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영화감독의 시각에서 본 여성의 문제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전주국제영화제 참관 르뽀 ② n번방 사건 피해자 다룬 ‘경아의 딸’ 국제경쟁작중 브라질영화 ‘메두사’ 여성은 ‘여성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나

'메두사'의 영화 포스터.
'메두사'의 영화 포스터.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특징 중 하나로 여성감독들의 활약이 돋보였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국제경쟁작과 한국경쟁작들 모두 여성감독들의 영화가 많이 보였고 양 섹션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도 모두 여성감독의 작품이었다. 국제경쟁작 섹션에서는 <고독의 지리학>이, 한국경쟁작에서는 <정순>이 대상을 수상했다.

<고독의 지리학>은 캐나다 출신의 재클린 밀스의 다큐멘터리며, <정순>은 정지혜 감독의 극영화다. 그밖에 이완민 감독의 <사랑의 고고학>과 김정은 감독의 <경아의 딸>도 주목을 받았다. 국제경쟁작으로 출품돼 깊은 인상을 남겼던 영화 <메두사>는 브라질의 여성감독 아니타 호샤 다 실베이라의 작품이다.

모두 여성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주인공 역시 여성이며 여성의 시각으로 서사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두 영화 <경아의 딸>과 <메두사>를 소개하고 싶다. 여성감독들은 현 시점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시의성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피하면 피할수록 빠져들어가는 ‘여성의 문제’

<경아의 딸>에서 주인공은 경아가 아닌 그녀의 딸이다. 그런데 제목이 경아의 딸인 이유가 있다. 엄마인 경아와 딸인 연수를 잇는 끈이 이 영화의 서사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경아 역은 김정영 배우가 연기했고, 딸인 연수 역은 하윤경 배우가 연기했다. 딸인 연수는 엄마인 경아에게 영향을 받고 성장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삶은 서로 얽혀있을 수밖에 없다. 모녀간의 갈등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 갈등을 만드는 중요한 요인은 그 시대의 사회문화적인 배경에 있으며,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는 그 점을 메시지로 보낸다. 여성의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딸 세대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몇 년 전에 화제를 모았던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리게 한다. <82년생 김지영>에서는 딸이 어머니로 빙의해 모녀가 한 몸이 된 듯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엄마 세대와 딸의 세대에서 겪는 문제점들은 서로 깊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경아의 딸>은 감독이 밝혔듯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n번방 사건을 모티프로 삼고 있으며 피해자인 여성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는 모순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모녀 간에 있을 수 있는 갈등이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모녀의 갈등 속에서는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 중 하나가 담겨 있다. 어떤 상황을 피하려고 애를 쓸수록 오히려 그런 상황에 빠져들기 쉽다는 것이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도망쳤던 사람이 오히려 죽음의 신이 가려고 했던 장소에 미리 도착한다는 우화도 인간의 그런 심리를 보여주고 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경아는 폭력 남편에게 시달렸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딸을 남자로부터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교사가 된 딸 연수는 상처투성이인 경아의 삶에 있어 유일한 자부심이며 그녀의 삶이 성공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립해서 살고 있는 딸이 혹시라도 나쁜 남자를 만날까 봐 경아는 지나칠 만큼 심하게 감시한다. 그리고 엄마의 심한 사생활 침해는 연수에게 반작용을 일으킨다. 금기는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연수는 몰래 남자친구를 사귄다. 그런데 연수가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하면서 장난으로 촬영한 동영상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연수가 이별을 고하자 남자친구는 보복심리로 연수의 지인에게 성관계 동영상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 음란사이트에까지 올린다. 그로 인해 연수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게 되고 스스로 교사 일을 그만 둔다. 또 다른 문제는 어머니와 관계다. 딸은 지금 엄마가 가장 혐오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남자를 사귀는 것으로도 부족해 성관계 동영상까지 공개된 상황을 경아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영화 '경아의 딸' 스틸 컷.
영화 ‘경아의 딸’ 스틸 컷.

경아와 연수의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피해자가 된 여성을 대중이 수용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오래 전에 발생했던 여자 연예인의 비디오 유출 사건을 떠올리게도 한다. 대중은 피해자인 여성이 어떻게 죄인이 되는지, 세월이 지나서 어떻게 대중에게 수용되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분노에 찬 경아가 딸에게 보인 첫 반응은 ‘넌 창녀 같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차차 딸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편견을 버리고 피해자의 입장을 이성적인 시각으로 헤아리는 과정은 대중이 피해자인 여성을 볼 때 작동되는 인식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가진 편협하고 잘못된 시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경아의 딸>은 6월 말에 일반 영화관에서 개봉한다고 하니 놓친 분들에게는 희소식이다.

‘순결’ 강요하는 억압된 사회 고발하는 영화

브라질 영화 <메두사>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감독은 메두사에 대한 신화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나 자신의 미모를 너무 뽐내는 바람에 여신의 분노를 사서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뱀으로 변했고 메두사를 쳐다보는 사람은 돌로 변하는 저주를 지닌 괴물이 됐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약간씩 변형된 버전들이 있다. 영화 <메두사>에서 주인공인 마리아나 역은 브라질 출신의 배우 마리 올리베이라가 연기했는데, 신화가 메두사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있듯이 마리아나의 얼굴에 입은 상처로부터 중요한 변화가 시작된다.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는 극단적인 기독교 집단은 밤마다 길거리로 나가,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들을 폭행으로 단죄한다. 그리고 폭행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리고 ‘좋아요’를 클릭한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리아나 역시 집단의 일원인데 한 여성을 폭행하다가 반격을 당해 얼굴에 깊은 상처를 입고 만다. 성형외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마리아나는 얼굴에 난 상처로 인해 해고된다. 성형외과에서 간호사의 얼굴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리아나가 새로 구한 직장은 요양원이다. 에로스적 욕망으로 가득 찬 성형외과와는 대조적으로 그곳은 죽음의 공기로 가득 차 있다. 이 요양원에 있는 환자들은 의식이 없는 상태라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메두사>는 이렇게 대조적인 영상을 곳곳에 삽입하고 있다. 순결에 대한 강요와 대비되는 광적인 섹스, 티끌 없이 곱게 화장한 피부와 대비되는 흉터와 멍,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찬양과 대비되는 폭력 장면들을 통해 광적인 집단의 위선과 모순을 보여준다. <메두사>에서 설정하고 있는 광적인 종교집단 역시 여성의 자유를 압박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마리아나 역을 연기한 마리 올리베이라 배우는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해 브라질에서 실제로 있었던 한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프닝 씬과 엔딩 씬 역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여덟 명의 젊은 여성들이 얼굴에 흰 가면을 쓴 채 품행이 문란한 여성을 폭행하려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섬칫한 모습이 첫 장면이었던 것에 반해, 엔딩 씬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거리를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첫 번째로 소리를 지르는 여성을 가로막는 남성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변의 여성들은 한 명씩 전염되듯 차례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소리는 계속 울려 퍼졌다. 관객 역시 마음속으로 함께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엔딩 씬이었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던 여성감독들의 영화들은 여성의 문제를 지적하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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