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프랑스 연금개혁, 국민들은 왜 반대하는가
정부가 문제를 만들고 국민이 해결하라고? 정부의 과장된 위기론, 부자부터 희생을 프랑스 국민들, 휴식권리 ‘절대적 가치’ 부여
프랑스의 연금 개혁과 관련한 진통이 그칠 줄 모른다.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은 연금개혁안이 프랑스 하원에서의 통과가 불가능하자 헌법상의 예외 조항을 이용해 상원으로 직행하여 통과시킨 뒤, 분노하는 지방을 방문하며 국민들을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것은 시위대의 저항이었으며 반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프랑스 연금개혁 주요 내용은, 정년 및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것과 연금 100% 수령 위한 보험료 납입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연금 재정이 올해부터 18억 유로(약 2조5천억 원) 적자 상태로 들어가고 적자액이 점차 확대되어 2030년에는 135억유로(약 19조원), 2050년에는 439억유로(약 61조원)로 확대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인해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0%가 넘어가고 있는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가장 이른 나이인 62세에 은퇴를 하여 연금을 지급받고 있으며, 또한 유럽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의 연금을 지급받고 있기에 재정의 압박이 매우 크다. 사실 GDP의 14%가 연금 관련 지출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OECD 평균의 2배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연금 기금도 고갈될 것이고 경제도 안 좋은데, 왜 프랑스인들의 60~80%가 퇴직 연령을 2년 늦추는 데 그토록 반대하는가? 퇴직 연령을 64세로 늦춰도 여전히 영국, 독일 등보다 이른데도 62세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프랑스인들이 유독 이기적이고 게을러서일까?
아니다. 그들도 변화해야 하는 데에는 동의한다. 다만 정부의 해법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의 진단과 해결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연금의 재정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대두되고 있어서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볼 수 없고 오히려 타산지적(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하기에 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왜 서민에게 일을 더 시켜 충당하려 하나
우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프랑스 정부와 다수 국민이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프랑스의 퇴직연금위원회(Conseil d’orientation des retraites)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연금기금의 수지는 2027년까지 120억 유로 가량 적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되고 향후 25년간 악화일로를 치달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정부의 개혁안은 이러한 비관적 전망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혀 다른 분석이 존재한다.
“베이비붐 세대(일반적으로 1946년에서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가 대략 2010년에서 2030년 사이에 은퇴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퇴직 인구가 증가하는 반면, 그 이후에는 인구가 감소하여 연금 수령인구도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에 발생하는 일시적인 재정 적자가 긴급 조치를 취해야 할 정도로 시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프랑스에서 연금에 지출되는 총액은 GDP의 약 14%인데 이미 최근 몇 년 동안 안정화되었고 심지어 감소하기 시작했으므로 이를 감축하는 것이 우선시해야 할 정책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그는 현재의 정부안에 대해 “사회 계층 간의 불평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안이며, 반대로 완전히 다른 방식의 개혁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정부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정부가 문제를 만들고, 오히려 이를 국민이 해결해야 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거대한 저항을 일으키는 두 번째 이유는 정부의 해법이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방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케티가 계층간의 불평등이 고려되지 않은 안이라고 언급했듯이, 많은 국민들은 부족한 재정을 확충하고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면 돈을 많이 버는 부유층에 세금을 더 걷어서 충당해야지 왜 가난한 서민들에게 일을 더 시켜서 충당하느냐고 분노하는 것이다. 성난 시위대가 파리 몽테뉴 거리에 있는 세계 제1의 부자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d) 회장의 루이 뷔통(Louis Vuitton) 본사 건물 안으로 진입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이다. 그러니까 정부가 대기업에 합법적으로 과세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를 오히려 은퇴 대상자들이 지불하도록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실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정부가 그 동안 개혁을 내세워 불평등을 확대하고 저소득층과 중산층, 여성에 불리한 반근로자적이고 친기업적인 정책들을 추진해 왔던 데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다. 고소득층에게 주로 적용되는 부유세와 자본소득세를 대폭 감축해 주었으며 ‘노란 조끼 운동’을 촉발한 유류세 인상도 서민층을 더욱 불리하게 했다. 특히 이번 개혁안처럼 퇴직 연령을 2년 늦추는 것은 어린 나이에 노동을 시작하는 육체 노동자나 저소득층에게 건강과 삶의 질 측면에서 더욱 불리하다는 점에서 형평성을 잃은 조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가 어떤 나라인가? 최초로 사회주의 이념을 태동시키고(생시몽의 공상적 사회주의), 왕과 귀족들을 단두대로 보낸 프랑스혁명의 나라가 아닌가! 프랑스 국민들은 이 같은 상황을 그대로 둘 수 없다.
프랑스인들이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안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또 한 가지의 이유는 추진 과정에서 스스로 조장했던 ‘불신’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일시적인 거짓말로 미봉하고, 이후에 이를 정정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스스로 잃어버린 측면이 있다. 특히 헌법 49조 3항을 이용한 특별 조치를 발동하여 하원이 법안을 검토할 수 없게 만든 점은 국민들로 하여금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발동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마크롱에 대한 배신감도 덧붙여진다. 사실 지난 대선 때 마크롱이 당선된 것은, 많은 국민들이 그를 좋아해서라기보다 극우파인 마린 르펜(Marine Le Pen)의 당선을 막으려고 중도 및 좌파들이 대거 마크롱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를 찍었던 국민들은 ‘기껏 표를 주었더니 우파식 연금개혁안을 추진하여 뒤통수를 치다니!’ 하는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것은 삶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개혁안에 대해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프랑스인의 기본적인 삶의 철학에 대한 위배이다.
