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나라, ‘통합의 정치’가 가능하려면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윤당선자,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민주당도 정치개혁 공약 약속대로 해야 ‘민주화 프레임’ 너머 ‘더 나은 진보’로

2년여 전인 지난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동하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2년여 전인 지난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동하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과연 통합의 시대가 올까?

곧 윤석열 대통령 시대가 열린다.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은 큰 기대와 환호로 그 시대를 맞으려 하겠지만,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더 많은 시민은 깊은 절망과 탄식에 빠져있다. 분단국가 대한민국이 또 한번 둘로 갈라졌다. 이 ‘남남분단’의 조짐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그 분단이 이번처럼 선명하고 또 적대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일 거다. 윤 당선자는 바로 선거 다음 날 이 분열을 치유하고 통합의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비록 선거 과정에서 앞장서 국민을 갈라치기했고 기본적으로 민주당 정권을 응징하고 싶어 하는 유권자들의 복수심 때문에 당선되었다고 해야 하지만, 그의 눈에도 최소한 그 분열을 봉합하려는 시도는 해야만 0.73% 차로 거머쥔 자신의 승리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였으리라. 그리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인수위에 김한길이나 김병준 같은 과거 민주당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그가 기대하는 통합정치의 성공 가능성을 처음부터 회의할 수밖에 없는 좋은 이유를 많이 갖고 있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도 당선되자마자 국민통합을 크게 외쳤고 그래서 무슨 국민통합위원회 같은 걸 만들었지만 그의 정치는 철저하게 분열과 배제로 시종일관했음을 잘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늘 화합과 협치를 앞세웠으나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적폐청산’을 밀어붙였는데, 많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고는 하나 이는 결과적으로 지금 윤석열 대통령을 만든 아주 강한 ‘복수의 정치’를 위한 배경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승자독식을 원리로 하는 우리의 정치체제 그 자체다. 특히 대통령 선거가 문제인데, 단 1표 차이라도 이긴 쪽은 흔히 ‘제왕적’이기까지 하다고 이야기되는 대통령이 되어 헌법이 보장한 막강한 권한을 누리지만 진 쪽은 철저하게 권력에서 배제되는 체제에서, 지지하는 당과 후보가 다른 국민들 사이의 통합이라는 게 제대로 가능할 리가 없다. 이긴 쪽은 승리를 지키기 위해, 진 쪽은 빼앗기 위해 사생결단의 대결을 펼치는 상황에서 통합을 외친다고 그게 쉽게 실현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새로운 정치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구체적인 정치적 상황을 보라. 사실 냉정하게 보면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제왕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이번 선거 결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여전히 국회에서 172석이라는 압도적 다수의 의석을 갖고 있고 이를 통해 대통령을 견제할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 하기에 따라서는 다음 총선까지 최소 2년 동안은 윤 대통령이 사실상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국무총리 인준부터 거부하면서 새 내각의 출범을 합법적으로 지연시킬 수도 있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여야간의 극한적인 불협화음과 대결 정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여하튼 이런 상황은 윤 당선인이 원하는 통합의 정치를 새로운 차원에서 모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과거 노태우 대통령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성공으로 탄생한 지금의 제6공화국 정치체제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국회에서 소수파가 되자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및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하는 ‘보수대연합’을 통해 소수파 대통령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단 ‘대연정’이든 ‘협치’든 승자독식을 포기하는 새로운 정치실험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아예 대통령과 국회가 권력을 분점하고 견제하면서도 함께 통치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도입하는 데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인다. 정말로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면 말이다.

마침 민주당은 선거 과정에서 정치체제를 바꾸기 위한 개혁을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고 당론으로도 채택했던 만큼 이것을 결정적인 매개고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도 유권자의 정치적 신뢰를 얻고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개혁 공약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관점에서는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제대로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큰 정치적 자산이 될 터이다. 윤 당선자 쪽에는 다당제가 신념이라고 했던 안철수가 인수위위원장을 맡고 또 나중에도 국정 운영의 중요한 파트너가 될 것인 만큼 어느 때보다 이 정치개혁에 대한 공감대는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이 낡은 ‘87년 체제’를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한다.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을!

지난 칼럼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혁할 필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이야기한 바가 있으니, 이번에는 새로운 헌정적 틀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사실 지난 칼럼에서 우리 실정에 맞게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던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제와는 잘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다당제를 유도하기 마련이고, 이 다당제는 대통령제에서 정치적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가 얼마나 타당한지는 그것대로 좀 더 자세히 따져 보아야 하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제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꽤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이번 기회에 이 대통령제 자체의 문제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아주 단순하게만 보자.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던 많은 시민이 가장 안타까워하고 억울해 하는 건 아무래도 단 25만표의 차이로 자신들이 보기에 아무런 자질과 자격이 없는 이가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대통령이 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결과가 뒤바뀌었다면 국민의 힘 지지자들이 바로 그런 상실감을 가졌을 터다. 이유는 딱 하나다. 승자가 너무 많은 선거의 전리품을 독식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단 1표 차이라도 이기면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정치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되고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는 전쟁이 된다. 온갖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정치판을 난무하고, 정치인은 정치인 대로 또 지지자들은 지지자들끼리 서로를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만 바라보며 원한을 쌓아간다.

