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어디로 가야하나...①’시민적 진보’의 길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민주당, 윤 폭주에도 유권자 돌아오지 않아 젊은 지도자가 ‘근본적 혁신’할까 불투명 정치 자영업자의 프랜차이즈 정당 바꾸려면

6·1 지방선거 참패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쇄신을 이끌 ‘우상호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6월8일 출범했다. 우상호 비대위는 8월 전당대회까지 한시적으로 활동한다. 사진= 연합뉴스
6·1 지방선거 참패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쇄신을 이끌 ‘우상호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6월8일 출범했다. 우상호 비대위는 8월 전당대회까지 한시적으로 활동한다.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폭주와 민주당의 안일함

아직 구성조차도 완성하지 못한 윤석열 정부의 폭주가 점입가경이다. ‘법치 국가’ 라는 미명 아래 대통령실과 정부의 많은 요직에 검찰 출신 인사들을 포진시켰고 ‘좌동훈, 우상민’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듣는 법무부와 행안부 장관들은 막무가내로 검찰과 경찰이라는 권력기관을 뜻대로 통제하기 위한 기반을 하나 둘씩 마련해 가고 있다. 노동부는 철이 지난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고, 서해에서 일어난 어느 공무원의 비극적 피살 사건을 둘러싼 의도가 뻔한 정쟁도 키우고 있다. 너무도 저돌적이고 전방위적이서 현기증이 날 정도의 일방적 폭주다.

그런데 지금 거대 야당 민주당은 이런 폭주를 견제할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한 채 두 차례 선거 패배에 따른 후유증으로 내홍에 휩싸여 있다. 민주당 같은 큰 정당에서 이런저런 이견과 갈등이 없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바깥에서 보기에 지금 민주당의 혼란은 그 질이 너무 나빠 보인다. 결국은 차기 총선 공천권과 관련된 당권 경쟁일텐데, 그 양상이 퇴행적인 인물 중심의 계파싸움이라 도무지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SNS상에서 벌어지는 다툼도 보고 있노라면 결코 같은 당원들이나 지지자들끼리의 싸움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욕설과 마타도어가 넘쳐나는 난장판이다.

그러나 많은 민주당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이 이렇게 폭주하니 우리 국민들이 결국 다시 민주당에게 표를 주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큰 것 같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설사 그렇더라도 그건 ‘병든 양당제’가 낳은 폐해일 뿐 우리 사회의 정치적 성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리고 사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 유권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제는 너무 진부한 말이 되어 버렸지만, 정말 뼈를 깎는 성찰과 혁신 없이는 당권을 누가 쥐든 상관없이 민주당의 정치적 미래는 없지 않을까 한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이른바 ‘586 용퇴론’ 같은 사람 중심의 접근은 지나치게 표피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을 앞장서 이끌 젊은 지도자가 나오기만 한다면 정말 바람직한 일이지만, 사람만 바뀐다고 그동안 민주당이 보여온 ‘정치 지향과 가치 및 문화’가 근본적으로 혁신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참에 민주당이 지향해야 할 근본 가치와 철학부터 새로이 가다듬고 그에 따라 강령적 지향과 정치 프로그램도 재정비하는 일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사실 역사적으로 (더불어)민주당(과 그 전신)은 그 어떤 뚜렷한 이념도 가치도 공유하지 못한 채 그저 동일한 상호만 공유하는 정치적 자영업자들의 프랜차이즈식 정당이기를 그만두지 못했다. ‘반-군부독재 연합’에 뿌리를 두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갈망하는 많은 시민들의 수구 기득권 세력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성장해 왔을 뿐 적극적인 정치적 지향과 가치를 설득력 있게 가다듬어 실현해 오지 못했다. 이제는 이런 상태를 끝낼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짧게나마 나의 제안을 소개해 보려 한다.

두 개의 진보 개념

민주당이 진보 정당인지 아닌지에 대한 해묵은 논란부터 보자. 이 문제는 의외로 중요한데 이건 민주당의 정치적 정체성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은 양당제로 고착화된 우리 정치 현실에서 국민의 힘과 민주당의 정치적 대결을 ‘보수 대 진보’의 대결로 이해한다. 그러나 많은 지식인이나 협의의 진보 지지자들은 민주당을 기껏해야 개혁지향적인 보수나 중도 보수 정도로 여긴다. 의외로 민주당의 많은 정치인도 자신을 진보라고 내세우길 꺼려한다.

내 생각에 이런 혼란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진보 개념 자체의 다의성 때문이다. 조금 단순화해서 보자면, 우리 사회에서 쓰는 진보 개념에는 두 가지 기원이 있다. 하나는 ‘유럽적 진보’ 개념이다. 이 진보 개념은 애초 ‘역사가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로 발전한다’는 서구 근대가 발전시킨 특정한 역사철학과 관련이 있다. 특히 맑스주의 역사철학이 중요한데, 여기서는 인류의 역사가 어떤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원시사회’, ‘노예제 사회’ 및 ‘봉건제 사회’를 거쳐 ‘자본주의’로 발전하고, 또 이것이 다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로 나아간다고 이해한다.