프랑스인들은 일과 휴식의 균형에 관한 특별한 관념을 갖고 있다. 휴식은 단지 노동을 쉰다는 개념이 아니라 삶 전체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휴가를 더 많이 보내고 근무 시간을 더 적게 갖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프랑스인들이 오랫동안 투쟁해온 결과이다.
프랑스의 현대사는 노동 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에서 최초로 발생한 산업혁명은 전 유럽으로 번져나갔는데, 그 초창기의 결과는 결코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극적인 것이었다. 자본가에 비해 지나친 힘의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던 노동자들은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되었다. 심지어 7~8세 아동들도 몸집이 작다는 점이 악용되어 굴뚝과 같이 성인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공간의 노동에 투입되는 등 노동자의 삶은 그야말로 비참함 그 자체였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근로 환경과 조건의 개선 필요를 낳았고 특히 노동시간의 제한은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자본가들의 착취로부터 근로자가 받아야 할 이익을 되찾아 오는 일도 필요했다. 이는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사상을 태동하게 하였다.
산업 혁명 이후 특히 주당 노동 시간은 노사 관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는데, 19세기에 임금 노동자들은 보통 하루 12~16시간, 주 6~7일을 근무했다. 그러다가 노동 운동의 조직력과 영향력이 커지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는데, 1848년 프랑스의 임시 정부는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1919년에는 하루 8시간 근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1936년 인민전선(Front populaire) 정부는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1982년 2월 1일, 피에르 모루아(Pierre Mauroy) 사회당 정부는, 그 전 해의 대통령 선거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의 선거 공약을 지키기 위해 법정 근로시간을 주 39시간으로 낮추었다. 이후 2000년 1월 오브리 법(loi Aubry)에 따라 직원 수 20인 이상 기업의 법정 근로시간이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낮아졌으며, 직원이 20명 이하인 회사의 경우에는 이듬해부터 적용되었다. 이로써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법정 근로시간을 갖는 나라가 되었다. 복지 천국이라 일컬어지는 덴마크(37시간)와 네덜란드, 노르웨이(38시간)도 이에 뒤진다. 연장근무에 대한 제한으로는 1일 최장 10시간과 1주 최장 48시간이라는 단위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 근로자들은 법에 따라 연간 무려 5주 이상의 유급 휴가를 받을 수 있다. 영국 근로자는 28일, 덴마크와 스웨덴 근로자는 25일의 휴가를 기대할 수 있으며 기타 대부분의 유럽 국가 근로자에게 약 20일의 연차 휴가가 주어지는 것과 비교하면, OECD 국가 중 프랑스가 휴가 기간에 있어 세계 최장이라 할 수 있다.
휴식은 쉬는 게 아니라 비우는 것
여가 시간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애착은 일과 삶의 균형을 넘어서서 여가가 인생의 목적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태도를 보여준다. 여가보다 일을 우선시하는 한국의 기성세대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모습이다. 요즘 들어 우리는 여가를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지만, 휴식을 취하는 것을 재충전(recharging)할 수 있다는, 혹은 나아가 창조(recreation, 리크리에이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기회로 생각하는 태도로서, 여전히 일에 중점을 두는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쓰러질 때까지 일해야 한다’는 모델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프랑스인은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다 이른 나이에 은퇴하여 황혼기를 즐길 수 있기를 원하며, 노동기간 중에도 휴가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여 자신의 관심사와 취미 또는 여가 활동을 즐기면서 가족 및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이는 모든 프랑스 기업이 사원들에게 하루에 2시간에 달하는 넉넉한 점심시간을 보장하는 것으로도 잘 입증된다. 특히 지방에 있는 많은 중소기업은 점심시간에 문을 닫는 경향이 있으며, 사원들은 이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은 스스로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특히나 요즘은 40~59세 근로자의 3분의 2 이상이 은퇴할 때까지 충분히 건강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노동부의 2019년 자료는 전체 노동자들의 37%가 정년까지 일을 계속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휴가는 노동을 비우는 행위이다. 이는 프랑스어에서 휴가를 뜻하는 말인 ‘바캉스’(vacances)가 ‘비움’을 뜻한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 단어가 영어에서 ‘비움, 공석, 결원, 멍함’ 등을 뜻하는 vacancy와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휴식이란 이처럼 노동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그렇게 쉽게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2017년에 프랑스는 소위 ‘연결되지 않을 권리(le droit à la déconnexion)’를 노동법에 도입한 바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직원 수가 50명 이상인 조직은 특정 시간 이후에는 직원들이 이메일을 보내거나 답장할 수 없다. 이 ‘연결 해제 권리’의 목적은 직원들이 사적인 시간을 보호받으면서 업무에 대한 합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좀 농담 같은 이야기이지만, 프랑스인들이 얼마나 휴가를 중요시하는가 하는 사례는 그들이 휴가 시간을 늘려 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한 노동조합 시위를 매년 봄에 시작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여름 휴가 전에는 끝을 낸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②프랑스 시민들 “투쟁을 외면하면 역사는 퇴보한다”>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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