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법에 어긋난 ‘당선인’...취임전에 바로잡자
[박만규의 ‘에티모버스’(Etymoverse)] ‘-인’과 ‘-자’에 호칭 품격차이 없어 법률용어에 많은 ‘-인’, 일본 영향 의심
- ‘에티모버스’(Etymoverse)는 어원을 뜻하는 Etymology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를 필자가 합성한 말이다. 어원에는 옛사람들의 사고가 비유 속에 담겨 있어 세계에 대한 인류의 다양하고 심오한 사유를 알게 해준다. 이는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헌법엔 ‘당선자’, 법률엔 ‘당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0대 대선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당선인’과 ‘당선자’라는 두 표현을 놓고 어느 것이 옳은 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헌법에 분명히 ‘당선자’로 되어 있는데도 하위 법률에 ‘당선인’이라는 표현이 있어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가 ‘당선인’으로 불러 달라고 요청하면서 이 논란은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사람 인(人)’ 자를 쓰면 ‘놈 자(者)’ 자를 쓰는 것보다 격이 높게 느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 우리말의 ‘사람 인(人)’과 ‘놈 자(者)’는 사람을 가리키는 접미사일 뿐 둘 사이에 품격과 관련하여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만일 ‘놈 자(者)’에 폄하적인 의미가 있다면, ‘학자’, ‘기자’, ‘과학자’, ‘교육자’, 심지어 ‘성자’(聖者)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만일 그러하다면 ‘기자’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부를 것이며 한국의 ‘과학자 협회’에서 지금껏 이렇게 조용히 있겠는가?
‘당선인’이 어법에 어긋난 이유
‘인(人)’과 ‘자(者)’에는 다만 어법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어법상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 ‘-자’(者)는, 주로 일시적인 행위나 활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인다. 예를 들어 ‘참석자, 합격자, 가해자, 목격자, 승리자, 패배자, 응시자, 침입자’ 등에 쓰인다. 이런 말들에 ‘-자’ 대신 ‘-인’을 써서 ‘참석인, 합격인, 가해인, 목격인, 승리인, 패배인, 응시인, 침입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자’는 (직업이 아니라) 일시적인 역할을 맡은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인다. ‘사회자(회의 진행자), 자원봉사자, 생산자, 소비자, 운전자, 보행자’ 등이 그러하다. 이 경우에도 ‘사회인, 자원봉사인, 생산인, 소비인, 운전인, 보행인’이라고 할 수 없다.
일시적인 상태에 있거나 일시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킬 때도 ‘-자’가 쓰인다. ‘확진자, 독점자, 부적응자, 중독자, 보균자, 동급자(同級者), 생존자’와 ‘유권자, 방영권자, 선거권자, 피선거권자, 관리권자’가 그 예가 된다. 이 단어들도 ‘-인’을 쓸 수 없어 보인다. ‘확진인, 독점인, 사회 부적응인, 중독인, 보균인, 동급인(同級人), 생존인’과 ‘유권인, 방영권인, 선거권인, 피선거권인, 관리권인’은 매우 어색하다.
‘-인’으로 써야하는 경우들
반면에 ‘-인’(人)은 (일시적인 상태가 아닌) 상대적으로 지속적인 상태를 가리킬 때 쓰인다. 그리하여 우선 사람이 가진 속성을 나타낼 때 ‘-인’이 쓰임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원시인, 현대인, 야만인, 문화인, 문명인, 교양인, 지식인, 지성인, 전문인’ 등이 그러하다. 이들을 ‘-자’를 써서 ‘원시자, 현대자, 야만자, 문화자, 문명자, 교양자, 지식자, 지성자, 전문자’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국적, 지역 거주인 등의 신분을 나타낼 때도 ‘-인’이 쓰인다. ‘한국인, 한인, 조선인, 미국인, 프랑스인, 로마인’과 ‘동양인, 서양인’이 그러하다. 이 역시 ‘한국자, 한자, 조선자, 미국자, 프랑스자, 로마자’와 ‘동양자, 서양자’로 쓸 수 없다. ‘지역인, 현지인’에서도 볼 수 있지만, 특정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총칭적으로 일컬을 때도 ‘-인’을 씀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경기인, 충청인, 경남인, 수원인 등과 같이 쓰인다. 이 경우에도 ‘경기자, 충청자, 경남자, 수원자’ 등과 같이 ‘-자’로 교체할 수는 없다.
또한 (일시적 역할이 아닌) 특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도 ‘-인’을 쓴다. ‘의료인,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연예인, 체육인, 정치인, 출판인, 기업인, 광고인, 방송인’ 등이 그 예이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의료자, 정치자, 언론자, 법조자, 연예자, 체육자, 정치자, 출판자, 기업자, 광고자, 방송자’처럼 ‘-자’를 쓸 수 없다.
