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한 집인가, 집을 위한 삶인가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집은 당신 욕망의 서열에서 몇번째인가” 영화 ‘소공녀’ 주인공 이솜이 찾는 행복
집값이 폭등하면서 직장에 다니는 30대는 집 한 채 건지기를 최대 과업으로 삼는다. 본인이 그 집에서 살고 안 살고는 별개의 문제다. 영혼을 끌어모아 대출을 받고 전세를 낀 채, 주택 매입에 성공했다고 해도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다달이 나가는 고액의 이자 때문에 스스로 “하우스 푸어!”라고 신세 한탄하는 모습도 봤다. 삶에 꼭 필요한 세 가지, 의식주 중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주택이다. 그래서 집 없이 결혼한 부부의 첫 번째 목표는 자기 집 장만이다. 과거에는 성실하게 돈을 모아 집을 사는 일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집이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아니, 무슨 의미여야 할까.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이 되어야 할 집이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 옳은 일일까. 집이 편한 공간이 아닌 투자의 대상이 되면, 내가 아닌 집이 주인이 되는 느낌이 든다.
전고운 감독 데뷔작 ‘소공녀’...주인공 이솜
2018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소공녀>는 집이라는 공간과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소공녀>는 전고운 감독의 데뷔작이며 주인공인 미소 역을 이솜이 연기했다. 미소라는 주인공의 이름에도 이 영화의 주제가 담겨 있다. <소공녀>의 영어 제목은 <microhabitat>다. ‘미소서식처’라는 뜻인데 특정 생물체나 미생물이 사는 서식처를 말한다. 미소라는 이름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 미소는 실험적인 삶을 산다. 일반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서를 뒤집고 있기 때문이다. 미소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쾌락을 억압하지 않는다. 미소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는 그녀가 어디에 가장 많은 돈을 소비하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미소는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 하루에 소비할 비용만 번다. 그저 하루를 만족하며 살면 그뿐이다. 집을 사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은 꿈도 꾸지 않는다. 뭔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미소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소유라는 개념이 그녀에게는 심리적인 행복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미소가 가사도우미로 하루에 버는 돈은 4만5천원이다. 방세, 약값, 밥값 같은 꼭 필요한 경비를 빼고, 그녀가 가장 많은 돈을 소비하는 기호품이 있다. 바로 위스키 한잔이다. 일이 끝난 뒤 매일 위스키 한잔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운다. 위스키와 담배는 그녀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하지만 큰 불만 없이 살아가던 그녀의 삶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집과 연관된 서사가 시작된다. 방세가 오르고, 위스키와 담배값도 오른다. 미소가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방세였다. 당장 잘 곳이 없어진 미소는 아는 사람들의 집을 찾아가기로 한다. 대학시절, 밴드활동을 함께 했던 멤버들을 한 명씩 찾아 나서면서 미소의 여행이 시작된다. 미소는 스스로에게 “이건 여행을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집을 나서는 여행이 아닌 집을 찾아가는 여행인 셈이다. 그리고 그 여행은 결코 수월하지 않다.

집에 매여버린 인생...행복은 어디에
다섯 명의 밴드 멤버 중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없어 보인다.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키보드를 담당했던 친구는 백수 남편을 둔 덕분에 시부모의 집에 얹혀산다. 30년간 중국집을 운영해 신물이 난 시부모는 식당을 그만 둔 뒤 주방 일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살림에 소질이 전혀 없는 친구는 종일 가사에 시달리며 살고 있었다. 친구에게서 밴드시절의 발랄한 모습은 흔적도 찾을 수가 없다.
다음에 찾아간 밴드 막내, 재용의 집은 그럴듯한 아파트였지만 그 역시 결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았다. 재용은 자신의 수입에 비해 턱없이 많은 아파트 대출금과 이자 때문에 집이 아니라 감옥이라고 표현한다. 앞으로 20년간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니 오히려 생활은 더 궁핍해졌다. 그런 이유로 아내와도 이혼 직전에 있다. 결혼하기 위해 무리하게 아파트를 얻었지만 그 이외에는 모든 것을 상실한 셈이다. 따듯한 사랑도 없고 자존감도 없어졌다. 미소와는 정반대다. 미소는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며,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자존감도 있다.
미소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밴드에서 기타를 담당했던 정미 언니의 집. 그녀는 풍족하게 살고 있어서, 흔쾌히 미소를 받아들인다. 미소는 욕조물에 몸을 담근 채 창문 밖으로 정원을 내다보면서 한가한 목욕을 즐기고, 침대가 있는 독방에서 잠을 자면서 처음으로 사람다운 삶을 산다는 느낌을 받는다. 집 문제가 해결되니 여유가 생겨서, 담배도 원래 좋아했던 브랜드로 바꾸고 더 좋은 위스키를 마시는 호사를 누린다. 모든 게 정상으로 되돌아온 것 같은데, 미소는 왠지 뭔가 잘못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곧 그 이유가 밝혀진다. 부유한 남편 집안의 자본에 의존해 지내고 있고, 친정 역시 사위의 덕을 보며 사는 탓에 남편의 비위를 맞추면서 사는 게 정미 언니 삶의 핵심이다. 자신이란 존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남편의 한마디에 로봇처럼 움직이고, 남편이 말을 할 때마다 옆에서 조신하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래서 남편이 미소에게 집사람은 대학 시절에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었을 때 긴장한다. 여자가 밴드에서 기타를 쳤다는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소가 즐거운 마음으로 젊은 시절의 정미 언니를 회상하며 “뜨거운 사람이었고 기타를 잘 쳤다”라고 얘기하자 남편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고 정미 언니가 당황해한다.
자신의 아내가 조신한 여자였기를 바랐던 남편의 기대가 무너지고 지금까지 조신한 이미지를 꾸미며 남편과 시집의 부에 의존해 살던 정미 언니의 전략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미 언니는 본인의 정체성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남편의 자본을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화가 난 정미는 미소를 비난한다. 거처할 곳도 없으면서 분수 넘치게 위스키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철없고 염치없는 애라면서 자신의 집에서 나가게 한다.
집 때문에 자신을 잃어버릴 수 없다
상처받은 미소는 혼자 힘으로 방을 구해보려 하지만 자신의 처지에는 너무 비싼 보증금과 월세에 좌절한다. 소박한 취향을 즐기며 살기에 이 세상은 냉혹하다. 엔딩 장면은 미소가 결국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여준다. 백발 머리를 한 여성이 위스키 잔을 내려놓는 모습과 한강변에 놓인 주황색 텐트가 보인다. 미소는 약을 먹지 않으면 백발이 되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결국 약을 포기했음을 시사한다. 미소는 머리색과 집은 포기했을지언정, 위스키로 상징되는 소소한 행복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위스키 한잔은 그녀의 자존감이기도 하다.
<소공녀>는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집을 마련하고 안정된 삶을 살기가 불가능한 현세대를 묘사하고 있다. 꿈을 포기한다고 해도 안정된 삶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꿈과 취향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갈등이 이 영화의 주제다. 영화는 집을 가지고서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과 집이 없어서 불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지만 소소하게 누리는 행복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미소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모든 것을 포기해도 당신이 끝까지 버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집은 당신 욕망의 서열에서 몇 번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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