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80년대식 진보’와 결별하라!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촛불후 ‘정치적 신뢰 자산’쌓지 못해 친문/반문? 친이/반이가 웬말인가 정치적 정체성 세워라...기회 있다
민주당의 본원적 위기
민주당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그래도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쳤더랬는데, 지금은 상황이 더 나빠 보인다.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여당인 국민의 힘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난 측면도 있겠지만, 아마도 대선 이후 민주당의 정치 행태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실망 탓도 큰 것 같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긴 했고 민주당도 감수할 각오를 했었겠지만, 아무래도 이른바 ‘검수완박’ 입법에 거의 모든 정치적 역량을 쏟아 붓던 모습이 큰 악영향을 미쳤으리라. 게다가 내부에서 또 성비위 사건이 터졌다. 당장 민주당의 지방 선거 승리에 대한 전망이 매우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지금 민주당이 단지 일시적이지만은 않은, 어떤 ‘본원적’ 위기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 당의 정치적 정체성에서부터 정치인들의 태도나 행동 양식은 물론 심지어 지지자들의 정치 참여 양태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우려를 자아내지 않는 게 없다. 그런데도 이 당은 대선 패배 이후에도 별다른 성찰과 쇄신의 노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기존의 정치 관행을 계속 되풀이하고만 있다.
민주당은 왜 이렇게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민주당의 이런 위기 상황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핵심에서 이 당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이른바 ‘(5)86세대’가 지금껏 추구해 온 한국적인 진보 정치의 한계와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민주당이 처한 본원적 위기의 중요한 뿌리 중의 하나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고 그 경력을 자산으로 삼아 정치적으로 성공한 이 세대의 정치인들과 그 지지자들이 가진 정치적 세계 인식과 문화에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민주당이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수권 정당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으려면 바로 이런 80년대식 진보의 유산과 결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80년대식 진보의 어두운 그림자
사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5)86세대를 두고 비판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소수의 (5)86세대 엘리트들이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자신들의 업적을 과장하고 이를 자산 삼아 과도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상황이 청년 세대의 빈곤과 절망 같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는 투의 담론이 꽤 넓게 퍼져 있다. 이런 담론은 정치로도 확장되어서 지난 대선 기간에는 ‘(5)86세대 용퇴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유의 담론은 다분히 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조장한 측면이 크다고 본다. 일단 사회과학적으로 정확해 보이지 않는데, 단순하게 보더라도 세대 내부의 계급적, 계층적 차이 같은 문제는 저 담론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소수의 엘리트를 적으로 몰아 소외된 다수를 결집하려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담론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문제를 무턱대고 ‘사람’에 두는 (5)86세대 용퇴론 같은 주장은 그런 담론에 의해 오도된 결과라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도 그 일원인데) 이 80년대 세대가 별다른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옳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차원에 있고, 어쩌면 이게 더 심각하다.
이 세대는 뜨거운 ‘이념(이데올로기)의 시대’를 살았다. 당시 우리 세대는 전두환의 폭압 정치에 맞서는 대안을 모색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물론 심지어 주체사상마저 자생적으로 학습하면서 정치적 세계관을 형성했다. 무엇보다도 80년 5월 광주의 역사적 비극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 따라 거친 반미 사상을 내면화했고, 통일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표출되는 민족주의적 지향을 진보라고 이해했다. ‘자유민주주의’는 서구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와 연결된 ‘부르주아 민주주의’일 뿐이라는 인식도 일반화되어 있었다.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민주화는 이 세대가 주도하는 변혁 운동에 의존했지만, 이 ‘민주화 세대’는 정작 민주주의의 실질적 형식과 내용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했고 또 무지했다. 가령 우리는 민주적 선거란 그저 단순다수결 소선거구제일 뿐이라고 믿었지 어떤 다른 대안적 제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해도 관심도 없었다. 그냥 모든 걸 당시의 주류 정치인들의 판단과 결정에 맡겨버렸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의 ‘결손 민주주의’ 체제다.
