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AI로봇은 어디까지 실현될까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 인간 추종한 AI영화, 똑같을 땐 불편함을 AI 약점 파고든 영화 “에이 아이’와 ‘그녀’ 인간처럼 AI도 진화 보여준 영화 ‘조’ 영화는 어디까지 AI를 상상하고 있을까
우리의 상상 안에 있었을까
영화는 예지력이 있는 걸까? 감독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서사가 비슷하게 현실화되는 일들이 많아서 그런 물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재난 영화를 만들기가 겁난다고 말하는 할리우드 감독도 있다. 9·11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이미 비슷한 상황이 영화에서 묘사됐고, 코로나처럼 강력한 전염성 질병도 그 이전에 여러 영화에서 등장했다. 인간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는 사실 무한하지 않다.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해도 현실과 경험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장르가 SF영화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은 현재 우리가 고민하는 부분과 일치할 수도 있고, 언젠가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SF영화는 지구의 파멸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디스토피아 영화가 되기 쉽다.
코로나로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없는 상황 역시 디스토피아의 서막처럼 보인다. 코로나 시대는 우리 삶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고 예전과 똑같아질 수는 없다. 비대면으로 주문할 수 있게 시스템을 바꾼 식당들이 많고, 배달앱으로 주문하면 문밖에 놓고 간다. 하지만 디스토피아라고 느끼지 않는 이유는 사람과 직접 만나지 않고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며, 모임도 강의도 영상으로 충분히 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네가 인간은 아니잖아!
인간의 정서도 상황에 맞게 적응한다. 꼭 앞에 실물이 있지 않아도 충분히 감정의 교류가 가능하다. 이런 상황은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감정이 영향을 받는 데까지 발전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 더하여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엄청난 변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에서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현재 현실에서 가장 대중화되고 발전한 AI는 chatGPT로 보인다. chatGPT는 기존의 검색엔진 수준을 뛰어넘어, 질문만 입력하면 스스로 정보를 모아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전달한다. 자신의 한계도 판단할 수 있으며, 잘못된 정보라는 것을 인식하고 수정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과학자나 프로그래머, 혹은 자본가들이 원하는 최종 목적지는 인간과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똑같은 AI다. AI로봇의 개발은 상실에 대한 보상, 영원한 삶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에 나온 연상호 감독의 영화 <정이>에서는 전설적인 용병이었던 윤정이(김현주 분)의 뇌를 복제해서 인공지능을 지닌 전투 로봇을 개발한다. 연구원 팀장이 정이의 딸인 서현(강수연 분)이라는 점이 불편한 감정을 자아낸다. 어머니의 기억과 모습을 그대로 지닌 로봇이 계속해서 고통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전투 시뮬레이션에서 실패를 반복하던 AI로봇 정이의 전투력이 바닥난 순간, 뇌에서 미확인된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 현상이 나타나자, 연구팀은 긴장한다. 그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영화를 끌어가는 동력이 되고, 과학기술로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진한 감정, 여기서는 모녀간의 끈끈한 정을 결론으로 내세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에이 아이(A.I.)>에서는 아이를 잃은 부모가 자식과 똑같은 모습을 한 AI로봇을 만들어 상실감을 채운다. 그런데 데이빗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AI로봇에게 인간보다 더 강한 감정이 생기고 엄마에게 집착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데이빗은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고 싶어한다. AI의 욕망은 인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욕망을 조절하는 능력이 이 AI에겐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미래에 인간이 완전히 소멸하고 구석기 시대의 귀한 유물 정도의 가치를 지닐 때까지도 엄마를 향한 AI로봇 데이빗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닮았지만, 똑같아선 안되는 너
실제가 아닌 AI와의 감정적 교류는 영화에서 휴머니즘과 위험의 경계를 넘나든다. 2013년에 제작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는 사만다라는 인공지능의 매력적인 목소리만으로도 사랑에 빠지고 섹스의 쾌락까지 느끼는 경지를 보여준다. 사랑의 대상에 꼭 형체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상상만으로도 가능하다. 이상적인 연인을 만나 만족해하던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사만다가 상대하는 사람이 자신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둘만의 특별하고 고유한 관계에 의미를 두는 인간관계와는 다르다는 것을 테오도르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만다는 결국 스스로 진화를 거듭해 테오도르가 사는 세계를 초월해버린다.

AI영화는 끊임없이 인간을 닮은 AI를 통해 오히려 인간의 속성을 성찰하게 만든다. 인간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섬세한 인간 복제품을 만들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과 너무 똑같을까봐 두려워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된다. AI는 인간이 지닌 다양한 욕망을 충족시켜줄 만큼 인간적이어야 하지만, 인간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딜레마가 있다. 타인을 이용하고, 지배하고 싶은 욕망까지 갖게 되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에 가까운 AI로봇을 만들 목적으로 여러 단계의 테스트를 거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가 2015년에 개봉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엑스 마키나>다. 이런 AI영화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복제 인간에 가까운 AI로봇에게 자의식이 생길 수 있는가,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가 이다. 세계 최고 검색 엔진 회사의 프로그래머인 칼렙은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 분)라는 이름을 가진 AI로봇을 만난다. 칼렙의 표면상 임무는 에이바가 만족할만한 수준의 로봇인지 테스트하는 것이다. 하지만 칼렙은 매력적인 모습의 에이바와 대화를 나눌수록 점점 감정이 흔들린다. 그리고 로봇이지만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한 다른 여성 로봇들이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인간보다 AI로봇을 더 신뢰했던 칼렙은 에이바의 탈출을 돕지만 결과는 예상을 뒤집는다.
감정을 주체 못하고 눈물을 흘리다니
영화에서 AI로봇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다. 인간이 특별하고 가치가 있는 이유는 그 삶이 한정적이라는 것과 고유성 때문이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있지만 자신과 철저하게 똑같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AI는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고 점차 업그레이드되면서 이전 버전은 폐기된다. 인간의 삶은 한시적이라 가치 있고 그 죽음 앞에 숙연해지지만, AI로봇은 죽어가면서도 그 죽음조차 인정받을 수 없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조(JOE)>에서 조(레아 세이두 분)는 연구소 직원인데 자신이 AI로봇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 동료이면서 자신을 만든 인간인 콜(이완 맥그리거 분)을 사랑하게 된다. 콜에게서 자신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들은 조는 처음에는 믿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고 자신의 가치에 대해 회의하고 좌절한다. 이 영화는 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가장 인간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허용치를 넘어설 때 느껴지는 경계심이나, 로봇에게 사랑을 느끼는 어색함을 넘어선다. 조는 원래 눈물이 나오지 않게 설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콜에게서 사랑 고백을 받고 진심으로 감동하자 스스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눈물을 흘리게 된다. 조는 놀라면서도 눈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받는 느낌을 갖고 자존감을 회복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며 실물이 아닌 AI와 음성이나 글을 통한 대화를 통해서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는 사람도 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창작의 영역까지도 AI는 이미 침범하고 있다. 인간의 창작 능력도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모방부터 시작해 학습하고 발전해 자신만의 창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겪는다는 점에서 인간이나 AI나 같다.
인간이 프로그램화한 AI가 스스로 진화해 입력과 상관없는 영역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그런 AI가 자신을 탄생시킨 인간을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럴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까지 발휘한다. 어디까지 현실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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