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後 가족의 균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이화정의 부산국제영화제 돌아보며] 사고로 인한 가족의 상실, 그 상처와 치유 ‘만찬’, 용서가 가족을 살리는 모습 담담히 ‘러브라이프’, 충격을 이기는 법에 대하여 “가족 잃은 상실감, 위로가 필요한 상황”

영화 '만찬'의 초입부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장면. 사진= 2022 BIFF 홈페이지
영화 '만찬'의 초입부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장면. 사진= 2022 BIFF 홈페이지

또 가족을 잃었고, 남은 가족들은 삶의 의지를 잃고 있다. 많은 희생자를 낸 이태원 참사는 또다시 가족의 소중함을 각인시킨다. 그렇게 보내서는 안되는 가족의 한 구성원 앞에 온 가족이 흐느껴 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한다. 사고를 당한 가족들은 어떻게 이겨내고 어떻게 힘들어하는 날을 맞을까.

지난 달 끝난 부산 영화제의 많은 영화들 중 기억에 남는 서사들이 꽤 있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가족 서사다. 오랫동안 여운을 남길 만큼 가족 서사를 훌륭하게 연출한 영화들도 있었다. 특히 사고를 입은 가족들의 서사였다.

가족 간의 갈등과 해소를 근간으로 하는 가족 서사는 대다수가 공감하기에 가장 적당한 서사다. 그래서 가족 서사는 일단 기본적으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문제의 발생이 외부에서 시작됐든지, 내부에서 시작됐든지, 문제없는 가족은 거의 없다. 어떤 식으로 형성됐든지, 가족은 가장 소중하고 생존에 필수적이라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고 그 상처는 평생 간다.

가족 영화하면 필자는 가장 먼저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떠올린다. 좋아하는 감독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 영화들이 유독 가족 서사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가족 서사는 고레에다 감독의 전유물이 아니다.

부산 영화제에서 인상깊게 봤던 가족영화 두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홍콩과 중국의 제작 지원을 받은 필리핀 감독의 영화 <만찬>과 일본 영화 <러브 라이프>다.

교통사고후 두 가족이 겪는 고통과 반전

<만찬>은 필리핀 출신,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의 영화다.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

평범하게 살아가던 두 가정이 단 몇 초 사이에 파탄을 맞는다. 두 가족이 같은 어시장에서 생선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시장에서 뭔가 놓고 온 것을 깨달은 한 가족이 갑작스럽게 유턴을 하는 중, 하필 다른 가족의 운전자가 휴대폰을 잠깐 쳐다보고 있었다.

가해자 측은 부유층이고 피해자는 넉넉지 못한 가정이다. 사고가 난 순간 아버지는 운전을 했던 아들 라파엘과 자리를 바꾸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쓴다. 피해자 가족의 아버지는 결국 사망하고, 라파엘의 아버지는 아들을 대신해 죄값을 치를 결심을 한다.

그 무게는 다르지만 양쪽 가족이 ‘가장의 부재’라는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피해자 가족은 당장 생계 걱정을 해야 하고, 라파엘 아버지의 부재는 사업 경영에 심각한 지장을 가져온다. 이 사건은 그것으로 두 가족에게 상실감을 안겨주고 마무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몇 년 후의 모습은 관객의 예상을 깨뜨린다.

몇 년이 지난 후, 영화의 오프닝 씬처럼 라파엘의 집은 잔치 준비를 하느라 활기차다. 그런데 부엌에서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낯익다. 몇 년 전에 사고로 남편을 잃고 애통해하던 니타와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니타는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들 역시 활기찬 표정으로 어머니를 돕는다. 피해자 가족이었던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어떤 그늘도 찾아볼 수가 없다. 원수 관계가 될 수도 있는 두 집안 사이에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라파엘의 아버지는 아들을 대신해 죄값을 치르러 들어가기 전에 아들에게 귓속말을 건넨다. 자신이 없는 동안 피해자인 니타의 가족들을 돌보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영화는 죄책감과 책임감에 대한 무게, 그리고 용서와 수용까지 가는 과정을 격한 감정의 표출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상대방의 슬픔에 공감하고 감싸는 행위,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나아가서 감사하는 마음까지 갖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진정성이 절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라파엘은 신부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니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아들의 죄값을 대신해 감옥에 간 아버지의 마음을 니타도 이해한다.

