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정치체제’를 넘어 ‘제7공화국’으로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민주당이 다시 다수당되더라도, 다른 대통령이 나타나더라도, ‘다른 정치’ 보여 줄 것 같지 않아 거부권 정치체제 탓...새로운 정치를

2024년 예산안 제출을 한 후 국회에서 시정연설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회를 방문한 윤 대통령에 항의하기 위해 피켓 시위를 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2024년 예산안 제출을 한 후 국회에서 시정연설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회를 방문한 윤 대통령에 항의하기 위해 피켓 시위를 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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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커다란 위기에 빠져 있다. 검사가 대통령이 되더니, 검찰의 이해관계와 문법이 정치를 쥐고 흔들고 있다. 비단 검사 출신이 정부 요직을 장악하고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집요한 수사와 기소 관련 문제가 1년이 넘도록 이 나라의 정치판을 규정했다는 사실만이 문제는 아니다. 국회가 법으로 제한했던 검찰 수사의 범위를 달랑 시행령 하나로 무력화했던 반헌법적 폭거가 버젓이 자행되었던 일을 포함해 그동안 우리 민주주의를 지탱해 왔던 많은 법과 규범이 검찰과 검찰 출신 각료와 정치인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다. 검찰 정권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공영 방송까지 장악하더니, 이제 가짜 뉴스를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비판 언론마저 수사와 기소를 통해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정치가 질식사하고 있다. 정치권은 민주화 이후 그동안 정치적 색깔을 막론하고 권력만 잡으면 검찰을 권력 정치를 위한 도구로 유용하게 써먹으며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더랬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잃고서 검찰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민주당 정권도 어떻게든 일단 검찰을 ‘적폐청산’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다가 순치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검찰이 사실상의 쿠테타를 통해 이렇게 무소불위의 독립적 정치 주체가 되어서 대통령 권력을 장악하고선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검찰의 통치 체제’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의힘 쪽에서야 민주당을 응징하고 정부를 장악하기 위해 ‘차도살인’의 간계를 부린답시고 검사 윤석열을 끌어들여 모든 정치적 자원을 지원했겠지만, 그 결과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검찰 통치 체제(Prosecutocracy)’다.

아마도 내년 총선은 우리나라에서 이 검찰통치 체제가 완성될 수 있을지가 판가름이 나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만약 검찰에 장악된 국민의힘이나 일각에서 거론되는 ‘윤석열 신당’이 승리하여 과반 이상의 다수당이 된다면, 입법권력까지 검찰이 장악하는 전대미문의 일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하여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반대에 막혀 처리하지 못했던 온갖 반민주 악법들이 처리될 것이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최종적으로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이다. 어떻게든 이런 일은 막아야 한다.

‘정권 심판’으로 충분한가?

다행스럽게도 각종 여론조사나 지난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우리 시민들은 검찰권력의 민주주의 파괴 작태를 그냥 방관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임을 단호하게 보여주었다. 비록 근소한 표 차이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우리 유권자들은 이 정권이 보여 왔던 실정에 결코 관대하지 않음이 확인되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변화와 혁신을 외치며 여론을 살피겠다고 시늉은 하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만 보면 여론을 반전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내년 총선 결과를 낙관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지금 검찰 정권은 언론 장악 기획을 하나하나 실천해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힘 혁신을 통해서든 윤석열 신당을 통해서든, 새로운 정치판을 짜기 위해 온갖 묘수를 궁리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치를 선거 제도가 어떻게 될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지만, 가시화되고 있는 ‘이준석 (+ 유승민) 신당’을 포함한 이런저런 신당들이 만들어져 어떤 효과를 낼지 모른다. 또 민주당이 정말 분당되지 않고 총선까지 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총선 전 6개월은 결과를 예단하기에는 너무 먼 시점이다.

아마도 가장 큰 장애는 우리 시민들이 민주당에 대해 다시 신뢰를 주기를 머무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각종 여론 조사에서 나타나는 30% 대에 달하는 무당층이 입증한다. 그들은 묻고 있다. 다시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기고 집권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또 다른 민주당 정부가 더 나은 정부라는 보장이 있는가? 그러나 민주당은 아직 이 물음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분당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할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신당들이 그 부동층의 표를 흡수해 가버릴 수도 있다. 단순다수결로 치러지는 지역구 선거에서는 그런 유동성 때문에 여권이 ‘1 대 다’ 구도에서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보 야권, 특히 민주당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좀 특별한 접근법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단합과 혁신, 물론 중요하다. 지금 국민의힘 쪽에서는 ‘무늬만 혁신위’라고는 해도 어쨌든 혁신의 깃발을 들었다. 민주당도 비명계와의 갈등을 봉합할 뿐만 아니라 ‘김은경 혁신위’의 작업을 진지하게 수용하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상응하는 혁신의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윤석열 정권의 실정이 너무도 심각하기에 여전히 ‘정권 심판’의 깃발이 얼마간 먹히기는 하겠지만, 민주당 정권이 심판당한지도 고작 2년 밖에 안 되는 시점이다.

게다가 지금도 민주당은 국회에서 절대 다수 의석을 갖고 있지만 곳곳에서 도대체 뭘 했느냐는 비아냥거림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다시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호소가 얼마나 먹힐 수 있을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겠지만, 솔직히 민주당이 얼마나 제대로 변할 수 있을지는 나부터 기대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사실 달라진 민주당이 다시금 다수당이 된다고 해서 ‘다른 정치’를 보여 줄 것 같지도 않다.

