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스토리, 뻔한데도 왜 빠져들까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 ‘사적 복수’는 영화의 주요 주제 반성않는 가해자에 대한 응징 獨 영화 ‘심판’, 아들에 대한 복수 ‘복수는 허무’보다 더 큰 통쾌함

남편과 아들을 잃고 절규하는 카티아(다이앤 크루거 분). 영화 '심판'의 한 장면.
남편과 아들을 잃고 절규하는 카티아(다이앤 크루거 분). 영화 '심판'의 한 장면.

<더 글로리> 흥행과 후유증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넷플릭스의 드라마 <더 글로리>는 복수가 시작되기 직전에 시즌1을 끝냈다. 그리고 몇 달 후의 시즌2를 예고해서 복수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으며, 지연 작전은 끝내 성공을 거둔 것 같다. <더 글로리>는 현재 전 세계 넷플릭스 TV 부문 시청률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더 글로리>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점은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짓밟힌 피해자가 가해자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피해자인 문동은(송혜교 분)의 대사는 대부분 “연진아”로 시작된다. 가해자인 박연진(임지연 분)을 부르는 목소리는 차분하고 다정하게까지 들린다. 문동은에게 박연진은 살아가는 이유다. 18년간 문동은은 마치 그리운 연인처럼 가해자인 박연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작가 김은숙은 문동은이 지닌 복수 에너지의 색깔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문동은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대신, 마치 제3자의 시선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문동은이 냉정하고 침착할수록 시청자의 복수에 대한 열망은 더 강렬해지는 효과를 낸다.

시리즈물에서는 복수를 앞둔 시점에서 시청률이 상승한다. 가해자의 행동이 잔인하면 할수록 복수에 대한 열망도 커진다. “너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는 일반적인 이해의 말은 통하지 않는다. 아니, 통해서는 안 된다. 상대는 복수에 대한 죄책감을 덮을 수 있을 만큼 절대 악인이어야 한다. 나쁜 폭력을 응징하는 주인공의 폭력이 정당성을 얻게 되고 좋은 폭력으로 인식되게 하기 위해서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사적 복수’ 드라마를 보는 쾌감

요즈음 인기 있는 장르이자, 변호사가 주인공인 법정 드라마에도 복수 서사가 많다. 억울하게 피해를 본 의뢰인에게 유리한 증거와 법 조항을 찾아내서 승소할 때, 시청자는 정의가 살아있다는 쾌감을 느낀다. 상황이 불리할수록 긴장감은 고조되고 승소의 기쁨은 더 커진다. 이른바 ‘막장’이라고 불리는 아침드라마가 시청자들을 끌어당기는 이유도 복수 서사의 쾌락 때문이다. 복수가 강하고 교묘하게 행해질수록, 가해자들이 비참하게 무너질수록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과 비슷하게 열악한 가정환경을 지닌 약자 학우들을 악랄하게 괴롭혔던 박연진은 학교폭력이라는 악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다. 현실에서도 가해자가 유명인이 되었을 때, 과거의 학폭사실이 폭로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 감수성이 예민한 성장기에 겪은 학교폭력은 평생 상처로 남을 만큼 심각하다.

드라마나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은 오랜 세월을 복수심으로 인고한다는 설정에서 나온다. 극중 피해자 캐릭터의 생존력이 복수심에서 나오듯이 시청자들도 캐릭터와 함께, 칼을 가는 시간을 견딘다. 그리고 복수의 쾌락이 터지는 순간만을 기다린다.

살면서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거나 억울하게 비난을 받았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SNS에서 내가 쓴 글이 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돼 비난의 댓글이 달리고, 공유되면서 핵심과는 관계없이 악의적으로 확장되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선이 애매한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피해자의 처지에 분노하고 감정이입이 되기는 매우 쉽다.

실제에선 가해자의 반성은 없다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가해자의 반성과 회한에 찬 피눈물과 그로 인한 피해자의 심리적 보상이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는 시청자의 기대를 배반한다. 가해자 캐릭터들이 울부짖는 절규는 반성이나 회한이 아닌 억울함의 눈물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반성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 글로리>에서도 가해자들은 자신이 당한 고통만을 주장하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교도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한 예술치료를 실시했던 치료사들은 어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건 억울해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실제로 억울한 상황에 처한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 이유 없이 길 가던 행인을 찌른 경우라도 가해자는 억울해한다. 그 당시에 자신의 심리 상태가 매우 불안정했다거나, 행인이 왜 하필 그때 자신의 신경을 거슬렸는지를 탓하면서 자신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한탄한다.

