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대중에게 외면당한 반엘리트 에너지 정책
[김재민의 에너지 포퓰리즘]
공론화위 “원전 건설 재개해라”
지난 2017년 10월 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는 2박3일 간의 합숙을 통한 숙의과정을 마치고 의외의 발표를 한다. “위원회는 현재 공사가 일시 중단 중인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 건설을 재개하도록 하는 정책 결정을 정부에 권고합니다.”
공론화위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탈원전 공약을 지키기 앞서 국민들 의견을 듣겠다고 만든 여론 조사 기구였다. 정부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의사를 직접 듣고 반영하겠다는 에너지 ‘숙의 민주주의’ 모델로 최초의 시도였다. 국민의 의사를 직접 반영하여 탈원전 정당성의 근거가 되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러나, 결과는 문재인 정부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흥미로운 것은 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참여단의 의견이 건설중지에서 건설 재개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공론화 과정에는 471명의 일반 국민들이 2박 3일 간의 합숙에 참여해 ‘건설 재개’와 ‘건설 중단’에 대한 자료 열람과 전문가들의 설명회를 청취했다. 초기에 건설 재개 지지율은 36.6%였으나 최종적으로는 59.5%로 다수 의견이 되었다.
초기에 ‘판단 유보’ 부동층이 학습 등을 통해 ‘건설 재개’로 결정을 한 것이 주효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가 다수의견이었던 것과 달리, 원자력발전 정책에서는 ‘축소’의견이 다수였다(‘축소’ 53.2%, ‘유지’ 35.5%, ‘확대’ 9.7%). 현실적 문제에서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재개를 선택했으나 이상적으로는 원자력발전소의 축소를 선택한 것이다. 한겨례 21은 ”숙의 민주주의의 첫발을 딛다.“라는 기사에서 이 숙의 과정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았다.
친환경론자들, 국민을 설득할수 있을까
숙의 과정에 참여한 국민들은 원자력계의 설명에 설득(?)당한 셈이다. 현실적인 문제해결과 미래에 대한 이상을 모두 취하고 싶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숙의 결과였다. 만약 이러한 숙의 과정이 친환경론자들에게 다시 주어진다면 그들은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설득이 안된다면 그들은 다수 국민들의 결정을 따를 것인가?
지난 2020년 3월 24일 더불어시민당(더불어민주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한 의석감소를 회피하기 위해 비례대표를 파견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이 총선 비례대표 후보를 발표했다. 그런데 비례후보 명단을 놓고 과학계가 술렁거렸다. 비례후보 9번인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과 18번을 받은 이경수 박사(전 ITER국제기구 부총장)가 함께 보였기 때문이다.
ITER(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는 상용화 가능한 최소 핵융합 기술의 공동 개발을 위해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28개국), 중국, 인도, 일본, 대한민국 등 총 34개국이 참여하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국제 연구 개발사업이다. 이에 비견할 만한 대형 국제 합동 프로젝트는 국제우주정거장, LHC(대형 강입자 가속기), 아르테미스 계획(달 유인탐사 프로젝트) 정도밖에 없다. 핵융합발전은 1990년대부터 모든 정권이 미래 에너지원으로 밀어주고 있는 프로젝트로, 여야를 막론하고 대부분 지지하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의 그린 뉴딜 계획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핵융합론자와 반대론자가 같은당에
환경운동가 출신 양이원영 의원은 지난 2018년 정부 예산안 평가·의견서에서 “핵융합은 태양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핵융합을 실현하는 것은 지구에 태양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는 주장과 함께 “정부의 핵융합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2020년 3월 12일 양이원영 의원은 프레시안에는 “걸음마도 못 뗀 연구에 수조원 혈세... 과학인가 사기극인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은 바 있다.
한편, 이경수 박사는 30년 넘게 핵융합 연구에 몸담았고, 초전도핵융합 연구장치 KSTAR의 건설을 주도한 인물이다. 국가핵융합연구소장(2008~2011년), ITER 이사회 경영자문위원회 위원장(2010~2011년), ITER 이사회 부의장(2014~현재)직을 거친 핵융합 세계 최고 전문가다. 정당이 인적 자원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한 인재 영입이라기 보다는 적과의 동침에 가까운 조합이었다.