이 ‘전쟁정치’를 끝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정치체제를 비례대표제를 통한 다당제 기반의 ‘의회중심제(내각제)’로 바꾸는 것이다. 여기서는 서로 다른 이념과 지향을 지닌 여러 정당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합의하고 조율해서 정치적 선택을 이끌어내는 ‘합의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그러나 멀리는 조선 왕조라는 역사적 배경과 70년 가까운 대통령제의 경험 때문인지, 우리 시민들은 의회중심제를 선호하지 않는다. 1987년의 민주화가 대통령 직선제의 쟁취에 초점을 두었다는 경험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대통령직은 그대로 두되, 그가 누릴 수 있는 권한을 쪼개 국회와 나누어 가지도록 하는 체제를 만들면 어떨까?

바로 이런 정치체제가 흔히 ‘이원집정부제’나 ‘준-대통령제’로 알려진 ‘분권형 대통령제’다. 여기서는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대통령과 의회라는 두 개의 권력 중심이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며 함께 통치한다. 권력을 나누는 다양한 모델이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대통령은 국민 전체의 일반적 이익과 관련된 영역, 그러니까 외교나 안보 같은 영역을 맡고 의회의 다수당 또는 다수파연합이 국민들 사이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내치를 담당한다. 구체적인 권한을 잡음 없이 나누는 게 언제나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건 나중의 민주적인 숙고 과정에 맡기면 된다. 어쨌든 이런 체제에서도 지금의 극한적인 전쟁정치 상황이 최소한 상당한 정도로는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통령과 국회의 갈등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프랑스 정치체제가 이런 모델의 전형이라고 알고 있는데, 거기서는 대통령과 의회 다수파의 정치적 색깔이 달라 이른바 ‘좌우동거내각’이 형성되는 등의 혼란이 있기도 했다. 그것은 프랑스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닌 단순다수제로 의회를 구성하기 때문인데, 거기서는 대부분의 경우 오히려 대통령과 수상이 동일한 다수당 출신이어서 제대로 분권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순수 대통령제처럼 운영되어 버린다고 한다. 반면 비례대표제를 운용하는 오스트리아나 핀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그런 문제는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모델을 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체제에서는 승자독식은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국회에서는 정당들이 기본적으로 지지율만큼 의석을 갖게 되고, 다양한 지향을 가진 정당들의 타협과 조율을 통해 입법도 이루어지고 정책도 집행된다. 대통령은 아예 기본적으로 국민 전체의 일반 이익과 관련된 영역에서 부분적으로만 국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선거 때문에 나라가 쪼개지는 일 따위는 원천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소수파 정당이라도 합당한 몫의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심지어는 상황에 따라서는 권력도 분점할 수 있다. 참된 통합의 정치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라고 이런 정치를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민주화 프레임을 넘어서자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지금의 국회와 정치권이 합의하여 처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점에서 보더라도 지금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이번 대선 결과와 여소야대 상황 자체가 이런 새로운 정치체제에 대한 모색을 강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야 모두의 태도도 이 새 체제 도입에 적대적이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국민의 힘 쪽에서는 개헌의 필요성이 제기될 때면 진작부터 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이야기해 왔었고, 윤 당선자도 선거 과정에서 이 방향이라면 개헌에 동의할 수 있다는 투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이 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는 찬성하지 않는데,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하려면 의회 구성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으며 그게 오히려 자신들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는 건 이미 여러 시뮬레이션에서 확인된 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확대에는 원칙적인 찬성 입장을 밝힌 민주당은 선거 과정에서도 그렇고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제출한 개헌안에서도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선호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게 꼭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과 모순되는 건 아니다. 민주당은 지금 야당이 되었고, 언제 다시 집권당에다 다수당이 될지 모른다. 게다가 민주당은 선거 과정에서 총리국회추천제, 여야정 국정기본계획 공동 수립, 초당적 국가안보회의 구성 등을 추진하겠다고 당론으로 채택했는데, 사실 이런 일은 분권형 대통령제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87년식 인식틀을 버려야 한다. 민주당과 많은 지지자들은 아직도 반민주 세력에 맞서는 민주화 투쟁이 진보 정치의 본령이라는 착각 속에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반드시 민주당 정부만이 ‘민주정부’일 수는 없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어도 또 국회에서 절대 다수석을 가졌어도 할 수 없는 일도 많았고 또 해야만 했지만 하지 않은 일도 많았다. 민주당의 부족함 탓도 크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정치체제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이제는 단순한 ‘민주화 프레임’을 넘어 더 나은 민주주의 체제를 모색하고 실험해야 할 때다. 여기에 더 나은 진보의 길도 있다.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적 공정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민주적 평등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한 <공정의 배신>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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