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이제 모로코에서 좀 배울까?

‘아틀라스 라이온스’ 우승까지 노리나 세계 56위국의 특별한 도전...그 비결은 43년 식민지배국 프랑스도 제물 될까

모로코의 축구스타 하키미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모로코의 승부차기 네 번째 키커로 등장해 '파넨카킥'을 성공한 뒤, 레그라기 감독과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모로코의 축구스타 하키미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모로코의 승부차기 네 번째 키커로 등장해 '파넨카킥'을 성공한 뒤, 레그라기 감독과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모로코는 어디까지 갈까? 12월 15일 새벽, 카타르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프랑스 축구팀과 맞붙을 모로코 축구팀은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 왈리드 레그라기(Walid Regragui)의 지휘 아래 대회 시작부터 놀라운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양 팀의 대결은 여러모로 축구팬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 프랑스의 화려한 아트 사커냐, 아니면 모로코의 견고한 요새 축구냐? 즉 화려한 공격의 프랑스가 난공불락에 가까운 요새를 구축한 모로코를 뚫을 수 있을까, 없을까?

역사성도 이 대결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식민지배국의 승리이냐, 아니면 식민 피지배국의 복수이냐? 그러니까 모로코를 1912년부터 1955년까지 43년간 보호령으로 지배해온 프랑스가 이길 것인가, 아니면 지배를 받은 모로코가 독립에 버금가는 승리를 누릴 것인가? 모로코는 세계 경제순위 56위이고. 프랑스는 7위인데 말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최고의 골키퍼로 부상한 모로코의 부누 야신, 사진=AP/연합뉴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최고의 골키퍼로 부상한 모로코의 부누 야신, 사진=AP/연합뉴스

난공불락의 모로코 수비

F조에서 모로코는 크로아티아(0-0)와 비긴 뒤, 벨기에(2-0), 캐나다(2-1)를 차례로 물리치고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 이것 만으로도 역사상 네 번째 아프리카 국가. 이어 12월 6일 16강에서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10일 8강에서 포르투갈을 1 대 0으로 이기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로써 모로코는 월드컵 4강에 진출한 최초의 아프리카 및 아랍 국가가 되었다.

포르투갈을 꺾은 골, 야히아 아티아탈라(Yahia Attiatallah)의 크로스를 받은 스트라이커 유세프 엔네시리(Youssef En-Nesyri, 세비야 FC)가 폭발적인 점프로 내리꽂은 골은 ‘아틀라스 라이온스’(les Lions de l’Atlas, 모로코 국가대표 축구팀의 별칭)의 월드컵 도전사상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를 썼다.

모로코 축구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역시 난공불락의 수비다. 모로코는 프랑스, ​​브라질, 포르투갈, 잉글랜드 같은 우승 후보도 못한 무패행진을 보이고 있는데는 한 골밖에 실점하지 않은 놀라운 수비력을 갖고 있다. 그 한 골도 자살골일 뿐이므로 결국 한 골도 내 주지 않은 것이다. 비록 점유율 33% 이상을 넘긴 적이 없을 정도로 수비 위주의 경기를 하기도 했지만, 위험했던 장면도 많지 않았다. 그만큼 레그라기 감독이 설정한 4-1-4-1 포메이션은 매우 엄격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모로코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장 균형 잡힌 팀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자신보다 강한 팀을 만났을 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데, 모로코는 이 원칙을 그대로 지켜냈다. 우리나라가 브라질에게 패배했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아쉬움은 바로 모로코가 구사한 단단한 수비 전략이었다.

