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시작: 내게 귀 기울여주세요

[이화정의 ‘영화의 한가운데에서’] 부산영화제의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 폐막작 유덕화의 ‘영화의 황제’ 상대가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라는 공통점 지닌 영화들

영화 '영화의 황제'에서 홍콩영화의 스타 라우 웨이치 역을 맡은 유덕화.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영화의 황제'에서 홍콩영화의 스타 라우 웨이치 역을 맡은 유덕화.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영화의 장점을 부각시킨 작품들

거대 자본으로 제작된 영화들로 도배된 상업 영화관에서는 보고 싶은 영화들이 ‘가뭄에 콩 나듯이’ 박혀 있고, 게다가 시간대도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인 경우가 많다. 반면 영화제의 가장 큰 장점은 상업 영화관에서 보기 힘든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영화의 중요한 가치들 중 하나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소통일 것이다. 자신의 환경에서 벗어나기 힘든 인간들이 타인의 삶을 경험하면서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는 그런 역할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는 매체다.

올해 부산영화제의 개막작과 폐막작은 각기 다른 주제를 담고 있지만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소통의 시작임을 알려준다는 공통점도 발견한다.

이번에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은 장건재 감독의 한국 영화 <한국이 싫어서>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의 개막작 제목이 아이러니칼하다. 이 영화 속에서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젊은이들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주인공인 계나(고아성 분)의 삶은 현시대 젊은이의 모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계나는 평범한 조건을 가진 젊은이지만 그녀의 생각만큼은 남다른 데가 있다. 감독이 그리고자 했던 주인공의 모습은 바로 그런 특별한 점에 있다.

이 영화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해외 로케이션이 힘들어서 생각보다 제작 기간이 길어졌다. 무려 7년이나 소요됐기 때문에 상황이 약간 달라졌을 수 있지만 젊은 세대의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젊은이, 현실에 안주할까 원하는 삶을 살까

<한국이 싫어서>는 2015년에 발간된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소설의 배경은 호주였지만 영화에서는 뉴질랜드로 바뀐다. 주인공인 계나는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뉴질랜드에 가겠다고 선언한다. 계나의 가정은 넉넉하지 못하다. 살고 있는 낡은 아파트는 드디어 재개발 계획이 확정됐지만 더 넓은 평수로 입주하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 엄마는 18평 대신 24평을 선택하고 싶어 하는데 돈이 부족해서 계나에게 돈을 보태라고 한다. 계나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모은 돈이니, 그냥 18평으로 입주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면서 모녀의 욕망이 충돌한다.

계나는 한국에 사는 평범한 20대 여성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영화는 그 점에 초점을 맞춘다. 계나의 자조적인 넋두리는 자신의 욕망을 억눌러야만 생존할 수 있는 비슷한 또래들의 속내와 같다. 매일 지하철 탑승의 전쟁을 겪고 압사의 두려움을 느끼며, 억지로 타인의 숨결과 체취를 맡아야 하는 삶, 상사의 이치에 맞지 않는 지시에 따르고, 하고 싶지 않는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 삶에 계나는 염증을 느낀다.

계나에게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 지명(김우겸 분)이 있다. 지명은 계나와 결혼하고 싶어하지만 취준생인 자신의 처지가 걸려서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하는데, 계나에게도 지명과 결혼이 내키지 않은 이유가 있다. 양가의 심한 계층 차이가 불편하고 거슬린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계나는 그 사이에서 자신이 실종될까 봐 두렵다. 계나의 엄마는 상대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이라서 좋아하는 눈치다. 지명과 결혼하면 계나의 삶도 훨씬 편해질 것이니까.

그러나 그런 삶은 계나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자신의 자유와 자존심을 양보하고 적절한 타협으로 안정된 현실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느낌을 쫓으며 살 것인가. 계나도 갈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에서 계나(고아성)는 한국에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뉴질랜드로 떠난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한국이 싫어서’에서 계나(고아성)는 한국에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뉴질랜드로 떠난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타국에서 살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영화는 다양한 생각을 지닌 젊은 세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들은 불만족스럽지만 안정에 가치를 두고 현재를 견디느냐, 희망이 없음을 인정하고 차라리 모험을 택하느냐를 놓고 갈등한다. 어느 쪽에 더 가치를 두느냐는 세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기성세대가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영주권 획득을 계획하고 있는 계나가 뉴질랜드에서 처음 만난 재인(주종혁 분)은 항상 수업에 늦고 아무 생각이 없이 제멋대로 사는 아이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니 겉보기와는 다른 아이였다. 늦는 이유는 다른 아르바이트 때문이었으며, 요리사의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나는 재인을 다시 보게 된다.

타국에서 삶은 결코 쉽지 않다. 모국에서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갖게 되는 권리를, 노력 끝에 취득해야 하는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기본적인 언어 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다. 그런 희생을 치르고라도 타국의 삶을 택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영화는 한국 사회에 맞는 조건을 갖추지 못해 희망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이 땅을 떠나거나, 죽음을 택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계나는 자신의 자유를 희생하며 안정된 삶을 택하는 평균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모험을 택하며 자신의 진심을 끊임없이 탐색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리고 용기 있게 실행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기성세대는 진정으로 이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유덕화가 ‘유덕화’ 같은 스타를 연기한다

폐막작으로 선정된 닝하오 감독의 <영화의 황제>는 소통과 교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발생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로 서사가 진행된다. 유덕화가 홍콩 영화의 스타, 라우 웨이치를 연기한다. 유덕화는 자신의 삶을 연기하는 셈이다.

라우 웨이치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인기를 누리면서 대스타의 자리에 있었지만 정작 홍콩필름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해 한이 맺혔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구 영화제 수상을 노리고 중국이라는 정체성을 살린 농민 캐릭터를 연기하기로 결심한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직접 농촌에 가서 체험하고자 하지만 그의 의도는 늘 빗나간다. 가는 곳마다 대스타로 대우하면서 이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촬영장은 난장판이 되기도 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팬이 선물했지만 라우가 내다버린 사실이 발각돼 팬의 분노를 사기도 한다. 게다가 라우는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직접 말을 타며 액션 연기를 했지만 그런 행동이 오히려 동물 학대라는 여론에 부딪힌다. 사과를 원하는 대중 앞에서 라우는 대배우로서 자부심과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한 마디를 거부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우리에게 소통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이 영화는 제작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에 실제 촬영 현장이 더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극중 촬영 장면을 찍는 실제 촬영팀이 따로 있고 극중 감독 역에 실제 감독이 출연했다. 때문에 닝하오 감독은 자신이 영화를 감독해야 할 때인지, 화면 속에 들어와서 연기를 할 순서인지 혼동되어서 매우 복잡했다고 한다.

영화의 주제가 소통과 교류의 중요성인데, 실제 촬영 현장 역시 소통의 혼란으로 정신이 없었다는 닝하오 감독의 촬영 후기다. 닝하오 감독은 국제영화제 역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하고 교류를 통해 새로운 창작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닝하오 감독의 작품이 폐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크레이지 스톤>이 폐막작으로 선정된 지 17년만에 또 다시 <영화의 황제>가 폐막작으로 관객과 만났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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