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더욱 그리워지는 ‘로드 무비’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1960년대 반전·히피 문화와 함께 등장 길은 탈출, 욕망이고 끝내 자신과의 화해

영화 '델마와 루이스' 스틸컷
영화 '델마와 루이스' 스틸컷

코로나 답답함을 떨치려는...

코로나 시대가 2년 넘게 계속 되면서 마스크는 필수가 되었다. 초기에는 아무 생각없이 맨 얼굴로 집을 나섰다가 다시 마스크를 가지러 간 적도 몇 번 있었다. 지금은 맨 얼굴로 나가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익숙해졌는데 최근에 거리두기도 폐지되었다. 여행을 그렇게 즐기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코로나 시대가 길어지면서 여행에 대한 갈증마저 생겼고 자유롭게 공항을 드나들었던 때가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사람은 이렇게 간사하다.

이동이 통제된 코로나 시대를 회상하면 생각나는 영화 장르가 있다. ‘로드 무비’다. 로드 무비는 자유로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로드 무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걷기도 하고, 차를 타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니 생각도 멈춰 있을 수가 없다. 생각도 끊임없이 흐른다. 과거나 현재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사람은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한다.

길은 ‘탈출’...1960년대 등장한 로드 무비

로드 무비는 1960년대에 등장해 영화에서 길의 역할과 의미를 바꾸어 놓았다. 그 이전의 영화에서 ‘길’의 역할이 연결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통합을 지향하거나 질서 유지의 의미를 띄고 있다면, 1960년대 이후의 영화에서 ‘길’은 탈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로드 무비라는 장르성이 확립된 것은 1960년대 영화에서지만, 그 이전에도 길과 운동성이 서사의 축을 이루고 있는 영화들이 있었다. 바로 웨스턴 영화와 느와르 영화다. 1960년대는 반전운동과 히피즘이 등장한 시대로 새로운 세대는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질서를 요구했으며 1960년대 나타난 로드 무비 역시 그런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로드 무비의 문학적인 기원은 교양 소설 즉 ‘빌둥스 로망’으로 본다. 빌둥스 로망은 독일 문학의 한 형태로서 성장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청년이 여정 속에서 모험을 겪으며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대표적인 소설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다. 많은 상처를 입고 회복하는 험난한 과정을 통해 성숙한 인격체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서사구조는 최신의 로드 무비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인간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성장하니까.

로드 무비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독일의 빔 벤더스 감독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사 이름을 로드 무비라고 지을 만큼 로드 무비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자란 세대로 미국 영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미국식 로드 무비와는 다른 자신만의 로드 무비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의 영화는 그 당시에 전 세계가 미국 문화에 잠식되어가는 것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다. “양키는 우리의 잠재의식마저 점령했다”(대표작: 시간의 흐름 속으로 Im Lauf Der Zeit, 1976년)라는 대사는 그의 저항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델마와 루이스’, 남성중심 사회를 비판하며

로드 무비가 지향하는 주제는 매우 다양하지만 ‘변화에 대한 욕구’라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욕구는 쉽게 성취되지 않는다. 길을 떠나는 사람은 희망을 찾기 위해, 혹은 절망스러운 현실로부터 돌파구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길 위에서 또 다른 좌절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과의 화해에 이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돌파구가 없음을 확인하고 죽음이라는 해방의 길을 택하는 경우도 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가 바로 그런 영화다.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가 주연을 맡았고 널리 알려진 로드 무비들 중 하나다. 남성성 위주의 로드 무비에서 여성들이 주체가 됐음을 알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길을 떠났지만 두 사람은 좌절감만 맛본다. 길 위에서 여성 운전자에게 조롱과 위협을 가하는 남성의 모습은 남성 중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어떤 감정일 때 길을 떠나고 싶어할까. 그리고 길 위에 있을 때는 어떤 감정으로 바뀔까. 예전에 종영됐던 인기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받은 여성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드라마에서 나문희 배우가 했던 대사는 마치 로드 무비를 대변하는 듯하다.

“나는 우리 엄마처럼 요양원에 갇혀 죽을 날 기다리지 않아야지, 죽을 때 죽더라도 길 위에서 죽어야지.”

요양원은 안정된 장소지만 변화 없이 폐쇄된 공간보다는 차라리 예측할 수 없고 불안정하지만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을 택하겠다는 각오다. 이 대사는 객사로 마감하는 삶을 불행하게 생각했던 관념을 완전히 뒤바꾸고 로드 무비에 담긴 욕망까지 엿보게 해준다. 환경이 바뀌면 자신과 타인에 대한 고정관념도 바뀌게 된다. 그리고 치유로 가는 문이 열린다.

로드 무비는 움직임 자체가 치유의 중요한 방식임을 보여준다. 특별한 주제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로드 무비의 서사가 되지만, 굳이 주제를 찾아보자면 ‘심리적인 치유’다. 그 중심에는 자신과의 화해가 있다. 자신과의 화해란 타인과 화해를 포함하고 있다. 자신이 증오했던 대상과 화해함으로써 비로소 자신도 수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 '나의 산티아고' 포스터.
영화 ‘나의 산티아고’ 포스터.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

2016년에 개봉한 <나의 산티아고>는 줄리아 폰 하인츠 감독이 만든 로드 무비다.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는 하페 케르켈링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가 원작이다. 다양성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관객을 끌어모아 화제가 됐던 영화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하페 역을 독일의 영화배우 데이비드 스트리에소브가 맡았다.

엔터테이너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하페는 어느 날 갑자기 무대에서 쓰러진다. 건강을 잃고 난 후, 자신을 되돌아볼 생각으로 매니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설 결심을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버킷리스트에 포함될 정도로 인기지만, 꼭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생전에 한 번쯤은 체험하고 싶어하는 장소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하페는 5개 국어를 할 줄 알기에 특히 산티아고 길에서 사람들과 편하게 의사소통을 했다. 하페는 혼자 걸으면서 자신과 수많은 대화를 나눈다. 생각을 완전히 비우고 싶지만 마음 속의 자신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그래서 나온 명대사가 있다. “침묵은 쉽다. 하지만 생각을 침묵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어느 순간 하페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만나게 된다. 자신 안에 남아서 끊임없이 무의식적으로 말을 걸어오던 상처받고 여리고 조그마한 자신을 보는 순간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터져나온다. 치유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로드 무비 한편을 마음 속으로 촬영하는 셈이다. 굳이 순례길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길을 걷고 있는 나는 나만의 로드 무비의 주인공이다. 나의 로드 무비는 지금 어떤 장면을 찍고 있을까.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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