탄탄한 수비진과 함께 골키퍼 야신 부누(Yassine Bounou)의 눈부신 방어는 단연 돋보였다. 그는 스페인 라리가(La Liga)에서 최고의 골키퍼(세비야 FC)이다. 가장 많은 골을 막은 덕에 주요 스포츠 신문인 마르카(Marca)가 수여하는 ‘사모라’(Zamora) 트로피도 수상했다. 이번 16강전에서 부누는 120분 동안의 경기 후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출되었는데, 연장에 들어가기 전 두 번의 스페인 스트라이커의 결정적 프리킥을 막아냈고 승부차기에서 파블로 사라비아(Pablo Sarabia)와 카를로스 솔레르(Carlos Soler)의 슛을 막아내었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파블로 사라비아가 누구인가? 그는 16번의 승부차기에서 16번을 모두 성공시킨 승부차기의 전설이 아닌가!

국제적인 팀을 만든 모로코 정부

모로코의 성공은 정부의 체계적인 계획과 지원의 결과라 해야 할 것이다. 모로코 팀은 결코 자고 일어나 보니 유명해진 팀이 아니었다. 모로코 왕립 축구 연맹 FRMF(Fédérarion Royale marocaine de football)이 앞장섰다.

FRMF는 현 모하메드 6세 국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국가 축구의 구조를 개혁했다. 2009년 국립 축구 아카데미(Académie Mohamed VI de football)를 창립하여 축구 유망주를 기르기 시작했는데, 여기에서 나예프 아구에르(Nayef Aguerd)와 유세프 엔네스리(Youssef En-Nesryi)와 같은 국제적인 선수가 나왔다. 그리고 수도 라바트의 바로 외곽에 모하메드 6세 축구 경기단지를 건설하기도 했다.

이 훈련 단지에는 4개의 5성급 호텔, 8개의 FIFA 승인 경기장(에어컨이 설치된 건물 포함), 치과 의사가 있는 의료 센터를 입주시켰다. 그리고 유럽 전역에서 모로코 출신의 재능있는 선수들을 발굴하려 노력했다.

연맹은 또한 여자 축구에 투자, 학교 및 클럽 축구를 개발했고, 내셔널 리그 구조를 만들기도 했다. 여자 축구에 대한 FRMF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모로코 여자축구는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프로 여자 축구 2개군을 운영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하지 않은 아랍권에서 이런 일을 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로코가 축구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국가 GDP순위가 세계 56위, 1인당 GDP는 3300달러로 세계 130위권에 해당하는 나라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투자다. 이제 지난 10년간의 투자가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국제적인 선수들이 모로코에 모였다

대표팀의 레그라기 감독은 이번 월드컵 팀을 국적 기준으로 가장 다양한 선수들로 구성했다. 26명의 선수 중 14명이 모로코 밖에서 태어난 선수들이다. 여러 나라에서 온 이 선수들을 응집력 있는 한 팀으로 통합했다.

레그라기의 26인 선발진에는 모로코에서 태어난 선수로는 단 12명. 나머지 14명은 스페인,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온 선수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태어나거나 자란 나라보다 모로코를 대표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일부는 어린 시절 모로코로 이주했고 일부는 부모의 출생 국가를 대표하기로 선택했다.

레그라기 감독 역시 프랑스에서 태어났음에도 모로코 국가대표 감독직을 선택했다. 그는 올해 처음으로 제공되는 아프리카 축구 연맹(CAF) 전문 코치 자격증을 취득한 최초의 코치 그룹 중 일원이었다. 그렇게 준비된 그에게 기회가 왔다. 카타르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인 지난 8월 말에 예선 통과를 위해 팀을 이끌었던 보스니아 출신의 바히드 할릴호지치(Vahid Halilhodžić) 감독을 모로코 왕립축구연맹(축구협회)가 전격 경질한 것이다.