문제는 80년대 말 이후 소련 및 동구의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이 세대가 깊숙하게 내면화했던 이념들이 비현실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조금 단순화하자면, 그 결과 이 세대 대부분은 지독한 이념적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고 해야 한다. 나름의 성찰과 모색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은 그런 아노미 상태에서 민주주의와 민주 정치에 대해 제대로 학습할 기회도 없이 정치권에도 진출하고 사회 각 부분의 중추적 역할도 맡았다. 비록 대부분은 시대 변화의 압도적 흐름 앞에서 과거의 낡은 이념은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과거의 정치적 세계관의 근본 틀과 사유 습성만은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이 세대의 정치적 성공이 함정이었다.
정치권에 진출한 많은 이들은 과거 민주화운동에 열정적으로 헌신했다는 도덕적 우월감을 자산으로 삼았지만, 사회와 국가를 경영할 실력과 전문성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말하기는 힘든 상태로 중추적 정치인이 되어 갔다. 그 도덕적 우월감은 국가의 통치 과제와 관련해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섬세하고 효율적인 정책의 계발과 실천을 위한 역량을 기를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이후에라도 이를 보완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과거의 경력이 여전히 충분한 정치적 자산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집권해서 중책을 맡더라도 실제로는 기능적 관료들에게 거의 모든 통치 과제의 실행을 맡겨버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민주당 정부가 처음에는 여러 부문에서 개혁의 깃발을 소리 높여 외치다가도 곧 꼬리를 내리고 과거의 익숙한 관행으로 되돌아가고 마는 모습을 보인 건 바로 이런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지 싶다.
나아가 그런 식으로 정치도덕적 자산에만 기댔던 진보 정치는 다른 한 편으로는 도덕적 명분과 원칙에 집착하는 ‘도덕정치’의 양식에 크게 의존했다. 그것은 보수 기득권 세력을 압도할 수 있는 좋은 정치적 무기였다. 그러나 이런 정치 양식은 거꾸로 자기 진영에 속한 개인의 사소한 도덕적 흠결도 커다란 정치적 자산 손실을 불러오게 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이 진영이 깊숙이 빠져 허덕였던 ‘내로남불’이라는 덫은 사실은 스스로 만든 것이라 해야 한다.
한편 그런 정치 양식은 기득권 세력에 대해 도덕적으로 채색된 과도한 적대 전선을 설정함으로써 우리 민주주의의 고질병인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데도 기여했다. 국가 경영과 관련된 정책의 색깔이나 실천 역량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아니라 ‘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도에 매달리거나 정치적 상대를 ‘토착왜구’ 따위로 규정하면서 악마화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는 민주당의 정치적 확장력을 잠식할 뿐이었다. 심지어 그런 정치 양식은 진영 내부에서도 이견을 가진 사람이나 세력에 대해 도덕주의적 분노와 적대감을 드러내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 과정에서 상처 입은 많은 이들이 민주당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했다.
민주당은 누구인가?
촛불혁명의 정신을 정치적으로 계승한다는 민주당 정부는 왜 5년만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을까? 많이들 지적했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이나 코로나 민생위기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너무 소극적으로만 대처하거나 잘못 대응해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말 무능했다. 그러나 그 무능은 촛불의 염원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아무런 이념적 초점 없이 근시안적으로 선거 승리만 노리던 ‘선거지상주의’ 정치와 동전의 양면이었다.
민주당은 늘 다양한 성향의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 강조하던 개혁의 초점을 슬그머니 흐리거나 과감한 선제 대응을 보류하는 식의 정치만 해 왔다. 그러나 그 선거지상주의는 얼핏 성공하는 듯이 보였어도 정작 가장 중요한 대선에서는 뼈아픈 패배를 피할 수 없게 했다. 이 당은 너무 자주 불투명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바람에 민주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신뢰 자산을 제대로 쌓지 못했던 것이다.
