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이 무엇이길래, 팬덤정치까지?
[박만규의 에티모버스’(Etymoverse)’] ‘팬덤’은 새로운 ‘폰’시대 변화 반영 팬덤정치, 민주주의 방해해선 안돼 ‘팬덤’, 부디 긍정의 의미로 남기를
- ‘에티모버스’(Etymoverse)’는 어원을 뜻하는 Etymology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를 필자가 합성한 말이다. 어원에는 옛사람들의 사고가 비유 속에 담겨 있어 세계에 대한 인류의 다양하고 심오한 사유를 알게 해준다. 이는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요즘 팬덤 정치에 대해 말이 많다. 주로 그것의 폐해를 지적하는 말들이 많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저조한 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비상 대책의 하나로 더불어민주당의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팬덤 정치에 대한 쇄신을 내세울 정도이다. 도대체 ‘팬덤’(fandom)이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말이 많은 것일까?
우리는 보통 이 말을 방탄소년단(BTS)의 ‘아미’(Army)와 같이 특정 연예인의 열성적인 팬들의 모임을 일컫는 말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연예인이나 스포츠인을 넘어 정치인의 영역까지 넘어와서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드는 생각이, 왜 ‘팬 클럽’이라는 말이 있는데 굳이 ‘팬덤’이라는 말을 쓸까 하는 의문과, 그런 의미라면 왜 ‘팬덤 정치’가 그렇게 비난받아야 할 일일까 하는 의문이다.
우선 첫번째 의문부터 살펴 보자.
미디어 비교연구 전문가인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 MIT교수가 지적한 대로, 팬덤은 단지 소비에 그치지 않고 다른 팬들과의 상호 소통을 통해 제작에도 창조적이고 능동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참여하는 집단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 팬덤은 비즈니스 세상을 움직인다. 주지하다시피 BTS 성공의 밑바탕에는 팬덤이 있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적극적인 소비자 행동주의의 구현은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가능해진 변화다. 과거의 팬클럽은 연예인과 팬들의 만남, 그리고 정치인과 유권자의 만남을 정기적 모임이나 이벤트를 통해서만 이루었지만, 요즘의 팬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리고 매우 용이한 방식으로 이룬다. 거기에다 최근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너무나도 자주, 쉽게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이루고 있다.
팬덤은 어떻게 진화한 단어일까
그러므로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과거의 ‘팬 클럽’이라는 용어는 최근의 이 같은 개념을 포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팬덤’이다.
그렇다면 팬덤은 이러한 바뀐 개념을 수용하기에 적합한 단어인가? 이는 이 어휘의 어원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fandom은 ‘애호가, 열성적 추종자, 지지자’를 뜻하는 ‘fan’과 접미사 ‘-dom’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영어에서 ‘-dom’으로 끝나는 단어는 크게 두 계열로 나뉜다. 첫째 계열은 명사 뒤에 ‘-dom’이 오는 것들인데, fandom(팬들의 집단) 외에 kingdom(왕국), stardom(스타덤, 스타의 반열), officialdom(관료집단) 등이 그러하다. 둘째 계열은 형용사 뒤에 ‘-dom’이 오는 것들로 ‘상태’를 나타낸다. freedom(자유), wisdom(지혜), boredom(지루함)이 그 예가 된다.
첫째 계열에 속하는 단어들에서 ‘-dom’의 의미를 보면 ‘사람들이 이루는 집단’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뜻을 갖는가?
dom은 본래 고대 영어(Old English)에서는 ‘판단, 심판, 규정, 법규’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 단어는 세 가지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는데, 우선 첫째가 현대 영어 doom으로의 변화이다. doom은 ‘죽음, 파멸’을 뜻하는데 이는 ‘판단, 심판’의 뜻으로부터 doomsday(심판의 날)를 탄생시켰고 ‘최후의 심판일’이라는 종교적 의미로 확장되었다. 여기에서부터 doom 자체가 ‘최후의 심판’이라는 뜻을 얻게 되고 이 뜻이 ‘죽음, 파멸’이라는 뜻으로 다시 확장된 것이다. (‘둠스데이-지구 최후의 날’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으리라! 또 ‘둠스데이’는 슈퍼맨을 죽인 것으로 유명한 DC 코믹스의 슈퍼 빌런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dom은 본래의 ‘규정, 법규’라는 뜻으로부터 ‘법규로 다스리는 지역’, 즉 ‘관할구역(jurisdiction), 영토’, 혹은 그 ‘집단’의 뜻을 얻게 되었는데, 이 뜻으로는 접미사로 쓰여 많은 복합어를 만들었다. kingdom(왕의 영토), earldom(백작의 영지), fiefdom(봉건 시대에 농민들에게 빌려 주던 영주의 땅), officialdom(관료집단) 등이 그 예가 된다.
