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으로 정치적 능력주의에 맞서라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법조-재벌-언론이 만든 ‘법조지배 과두정’ 수사-기소 분리는 민주공화국다움의 가늠자 “검찰개혁은 민주공화국답게 만드는 일”
정치적 능력주의 또는 과두정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새 정부의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을 죄다 ‘서육남(서울대, 60대, 남자)’으로 지명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정부가 해왔던 지역, 출신 학교, 연령, 성별 등에 따른 안배 원칙을 전적으로 무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인사를 오직 실력과 전문성에 따른 것이라고 정당화한다. 김앤장 로비스트 출신 한덕수 총리 후보자나 자녀 의전원 편입학 문제로 시끄러운 정호영 후보자 같은 이들이 진짜 얼마나 실력을 갖춘 것인지 그리고 진짜 단지 실력이라는 기준만을 앞세운 인사인지는 의문이지만, 그는 자신의 인사를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로 포장한 것이다.
한편 이제 여당이 되는 국민의 힘 이준석 당대표는 다가오는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공직 후보자 자격시험’이라는 걸 도입했다. 30문항으로 된 객관식 시험을 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는 후보자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능력이 없는 후보자를 걸러내겠다는 것이다. 그런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사람이 정말 정치도 잘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는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부터 일관되게 내세우던 자신의 능력주의를 실천에 옮겼다. 두 사람의 ‘정치적 궁합’이 참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개개인이 지닌 능력에 따라 부나 사회적 지위를 분배해야 마땅하다는 능력주의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 일반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정의(공정) 관념이다. 윤 당선자와 이 대표는 바로 이런 대중의 일상적인 정의 관념에 호소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선택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동안에도 우리 정치에서는 이 능력주의가 제법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지역이나 성별 안배 같은 다른 가치나 원칙이 완전히 무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능력주의를 표방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정치도 오직 능력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는 인식을 퍼뜨리면서 말이다. 우리는 이런 능력주의를 특별히 ‘정치적 능력주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얼핏 제법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 정치적 능력주의는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능력 있는 사람만이 정치를 잘 할 수 있다는 전제는 민주주의가 전제하는 평범한 보통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와 판단을 불신하고 배제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의 학자들이 민주주의와는 다른 선발 과정을 거친 소수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정치 체제를 정치적 능력주의라 규정하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도 이런 정치적 능력주의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우리 민주주의는 여러 면에서 능력주의적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과두정’의 성격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외려 심화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검찰공화국’의 탄생
사실 우리에게 이 정치적 능력주의는 그렇게 새삼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오랜 유교적 정치 전통과 맞닿아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2천 년 전부터 혈통이 아니라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나라의 일을 관장해야 한다는 ‘선현여능(選賢與能)’의 이념이 지배적인 정치철학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학문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사람을 선발하여 관료가 되도록 하는 과거 제도의 발전은 그런 철학 위에서 이루어졌다.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일본의 유자(儒子)화된 사무라이들이 근대적 과거 제도로 만들어 우리에게 전해 준 ‘고시’ 제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정치적 능력주의는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배경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그가 (비록 9수를 했지만) 사법고시에 합격한 서울 법대를 나온 법조인 출신이라는 사실이 완전한 정치 신인인 그에 대한 우리 유권자들의 막연한 신뢰의 배경이었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정치적 능력주의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우리나라의 ‘법조지배체제’다. 이 체제는 법조인이라 불리는 사법 엘리트들이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재벌이나 주류 언론 같은 다른 권력 중심들과 함께 사회의 지배적 중추를 형성하고 있는 체제라 할 수 있는데, 윤석열은 바로 이 바탕 위에서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 법조지배체제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여야 할 것 없이 많은 국회의원들이 ‘오변남’(오십대 변호사 남자) 출신이다. 꼭 국회가 아니라도 우리 사회전반에서 이른바 법조인들은 막강한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는 대법원에서든(가령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에 대한 ‘사후매수죄’ 판결), 헌법재판소에서든(가령 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한 ‘경국대전’ 판결) 최소한의 합리성도 결여된 판결들을 통해 판사들이 어떻게 우리의 민주주의를 왜곡시켜 왔는지를 숱하게 경험해 왔다. 또 우리는 예컨대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어떻게 우리 사회 최상층 지배층을 위해 법률적 전문성을 사용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법조지배체제의 중심엔 지금껏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해 온 검찰 권력이 있다. 그동안 검찰은 아무런 견제 없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했던 덕분에 시민들에 대한 국가 권력의 자의적 ‘지배’를 일삼을 수 있었다. 공화주의 정치철학이 지목하는 가장 큰 정치적 불의다. 그러한 권한은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시민들의 어떤 혐의도 내키는 대로 수사할 수 있지만, 자신들과 친밀한 권력자의 범죄에는 거리낌 없이 눈을 감을 수도 있게 한다.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의 검찰은 그런 권한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우호적인 정치권력과 결탁하거나 민주적인 선출 권력을 통제하는 ‘검찰정치’를 해왔다.
