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의 모짜르트, 왜 티 가든에서 연주했을까

[문기영의 홍차 클래스] 플레져 가든과 티 가든 이야기 홍차 유행의 배경 ‘18세기 놀이공원’

플레저 가든 야외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상류계급. 사진=구글
플레저 가든 야외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상류계급. 사진=구글

17세기경부터 런던과 교외 지역에는 ‘플레져 가든’(Pleasure Garden)이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공원 혹은 유원지 비슷한 역할을 한 장소들이 생겨났다. 원래는 노동자 계층과 서민들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저분하고 열악한 환경의 시내 한가운데로부터 벗어나 잠시나마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갖는 곳이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그렇게 고급스러운 장소는 아니었다.

런던시민을 위한 18세기 놀이공원

18세기에 들어선 후에 플레져 가든에서 당시로는 매우 고가였던 차를 비롯해 커피와 핫초코 등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여성들도 갈 수 있는 고급스런 곳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는 1650년대부터 생기기 시작한 런던의 커피하우스들이 주로 남자들만 출입 가능한데 따른 반향이었다.

이러면서 상류층, 중류층을 포함한 다양한 계층이 즐기는 일종의 놀이공원 같은 곳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18세기에만도 런던과 교외 지역에 64개의 규모와 수준이 다른 다양한 플레져 가든이 있었다. 플레져 가든들은 규모와 수준에 따라 다양한 오락거리나 즐길 거리 그리고 편의시설들을 갖추고 서로 경쟁했다. 꽃이 핀 산책길, 그늘진 누각, 춤 출 수 있는 공간, 음악연주회, 불꽃놀이, 조명이 들어오는 숲, 열기구 타기 등 흥미로운 것이 다양했다. 몇 몇 곳에서는 도박과 경마 등도 즐길 수 있었다.

복스홀 가든 전체 전경. 사진= 구글
복스홀 가든 전체 전경. 사진= 구글

홍차가 ‘사교의 매개체’ 역할을

처음에는 무료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아주 고급스러운 플레져 가든은 입장료만 일반 노동자의 일주일 급료가 되었다.

런던 플레져 가든 관련하여 남아있는 그림들을 보면 지금 보아도 화려하고 고급스러워 마치 오늘날의 디즈니랜드나 에버랜드를 보는 것 같다. 특히 밤새 운영하는 곳도 많았는데 가든 전체를 조명으로 밝게 했다고 하니 당시 기술로는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 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남녀가 야외에서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다 보니 다양한 스캔들도 많았다. 화이트 칸듀이트 하우스(White Conduit House)라는 플레져 가든에서는 차(Tea)가 남녀 간의 교제를 위한 매개물 역할을 했다. 남자가 숙녀에게 관심이 있으면 실수인 척 그 숙녀의 치마를 밟고 사과의 뜻으로 차를 대접하겠다고 제안하는 형식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음료 중에서도 차가 플레져 가든의 주 음료가 되는 곳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플레져 가든을 ‘티 가든’(Tea Garden)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차가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 일부 플레져 가든은 이름에 차(Tea)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라넬라그 가든 로텐다 홀 외부모습. 사진=구글
라넬라그 가든 로텐다 홀 외부모습. 사진=구글

복스홀 가든과 라넬라그 가든의 경쟁

가장 유명한 플레져 가든은 1732년에 (재)개장한 복스홀 가든(Vauxhall Garden)과 1742년에 개장한 라넬라그 가든(Ranelagh Garden)이다. 이들은 다른 플레져 가든들과 차별화 하면서 서로 간에도 치열하게 경쟁했다.

특히 두 곳은 반구(半球)모양의 둥근 천장을 가진 커다란 실내공간인 로텐다(rotunda)로 유명했다. 춥기도 하고 비가 많은 변덕스런 날씨로 인해 대부분의 플레져 가든은 4~5월에서 8~9월까지 개장했지만 실내공간을 갖춘 이들은 2월부터 오픈할 수 있었다. 로텐다 홀 내부는 아주 화려하고 멋지게 꾸몄다. 복스홀 로텐다 홀은 폭이 11피트(약 3.4미터)에 72개의 촛불이 장식된 영국에서 가장 큰 샹들리에가 설치되기도 했다.

규모에서 더 큰 것은 라넬라그 로텐다 홀이었다. 아주 멀리서도 반구모양의 지붕 건물이 웅장하게 잘 보일 정도였다. 내부를 묘사한 그림으로 판단하건데, 현재 농구나 배구를 하는 실내 체육관 규모 정도는 된 것 같다. 이들 로텐다 홀은 연회장 역할을 하면서 음악연주회 등을 포함한 다양한 실내 행사가 열렸다. 특히 라넬라그 홀에서는 1765년에 9살의 음악신동 모차르트가 연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9살의 모짜르트가 연주한 곳으로 알려진 라넬라그 가든 로텐다 홀 내부모습. 사진= 구글
9살의 모짜르트가 연주한 곳으로 알려진 라넬라그 가든 로텐다 홀 내부모습. 사진= 구글

홍차음용 확산에 공헌

플레져 가든의 인기와 유행은 1700년대 후반 무렵 절정에 이르렀다. 1773년 일어난 <보스턴 티 파티> 직전, 미국은 영국 못지않게 차를 많이 마셨다. 그 무렵 뉴욕에도 런던의 유행을 흉내 내어 복스홀과 라넬라그 이름을 딴 플레저 가든이 생기기도 했을 정도다.

1800년대 초반이 지나면서 무뢰한, 거리의 여자들, 소매치기, 취객들이 늘어나면서 방문객들의 수준이 낮아지자 교양 있는 사람들이 점점 꺼리는 장소로 변했다.

라넬라그 가든의 상징이었던 로텐다 홀은 1803년에 문을 닫았고 1805년에 헐렸다. 로텐다 홀이 있던 자리는 현재 첼시 병원(Royal Hospital Chelsea) 구내의 일부가 되었고 이곳에서는 매년 세계 최대 정원 및 원예박람회로 유명한 <첼시 플라워 쇼(Chelsea Flower Show)>가 열린다. 가든(Ranelagh Garden)이 계속 가든(Flower Garden)으로 이어지고 있다.

복스홀 가든은 1859년에 문을 닫은 후 여러 번의 재개발 끝에 2012년 <복스홀 플레져 가든(Vauxhall Pleasure Garden)>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을 위한 공원으로 재 오픈 했다. 대단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이름이다.

1700년대 후반은 영국에서 차 음용이 확산된 시기다. 하지만 차는 여전히 매우 비쌌던 시절이었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계층 또한 한정 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야외의 고급스런 공간에서 차를 마시게 되면서 차(Tea)라는 음료가 널리 알려지게 되고 또 차 마시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플레져 가든/티 가든은 영국홍차역사에 자주 등장한다.

글쓴이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은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 16년 동안 녹차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홍차공부에 전념해 국내 최초, 최고의 홍차전문서로 평가받는 <홍차수업>을 썼다. <홍차수업>은 차의 본 고장 중국에 번역출판 되었다. 2014년부터 <문기영 홍차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홍차교육과 외부강의, 홍차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홍차수업2> <철학이 있는 홍차구매가이드>가 있고 번역서로는 <홍차애호가의 보물상자>가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