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본 ‘계급의 틀에 갇힌 인간들’

[이화정의 부산국제영화제 돌아보며] 스웨덴 영화 ‘슬픔의 삼각형’ 루마니아출신 감독 ‘R.M.N’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출처= 2022 BIFF 홈페이지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출처= 2022 BIFF 홈페이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눈에 띄는 주제중 하나가 계급 간의 갈등과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에 대한 풍자나 비판이었다. 흑백처럼 단순하게 나뉘는 편 가르기가 아닌,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진지하고 감동적으로, 때로는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슬픔의 삼각형> 계급 갈등 풍자

지역적인 이기주의나 계급성이란 주제로 한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하겠다. 먼저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슬픔의 삼각형>이다. 스웨덴 출신의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세계적인 감독들은 각자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니고 있지만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인간성의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인간은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기에는 너무 복잡한 존재다. 상황에 따라서는 선인이 될 수도 악인이 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계급의 아래위가 급격하게 바뀌는 일은 드물지만, 위기의 상황이 닥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슬픔의 삼각형>은 호화 유람선을 배경으로 돈줄인 부유층 고객과 생존을 위해서 그들의 돈을 필요로 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형편이 좀 더 나은 관리급 계층의 모습을 비틀었다. 영화는 3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호화 유람선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구조가 무너지는 과정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하고 있다.

자본 권력자의 웃음, 그 이면의 씁쓸함

영화의 도입부 장면은 자본 권력을 지닌 회사가 모델의 표정과 감정까지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광고 연출자는 값비싼 고급 브랜드 의류를 촬영할 때는 모든 사람들을 깔보는 듯한 도도한 표정을, 중저가 브랜드 광고를 촬영할 때는 즐겁고 해맑은 표정을 지을 것을 요구한다. 상반신을 탈의한 채 나란히 늘어서서 도도한 표정과 해맑은 표정을 빠른 속도로 바꾸는 모델들의 모습이 웃음과 함께 씁쓸함을 자아낸다.

호화 유람선 안의 풍경 역시 풍자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값비싼 목걸이와 반지를 한 부유층 부인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면서 유람선의 직원들도 모두 수영복을 입고 슬라이딩과 물놀이를 즐길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 부유층의 비위를 맞추는 데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터무니 없는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할 일을 미뤄둔 채 시간 낭비 같은 물놀이를 해야 하는 직원들은 편하게 즐길 수가 없다. 베푼다고 착각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입장은 이렇게 다를 수밖에 없다.

무너진 계급, 신환경에서 나타난 신권력

저기압으로 인해 심하게 흔들리는 배 안에서 자본가들이 최고급 요리를 먹다가 토하는 장면에서 이들의 가식이 벗겨지며 역겨움이 극치를 이룬다. 그리고 결국 사고로 인해 배가 폭발하고 침몰하자 유람선 안에서 자본에 의해 유지됐던 계급성은 완전히 무너진다. 섬에 떠밀려온 생존자들의 삶이 영화의 마지막 챕터다. 이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계급이 형성된다. 돈 많은 자본가는 이곳에서 무력하다. 하인의 도움이 없이는 옷을 입기도 불편한 귀족이 생활력에서 무력하기 그지없던 상황과 비슷하다.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먹을 것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이 권력자가 된다. 무인도까지 떠밀려간 생존자들 중 불을 피울 줄 알고, 생선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가장 낮은 계급이었던 메이드(하녀)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출처= 2022 BIFF 홈페이지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출처= 2022 BIFF 홈페이지

메이드가 권력자가 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그녀는 자신을 대장으로 인정해주는 사람들에게만 자신이 직접 낚아서 요리한 생선살을 나눠준다. 그리고 젊은 남자 모델에게 먹을 것과 성관계의 교환을 제시하면서 자신이 가진 권력을 누린다. 젊은 모델의 애인이 무인도에 함께 있으면서 갈등도 생긴다. 애인 역시 여성 모델이었는데, 모델 업계에서는 여성모델이 남성모델에 비해 개런티가 높게 책정되는 탓에 여성 모델의 위치가 더 상위였다. 그래서 애인을 다른 남자에게 뺏길까봐 늘 불안해했던 남녀간의 관계가 여기서 뒤집어진다. 자신의 남자 친구가 메이드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을 방법이 없다. 자신도 남자 친구가 얻어오는 음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섬에서 뒤바뀐 권력 구조는 마지막 장면에서 또 한번 반전의 기미를 보인다. 그때 메이드가 취하는 행동은 인간 사회에서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의 성향이 환경에 따라 얼마나 변화무쌍하게 바뀔 수 있는지, 얼마나 취약할 수도, 잔인할 수도 있는 것인지 보여준다. 14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구성과 연출 덕분에 지루함 없이 시종일관 유쾌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루마니아 영화 ‘R.M.N’...집단 이기주의의 단면

<R.M.N>은 루마니아 출신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작품이다.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은 난처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도덕성과 윤리성을 지닌 인간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뇌하는 상황을 연출하는데 뛰어나다. 주인공인 마티아스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분노해서 동료를 때리고 고향인 트란실바니아로 돌아온다. 마티아스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으로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어하면서 아내와 갈등을 빚는다. 고향 역시 외국인 혐오증으로 시끌벅적하다.

영화 'R.M.N.' 스틸컷. 출처=2022 BIFF 홈페이지
영화 ‘R.M.N.’ 스틸컷. 출처=2022 BIFF 홈페이지

영화는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과 혐오를 드러낸다. 일할 직원이 필요한 제빵 공장의 여사장과 매니저인 칠러는 고용 광고를 내지만 현지 주민들 중에서는 지원자가 없다.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할 수밖에 없게 되자 세 명을 채용한다. 그러자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다. 마을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타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일할 사람은 없는데, 주민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마을에 머물며 돈을 버는 것에는 반대한다. 주민들이 불매운동을 벌이는 바람에 빵 공장 사장은 중재안을 내놓으며 사업을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매니저인 칠러는 끝까지 원칙을 고수하며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해 대다수를 상대로 싸운다.

마을 사람들이 시장을 소환하고 마을 회관에 모여 서로의 주장을 해대는 장면은 마치 한 국가의 모습을 축소해놓은 듯하다. 터무니없는 이유를 대면서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결사반대한다. 주민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풍토병이나 병균이 있을 수 있으니 그들이 만든 빵을 먹을 수 없으며 한두 명씩 유입되다 보면 마을은 외국인 노동자 천지가 될 거라는 주장을 펼친다. 폐업 위기에 처한 사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건강검진을 다 마쳤으며 빵을 만들 때는 장갑을 끼게 하고 숙소를 마을 밖으로 옮기겠다는 절충안을 내놓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코웃음만 친다. 가장 객관적이고 도덕적인 태도를 보여줄 거라 기대했던 성당의 신부도, 시장도 절대다수의 의견을 무시할 수가 없다. 어떤 도덕적이고 객관적인 이유도 먹히지 않는다. 지역 이기주의의 벽은 높고 두껍기만 하다.

영화 'R.M.N.' 스틸컷. 출처=2022 BIFF 홈페이지
영화 ‘R.M.N.’ 스틸컷. 출처=2022 BIFF 홈페이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입장은 달라질 것이다.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었을 때도 자신이 추구했던 가치관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의 이익과 상반되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얼마만큼 가능한 일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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