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기각後③ 민주당을 위한 양비론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이재명은 노무현에게 배워야 한다. 올바른 정치적 원칙과 공동선을 위해 작은 정치적 이익을 포기할 수 있어야
체포동의안 사태의 중첩적 아이러니
대단한 아이러니다. 검찰(과 이를 지휘하고 있는 한동훈 장관)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설계하고 실행하면서 국회의 다수당인 민주당과 이 대표를 정치적 궁지로 몰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서 오히려 스스로 수세에 몰렸다. 어쩌면 검찰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진짜로 가결될 줄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예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순전히 정치적으로만 보면, 부결되는 것이 ‘피의자 당대표’나 ‘방탄정당’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공격의 끈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검찰에 유리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덜컥 가결이 되어 버렸다. 그러자 검찰이 제멋대로 조종할 수 없는 법원의 시간이 왔고, 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해 버렸다. 이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반격할 차례다. 검찰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울 게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이번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졌던 최소 29명의 이른바 비명계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이재명 대표를 물러나게 하거나 최소한 그에게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힐 줄 알았을 거다. 그러나 그 가결표로 인해 오히려 자신들이 수세에 몰렸고,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심지어 정치적으로 벼랑 끝에 서게 되었다. 어쩌면 이들도 체포동의안이 진짜로 가결될 줄은 몰랐거나 내심 부결되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그래야 내년 공천 등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반이재명’이라는 무기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런데 진짜로 가결이 되어 버렸고, 구속영장마저 기각되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아주 궁색해져 버리는 처지에 몰렸다.
결과적으로 승자가 되었지만, 이재명 대표도 이번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가 빚어낸 아이러니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체포동의안 표결 직전 이재명 대표의 부결 요구 메시지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몇 달 전 자신이 천명했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스스로 뒤집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로 그는 목숨을 걸었던 단식의 명분을 스스로 퇴색시켜 버렸다. 그런데 사실은 그 메시지가 가결의 동력이 된 것처럼 보이고, 그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구속 위기 상황에 처해야만 했다.
문제는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러니다. 이 대표는 이제 과거보다 훨씬 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정치적 기사회생을 했다. 그는 이제 그 힘을 갖고 민주당을 재정비하고 혁신해서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가 그 힘을 엉뚱하게 사용한다면, 이번의 승리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런 아이러니가 현실화할까 많이 걱정스럽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어떻게 이런 일을 피할 수 있을까?

민주당이 ‘방탄정당’이 되지 않은 이유
솔직히 가결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의 행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이재명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정치검찰의 기획된 체포동의안 요구 앞에서 당대표 사퇴를 부결의 전제로 걸었다는 건 정치적 상식과 도의를 완전히 벗어나는 일이다. 정치검찰의 작태를 저지하는 문제와 당내 계파 갈등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결과적으로 정치검찰과 한 편이 되다니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그것이 이른바 해당행위인지 아닌지는 내가 논할 바는 아니나, 적어도 그 행태가 정치적 정도가 아님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냥 ‘정치인’으로서도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로 삼권분립과 의회정치를 위한 중요한 민주적 장치 중의 하나다. 물론 국회의원이라도 중대한 범법 행위를 했을 경우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사안은 그 정치적 의도가 너무도 분명했다. 그런데도 온갖 정치적 계산 끝에 결국 찬성표를 던졌다는 건 아예 정치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검찰의 막장 정치를 막아내고 분쇄하기는커녕 앞장서 판을 깔아주고, 판사 한 명의 자의적 판단에 많은 정치적 가능성을 맡겨 버리는, 아니 정치 자체를 아예 포기하는 ‘정치의 사법화’를 적극적으로 요구한 셈이니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함이 틀림없다. 그들은 정치를 포기하는 정도를 넘어 대놓고 정치를 모욕하고 조롱했다.
그러나 이들이 모든 면에서 잘못하기만 한 건 아니다. 물론 이들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일단 지금의 상황은 결과적으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었을 경우보다 훨씬 나은 정치적 이익을 민주당과 이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랬을 경우 민주당은 내년 총선 때까지 ‘방탄 정당’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 대표도 계속되는 ‘사법 리스크’ 때문에 제대로 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아가 그들의 찬성 표결은 민주당의 다원성과 건강함을 보여준 측면도 있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해서 박수까지 받았던 이대표가 부결 메시지를 낸 건 어쨌든 자신과 민주당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리는 일임이 틀림없었다. 지난번 서울 및 부산 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귀책 사유가 자기 당에 있으면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까지 고쳐가며 후보를 냈던 일이 어떻게 민주당을 망가뜨렸는지를 돌이켜 보라. 아무리 상황 논리가 있다고는 하나, 만약 이번에 민주당이 체포동의안을 일사불란하게 부결시켰더라면 오히려 ‘방탄정당’의 이미지 때문에 정치적 내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씁쓸하지만 이런 상황도 이번 사태가 빚어낸 또 하나의 큰 아이러니다.