영화 '만찬' 스틸컷. 사진=2022 BIFF 홈페이지
영화 ‘만찬’ 스틸컷. 사진=2022 BIFF 홈페이지

라파엘 아버지가 출소하는 날, 니타는 정성껏 만찬을 준비한다. 화려한 요리들을 앞에 두고 니타의 솜씨에 찬사와 고마움을 표하는 라파엘 가족과 그 옆에서 밝은 표정으로 시중을 드는 니타와 아이들의 모습이야말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정한 가족의 모습이었으며 보는 것만으로도 음식의 맛과 포만감이 느껴질 만큼 관객까지 동참하게 만드는 만찬이었다.

아들을 잃고 흔들리는 가족

또 다른 영화 <러브 라이프>는 이상하리만큼 여운이 오래 남았고 그 이유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됐다. 일본의 후카다 코지 감독 작품이다.

후카다 코지 감독
후카다 코지 감독

후카다 코지 감독은 2016년에 발표한 <하모니움>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러브 라이프>도 <하모니움>처럼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안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틈새들이 보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는 또 다른 매력적인 가족 서사를 만드는 감독을 만난 것 같았다.

<하모니움>에서 어린 딸이 이해할 수 없는 사고로 장애인이 됐듯이, <러브 라이프>에서도 어린 아들이 사고사를 당한다.

<러브 라이프>에서 남자인 지로는 이미 약혼녀가 있는 상태에서 아들을 둔 이혼녀 타에코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약혼녀와 파혼하고 타에코를 선택했기 때문에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며느리를 중고라고 부르면서 모욕을 준다.

너그러운 시어머니 덕분에 불편한 관계를 겨우 견디며 지내던 중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난다. 전 남편과 사이에 낳은 아들이 시아버지 생신날, 목욕탕에서 혼자 놀다가 미끄러져서 뇌진탕을 당한다. 욕조 안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던 탓에 아이는 끝내 익사하고 만다.

사고는 지금까지 어렵게 유지돼왔던 가족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시아버지와 갈등만이 결혼 생활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남편인 지로와도 틈을 발견하게 된다.

타에코는 아들의 장례식에 전 남편이 등장하자 심경에 변화가 일어난다. 전 남편은 한국인인데 청각장애인이며, 거의 생활력이 없는 사람이다. 정신 나간 표정으로 장례식장에 들어선 전 남편은 분노하면서 타에코의 뺨을 때린다. 이성을 찾은 후에, 전 남편은 수화로 타에코에게 미안하다는 의사를 전달한다.

그런데 그런 전 남편의 태도는 오히려 타에코에게 위안을 준다. 자식을 잃은 자신의 현재 감정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전 남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슬픔을 진정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은 위안이 된다.

아들이 물을 채워놓은 욕조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타에코는 자기 집의 목욕탕을 사용하지 못한다. 트라우마의 극복을 위해 타에코는 전 남편을 필요로 한다. 타에코는 욕조에 물을 가득 채워놓고 그 속에 들어가 앉아서 전 남편과 상실감을 공유하고 싶어한다. 타에코는 전 남편에게 그 이상의 감정은 없고 전 남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재 남편인 지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아내인 타에코는 현재 불법체류자 상태라 생활이 힘든 전 남편을 외면하지 못한다. 심지어 한술 더 떠서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전 남편을 돕기 위해 동행하겠다는 말까지 한다. 이런 관계를 남편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지로는 난감하기만 하다.

영화 '러브 라이프' 스틸컷. 사진=2022 BIFF 홈페이지
영화 ‘러브 라이프’ 스틸컷. 사진=2022 BIFF 홈페이지

후카다 코지 감독의 전작인 <하모니움>에서처럼 영화의 결말은 관객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마무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드는 결말이다. 실제 삶이란 틈새가 깔끔하게 봉합되는 영화처럼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힘든 일도 때로는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수용하게 만드는 힘이 부부 사이에는 존재한다.

후카다 감독은 부부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감정에 대해 주목했다. 부부관계란 겉으로 보기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그 내면은 매우 복잡하다. 거미줄처럼 미세한 감정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일도 건드리면 어떤 폭풍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다. 특히 자식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부부관계의 민낯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에게 위안을 받으며 의지하고 살아갈 수도 있고, 상대가 오히려 상처를 자극해 갈라서기도 한다. <러브 라이프>는 가장 가까운 관계일 수도 있고, 반대로 가장 먼 타인일 수도 있는 부부관계를 보여주는 가족 서사다.

자식을 잃은 상실감이란 인간이 마주하기에 가장 가혹한 감정이다. 그러나 삶은 계속 되어야만 하고 힘겨운 삶을 이어나가려면 감당키 힘든 상실감에 대한 위로가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러브 라이프>에서 마지막 장면은 타에코가 어떤 위로를 받았으며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고 원래의 위치로 돌아온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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