모로코 국가대표 감독에 부임한 레그라기는 선수들에게 창의성을 길러 주기 위해 좀 더 많은 자유를 부여했다. 그리고 선수 가족을 카타르 캠프에서 팀과 함께 머물도록 해 선수들의 정신적인 안정을 꾀했다. 선수들뿐 아니라 자신도 어머니를 카타르로 불러서 함께 지냈는데,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후 스탠드에 있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광경이 TV 카메라에 잡혔다. 소셜 미디어에는 레그라기가 관중석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껴안고 키스하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가 돌았다. ‘모로코의 데이비드 베컴’이라 불리는 아슈라프 하키미(Achraf Hakimi)도 어머니를 포옹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선수단의 모습은 스페인전 승리이후 모로코 국민들의 대대적인 환호로 이어졌다. 카사블랑카에서 탕헤르를 거쳐 수도 라바트까지 저녁 내내 이 엄청난 승리를 축하했고 국왕 모하메드 6세도 라바트 거리에 몸소 나와 국민들과 함께 즐겼다.

모로코 응원단의 열정도 대단했다. 모로코의 서포터들은 90분 동안 상대방을 경기에서 몰아낼 듯하는 엄청난 응원을 했다. 모로코가 16강에 진출한 이후에는 응원 규모가 훨씬 커졌다. 스페인과의 경기 전에 레그라기 감독은 “예전에는 모로코인만이 우리를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프리카인과 아랍인까지 우리의 응원단이 되었습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팀이 된 것이다.

카타르 월드컵 결승 진출을 다투는 4강전 프랑스와 모로코전은 우리시간 15일 새벽 4시에 열린다. 사진=연합뉴스
카타르 월드컵 결승 진출을 다투는 4강전 프랑스와 모로코전은 우리시간 15일 새벽 4시에 열린다. 사진=연합뉴스

양자 대결의 역사적 의미도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모로코의 성공은 2022 월드컵 최고의 스토리일 수 있지만 단순히 운과 용기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 전체가 합심한 계획과 기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제 관심은 두 가지 방향으로 흐른다. 우선 한국 축구는 모로코에서 배울 것이 없을까?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전술? 국가와 국민이 하나되는 구조? 이를 만들어내는 리더십?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또 하나는 4강전의 향방이다.

화려한 아트 사커의 프랑스가 이길까. 아니면 견고한 요새 축구를 선보인 모로코의 깜짝 승리로 끝날까. 한국과 일본이 만나면 피터지는 승부를 펼치듯, 식민 피지배국인 모로코가 식민지배국 프랑스를 반드시 이기겠다고 기를 쓰고 덤벼들까. 프랑스는 1912년부터 1955년까지 43년간 보호령으로 모로코를 지배해왔던 나라다.

그리고 타국의 디아스포라냐, 아니면 자국의 디아스포라냐? 그러니까 프랑스는 타국의 디아스포라를 흡수하여 많은 흑인들과 아랍인들을 자국 대표팀에 통합시킨 반면, 모로코는 자국민의 디아스포라를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해 강력한 대표팀을 만들었다. 어떤 애국심이 더 강할까?

축구적 관점에서 창과 방패의 대결이거나 역사적 관점에서 승리와 복수인 이 경기, 과연 축구의 역사는 어느 편을 들 것인가?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경기는 식민지배국의 승리이냐, 아니면 식민 피지배국의 복수이냐의 의미가 가장 클 것이다. 사실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과거 지배국의 팀을 이기는 것이 결코 하나의 경기에 대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지배에 대한 복수를 의미한다. 자신의 조국을 짓밟은 나라에 대한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다. 서유럽 국가의 지배를 받았던 아랍 국가들의 경우 ‘아랍형제주의’로 인해 그러한 승리를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식민 지배의 역사를 당했던 국가의 사람들도 비슷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기회가 된다.

이러한 식민지 복수가 지난 8강전에서 모로코가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을 이겼을 때 실현되었다. 더욱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노동계급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슈라프 하키미가 모로코의 결승골을 터트렸다는 점은 이를 더욱 통쾌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이제 프랑스마저 이긴다면 이 드라마는 완벽하게 종결되게 된다. 그래서 모로코인들은 이 드라마를 위해 목놓아 응원할 것이다.

과연 이 전쟁은 어떤 결말을 우리에게 보여 줄 것인가?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베가북스)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씨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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