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패권전쟁이 시작됐다
[김재민의 에너지 포퓰리즘] 유럽 에너지위기는 푸틴 때문 아냐 우-러 전쟁 끝나도 위기상황 가시지않아 서방의 지나친 자부심이 상황 악화시켜
한국, 올겨울 10일도 못버틴다고?
“러시아發 가스 위기에 공급선 다변화로 맞서는 유럽”, “러시아發 가스대란에 유럽 에너지 쇼크…日·대만도 ‘블랙아웃’ 위기”, “한국 이대로면 10일도 못 버틴다…올 겨울 ‘푸틴 공포’“
유럽의 가스 위기를 다룬 국내 언론사의 기사 제목들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러시아 푸틴이라는 것이 이 언론사들의 관점인 양 하다. 러시아의 푸틴이 문제의 원인이라면 그가 없어진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거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원인제공자가 없어지면 해결될 거라면 이 사태를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푸틴 때문도 아니고 일시적이지도 않다.
유럽의 천연가스값 상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전인 2021년에 이미 나타났으며 그 원인은 2020년 말부터 시작됐다. 유럽 안보 연구소의 Yana Popkostova는 2022년 1월 28일 “유럽 에너지 위기의 수수께끼(Europe’s Energy Criris Conundrum)”이라는 글에서 에너지 공급 경색의 원인에 대해서 다룬 바 있다. 그는 ▲2020년 말부터의 혹한기 겨울 ▲코로나19 격리해제후 빠른 소비 증가 ▲2021년 풍력 발전에 필요한 최적 이하수준의 바람세기로 인한 가스 발전의 증가 등 여러 가지 좋지 않은 현상이 동시에 발생한 것처럼 보이나, 핵심적인 원인을 바라보면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의 엉성한 기후변화대응 정책
그는 유럽의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정책 수단들이 서로 고립된 채 통일되고 효과적인 틀이 없었던데다 탈탄소화 에너지 전환과정이 매끄럽게 관리되지 못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금 일어나는 에너지 문제가 ‘퍼펙트 스톰’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에너지 위기는 앞으로 수십년간 수시로 재발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22년 2월 24일 일어났다. 위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의 일이다. 지금까지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게 경제 제재를 시작했고 가스 공급원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석탄발전과 원자력 발전을 재가동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마치 푸틴이 이 모든 일의 원인이며, 그가 기후변화 대응의 국제적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주범으로 보이게 하고 싶은 듯하다.
2021년 말의 가스 가격 상승이 퍼펙트 스톰이 아니듯, 현 시기 천연가스 수급 위기 역시 서방국가들이 자초한 면이 있다. 에너지 거래에서 시장원리가 아닌 정치원리가 개입한 것이다. 자유시장 원리는 원칙적으로 상대적 이익이 있다면 거래는 발생하고, 어떠한 도덕적· 정치적 잣대는 배제되는 것이다. 자유 거래를 통한 경제적 성장은 사회를 민주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자유 진영 엘리트들의 기대였다. 잘살게 되면 자신들처럼 ‘착한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은 일본과 한국 등에서는 진실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달랐다.
‘착함’이라는 것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버리고 ‘우아한’ 자유주의자들의 이상을 실현시켜주는, 그래서 그들이 정한 가치 기준을 잘 따르는 모범생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몫은 그들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벗어나질 못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 주어지는 몫에 만족하지 않는다.
수시로 발생할 에너지위기, 전략적 대응 필요
가스는 탄소중립 에너지 시스템에서 꼭 필요한 필수 원자재다. 이 필수성은 다른 대안이 나타날 때까지는 유지된다. 기준 이하(Suboptimal)의 바람 에너지로는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는 풍력 발전을 대신해 전력을 생산해야 하는 가스 발전은 마치 액션영화에서 잘생긴 주인공을 대신한 스턴트 배우와 같은 것이다.
시장 원리상 주연 배우가 스턴트 배우보다 더 많은 출연료를 받는 것은, 몸쓰는 배우보다 잘생긴 배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너지 시장에서는 이 수급 상황이 역전이 된 셈이었다(유럽 천연가스의 41%는 러시아가 공급했었다). 보조출연자가 주인공보다 더 높은 출연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시장원리를 주장하던 자유주의자들은 스스로의 원칙을 버리고 다른 대역을 찾고 있다.
가스 수급 이슈가 탄소중립 에너지 정책의 구조적 문제라면, 그 대응을 위한 정책 수단도 전략적인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천연가스의 수요처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물 부문에서는 이번 겨울에 가스 소비 절감을 위해 ‘실내 설정 온도 내리기’와 ‘내복 입기’ 운동보다는 건물 구조체를 모두 교체하는 리모델링 사업의 전격적인 추진 실행 로드맵을 세우는 것이다.
또다른 천연가스 수요처인 발전 부문에서는 피크 전력 수요를 줄이기 위해 가정에서의 ‘한등끄기’ 운동을 하기보다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지역 에너지 열병합 인프라 구축의 실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서방 자유주의자와 중·러간 에너지패권 전쟁
에너지 정책적으로는 안정적인 천연가스 공급원을 찾아야 하고, 공급원의 다양화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 문제를 볼 때 이 에너지 위기는 탄소중립형 에너지 전환기의 서방 자유주의자들과 중국·러시아의 가치 사슬 패권 전쟁 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탄소중립 정책으로 생성되는 규제 시장에서 연료와 원료를 공급하는 후방산업에 위치하고, 미국과 서유럽의 서방국가들은 최종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전방산업에 위치한다. 탄소중립 시장이 형성되는 이 시기에 전후방 산업국들은 서로 더 큰 이익을 위한 자리다툼을 하게 된다. 지금 선점하는 가치 사슬의 영토가 앞으로 수 십년간의 경제적 이익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다툼에 타협이 없게 된다면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 된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고 할 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대부분의 외교 전문가들이 주장했었다.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러시아는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아 항복할 것이라고도 했었다. 지금 심각한 타격을 받는 곳은 어디인가? 전쟁은 진행 중이고 또다른 전쟁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현재 서방 자유주의자들의 자부심(ego)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한편, 필수 원자재를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 중국의 자부심 또한 그만큼 높은 상태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전쟁의 시작은 지나친 자부심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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