이때 진보는 바로 그런 역사적 방향성을 따르는 것이다. 이런 배경 위에서 많은 지식인과 정치인은 자본주의의 극복을 추구하거나 최소한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정치 지향만을 진보적이라고 규정한다. 비록 오늘날의 조건에서 그 사상적 기초나 내용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우리 정치 지형에서 정의당과 진보당 등이 자신들만이 참된 진보 세력이라고 인식하고 주장할 때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고 있는 개념이다. 민주당이 이런 의미의 진보 정당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른 하나는 ‘미국적 진보’개념이다. 미국사에서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사이를 보통 ‘진보 시대(Progressive Era)’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내려는 많은 시민과 지식인의 열정적인 사회 개혁 운동이 펼쳐졌는데, 비윤리적 기업 관행의 일소, 부패 청산, 산업화의 부정적 효과 대응, 노동자와 소비자의 권리 보호와 신장, 여성 투표권 쟁취 등을 추구했다. 이런 종류의 개혁은 유럽에서라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추구했던 것들이다. 이 운동은 나중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FDR)의 뉴딜로 이어졌다. 존 듀이(John Dewey)나 브랜다이스(Branedis) 등이 사상적으로 대변했던 이 시기의 진보 운동은 이념적으로는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의 재해석 또는 재정의에 기초하고 있다.

보통 ‘사회적 자유주의’ 라고도 하는 미국 진보의 이런 혁신 자유주의는 전통적 자유주의에서 강조되던 시장적-기업적 자유에 대한 옹호라는 초점을 버리고, 사회적으로 그리고 일정한 물질적 토대의 확보 위에서만 함께 보장되고 실현되는 어떤 ‘실질적 자유’ 를 추구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진보 개념중 많은 용법도 여기서 유래한다.

그래서 많은 책이나 언론 기사 등도 미국의 민주당 정치인들이나 지지자들을 의미하는 ‘리버럴(liberal)’을 진보나 진보주의자 정도로 번역해서 소개하기도 한다. 만약 우리가 민주당을 진보적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런 진보 개념과 관련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이야기되는 좁은 의미의 진보 정당들은 ‘급진(radical)’ 세력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나의 초점은 한국의 민주당이 이런 미국적 진보 개념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게 아니다. 한국과 미국은 그 역사나 상황이 너무 다르고, 시대적 조건도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미국의 민주당은 우리의 모범이 될 수 없다. 비록 때때로 세간에서는 한국 민주당의 이념을 ‘사회적 자유주의’로 보기도 하지만, 민주당은 실제로는 그다지 ‘자유주의적’이지도 않고 별로 ‘사회적’이지도 않다.

나는 다만 여기서 우리가 어떤 유럽적-근대적 역사철학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으며 다른 정치철학적 전통에서도 얼마든지 의미있게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정도만을 확인해 두고 싶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우리의 역사적인 정치 전통을 비판적으로 전유하면서 우리 현실에 착근할 수 있는 고유한 정치 이념을 벼려낼 수 있기를 바란다.

시민적 진보

이런 맥락에서 나는 민주당이 ‘시민적 진보’를 추구하는 정당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한다. 이 진보 개념은 위에서 말한 두번째 진보 개념과 친화적이기는 하지만, 시민의 참여와 그것이 전제하고 함축하는 ‘시민성(citizenship)’의 가치와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이 진보는 시민사회가 곳곳에서 내는 신음 소리들에 귀기울이고 그 아픔들에 공감하며 만연한 불의에 맞서 시민들과 함께 분노하고 싸우는 정치적 실천을 그 핵심으로 한다.

그동안 우리 정당들은, 민주당조차도, 정당정치를 유권자들이라는 소비자들에게 (사실은 대부분 선심성 시혜인) 정책이라는 상품을 팔아 의석이나 정권이라는 이윤을 남기는 행위쯤으로만 이해했다. 이런 이해가 지배하는 정치판에서 민주당은 이미 돈이나 언론 같은 막강한 사회적 권력자원을 지닌 국민의 힘 같은 정당을 이길 수 없다. 민주당은 그와는 달리 민주적 시민사회의 정치적 기구(기관)라는 자기 이해를 갖고 거기서 솟아오르는 ‘힘없는 사람들의 힘’, 곧 ‘시민의 힘‘(또는 ‘시민적 권력’)에 기대고 또 그것을 강화하는데 헌신하는 민주적 정당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지금까지 민주당은 바로 민주적 시민사회에 가까워질 때 정치적으로 성공했고, 거기에서 멀어질 때는 늘 실패하고 혼란에 빠졌더랬다.