내 생각에 민주당의 정치적 정체성의 혼란, 그러니까 내가 예전에 이 지면에서 비판한 적이 있는 ‘진보적 신자유주의’ 같은 형용모순적인 정치 양식(민주당, ‘진보적 신자유주의’와 결별하라)은 기본적으로 바로 이런 배경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나는 이 당이 스스로가 과연 어떤 정당이고 어떤 정당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역사적 자기인식 같은 걸 가졌는지 의심한다. 많은 시민들은 이 당이 가령 ‘차별금지법’을 마땅히 제정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실효성 있게 만들어 주리라 기대하지만, 이 당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그런 염원에 놀랍도록 관심이 없다. 이는 기본적으로 이 당에 핵심 이념이나 철학이 없는 탓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념의 시대는 벌써 끝났다. 전통적인 이념들은 급격한 시대 변화에 뒤처져 버렸고, 오늘날과 같은 다원주의 시대에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얻어 집권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정당의 이념적 중도화와 포괄적 지향은 필수적이다. 기후 위기 같은 문제는 전통적인 좌우 구분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이 민주당처럼 기본적인 정치철학과 지향을 아무렇게나 여겨도 좋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주당은 지금 개인의 도덕적 완결성 같은 데는 집착하면서도 정당으로서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념, 말하자면 정치를 이끌 ‘도덕적 나침반’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게 민주당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흔히 민주당을 자유주의 정당이라고들 하지만 그동안의 민주당 정치는 충분히 자유주의적이지도 못했고(차별금지법에 대한 주저나 ‘역사왜곡처벌죄’ 입법화를 생각해 보라), 좌파라고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재분배나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제대로 된 복지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구해 온 적도 없다(코로나 팬데믹으로 생존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들에 대한 그 잔인한 무시를 생각해 보라).
그러한 ‘이념-맹’(盲) 또는 ‘가치-맹’은 오늘날과 같은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유연성과 실용성을 수용하기 위한 좋은 바탕 같지만, 사실은 민주당의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근본에서 뒤흔드는 독이다. 민주당은 무엇보다도 설득력 있고 체계적이며 실천가능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는데서 실패했다. 나는 지난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그런 유의 비전 제시 없이 ‘소확행’ 전술에만 집착했던 데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바로 그런 배경 위에서 민주당 안에서는 아직 너무도 시대착오적인 계파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 도대체 친문/반문이 뭔가? 아, 지금은 친이(재명)/반이인가? 가치에 대한 헌신의 강도나 우선순위 설정 또는 실천 전략 같은 걸 두고 나뉘는 계파가 아니라, 영향력 있는 정치인에 대한 친소 여부가 계파의 기준이 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민주당의 정치적 퇴행성은 너무도 분명하다.
이념 정치의 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당 같이 큰 정당 안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을 수 있음을 무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 다양함에 열려 있되 그래도 그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근본적인 지향만큼은 분명히 하면서 그에 따른 일관된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려면 단순히 상대의 실책을 기다릴 게 아니라 그야말로 환골탈태하는 수준의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인적 교체나 세대 교체도 꼭 필요하겠지만, 정치적 정체성부터 분명히 하고 이를 공유하고 실천하는 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일이 너무 추상적이고 복잡한 일일 거라고 여길 필요는 없다.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동안 처리해야 할 개혁 입법의 목록을 만들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의제를 놓고 대토론을 벌이는 일부터 시작해 보라. 과연 어떤 정책과 입법이 민주공화국의 이념에 대한 최선의 해석이자 실천일지를 두고 백가쟁명도 하고 정치적 경합도 해 보라. 그런 과정에서 민주당의 정치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가 다소간 분명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앞으로 그 일들을 얼마나 제대로 해내느냐에 민주당의 미래가 달렸다. 부디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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