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시민들 “투쟁을 외면하면 역사는 퇴보한다”

프랑스 연금개혁, 국민들은 왜 반대하는가 다양한 개혁안, 한국도 고민해볼만 노동조건 투쟁 때마다 고개드는 ‘현실론’ 프랑스 시민들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프랑스 파리에서 학생들이 정부의 연금개혁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프랑스 파리에서 학생들이 정부의 연금개혁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①프랑스 연금개혁, 국민들은 왜 반대하는가>에 이어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안에 대해 반대하는 대다수의 국민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야당과 노조의 주장은 무엇인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 같은 생각을 하기 쉬운데, 이들의 생각을 살펴보자.

지난해 12월 초에 발표된 공동 성명서에서 프랑스의 노동조합연맹들, 즉 CFDT, CGT, FO, CFE-CGC, CFTC, UNSA 등은, 정부가 연금 제도의 재정 상황을 핑계로 법정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호도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연금개혁을 강행하고 있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국민들의 지속적인 반발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연금개혁을 강행하고 있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국민들의 지속적인 반발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용자· 노동자 공동부담의 다양한 제안들

노조측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개혁을 위해 노동자에게 모든 부담을 전가하지 말고 사용자와 노동자가 분담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CFTC는, 분담금(cotisations), 즉 연금 수령을 위하여 재직 시 납부하는 액수를 증액하되 근로자와 고용주가 각각 3 유로를 더 내면 동일한 금액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UNSA(전국자치노조연맹)의 사무총장 로랑 에스퀴르(Laurent Escure)는 한 달에 10유로 또는 15유로의 비율로 분담금, 특히 고용주의 분담금을 점진적이고 신중한 방식으로 늘리자고 제안한다.

또 하나의 방향은 기업주들이 고용을 더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CFDT의 사무처장 마릴리즈 레옹(Marylise Léon)은 고용주가 나이 많은 근로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연금 시스템 자금 조달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UNSA도 고령 근로자의 고용률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령 노동자들 중 56%가 실업 혹은 병가 등의 상태인데, 경제학자 장 에르베 로렌지(Jean-Hervé Lorenzi)의 분석을 인용하면서 이 비율을 10%만 낮추어도 500억 달러의 추가 기여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필립 마르티네즈(Philippe Martinez)는 “급여를 인상하면 직원과 고용주의 분담금이 더 많이 들어오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임금의 인상이 문제 해결의 방안임을 역설한다.

야당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결코 변화의 필요성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방향은 정반대라서, 필요하다면 현재 GDP의 14%인 연금 예산 자체를 올려서 해결하라고 직격한다. 연금 상황의 적자를 정부가 지나치게 부풀려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적자는 연금수혜자인 노인들의 수가 분담금을 내야 할 근로자들 수보다 많아져서 생기는 문제인데, 인구구조로 볼 때 일시적으로 어려울 뿐 향후에 자연스럽게 흡수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때까지는 다른 곳에서 세금 인상이나 감세를 통해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뤽 멜랑숑(Jean-Luc Melanchon) 범좌파 정당연합(NUPES) 대표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임금 인상과 투자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임금을 1%를 인상하면 기금에 25억 유로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요컨대 노조와 야당들은 현재의 연금 상황에 개선해야 할 점이 많지만 정년 연장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점에 만장일치를 보이고 있다.

프랑스 시민저항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라 생각해 보면 프랑스인들이 왜 마크롱의 개혁안에 극구 반대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항상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이해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의문이 하나 남는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 매우 흔하게 퍼져 있는 ‘현실론’이다. 그러니까 “다 알겠는데, 그래도 현실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사고이다. “아무리 좋아보이는 생각이나 제도도 결국은 우리의 현실, 우리의 실정에 맞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직은 우리 사회가 그렇게 할 만한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다. “이러한 현실론을 받아들이거나 감안하지 않고 왜 프랑스인들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일까?” 이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에게 이 현실론을 제기하면 필자 생각에는 아마도 이렇게 반문할 것으로 판단된다. “만일 그런 식의 현실론을 받아들였다면, 우리가 지금 당연한 듯이 누리고 있는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을까?”, “만일 이런 결정들을 정부와 기업에게 맡겨두었다면 지금의 법정 근로시간을 갖고 있을까? 지금의 연차 일수나마 누리고 있을까?”라고.

프랑스 국민의 시위는 이런 점에서 정당하다 하겠다. 그들은 정부가 국민의 권리를 빼앗으려 할 때마다 국민이 분노로 반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현실을 고려해야 하여 일정한 후퇴를 합리화하는 현실론은 발전을 저해하고 위태롭게 하는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왜 항상 발전하고 진보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 정년의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올리는 것은 그들에게 얼마 전 우리 정부가 추진하려 했던 주 69시간제로의 퇴행과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힘들어도 이상적인 목표가 저기 있다면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이처럼 사회주의를 태동시킨 나라, 대혁명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자유와 평등 사상을 세계에 전파한 나라, 그래서 지금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시민사회를 실현하도록 해 준 나라라는, 적어도 자유의 신장을 위해 투쟁하는 부문을 선도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사실 자유는 산업혁명 이후 발생한 강제적인 노역으로부터 인권을 되찾아온 역사의 산물이다. 투쟁으로 얻은 산물이다. 투쟁을 해야 할 때 이를 외면하면 역사는 퇴보한다.

연금개혁에 관한 프랑스의 심각한 파장과 격렬한 저항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프랑스의 현실을 그대로 우리에 현실에 대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이 저항하는 이유는 보편적인 가치로서 수용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베가북스)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씨엘) 등이 있다. 현재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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