dom은 또 다른 한편으로 법규로 다스려지는 대상의 ‘상태’, ‘지위’라는 뜻으로도 의미가 확장되었는데, 위에서 말한 freedom, wisdom, boredom이 그러하다.
fandom(팬덤)은 kingdom처럼 ‘팬들의 관할구역, 영토’ 혹은 ‘팬들의 집단’이라는 의미가 되는데, 이러다 보니 fandom은 특히 kingdom의 영향으로 인해, ‘팬들의 왕국’이라는 어감을 얻게 된다. 실제로 fandom을 사전에 따라서는 ‘the realm of avid enthusiasts’(열광적 팬의 왕국[영역])로 정의하기도 한다.
따라서 팬덤은 단순히 팬 클럽이 아니다. 단순히 동호인들의 모임인 ‘클럽’이 아니라, 규정, 법규가 지배하는, 그리하여 체계를 갖춘 팬들의 집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팬 클럽이라는 용어는 맞지 않게 돼 이러한 체계성을 갖춘 집단이라는 의미를 보다 잘 전달하는 ‘팬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팬덤 정치’를 걱정하는 이유는
이제 왜 ‘팬덤 정치’가 그렇게 비난 받아야 할 일일까 하는 의문을 살펴보자.
‘팬덤’의 ‘팬’은 ‘광적인 사람’을 뜻하는 fanatic에서 왔는데, 처음에는 ‘미친, 제 정신이 아닌(insane)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fanaticus에서 왔다. 여기에 더해 ‘화난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그러다가 이후에 긍정적인 의미인 ‘몰두하는, 열성인 사람’이라는 뜻을 얻었다. 요컨대 부정적 광기로 출발해서 긍정적 애호나 지지의 의미로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팬’의 의미 전이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사유는 긍정과 부정의 방향을 넘나든다. 이번에는 ‘팬덤’이 긍정에서 부정으로 넘어간다. 사실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감정적 유대에 기반하는 팬덤이 그 자체로는 나쁠 것이 없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요즘은 부정적인 측면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자신이 흠모하는 정치인에 대한 절대적 지지는 그를 ‘오류 없는 절대자’로 신화화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태도는 지지 대상자가 큰 잘못을 저질러도 너무도 쉽게 소위 ‘내로남불’로 덮어 버리게 하고, 나아가 반대파에 대해서는 혐오와 증오를 퍼붓는 공격을 서슴지 않고 감행하게 한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당내 민주주의도 부정하는 문제를 드러낸다.
데이비드 미어먼 스콧과 레이코 스콧은 『팬덤 경제학』에서, 정보와 제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고객이 너무 쉽게 이 브랜드에서 저 브랜드로 옮겨 다니기 때문에 팬덤 없는 비즈니스는 필연적으로 실패한다고 했다. 이러한 팬덤은 정치에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정치인도 유권자의 인기를 얻지 못하면 정치적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dom’이 ‘규정, 심판’에서 ‘파멸’(doom)로 갔듯이, 그리고 fan이 ‘부정적 광기’에서 ‘긍정적 애호’로 갔듯이, 인간의 사유는 극단을 넘나든다. 결국 정도의 문제이고 방향의 문제이다. 어느 정도까지 가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올바른 방향을 잡을 것인가? 사람에 대한 선호가 어쩔 수는 없지만 가급적이면 사람보다는 공동체의 발전을 지향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아무리 흠모하고 추종하는 숭배의 대상이라 하더라도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고 결국은 부패한다. 우리가 특정 종교의 성직자 중 부패한 사람들이 있더라도 그 종교가 추구하는 올바른 가치를 선택하여 믿음을 가지듯이, 사람보다는 가치에 조금 더 우위를 두고 선택하는 것이 팬덤 정치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팬덤 자체가 아니라 팬덤의 문화가 문제이다. 팬덤이 국가와 사회에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는 팬덤 구성원들의 의식에 달려 있다. 우리의 팬덤 문화가 긍정의 fandom으로 남기를, kingdom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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