‘비토크라시’를 넘어

단순히 민주당을 조롱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우리 민주주의에서 진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직시하자는 이야길 하고 싶어서다. 지금 국민의힘 혁신위가 큰 의미가 없는 것은 진짜 중요한 근본 문제를 건드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 말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민주당의 경우 문제는 단지 ‘개인 윤석열’이 아니다. 대통령 한 명이 이상하니 나라 전체가 큰 혼란과 위기에 빠지는 우리의 헌정 체제 그 자체가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 시대, 우리 시민들이 경험한 것은 단순히 대통령 개인의 권위주의적 성향이나 엉뚱한 이념 지향이 망쳐 놓은 국정과 기괴한 정치 풍경만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시행령 남발과 거부권 같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앞에 국회의 절대 다수 의석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제왕적 권력은 민주당 정권에서는 별로 써 본 적이 없다고 해도, 우리 헌정 체제가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주어진 권력이라도 공화의 이상과 민주적 규범에 따라 자제하며 타협하고 양보할 수 있는 덕성이 없는 지도자가 있는 한 우리 민주주의가 순식간에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누군가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의석을 민주당과 야권이 확보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쉽지도 않겠지만,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탄핵 이후’에 펼쳐질 정치가 ‘다른 대통령’을 만들어 내는 걸 넘어서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결국 ‘그렇고 그런 또 다른 민주당 정권’일 것이며, 아마도 보수 진영은 다시금 새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며 극한투쟁을 재개할 것이다. 유권자들이 정말 이런 귀결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을까? 이런 문제는 결국 정치체제 전체를 바꾸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자유주의의 궁극적 승리와 더불어 ‘역사의 종말’이 왔다고 선언했던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미국의 양당제 민주주의가 서로에 대한 극한적 반대와 저지만을 일삼으며 정치적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한탄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정치체제를 ‘비토크라시(vetocracy)’라고 이름 붙인 적이 있다. 어색한 표현이지만, 거부권정치체제 그러니까 상대를 거부하기만 하는 정치체제를 뜻한다. 한국의 정치 체제도 지금 딱 바로 그런 비토크라시가 아닐까? 이런 체제에서는 대화와 타협, 공동선의 추구를 자양분으로 사회의 근본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는 정치 자체는 질식사한다. 대신 날선 이해관계의 대립과 맹목적 적대만 난무하는 전쟁정치가 판을 친다. 여기서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살아남더라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 채 생명을 잃고 말 것이다. 이 비토크라시를 끝내야 한다. 그럴려면 제왕적 대통령제와 더불어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함께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제7공화국’을 위한 연대를

사실 진작부터 우리 ‘87년 체제’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차원에서 지적되어 왔다.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지역구 중심의 단순다수결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낳은 양당 중심 정치체제로는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숱한 도전들을 하나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점점 더 분명해 지고 있다. 그래서 지난 ‘촛불 혁명’ 이후에도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은 중요한 의제 중의 하나였고, 문재인 정부도 개헌안을 발의하고 20대 국회는 선거제도를 부분적으로나마 바꾸기는 했다. 그러나 개헌 논의는 아예 막혀 있고, 선거제도도 위성정당 논란만 낳으며 기형적인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런 실패의 역사는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 촛불혁명을, 말하자면 어떤 ‘영구 혁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혁명은 일정한 성과를 가졌으되, 많은 한계도 남겼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위업을 끌어냈던 그 혁명의 열정과 힘은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이유로 나라다운 나라, 좀 더 온전한 민주공화국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새로운 헌정체제와 정치체제를 형성해야 했지만, 거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혁명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윤석열 대통령의 폭정은 다시금 그 촛불혁명의 과제를 변화된 상황과 조건에서 새롭게 완수해야 할 필요를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제는 ‘광장정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결국 ‘의회정치’를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다. 내년 총선을 그 결정적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민주당과 다른 잠재적 야권은 ‘반윤석열 연대’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그 연대는 또 다른 비토크라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민주공화국, 곧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권력구조와 정치체제를 가진 ‘제7공화국’에 대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단순한 정권심판을 넘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겠다는 다짐과 결기, 그리고 구체적인 약속만이 ‘검찰당’의 폭주기관차를 멈춰 세울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선거 국면에서 이견이 많은 권력구조나 선거제도의 세세한 부분까지 확정하는 약속이 마련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개헌과 정치개혁을 위한 로드맵 정도는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새로운 공화국의 혁신된 민주 정치의 모델을 보여주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핵심은 서로 다른 지향을 가진 정치 세력들이라도 일정한 양보와 타협을 통해 공동선을 위한 문제해결에 나설 수 있는 정치에 있을 터, 야권의 여러 정당들은 이미 선거국면에서부터 협력과 연대를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새로운 공화국에 대한 비전과 그를 기초로 하는 연대만이 반윤석열 야권 200석을 현실화할 수 있지 않을까?

민주당과 야권은 단순히 내년 총선 공천이나 승리만을 쫓아서는 안 된다. 어떤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전망이 필요하다. 우리 민주주의를 어떻게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 그리하여 어떻게 미완의 촛불혁명을 제대로 완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공화국을 열기 위한 자기희생도 마다해서는 안 된다. 작은 차이를 존중하되, 그 차이가 치명적 독(毒)이 되지 않을 ‘다른 정치’를 위한 새로운 정치체제에 대한 비전을 확고히 세우자. 총선이 채 6개월도 남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자.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적 공정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민주적 평등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한 <공정의 배신>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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