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끊임없이 재탄생한다...영화 ‘브로커’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로운 ‘가족’

영화 '브로커'의 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영화 '브로커'의 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 裕和)는 칸느 영화제가 좋아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에 대한 관심이 많은 만큼 가족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그래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하면 가족 영화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고레에다 감독은 다시는 가족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 뒤로도 여전히 가족 영화를 만들고 있다.

유사가족이 말하는 ‘가족의 정’

2005년에 제작됐던 <아무도 모른다>와 2009년에 제작됐던 <걸어도 걸어도>에서 가족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에서처럼 진짜 가족이지만 엄마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아이들을 방치한다거나, <걸어도 걸어도>에서처럼 가족 사이에 침묵과 고요가 흐르지만 그 밑에 엄청난 분노가 깔려 있다. 문제가 많지만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다가 결국 삶 속에 흡수되듯 사라지고 만다. 이런 가족의 형태는 그 다음 영화들에서는 유사가족으로 바뀐다. 그리고 유사가족은 실제 가족과 비교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2018년 '어느 가족' 개봉에 맞춰 한국을 찾았던 당시의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사진= 연합뉴스
2018년 ‘어느 가족’ 개봉에 맞춰 한국을 찾았던 당시의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사진= 연합뉴스

큰 호평과 영광 받았던 <어느 가족>

2018년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 <어느 가족>의 일본어 제목은 <소매치기 가족>이다. 이 가족은 이른바 유사가족이다. 이 가족의 구성원들은 피가 조금도 섞이지 않았으며 법적으로도 가족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가정의 구성원들과 다를 게 없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연스럽게 터울이 있는 아이들로 구성돼 연령별로 구색을 맞추고 있다. 아이들은 자의든 타의든 원가족과 함께 살지 못한다. 그런데도 원가족에서 받을 수 없었던 따스하고 인간적인 정을 유사가족에게서 느낀다.

실제 가족은 서로에게 상처를 받고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반면, 유사가족은 서로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이 가족은 소매치기를 본업으로 삼아 살아간다. 아이들을 이용하는 비양심적인 집단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은 원가족에서 찾을 수 없었던 정을 느낀다.

지난 5월 제 75회 칸느 국제영화제에서 레드 카펫을 밟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왼쪽부터) 감독과 배우 송강호, 이지은(아이유). 사진= 연합뉴스
지난 5월 제 75회 칸느 국제영화제에서 레드 카펫을 밟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왼쪽부터) 감독과 배우 송강호, 이지은(아이유). 사진= 연합뉴스

가해자가 알고보니 피해자인 영화 <브로커>

이번 2022년 칸느 영화제에서 송강호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 <브로커> 역시 의도치 않게 유사가족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감독을 하기 전에 TV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입관이 현실을 만나 깨지는 쾌감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즉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취재하다 보면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희생된 피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영화에서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에 대한 선입관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디스턴스>는 옴진리교가 벌인 사린 가스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인데 한 종교단체가 정수장 물에 독을 뿌려 무차별 살상을 일으킨 뒤 집단 자살을 한 사건을 배경으로 가해자 유족의 심정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고레에다 감독은 옴진리교 사건을 취재하면서 피해자의 유가족이 모두 가해자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 역시 선입관이 현실과 만나 깨지는 순간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실제 가족과 유사가족에 대한 선입관 역시 깨뜨리고 있다.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를 빼돌려서 돈을 받고 불법 입양을 알선하는 브로커들이 주인공이다. 송강호가 연기한 상현과 강동원이 연기한 동수는 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 박스에 들어 온 아이를 가로채고 베이비 박스의 영상을 지운다. 상현은 도박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기 때문에 영아 매매를 하고 있지만, 동수의 경우에는 개인적인 분노가 깔려 있다. 동수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가슴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아기를 버린 엄마가 다시 찾으러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결론지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이에게 새로운 가정을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를 붙인다.

그런데 매매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기를 버린 엄마가 다시 교회로 와 아기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아기 엄마인 소영 역은 이지은(아이유)이 맡았다. 하지만 소영은 자신이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매매에 동참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더 좋은 환경으로 아이를 보내고 싶어한다. 불순한 목적으로 우연치 않게 한 팀이 됐지만, 셋은 동행하면서 심리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이들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해성과 피해성이 명확하게 구분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명대사 “태어나줘서 고마워”

세 사람들의 여정에 두 여성이 끼어든다. 여자 형사 역으로 분한 배두나와 김주영이다. 그들은 영아 매매 현장을 잡기 위해 잠복근무를 하면서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영아 매매가 이뤄질 듯하다가 무산되기를 반복되면서 형사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그때 배두나가 분한 캐릭터 수진이 내뱉은 대사가 유머러스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차 안에서 잠복근무를 하며 라면을 먹던 수진은 “인신매매가 이뤄지길 가장 원하는 사람은 나인 것 같네”라고 말한다.

범인을 현장에서 잡는 일이 중요한지,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조처를 취하는 일이 중요한지에 대해 설전을 벌이는 두 형사의 대화는 가해성과 피해성은 서로 얽힐 수밖에 없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아이를 버리는 엄마를 가해자 편에 놓고서 용납할 수 없다고 단언하던 수진이 영화의 종반부에서 보이는 태도는 그녀가 심리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신기하게도 인간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생각하면서 치유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소영(아이유 분)의 아이가 열이 나고 아프자, 상현(송강호 분)은 처음에는 병원에 데려다주기를 꺼려한다. 아기가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아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병원 앞 주차장에 상현의 차가 소리를 내며 선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상현은 소영에게 말한다.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마”

아기의 건강보다는 불법행위가 적발될 것을 걱정하던 상현에게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대사다.

영화에 나온 대사처럼 ‘존재를 부정당한 사람들’이 상대의 이름을 부르며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기적 같은 상황을 가능하게 만든 가장 강력한 매개는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아기였다. 세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처럼 존재를 부정당한 아기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면서 그들 역시 위로를 받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 가족은 고정돼 있지 않다. 움직이고 변화한다. 순간적으로 가족을 이루기도 하고, 그 가족이 확대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족이라는 허상이 깨진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위로가 될 때 남남이었던 사람들도 가족이 되어간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이 아기의 가족이 어디까지 확대되었는지 보여준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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