입을 막는다. 허상이라도 둘에게는 희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일(현지시간) 러시아가 마리우폴 산부인과 병원을 폭격할 당시 부상당했던 임산부가 이틀 뒤 아이를 출산한 직후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 사진= 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일(현지시간) 러시아가 마리우폴 산부인과 병원을 폭격할 당시 부상당했던 임산부가 이틀 뒤 아이를 출산한 직후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 사진= AP/ 연합뉴스

두 사람이 입은 의상은 초록색과 붉은색으로 대비되는데, 처음에는 이야가 초록색 옷을 입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마샤가 초록색 옷을 입었고 마샤가 흘린 붉은색 코피가 묻어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샤에게 맞은 이야의 얼굴에 붉은 피가 흐른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 몸처럼 얽혀 있다.

두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서로 껴안은 채 흐느끼는 두 사람이 보여주는 것은 거짓이라도 좋으니, 희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희망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생명에 마샤는 집착하지만 그들에게 있는 건 상처투성이인 마음, 파괴된 정신과 텅 빈 육체뿐이다. 전쟁은 여자의 몸을 사정없이 휩쓸고 지나갔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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