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왜 상영되어야만 하는가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전주국제영화제 참관 르뽀 ① ‘우리는 누구인가’에 정체성에 대한 질문 전주 영화제 출품작이 제시하는 대답은
전주 국제영화제가 4월 28일에 개막해 5월 7일까지 계속됐다. 국제영화제에서는 상업영화에서는 맛보기 힘든 참신한 주제들을 접할 수 있다. 또한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시대상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영화라는 매체가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을 되새겨준다.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영화는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결을 거스른다. 말하자면 주류에서 벗어난 집단의 문제점들을 노출시킨다. 그런 과정에서 질문이 새어 나올 수 있는 틈새가 생긴다. 영화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바라보는 나란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상영되는 총 217편의 영화들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담겨 있지만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라는 시각이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젊은이들은 그들대로, 고난의 역사를 견디어온 나이든 사람들은 또한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는 일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영화는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돕는다.
가족과 함께 한 인공로봇
개막작으로 상영된 <애프터 양>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애프터 양>은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파친코>의 연출자이기도 한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 감독의 작품이다. 양은 중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콜린 파렐이 아버지 제이크 역을 맡았는데, 제이크는 중국인 여자아이를 입양한 후, 딸의 원만한 성장을 위해 외모도 중국인의 모습을 하고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안드로이드 로봇을 중고로 사들인다.
그런데 어느 날 양이 작동을 멈추면서 딸은 혼란스러워한다. 양의 몸체 속에 있는 기억장치에는 양이 가족일원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정체성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기억이다. 가족과 함께 했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양을 그냥 로봇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양과 진지한 대화와 고민을 함께 나눴던 기억을 지닌 가족에게 양은 어떤 존재일까. 인간이 아닌 금속조각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버려도 되는 걸까. 영화는 이런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체성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영화적 특성과 연관해 전주 국제영화제에 출품된 다큐멘터리 중 이런 질문을 던지는 두 편을 소개하려 한다. <도쿄의 쿠르드 족>과 <천안문의 망명자들>이다.

일본에서 난민생활하는 쿠르드족 젊은이
<도쿄의 쿠르드족>은 일본의 휴가 후미아리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로 터키에서 탈출해 일본에 왔지만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미래를 살아가는 쿠르드 족 젊은이 두 사람, 오잔과 라마잔의 삶을 그리고 있다. 오잔은 초등학교 때부터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원어민과 똑같은 수준의 일본어 구사력을 가지고 있다. 비자를 임시로 발급받아 2개월마다 연장신청을 해야 하는 처지이며 언제 발급이 정지되어 구금상태로 들어갈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오잔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노력하겠다는 각오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자동차 대학교 진학도 오잔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 중 하나다. 자동차 대학교를 나와서 취직을 할 수 있을지는 보장받을 수 없다. 취업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등록금만 허비하는 셈이 될 테지만 미래를 꿈꾸지 않는 삶이란 더 힘들다. 영화는 자동차 대학교 합격증을 받고 기뻐하는 오잔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다른 쿠르드족 청년인 라마잔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라마잔은 현재 가석방 상태다. 그래서 어떤 학교에서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취업 행위도 금지되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철거작업 일을 하며 살아간다. 개성 있고 잘생긴 용모를 하고 있는 라마잔은 배우로 일하고 싶어하고 에이전시에서도 선뜻 응했지만 이민국에서는 절대 불가를 선언하며 추방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라마잔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가장 힘들어한다.
일본 사회에서 타인에게 인정받을만한 위치를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 그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라마잔은 자신이 벌레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말한다. 영화는 일본인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며 반은 일본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떤 지위도 보장받을 수 없는 두 청년들의 열악한 상황을 보여준다. 난민의 시점에서 보는 상황들은 낯설다. 카메라 렌즈가 밀접한 거리에서 그들을 비추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떤 공기를 숨 쉬고 있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영화의 역할에 대해 다시 되새기는 부분이다. <도쿄의 쿠르드족>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천안문 사태를 재조망하는 영화
<천안문의 망명자들>은 바이올렛 콜럼버스와 벤 클라인이 감독한 다큐멘터리로 천안문 사태로 추방된 세 명의 중국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천안문 시위의 중심인물로 지목된 베이징대학 자치연합회 대표 우얼카이시, 중국 사회과학원 정치학연구소 소장 옌자치, IT기업 쓰퉁의 총수 완룬난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를 뒀고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다큐 감독 크리스틴 초이가 있다. 크리스틴 초이는 1989년부터 제작을 시작했지만 제작비 부족으로 중단된 다큐를 마무리 짓기 위해, 추방된 반체제 인사들을 추적한다. 카메라 앞에서 시원하게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는 크리스틴 초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카메라 앞에서 전혀 거리낌이 없는 그녀는 영화의 가치에 대한 금쪽같은 대사들을 남긴다.
영화는 과거의 기록이며 영화는 다른 어떤 매체와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영향력이 큰 소통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신문기자들은 열심히 기사를 쓰지만 미국인들은 신문을 읽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본다. 영화는 영상으로 사람들이 알아야 할 사실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크리스틴 초이는 14살 때 미국으로 왔다. 중국에 계속 남아있었더라면 열성적인 공산당원이 됐을 것이며, 현재 중국의 젊은이들처럼 어떤 갈등도 없이 나름대로 편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중국 정부는 천안문 사태에 대한 무력진압 사실과 그로 인해 발생한 희생자들에 대해 부인하고 있으며 지금도 사건에 대한 언급을 철저하게 검열한다. 중국에서는 천안문 사태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기에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젊은 세대들은 천안문 사태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래서 천안문 사태로 희생된 사람들 역시 유령처럼 사라져버렸다. 이런 다큐를 찍어야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를 부정하면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초이에게 가장 강력한 힘은 영화다. 그녀는 영화를 찍을 수 있고 영화를 통해 생각을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삶을 버티어 나갈 수 있다. 영화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과 상담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크리스틴은 당당하게 말한다. 그녀는 영화를 통해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며 미래를 생각한다.
영화는 무엇인가
영사기를 최초로 발명한 에디슨은 영화가 사회에서 가치 있는 역할을 할 것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영사기는 인간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단순한 역할만 하고 사그라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판단은 틀렸다. 사람들은 단순히 신기한 영상만이 아니라, 영상으로 표현되는 서사에 빠져들었고 영화 산업은 번창했다.
영화에서 펼쳐지는 타인의 삶이라는 서사는 인간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남의 삶을 엿보고 싶은 근본적인 욕망의 일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하고 과거 속에 묻혀 있던 역사를 알게 만든다. 영화가 계속 상영되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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