검사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그런 검찰정치의 정점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제 우리 사회는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이른바 ‘검찰공화국’의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앞으로 검찰이 자신의 무소불위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게 될지 정말 두렵다. 윤 당선자는 검사 시절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한동훈 검사를 법무부 장관 후보에 지명함으로써 그런 검찰공화국을 향한 의지를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드러냈다.
과두정에 맞서는 민주공화주의적 실천으로서의 검찰개혁
지금 많은 시민들이 염원하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검수완박’, 정확하게는 기소-수사권 분리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충분히 민주공화국답지 못했다. 민주공화국은 하나의 이상일 뿐 아직 충분히 현실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시민들은 지금껏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수많은 피와 땀을 흘려 왔다. 지난 ‘촛불혁명’도 바로 그 이상을 실현하여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려 했던 시민적 염원의 표현이었다. 시민들에 대한 국가 권력의 자의적 지배를 막기 위한 검찰개혁은 그 나라다운 나라, 곧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을 위한 필수적 전제가 아닐 수 없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는 지구상 거의 대부분의 민주공화국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민주공화국다움의 가장 중요한 가늠자 중의 하나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정치적 승화를 내세우면서도 그러한 염원을 제대로 제도화하고 입법화하는데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바로 그 대가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검찰공화국 수립 시도로 인해 그동안의 역사적 성취마저도 무화되고 민주공화국의 이상 자체가 조롱당하는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치러야 할 마땅한 대가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일이다.
평범한 보통 시민들이 나라의 참된 주인이 되어 ‘공동선’을 모색하기 위한 민주적 숙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바탕 위에 국정이 운영되는 민주공화국의 이상은 빛이 바래졌고, 검사들을 필두로 한 소수의 엘리트들이 능력과 전문성을 명분으로 국가 권력을 독점하는 과두정은 더 탄탄하게 성벽을 구축하고 뿌리를 내리려 한다. 이제 검찰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물론 많은 논란이 있다. 저 법안이 위헌이라는 지적도 있고, 윤 당선자 취임 전에 법안을 꼭 통과시키겠다는 속도전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경찰 권력의 비대화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국민적 공감대 없이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다가오는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이 또 다시 유권자들에게 심판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다. 모두 일리가 있고, 나도 많은 부분 공감한다. 민주당이 더 섬세하게 문제에 접근해서 타협하고 양보하며 포용하는 민주적 공화주의 정치의 모범을 보여주었더라면 좋았겠다. 나아가 당장 이번 지방선거 때부터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겠다던 공약 같은 것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치개혁 역시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지금 사실상의 과두정에 맞서는 우리의 민주공화주의적 실천에서 검찰개혁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다. 꼭 지금과 같은 방식과 절차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견이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엔 더 이상의 개혁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적 공화주의 정치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저항하고 투쟁하며 원하는 결과를 쟁취하는 모습을 띠는 게 불가피할 수도 있다.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모쪼록 민주당이 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의 민주공화국을 조금이라도 더 민주공화국답게 만드는 일에 꼭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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