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없는 사랑이 가능할까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우리가 사랑이라 주장하는 것, 사랑이라 믿는 각자의 ‘바람’일 뿐
우리 사랑,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몇 십 년전 일이다. 연인 관계였던 유명 연예인 둘이 동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둘은 집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한 채 몇 년째 동거 중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결혼을 했는데 몇 개월만에 이혼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반대를 무릅쓰고 서로를 욕망했던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합법적인 관계가 되자 결별의 길을 걸었다.
요즘에는 핸드폰으로 볼 수 있는 짧은 영상이 인기인데, 신혼 때, 결혼한 지 5년차 때, 10년차 때 부부 관계가 어떻게 바뀌는지 풍자하는 시리즈로 공감 가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신혼 때는 서로에게 꿀이 떨어질 것처럼 달콤한 애정과 관심을 표하던 부부가 5년차에는 무심하게 바뀌고, 10년차 때는 서로 눈엣가시처럼 군다. 여러 상황별로 설정돼 있는데, 남편이 외출할 때 아내가 보이는 반응, 밥상을 차리는 아내의 태도, 스킨십을 시도하는 남편에게 보이는 아내의 태도 등이다. 약간은 과장돼 있지만 공감을 일으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를 향한 설레던 마음과 욕망 등은 사라지고, 식상하고 지루한 일상만 남게 된다.
실제로 이혼한 커플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 ‘우리 이혼했어요’를 보면 부부 사이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 만난 출연자들은 상대방에게 원망을 쏟아내면서 눈물을 흘린다. 카메라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있던 연애 시절과 신혼 때 사진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과거에는 그토록 행복했던 이 커플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추적한다.
올해 개봉 <우리가 사랑이라 믿는 것>
영화는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부부의 위기 상황을 묘사한다. 부부 사이의 문제점에 대해 공감이 가도록 묘사한 영화 두 편을 소개하겠다. 아네트 베닝과 빌 나이가 주연한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과 메릴 스트립과 토미 리 존스가 주연한 <호프 스프링즈>다. 이 두 영화는 부부의 갈등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점을 보인다. 그래서 해결책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랑이라 믿는 것>은 올해 개봉한 윌리암 니콜슨 감독의 영국 영화다. 이 영화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부부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문제를 드러내며 공감을 끌어낸다. 첫 장면부터 두 사람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닷가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던 아내 그레이스(아네트 베닝 분)는 시를 읊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남편 에드워드(빌 나이)도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은 그레이스에게 별 관심을 보여주지 않고 자신의 서재로 사라진다. 두 사람의 공간은 철저하게 나뉘어 있다. 그레이스는 혼잣말을 하듯이 자신이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지금 원하는 게 뭔지 주절댄다. 그리고 그들 부부가 지금 행복하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남편에게 우리가 지금 행복한지 확인하려고 한다.
대화 나누기를 강요하는 아내가 남편은 마냥 피곤할 뿐이다. 그리고 자꾸 자리를 피하는 남편 때문에 아내는 화가 난다. 에드워드의 무반응에 지친 그레이스는 식탁을 뒤집어엎고 에드워드의 뺨을 때린다. 에드워드는 이제 그들의 결혼생활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있음을 깨닫지만 그레이스는 여전히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에드워드에게 집착한다. 장성한 아들은 둘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현실 파악을 못 하는 어머니를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 식구가 다정하게 걷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슬퍼한다.
이런 아들에게 에드워드는 현재의 상황을 해석하는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밝힌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부부의 갈등을 다룬 비슷한 류의 영화들과는 다른 뚜렷한 차이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갈등의 원인을 파악해서 조율하고, 사랑을 재확인하는 해피엔딩으로 관객에게 위안을 주며 마무리하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아내와 자신이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악화된 결혼 생활이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닌, 애초부터 서로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아들에게 차분하게 설명한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던 순간 역시 다른 커플들처럼 아름답고 극적이었지만 그 순간의 환상을 지키기 위해 남은 삶을 인내하며 사는 것은 부질 없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철옹성처럼 자신의 세계를 지켜왔던 그레이스는 남편이 떠나는 상황을 절대로 수용할 수가 없다. 그녀가 아집을 버리기까지의 힘든 여정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일종의 성장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부모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도 성숙해지고, 부부는 힘든 이별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대가 강요하는 모습이 되려는 자신의 노력이나,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려는 지나친 욕구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메릴 스트립 주연 <호프 스프링즈>
2013년에 제작된 데이비드 프랭클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호프 스프링즈>는 이와는 다른 시각으로 결혼을 바라본다. 갈등을 해소하고 벌어진 틈을 봉합시키는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 관습에 충실한 영화다.
케이(메릴 스트립 분)와 아놀드(토미 리 존스 분)의 결혼생활은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일 만큼 자연스럽다. 남편은 출근할 때 아내의 뺨에 키스하고 고맙다는 말도 자주 하는 등 겉으로는 다정해 보이지만 아내와 한방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내가 다가오면 불편해한다. 그렇다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냥 아내를 향한 욕망이 희미해졌을 뿐이다. 그래서 아내는 행복하지 않다.
아내는 아직도 남편의 애정이 담긴 손길을 갈망한다. 케이는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한 책도 읽어보고 인터넷도 검색하던 중 유명한 상담프로그램을 발견한다. 남편의 반대에도 고액의 비용을 지불하고 억지로 밀어붙여 함께 상담을 받으러 가지만 상담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케이는 상담자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편 곁에 있지만 함께 하는 것 같지 않아요”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가 두 사람에게는 다르다. 상담을 진행하는 박사는 두 사람이 젊었을 때, 서로에게 만족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의 감정과 욕망이 다시 살아날지 아닐지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얼마나 진지하냐에 달려 있다.
기념일을 챙기는 것 같은 사소한 배려도 큰 힘이 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출발점이다. 하지만 본인은 원치 않아도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함께 해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본인이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에 대한 남녀 간 욕망의 차이에 대해서 코믹하게 다룬 영화들은 많다. 사람들의 욕망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갈등은 미세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고, 사소해 보이는 갈등도 심각하게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
사랑이란 실체가 없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라는 영화의 제목이 시사하듯 우리가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믿는 각자의 바람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늘 엇갈린다.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이 같다고 생각하는 데서 갈등의 싹은 자라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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