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미완성이라도 괜찮아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 헝가리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운 독특한 영화 무기력증 남자와 불감증 여자의 사랑 서로 느낄 순 없지만, 가벼운 눈빛만이라도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스틸 컷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스틸 컷

육체와 영혼에 관한 영화

‘동상이몽’이라는 말은 자주 써도 ‘이상동몽’이라는 말은 자주 쓰지 않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라는 영화는 ‘이상동몽’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꿈이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잠잘 때 꾸는 꿈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독특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본인은 깨닫지 못하지만 인간이 얼마나 교류와 소통, 이해받기를 원하는 존재인지 보여준다.

헝가리 출신의 일디고 엔예디 감독이 만든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에는 상징과 비유가 많이 들어 있다. 2017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원제는 <On Body and Soul>인데, 제목에서 이 영화의 주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 영화는 육체와 영혼에 관한 영화다.

육체와 영혼, 현실과 꿈, 고독과 교류, 생명과 죽음, 불신과 믿음 같은 이항 대립을 섬뜩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한 독특한 영화다. 이성과 감성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진한 여운을 남기는 귀한 영화를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온 지는 몇 년 됐지만 꼭 소개하고 싶다.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포스터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포스터

도축장에 고인 핏물, 무기력과 불감증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도축장’이다. 우리 안에 갇힌 소는 고개를 들어 하늘의 태양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음 씬에서 같은 태양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그들의 처지는 모두 다르다. 이 도입부 장면부터 심상치 않은 예감을 준다. 이 영화의 주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상황이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각기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틈새로 태양을 바라보던 크고 순한 눈빛의 소는 다음 순간 도살되고 고깃덩어리가 되어 밀려 나온다. 소의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순간을 영화는 집요할 정도로 세세하게 표현한다. 도축장 바닥에 고인 핏물을 직원은 아무 느낌 없이 쓸어낸다.

남자 주인공인 엔드레(게자 모르산이 분)는 이 도축업체의 재무이사다. 엔드레는 팔 한쪽을 쓰지 못한다. 과거에는 여성 편력이 심했지만 지금은 권태와 무기력증에 빠져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살아간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는 엔드레는 어느 날 창문으로 한 여성을 보게 된다. 다른 편에서 여성 직원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것과 대조적으로 그 여성은 한쪽 기둥 옆에 몸을 숨긴 채 서 있다. 발끝에 떨어진 햇빛을 피해 발을 그늘 안으로 집어넣는 모습이 엔드레에게는 특이해 보인다. 창문을 열고 햇빛을 음미했던 엔드레와는 달리 그 여성은 햇빛을 피한다.

이 여성은 마리어(알렉산드라 보르벨리 분)란 이름의 품질 검사원인데, 출산 휴가를 받은 직원을 대신해 잠시 이 회사에 파견됐다. 마리어는 결벽증과 함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심리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대화를 완벽하게 기억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이 능력 역시 말하자면 일종의 장애다. 마리어는 모든 상황을 인지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한다. 그녀에게는 감성이 작동되지 않는다.

엔드레는 신체 장애를, 마리어는 심리 장애를 가지고 있다. 마리어는 표정 없이 로봇처럼 움직여 다른 직원들의 놀림감이 된다. 고기의 등급을 정할 때도 융통성이 전혀 없어 아주 조금이라도 기준에 미달하면 등급을 낮춘다. 그래서 직원들의 원성을 사는데 마리어는 그런 직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은 임무에 충실해 정당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엔드레는 왠지 그런 마리어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타인과 관계 맺기를 꺼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녀에게서 발견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말을 걸어보지만 마리어의 형식적인 반응에서 대화를 이어갈 만한 끈을 찾지 못한다. 두 사람에게 공통화제는 없어 보인다. 그런 엔드레와 마리어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의 스틸 컷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의 스틸 컷

같은 꿈속에서 서로가 원한 것은

영화의 첫 장면은 암사슴과 수사슴이 함께 있는 아름다운 설경인데 관객은 처음에는 이 장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설정 샷도 아니고 영화의 서사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중반쯤에서야 그 장면이 엔드레와 마리어의 꿈속 장면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수사슴은 엔드레이고 암사슴은 마리어다. 꿈에서 두 사슴이 느끼는 촉감을 두 사람은 실제로 그대로 느낀다.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회사에서 소들의 교미 때 사용되는 발정제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과 심리상담사가 투입되고 상담사는 직원들과 일대일 면담을 통해 과거의 성 경험과 꿈에 대해 묻는다. 엔드레와 마리어가 똑같은 꿈 이야기를 하자, 상담사는 두 사람이 짜고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놀란 사람들은 엔드레와 마리어 당사자들이다. 현실에서는 어떤 공통점도 발견할 수 없었는데, 꿈이라는 환상의 세상에서는 둘은 동물이 되어 말없이도 감정으로 교류하고 있었던 셈이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자신들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우연한 사고로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감정을 함께 나누고 교류할 수 있는 상대였다. 엔드레에게는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상대가 있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육체적 관계가 아니었다. 반면에 마리어는 불감증이기 때문에 성적인 욕구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엔드레와 교류하고 싶어서 노력하는 모습이 순수하고 절절하게 묘사된다. 인형을 사서 자신의 몸에 대보면서 감촉을 느끼려 한다든지, 야한 동영상을 보거나, 사랑에 관한 노래를 계속 들으며 신체적 자극을 받고 교감을 가져보려고 애를 쓰지만 효과는 없다.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만으로 두 사람의 결합이 순조롭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완전한 것만이 전부는 아냐

관계의 무용함을 느낀 엔드레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마리어는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을 시도한다. 팔목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는 도축장 바닥을 연상시킨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순간,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지금 둘의 관계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지 깨닫는 계기가 된다. 재회한 두 사람의 상태는 크게 바뀐 것이 없다. 마리어는 엔드레와 섹스를 하면서도 여전히 느끼지 못한다.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완전하지 못한 사랑을 비관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완전한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영화의 엔딩 씬은 두 사람이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결벽증이 있는 마리어는 엔드레가 빵 부스러기를 식탁에 떨어뜨리자, 여전히 참지 못하고 즉시 손으로 쓸어 닦는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일반인들의 사랑처럼 완전해 보이지 않고 미완성 같은 불안감이 있다.

하지만 완전한 것처럼 보이는 사랑도 언제라도 바뀔 수 있으며, 현재 상태의 미완성 역시 그것이 최선이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지금 함께 있다는 것,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가벼운 눈빛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평범한 미완성의 사랑은 타인과 사이에 단단한 벽을 친 고독한 삶보다 가치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영화의 엔딩 씬은 아직 불안정해보이는 두 사람이 어떤 심리적 성취를 이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결함을 지녔고, 그래서 더욱 상대와 교류를 꿈꾼다. 요새는 혼족이 대세처럼 보이지만,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자신의 마음속에 타인을 향한 어떤 욕망이 숨어 있을지 알지 못한다. 장애가 있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엔드레와 마리어 역시 지독한 혼족이었다. 상대방의 눈길이나 손길도 철저하게 거부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을 상징과 비유를 통해 보여주는 방식이 흥미롭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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