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의 ‘찌그러진’ 나폴레옹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알렉산더와 시저를 닮고 싶어했던 나폴레옹에 바치기엔 부족한 영화 4시간반짜리 ‘감독판 개봉’ 기다려

나폴레옹 역의 호아킨 피닉스(왼쪽)과 조세핀 황후 역의 바네사 커비.
나폴레옹 역의 호아킨 피닉스(왼쪽)과 조세핀 황후 역의 바네사 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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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돋보이게 하는 <나폴레옹>

최근에 개봉한 영화 <나폴레옹>은 <글래디에이터>, <마션> 같은 매력적인 대작을 만든 리들리 스콧이 감독을 맡고,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으기에 부족함이 없다. 전설적인 영웅을 서사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지만 스케일이 큰 영화감독으로서는 매력을 느끼기 충분한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작고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도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려고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불발에 그친 적이 있다.

그런데 영화 <나폴레옹>은 개봉된 후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관객 수도 기대에 미치지 못해 상영관 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몇 주 전에 개봉해서 아직도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 영화 <서울의 봄>의 파죽지세에 눌려 맥을 못추고 있다. 리들리 스콧의 대작 영화가 한국의 암울했던 시대를 상징하는 널리 알려진 사건을 다룬 영화에 밀릴 것이라는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물의 성공 여부는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작가적 상상을 동원해 얼마나 실감나게 디테일을 메워나가느냐에 있다.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생하게 증언해줄 사람들을 일일이 인터뷰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작가와 감독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설사 모든 것을 세세히 증명해줄 자료가 있다고 해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며 그런다고 영화적 완성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영화적 재현’은 사실의 재구성 이상의 의미가 있다. 관객의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설득력, 극적 긴장감을 위해 영화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형도 용납될 수 있다.

<서울의 봄>은 그런 면에서 성공을 거둔 영화다. 몇십 년이 지나도 베일에 가려져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실히 공개되지 않았던 그날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생생한 대사와 긴박감 넘치는 상황 재현에 몰입됐다는 관객이 많다. 캐릭터들이 내뱉는 대사들은 작가적 상상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장감을 살리고 관객의 몰입감을 높여준다. 실제로 그들이 나눴던 대사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눈 덮인 광활한 얼음 호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우스터리츠 전투 장면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준비하고 있다.
눈 덮인 광활한 얼음 호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우스터리츠 전투 장면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준비하고 있다.

‘극적 긴장감’ 높이는데 실패했나?

<나폴레옹>이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점이다. 영화는 마리 앙뚜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이 첫 장면은 기대를 한껏 높일 만큼 긴장감 있고 인상적이다. 시민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고 도도한 자세로 단두대 앞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 거친 숨을 애써 고르면서 단두대의 구멍에 고개를 천천히 맞추는 모습을 카메라는 천천히 잡는다.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고조되는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환호하면서 처형을 기다리는 시민들 사이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긴장감이 오히려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집트 원정 때 피라미드를 향해 대포알을 날리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을 왜곡하기도 했지만, 영화적으로도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릴 만큼 설득력이 없어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공을 들인 다른 전투 장면들도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혹한의 날씨에 사지에서 목숨을 걸고 전투에 참여해야 하는 당시의 처절한 상황을 체감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덮인 채, 얼어붙어 강인지 땅인지 알 수 없는 지역으로 적들을 유인해 가둬놓고 대포를 쏘아대는 장면, 영국군이 철통같은 방진을 형성해 프랑스군과 맞서는 장면은 전쟁터의 비장함으로 채워져 있다. 대포로 강의 얼음이 깨지고, 물속에 빠진 군인들의 붉은 피가 얼음 밑에 흐르는 강물 속에 번져나간다. 대포에 맞지 않은 군인들도 익사할 수밖에 없는 지옥 같은 전쟁터의 참상이 눈 앞에 펼쳐진다.

‘나폴레옹’ 답지 않은 ‘나폴레옹 연기’

<나폴레옹>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는 또 다른 이유는 호아킨 피닉스가 재현한 나폴레옹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의 서사에서 관객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모습과 다르기 때문이다.