이후 총선 결과 비례대표 순서에서 밀린 이경수 박사는 의원 뱃지를 달지 못했다. 그의 낙선에 대해서 과학기술자들은 낙담을 넘어 더불어민주당의 행태에 분노를 보이기까지 했다. 시사저널은 당시에 ”과학자는 이번 총선에서도 들러리인가?“라는 기사에서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다룬 적이 있다
지난 201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푸른 하늘의 날’을 제안했다. 대기질 개선을 위한 국제 사회의 협력 의지를 높이기 위해 유엔 기념일 제정을 제안했고, 유엔 회원국 합의로 ‘푸른 하늘의 날’이 제정됐다.
에너지기술을 정치수단화한 민주당
사실 기후행동정상회의의 핵심 아젠다인 기후변화 대응과 대기질 개선은 비슷한 듯 보이나 성격이 다른 것이다. 대기질 개선은 미세먼지와 연관된 것이고 기후변화 대응은 온실 가스와 연관된 것이다. 공통 배출원이 석탄 발전소와 내연기관 자동차 등이어서 얼핏 같은 것이라 보려고 하나 미세먼지와 온실 가스는 성향이 다르다. 미세먼지는 물리적이며 가스는 화학적 성질을 가지므로 해결법도 다르다.
무엇보다 기후변화 대응은 전 사회적 문제로 산업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해결될 문제이고 미세먼지 개선은 오염원만 차단관리하면 된다.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대기질 개선을 주창한 것은 원론적으로 미래 아이들을 위한 착한 사람들이 되자는 선언 정도라고 의미를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2022년 2월 3일 대선 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는 “RE100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라고 윤석열 당시 국민의 힘 후보에게 물었다. 대통령 후보가 RE 100(재생에너지 100% 활용)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가 질문의 의도였던 것 같다. RE100은 영국의 경우 간단하다. 유통업, 정보통신업, 제조업에서 조립 공정을 가진 기업들이 대부분이며 원자재를 가공하는 기업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https://www.there100.org/).
예를 들면 애플은 제품을 디자인하고 부품을 판매하는 회사이지, 메모리반도체를 직접 제조하지 않는다. 제품에 고열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업종이다. 이런 고열의 에너지는 원자재 가공업체들이 하게 된다. 메모리 반도체를 제조하는 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주대상이다. 글로벌 산업에서 가치 사슬 구조를 살펴본다면 RE100이 한국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며, 이를 한국 산업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착한 기업이라는 애플과 구글이 RE100 제품을 구매하는데 그 녹색에너지 비용을 감당하겠다는 조건은 제시하지 않았다. 대선 후보들 간의 논의가 이런 구체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진행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한편, RE100은 기후변화 대응에 효과적인 재생에너지 보급 증가에 도움이 되며,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친환경 전력을 기업이 직접 구매하게 하는 ‘전력구매계약’(PPA·Power Purchase Agreement) 방식도 있다. 이 방식은 경제성이 높지만 현행 전기사업법상 국내에서는 한국전력이 전력계약을 독점하고 있으므로 이를 통한 직접 거래는 불가능하다.
일부 시장에서라도 전력 거래를 민간 사업자들끼리 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주도해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를 통과했다. 한전의 독점 판매 구도를 바꾸려는 정책 변화가 엿보이는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지난 6월1일 끝난 지방자치선거에서 같은 당의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기, 수도, 공항, 철도 등 민영화 반대”라는 메시지를 띄웠고 이는 마치 정책 공약처럼 보여졌다. 같은 당에서 두가지 메시지가 나온 것이다.
지난 5년간의 파편같은 몇몇 사건들만을 가지고 종합적인 정책 수행 평가를 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각각의 사건에서 국민들에게 전해진 메시지가 있었다. 그 메시지들은 이중적이었고 일관성이 없었다.
과학자 이경수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9급 공무원이 아니라 과학기술자를 꿈꾸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9급 공무원보다 못한 과학기술자 대우에 모욕감을 느끼는 과학기술자들은 국민 대중에게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대해 설명해줄 동기가 없어졌다. 반엘리트주의를 표방했던 전 집권 여당은 대중들을 이해시키지 못했고 지지를 얻어내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 대가는 지금도, 앞으로도 치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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