민주당은 이제 시민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이자 방법으로 삼아야 한다. 모든 시민의 평등한 존엄성을 보호하고 실현하며 그 시민들을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역능화(empowerment)하는 것이 민주당이 추구하는 정치의 궁극적 지향이 되어야 한다. 또 민주당은 단순히 자신들의 사적 이익에만 매몰되지 않고, 일상에서 그리고 때때로 광장에서 우리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고민하고, 사회 정의를 위한 실천에 참여하는 활동적이고 비판적인 시민들과 언제나 함께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언제나 시민들을 믿고 의지하며 시민들의 외침에 제대로 응답하는 정당, 그리고 그 정치적 성공을 언제나 시민적 주체의 성장과 시민정치의 강화와 연결시키는 정당, 민주당은 바로 그런 정당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민주당이 무슨 포퓰리즘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민주당은 이제, 신공화주의 정치철학자 페팃(P. Pettit)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씨비시즘(civicism)’, 곧 시민주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 이 시민주의는 언제나 평범한 시민들의 요구와 열망에 충실하되 얄팍한 갈라치기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노리려고 하지 않고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보편화 가능한’ 그런 시민들의 열망과 지향을 따른다는 점에서 포퓰리즘과는 다르다. 여기서는 시민들 모두의 평등한 상호성을 전제한 위에서 상호존중과 평화, 우애와 연대라는 시민적 가치를 추구한다.

민주적 공화주의제는 정치 엘리트들의 주도가 아니라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 공동선을 추구하는 숙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사진= 연합뉴스
민주적 공화주의제는 정치 엘리트들의 주도가 아니라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 공동선을 추구하는 숙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사진= 연합뉴스

민주적 공화주의

정치철학적으로 보면 이 시민적 진보는 통상적인 사회주의나 자유주의 보다는 최근 들어 서구에서도 부활하고 있는 공화주의와 친화적이다. 물론 이 공화주의도 복잡한 계보를 갖고 있지만, 나는 이 공화주의가 사회주의나 자유주의 보다는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현실에 훨씬 더 부합하며 규범적 함의도 훨씬 더 깊다고 본다.

여기서 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정체에 대한 헌법적 규정에 우선적으로 주목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들 아는 대로 이 규정은 3.1운동 직후 상하이에서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에서 비롯한다. 나의 이해에 따르면 우리, ‘건국의 아버지들’이 우리나라의 정체를 민주공화국(제)으로 정한 것은 결코 어떤 단순한 모방이나 우연이 아니다. 아주 짧게만 말하면, 조선이라는 성리학적 군신공치(君臣共治)체제라는 일종의 동아시아적 공화정에 익숙했던 이들은 왕이 국권을 포기한 상태에서 이제 전체 백성(인민)이 주권자가 되는 새로운 공화정의 건국을 일종의 역사적 필연으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이 민주공화국의 이념이 지닌 규범적 잠재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민주공화국의 이념에 대한 최선의 해석과 실천을 지향하는 정치철학에다 ‘민주(적) 공화주의’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여기에는 1) 특히 공동선의 정치 2) 적극적인 시민 참여 3) 민주적 평등주의라는 핵심적인 정치적 초점이 있다. 민주당이 꼭 이런 명명 자체를 따르지 않더라도 이 정치적 초점들에는 주목해 주기를 바란다.

비록 공화주의는 서구에서 유래했지만 공화주의의 정치철학적인 핵심인 ‘공동선’에 대한 추구는 사실상 모든 인간 사회의 정치공동체가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정치 지향이라고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러한 공동선에 대한 추구는 다양한 사회 세력들 사이의 권력 분점과 견제 및 조화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는 오늘날의 민주적 공화정에서는 ‘숙의 민주주의’의 이상으로 발전했는데, 민주적 공화정치의 가장 중요한 초점은 특정 정치권력이나 세력에 의해 미리 규정되지 않고 원칙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의 평등한 참여와 소통의 바탕 위에서 정치공동체 전체의 이익과지향, 곧 공동선을 숙고하여 구성해 내는 것이다.

사실 이 공동선의 정치에 대한 설명에서 이미 함축되어 있지만, 또 하나의 초점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다. 우리의 대의 민주주의에 기초한 민주 공화국은 여전히 ‘정치적 능력주의’, 곧 소수 엘리트의 정치적 중심성을 완전하게 탈각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민주적’ 공화주의는 직접적 시민 참여의 가능성을 확대함은 물론 다양한 절차와 제도를 통해 그런 정치적 능력주의를 극복하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시민들의 평등한 민주적 참여, 곧 ‘민주주의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모든 시민이 사회경제적 강자에 종속되거나 ‘갑질’ 같은 ‘지배’ 행위에 노출됨이 없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회정치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능력과 노력에 따른 분배’ 라는 통상적인 능력주의적 분배 정의 원리에 앞서 관철되어야 할 사회 정의의 원칙으로, 바로 민주적 평등주의의 핵심 관심사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단순한 ‘시혜’로서의 복지를 넘어 모든 시민의 평등한 존엄성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 사회 보장의 체계를 요구한다.

아직 짧고 추상적인 수준이지만, 나는 이런 민주공화주의적 접근은 민주당에게 많은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민주당을 해묵은 이념 시비에서 자유롭게 해 줄 것이라는 부차적 이익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민주당이 좀 더 일관되고 체계적인 정치철학적 기반 위에서 강령적 정치를 기획하고 실천하게 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이는 지금 민주당이 겪고 있는 ‘신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굳건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적 공정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민주적 평등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한 <공정의 배신>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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