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에 사과가 필요한 이유
사과도 책임도 모르는 헛똑똑이들 먼저 사과할 때 유족들 마음 열려 책임지는 이가 리더...변명해선 안돼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직후부터 대통령실, 행정안전부, 여당, 지방자치단체 등 안전과 재난 상황을 총괄하는 주무 부서의 장들이 내놓는 발언을 보면 그 안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사과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공직자들의 언어에는 사과가 없는가?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은 대개 일상생활의 아주 사소한 잘못들에 대해서도 상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수시로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큰일이 발생했는데도 그들은 왜 사과를 하지 않는가?
“경찰,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참사 발생 14시간여 뒤 10월 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그것도 사전에 준비된 발언으로, 이후 대통령실, 행안부, 여당, 지방자치단체의 장들은 한결같이 “막을 수 없는 사고였다.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취했다.
‘책임’이란 자신의 행위가 초래한 결과에 대하여 마땅히 져야 하는 의무나 부담을 말하는데, 영어에서 책임을 뜻하는 responsibility는 ‘답변(response)을 할 수 있음’이라는 의미에서 왔다.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했을 경우,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 응당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하는 입장에 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공직자들은 답변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회피하고 있는가?
온 국민은 슬픔에 젖어 자책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버텨내고 있는데, 책임을 면하려는 구차한 변명으로만 일관하는 공직자들의 태도를 우리는 언제까지나 보아야 하는가? 국민의 안전보다 자기의 안전을 우선하는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국가의 지도자로 보아야 하는가?
사과와 책임이 뭔지 모르는 헛똑똑이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분노 이전에 연민을 느낀다. 그들은 삶의 평범한 진리를 모르는 헛똑똑이들이기 때문이다. 사과는 잘못의 인정이기 이전에 ‘대화의 시작’이라는 점을 그들은 모른다.
인간관계에서 사과는, 누가 잘못했는지를 떠나서, 상대에게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든 사과를 받으면 마음이 누그러져 여유가 생기고, 이로 인해 상대를 용서해 줄 수 있는 마음의 공간도 생긴다. 바로 이 점으로 인해 사과는 마음의 문을 여는 대화의 시작점이 된다.
반면에 사과를 하지 않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변명만 늘어놓으면 필히 상대의 원망을 낳게 되고 퇴로가 꽉 막혀 버려 애초에 대화가 시작되지 않고 비난만 받는 상황을 자초하게 된다. 밀고 당기느라 서로에게 수많은 상처를 남기고 나서 마지막에 잘못을 했다고 하며 용서를 구하는, 즉 사건을 매듭짓는 단계에서 하는 사과는 너무 늦다. 대화의 시작 단계에서 사과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성 없는 사과는 진정성도 없다
물론 ‘압사’ 등을 언급한 112 신고 내용이 공개되면서 여론에 떠밀려 형식적 사과의 발언들이 나왔다. 참사 사흘 뒤인 11월 1일부터였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먼저 “사고 발생 이전부터 많은 군중이 몰려 사고의 위험성을 알리는 급박한 내용의 112 신고들이 있었지만 이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은 미흡했다”라고 하자,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처음으로 ‘사과’라는 단어를 썼다. 그는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관내에서 발생한 참담한 사고에 대해 구청장으로서 용산구민과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스럽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4일 오후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영가 추모 위령법회’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사과는 우선 너무 늦었다. 사과에는 유통기한이 있기 때문이다. 늦을수록 진정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이같은 발언들은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과의 진정성은 구체성으로 담보되는데, 어떤 점에서 잘못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책임지지 않는 리더는 리더가 아니다
안전과 재난 상황을 총괄하는 주무 부서장들의 발언에서 느껴지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주최 측이 없는 행사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10월 31일 오후 3시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현재 경찰은 집회나 시위와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반 국민을 통제할 법적, 제도적 권한이 없습니다. 주최 측이 어떤 요청을 하면 경찰이 선제적으로 나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법적, 제도적 권한의 한계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알다시피,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만일 국민 안전을 도모해야 할 국가 기관들이 법대로 집행하는 일만 하는 조직이라면, 국가 기관들은 왜 있는 것인가? 국민 세금을 낭비하지 말고 법원과 검찰청만 남기는 것이 맞지 않을까?
지금 대한민국의 리더들은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있다. 리더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책임 의식이다. 왜냐하면 조직의 안전이 조직의 생존 및 발전에 필요한 전제이고 안전의 보장은 리더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리더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누가 그를 따르겠는가? 그러므로 리더십은 무엇보다 책임 의식에서 나온다고 하겠다.
리더는 스스로 매뉴얼이고 책임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공직자들은 매뉴얼 타령을 하면서 책임을 면하려 하고 있다 하급, 실무 담당자들이 매뉴얼에 의거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맞지만 지도자가 매뉴얼 뒤에 숨는 것은 옳지 않다.
조직에 매뉴얼은 필요하다. 만일 한번 경험한 일이 있다면 같은 상황이 올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매뉴얼에 기록해 두고 필요시 이를 활용한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거나 일부 새로운 상황들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 부딪히게 될 때는 매뉴얼이 도움이 되지 않거나 불충분하다. 이처럼 매뉴얼은 기본을 알려 주는 것이므로 이를 지키되 최종적인 판단은 리더가 하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하려고 리더를 임명해 놓는 것이다. 매번 매뉴얼대로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리더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매뉴얼은 법조항이 아니다. 도움을 받기 위해 편의상 만들어 놓는 행동 지침이다. 반면에 법조항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기준이다. 법은 최소한이다. 법 조항에는 상세한 행동 지침이 없다. 리더는 최종 결정자이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의거해야 할 매뉴얼이 없다. 스태프의 의견을 청취하고 참고하되 최종적으로는 혼자서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신이 의지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판단력이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도덕성과 가치관이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경찰병력을 사고 전에 준비했어도 큰 차이 없었다”라는 식의 행안부 장관의 발언은 자신이 리더가 아님을 고백하는 발언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조직의 수장으로는 부적격이다. 주최자가 있건 없건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함은 물론이고,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는 오히려 더 면밀하게 살폈어야 한다. 매뉴얼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막대한 권한을 그에게 위임한 이유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따르는 이유이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일해선 안된다
용산구청장이 특별히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주최자가 있는 축제는 구청이 직접 안전관리계획을 세우거나 주최 쪽의 계획을 심의할 의무가 있다고 행안부의 ‘지역 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역시 책임을 피해가는 데만 온 신경을 쓰는 것으로 리더로서의 부적격성을 스스로 알리는 사례가 된다.
물론 경우에 따라 리더가 억울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사 과도한 비난으로 억울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리더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형 참사는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요, 개인에게는 그러한 힘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불가항력의 상황에 빠지면 국가가 개입하여 해결을 해 주어야 한다. 네덜란드에서의 실험은 1제곱미터(㎡)당 6명 이상이 있게 되면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임을 입증한 바 있다. 리더는 조직의 안전을 위해서 일한다. 결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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