복수의 가장 큰 목적이기도 한 가해자의 반성 어린 눈물에 대한 기대는 충족되지 못한다. 복수를 했다고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을 수도 없다. 그러니 복수는 허무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하는 순간의 짜릿한 쾌락을 포기하기 힘들다. 법적인 처벌이 이뤄지지 않거나, 형량이 너무 가벼울 때 답답함을 사적복수는 한 순간에 날려버린다. 피해자가 당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줄 때는 복수의 형식이 논리적이며,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 '심판'의 포스터.
영화 ‘심판’의 포스터.

‘사적 복수’를 그린 영화 <심판>

피터 아킨 감독의 독일 영화 <심판>은 피해자의 분노와 복수에 대한 열망, 그리고 허무함을 모두 담고 있다. <심판>은 세 파트로 나뉘어 각각 제목을 달고 있다. 1장은 ‘Die Familie’(가족), 2장은 ‘Die Gerechtigkeit’(정의), 3장은 ‘Das Meer’(바다)다. 이 세 장의 제목은 복수 서사의 과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간적인 배경은 독일의 함부르크이고 남편은 터키계 이민자로 누리라는 이름을 가졌다. 영화는 카티아(다이앤 크루거 분)와 누리가 교도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카티아와 누리는 대학 시절 마약 거래로 만난 사이지만 누리는 출소 후에는 마약 밀매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평범하고 행복한 가장으로 성실하게 살아간다. 로코라는 사랑스런 아들도 얻었다. 임신한 여동생이 아기용품을 보러 가자고 해서 카티아는 남편 사무실에 아들을 맡긴 뒤, 외출하고 돌아오다가 남편의 사무실이 폭파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사고로 카티아는 남편과 아들을 잃게 된다.

경찰은 마약 밀매와 관련돼 있다고 추정하고, 친정 부모는 마약밀매상이었던 사위 탓을 하고, 시어머니는 손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카티아에게 물어서 그렇지 않아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며느리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언론에서는 마약밀매상이 죽었다고 보도되고 범죄조직과 연관된 것으로 몰고 가지만 카티아는 네오나치의 소행이라고 믿는다. 네오나치는 이민자라는 이유만으로 임의로 고른 대상을 살해한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경찰이 카티아의 말을 믿지 않자,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린 카티아는 자살을 결심한다. 물을 가득 채운 욕조에 누운 카티아의 양쪽 손목에서 피가 퐁퐁 새어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때 적막을 깨고 전화벨이 울린다. 그리고 자동응답장치를 통해 카티아 말대로 네오나치의 소행이었다고 말하는 경찰의 목소리가 들린다.

절규하는 피해자

그 순간 카티아의 머리가 욕조의 물속에서 솟아 나온다. 카티아는 양쪽 손목에 수건을 감싸고 자동응답기를 다시 작동시킨다. 용의자를 검거했다는 말에 카티아는 살아야 할 이유를 다시 찾게 된다. 하지만 용의자가 있고 범죄를 증명할 만한 증거들도 있으니, 법정에서 정의가 실현될 거라는 카티아의 믿음은 무너지고 만다. 여기서 네오나치주의자이면서 가해자인 부부의 모습은 카티아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다.

구속된 후 법정에서 재회한 부부는 서로 껴안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피해자의 얼굴에 전혀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남의 가정을 참혹하게 파괴한 범죄자들이 자신의 가족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다. 그리고 희생된 카티아의 어린 아들이 사제 폭탄으로 인해 어떻게 장기가 훼손됐는지 세세한 증언을 들으면서도, 가해자들의 표정에는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무죄가 선고되자, 카티아는 가해자들이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의 사적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 카티아의 복수는 마지막에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을 보이며 끝난다.

3장의 제목이기도 한 ‘바다’는 모든 것이 원상태로 회귀했음을 상징하는 단어다. 바다는 카티아가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곳이기 때문이다. 카티아의 분노도, 상실감도, 슬픔도 모두 아들과의 즐거운 추억을 담은 바닷속에 묻힌다. 그것은 곧 허무 밖에 남지 않을 복수의 끝을 보여주는 결말이기도 하지만, 분노로 살이 녹아드는 고통을 감수해온 피해자들 앞에서 복수가 무용하다는 교과서적인 말을 할 수는 없다. 허무함이 찾아올 것을 알면서도 복수 서사가 인기를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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