이 대표,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배워라
대선 패배 이후 정치검찰에 의해 기획된 사법 리스크와 그에 연동된 내홍, 그리고 송영길 전 대표 경선 과정의 돈봉투 사건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 게이트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정치적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태가 품고 있는 중첩된 아이러니 덕분에 이제 민주당에게 대반격의 기회가 왔다. 민주당과 이 대표는 이런 아이러니들이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향후의 정치 행보를 이어가야 한다.
민주당과 이 대표는 지금 상황을 오해하면 안 된다. 늘 그랬듯 ‘오만’이 문제다. 구속 영장 기각은 무슨 사필귀정이나 민주당과 이 대표의 정치적 역량 탓이라기보다는 천우신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좋은 운 덕이라고 하는 게 맞다. 그러나 이런 운은 쉽게 연속되지는 않는다. 지금 민주당과 이 대표는 절호의 기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하는 시험대 위에 서 있다. 윤석열 검찰정권의 폭주를 더 늦기 전에 멈춰 세우기를 바라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민주당과 이 대표가 또다시 천운으로 얻은 정치적 자산을 오판으로 탕진해 버리지는 않을지 걱정부터 하게 된다. 그래서 몇 마디 해 두고 싶다.
우선,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에 대한 정치적 책임 묻기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적어도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무슨 ‘색출’이나 ‘처단’ 같은 방식이 아니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런 방식 자체가 민주적 정당에 어울리지 않은 일일 뿐만 아니라, 그 결과는 민주당의 정치적 자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중도층의 정치적 이반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만약 그 일이 무슨 분당 사태 같은 일로 귀결된다면, 윤석열 정권의 무참한 폭정에도 불구하고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분열은 곧 정치적 죽음일 터다.
이 대표 측에서는 오히려 왜 민주당의 그 많은 의원들이 매우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는지 그 이유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도대체가 민주적 정당이란 곳에서 노선 싸움이 아니라 특정 인물에 대한 친소 관계로 계파가 갈려 싸운다는 사실 자체가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단순히 반대편의 도덕적, 정치적 파탄만을 비판할 게 아니라, 자기편의 미숙함이나 오만을 더 경계할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내년 총선 공천이 제일 큰 문제일 텐데, 이를 계기로 한 정치 보복은 큰 역풍만 불러 올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부결 메시지라는 큰 잘못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치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비명계와의 사이에 대표직 사퇴 여부를 둔 결렬된 협상과정이 그런 메시지와 관련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잘못의 후과는 절대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불구속과 당권 유지라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체포동의안에 의연하게 맞섬으로써 정치검찰에 일격을 가하고 민주당의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길을 포기했다는 낙인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낙인은 민주당과 그의 정치적 성공을 방해하는 엄청난 굴레가 될 수도 있다. 어떻게든 이 굴레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 대표는 노무현 전대통령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 대표 자신도 자주 언급했던 노무현 전대통령의 ‘사즉생(死卽生)’의 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 정치적 차원에서 사즉생의 태도란 단순히 어떤 싸움의 단호한 결기 같은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올바른 정치적 원칙과 공동선을 위해 개인의 작은 정치적 이익을 과감하게 포기할 수도 있는 자세를 의미한다.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정치적 생명을 걸었고, 실제로 몇 번씩 패배하기도 했으나 궁극적으로 크게 이겼다. 그러나 이 대표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큰 명분을 저버리는 선택을 한다는 의심을 사곤 했다. 이번만 해도 그는 자신의 구속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의 공언도 뒤집었고, 민주당에게 많은 정치적 부담을 안겼다. 목숨을 건 자신의 단식 투쟁조차 빛이 바래져 버릴 수도 있었다.
지금 민주당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년 총선 승리다. 이재명 대표는 이제 자신이 지휘하는 총선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단순히 정부 여당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이 아니라 새롭고 혁신된 민주당의 정치적 전망으로 총선에 임해야 한다는 건 사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그런 혁신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이다. 이번에 가결표를 던진 많은 의원들은 바로 이재명 대표 체제로는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자신들의 명분으로 삼았더랬다. 이 대표는 이제 그 문제 제기에 분명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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