이러한 구분 기준은 ‘중개인’이라 하면 중개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말로 들리고, ‘중개자’라 하면 일시적으로 중개의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 이해되니 충분히 근거가 있다. 특정 제품의 판매 역할을 맡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는 (제품의) ‘판매자’ 대신 ‘판매인’라고 한다면 판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가지만, 일시적으로 특정 제품을 구매한 사람이라는 뜻의 ‘구매자’로부터 구매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구매인’을 파생시키기는 어려운 것도 이 같은 기준의 타당성을 보여주고 있다. ‘발명자’라 하면 특정한 장치나 제품을 발명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일 수 있는 반면에(‘~의 발명자’처럼), 발명 분야의 종사자라는 의미로 ‘발명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아도 그러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일시적 상태에 불과한 느낌을 주는 대통령 ‘당선자’보다 지속적 상태를 부여하는 ‘당선인’이 훨씬 더 권위가 있게 느껴진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일시적 사건에 의한 상태이므로 ‘당선자’’가 옳지, ‘당선인’은 옳지 않다. 이는 ‘후보자’가 쓰이고 ‘후보인’이 쓰이지 않는 이유와 동일하다. 또한 당의 공천을 받은 경우도 일시적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므로 ‘공천자’(혹은 피공천자)라는 말을 써도 ‘공천인’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아직 고려하지 않은 예들이 있다. ‘-자’가 언뜻 보기에 지속적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기자’, ‘과학자’, ‘교육자’, ‘노동자’, ‘기술자’ 등 직업을 가리키는 명사들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예가 위에서 설정한 앞서 말한 첫 번째 규칙에 대한 반례(反例)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직업을 가진 사람’을 가리킬 때는 ‘-자’를 쓴다는 두 번째 규칙의 설정으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특정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인’과 그 의미가 다르다는 점, 즉 후자는 ‘직업으로서 활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도 구분이 되는 것이다. 즉, ‘종교인, 법조인, 의료인’ 등은 반드시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라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모든 사람, 예컨대 자원봉사로 활동하는 사람을 비롯한 그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을 총칭하는 것이다. ‘언론인, 연예인, 체육인, 출판인’ 등 다양한 ‘-인’의 쓰임에서 이러한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한국어에서 사람을 가리키는 접미사로 폭넓게 사용되는 ‘-인’과 ‘-자’의 용법은 이 두 가지 원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반례를 이루는 듯이 보이는 예들, 그러니까 ‘-인’이 일시적인 행위나 활동, 상태를 가리키는 데 쓰이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료들이 발견된다.
법률용어에서 발견되는 ‘-인’, 일본 영향인듯
직업으로서의 변호사가 아니라 사건을 수임하여 피고를 변호하는 역할을 일시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변호자’가 안 쓰이고 ‘변호인’이라고 한다. 또 ‘피고인’(被告人), 고소인, 항소인, 상고인도 일시적 역할에 해당하므로 ‘-자’가 맞을 텐데, 오히려 ‘-인’을 쓰고 있다. 또 ‘-자’와 함께 ‘-인’을 쓰는 예들이 있는데, ‘신청인/자, 청구인/청구자, 매도인/자, 매수인/자, 임대인/자, 임차인/자’ 등이 그러하다. 이상의 예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모두 법률용어 내지 행정용어라는 점이다.
일상용어에 대해서는 위의 두 원칙으로 모두 설명이 되지만 이같은 법률/행정용어에 있어서는 ‘-자’의 자리에 ‘-인’이 쓰이는 반례를 보이는 것이다. ‘헌법’에 ‘당선자’라는 올바른 용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위 법률들에 ‘당선인’이라는 표현이 쓰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왜 법률용어에서만은 일반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이는 중국어와 일본어에서의 ‘-인’과 ‘-자’의 사용 원칙을 분석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선 중국어에서는 일상어에서 이미 ‘-人’(인)의 사용이 ‘-者’보다 훨씬 넓다는 점, 그러니까 우리말에서 ’-자‘가 쓰일 자리에 이미 ’-人‘을 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어의 영향이라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일본의 법률 용어들이 우리의 법률 용어로 들어온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아무튼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논리적으로 일시적 사건에 의한 상태이므로 ‘당선자’가 옳지 ‘당선인’은 옳지 않다. 이는 ‘후보자’가 쓰이고 ‘후보인’이 쓰이지 않는 이유와 동일하다. 특히 ‘후보자’였던 사람이 ‘당선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데, 개표 후에 갑자기 ‘당선인’이 되는 것은 일관성도 결여하고 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유권자를 ‘유권인’으로 함께 격상(?)시키지 않는다면 본인도 그저 ‘당선자’로 남기를 바란다. 굳이 정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말의 어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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