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선(線)을 넘지...전주에서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 27일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다르덴 형제 감독의 ‘토리와 로키타’ 불법체류 두 아동의 차별과 고난 극복기 “두 아이의 우정이 어디까지 갈까”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 4월 27일 개막했다. 이번 전주영화제의 슬로건은 ‘우리는 늘 선을 넘지’다. 영화는 탄생 때부터 늘 경계선을 넘어서는 작업을 해왔고 그 덕분에 여기까지 발전해왔다.
국제영화제마다 가장 먼저 매진이 되고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작품이 바로 개막작인데, 이번 24회 전주영화제 개막작인 <토리와 로키타>는 감독의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기대감이 상승됐던 작품이었다.

세계적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
이날 개막작 기자회견 장소에 벨기에를 대표하는 세계적 거장 감독 두 사람이 등장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이지만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장 피에르 다르덴(형), 뤽 다르덴(동생) 감독이다. 고정적인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감독으로 작품들은 거의 모두 한국에 소개됐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애초 2019년에 전주영화제에 참석할 계획이 있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방문이 늦춰졌다. 코로나로 영화 산업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만큼 이번 전주영화제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사람들의 관계와 상황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보인다.
다르덴 감독은 영화를 통해 꾸준히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표해왔다. 영화감독들이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건조한 시선으로 냉정하게 현실과 마주 대하기’도 매력이 있지만 다르덴 감독은 다른 느낌으로 접근한다.
사회적 문제들 안에서 여러 심리적 갈등들이 서로 충돌한다. 종교적인 이념 안에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도의적인 갈등이 맞물리거나, 다른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여러 감정선들이 교차한다. 다르덴의 영화들을 보면 처음에는 미워했거나,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타인에 대한 감정이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바뀐다. 그래서 냉정함을 유지했던 주인공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생존이나 신앙에 대한 강한 믿음에 균열이 가는 순간이 온다. 주인공은 혼란스러워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 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불법체류 두 아동의 순수한 우정
다르덴 형제 감독은 벨기에의 이민자 문제에 관심이 많기에 아프리카 출신의 불법 체류 이민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토리와 로키타>는 불법체류자들의 이야기이면서 사방이 적들로 둘러싸인 가장 취약한 환경에 놓인 두 아이, 토리와 로키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자 아이의 경우에는 성추행까지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보는 세상의 어른들은 이중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교우이기도 한 밀입국 브로커, 마약상으로 큰돈을 챙기는 이탈리아 식당 요리사 등 주변 어른들은 불법이민자와 미성년자라는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길 생각만 한다. 정글 같은 환경에서 자신을 지켜야만 하는 아이 역시 주변 어른들에게서 생존전략을 배운다. 그러나 어른들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 한 가지 더 있다. 성인이 되면서 잊어버릴 수도 있는 감정, 바로 타인을 향한 조건 없는 사랑과 정이다. 토리와 로키타가 함께 동요를 부르면서 위안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여러 번 나오는데, 둘의 관계를 상징하는 장면들이다.
형인 장 피에르 다르덴 감독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의 우정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지켜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다른 영화, <로제타>나 <소년 아메드>처럼 주인공의 이름을 영화 제목에 넣는 경향이 있는데 이 작품의 제목 역시 두 주인공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로키타 역을 맡은 졸리 음분두와 토리 역을 맡은 파블로 실스는 연기경험이 전혀 없는 비전문배우들이다. 그래서 전문배우의 도움을 받아 두 주인공은 5주간 연기 훈련을 받았고, 자연스러운 연기가 영화에 그대로 담겼다. 연기경력이 없는 그들의 눈빛이 순수하게 느껴진다.
토리는 아동주술사라는 이유로 학대받은 증거를 인정받아 체류증을 받았지만, 혈연관계가 아닌 로키타는 체류증 심사 인터뷰에서 계속 거절을 당한다. 로키타는 둘의 관계가 남매라고 주장하지만 여러 정황이 확실치 않기 때문에 심사자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로키타가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인터뷰 시뮬레이션을 하는 모습이다.
잃어버린 남동생인 토리를 고아원에서 어떻게 찾았는지, 심사자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려다가 말문이 막힌 로키타에게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난다. 로키타는 공황발작을 일으키기 때문에 약을 복용 중이다. 그런 로키타에게 어린 토리는 그녀의 삶을 지속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로키타는 돈을 버는 대로 아프리카에 있는 엄마에게 보낸다. 다섯 명이나 되는 친동생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많은 돈을 보내야 하지만, 불법체류자라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곤란한 상태다.
로키타는 체류증을 얻어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토리와 함께 사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체류증을 얻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로키타를 돕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어린 토리의 과감한 행동이 긴장감을 자아낸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 고통은 아이들이
다르덴 감독의 영화에는 아역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는 장면들이 많이 삽입된다. 그렇게 색다를 게 없는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다르덴 감독 작품에서는 그 느낌이 다르다. 아이가 급하게 페달을 밟고 달리는 모습에 불안과 고독이 묻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에너지가 작동되는 느낌이다. 힘차게 페달을 밟는 모습을 보면, 목표가 무엇이든 아이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마지막 장면에서 토리가 마이크를 잡은 채 던지는 대사는 두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 어른들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다.
위조 체류증을 조건으로 로키타가 갇혀 지냈던 마약제조공장 장면이 인상적이다. 마약제조공장 장면은 매우 현실감 있게 연출됐는데, 경찰의 도움을 받아 현실과 매우 흡사하게 세트를 꾸몄다고 했다. 다르덴 감독은 현재도 새로운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중이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기자 시사회와 개막작 상영 두 번을 모두 관람했는데 음향시설이 더 좋은 대극장에서 상영될 때, 몰입감이 훨씬 좋았다. 몇 시간 간격으로 같은 영화를 보면서, 사운드가 영화 감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느꼈다. <토리와 로키타>는 영화제가 끝난 후에 바로 상업영화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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