영욕을 겪어낸 한 시대의 영웅을 그려내는 일은 쉽지 않다. 영웅 서사를 영화로 만들 때는 성장 시절부터 남달랐던 주인공의 비범함부터 시작해, 지도자로서 카리스마와 담대함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치적 혼란, 주변 유럽국가들의 압박, 궁핍함 속에서 시민들은 안정된 삶으로 이끌어줄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고 나폴레옹은 그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준비된 영웅이었다.

1927년에 제작된 아벨 강스의 무성영화 <나폴레옹>은 영웅 서사답게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관학교 시절에 다른 생도들과 편을 갈라 눈싸움을 할 때도 뛰어난 지략과 대담함, 강한 승부욕을 보이는 모습부터 시작해 그가 장군이 된 후에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그러나 리들리 스콧의 <나폴레옹>은 다르다. 호아킨 피닉스는 시종일관 감정의 동요가 심하지 않고, 절제 있는 표정을 유지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툴롱 전투 전에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거친 숨을 몰아쉰다거나, 조세핀과 이혼 발표를 하면서 눈물 콧물을 닦아내거나, 갓 태어난 아들을 보며 눈물을 찔끔거리는 모습은 군인들에게 자신이 먹던 빵을 뜯어주면서 격려하고 이미 패색이 짙은 워털루 전투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힘을 불어넣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그리고 패전 후나, 유배 결정을 들었을 때도 표정에 큰 변화가 없이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일관적이지 않는 모습들은, 인간인 나폴레옹의 다층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이 영화에서 나폴레옹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런 점도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성적 매력만 부각시킨 ‘황후 조세핀’역

나폴레옹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조세핀(바네사 커비 분)이다. 리들리 스콧은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사랑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듯이 두 사람 관계 묘사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특히 조세핀을 나폴레옹보다도 더 신비롭게 묘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세핀 캐릭터는 마치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조세핀 캐릭터 역시 일관적이지 않으며 여성으로서 갖는 치명적인 매력 이외에 그녀만의 특별함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했다. 당대 세력 있는 남성들이 한눈에 반할 정도로 치명적인 그녀의 매력은 성적인 부분에 치중되어 있다. 조세핀은 가슴이 드러날 정도로 어깨끈을 늘어뜨린 채, 도발적인 눈빛으로 남성을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태도를 보인다. 나폴레옹과 관계도 침실을 중심으로 묘사된다. 조세핀은 나폴레옹의 인간적인 면보다는 그의 지위에 매력을 느끼며 침실에서 정사마저도 의무감으로 나누는 듯 묘사된다. 감독은 나폴레옹이 전쟁터에서 조세핀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과 그 순간 조세핀이 부하 군인과 격렬한 정사를 나누는 장면을 교차 편집함으로써 두 사람의 어긋난 욕망을 우스꽝스럽게 보여준다.

리들리 스콧은 사실과 다르다는 평자들의 비난에 대해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말로 감독으로서 창작적 자유를 주장한다. 그는 나폴레옹의 영웅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며, 조세핀과 관계 역시 공적인 면과 사적인 면이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다만 그런 의도가 관객을 설득시킬 만큼 정교한 서사와 연출로 이어지지 못했다. 러닝 타임이 훨씬 긴 ‘디렉터스 컷(감독판)’의 공개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극장판에서 보여주지 못한 내용이 궁금해진다.

영화는 엔딩 씬에서 나폴레옹이 숨을 거두기 전에 내뱉은 세 단어를 자막으로 올린다. 알렉산더와 시저를 닮고 싶어했던 그의 삶을 축약시켜주는 세 단어는 ‘프랑스, 군대, 조세핀’이다. 이 세 단어 뒤에 숨겨진 웅장했던 삶을 엿보고, 현시대에 전해줄 메시지를 기대했던 관객의 욕망을 채워주기에는 부족했던 영화 <나폴레옹>이었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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