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이 남기고 간 정치적 숙제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우리는 왜 무분별하게 도덕적 매도할까 ‘인간의 존엄성’이란 헌법가치 어디갔나 프랑크푸르트의 ‘마약방 실험’ 교훈 “마약중독자는 범죄자 아닌 희생자” 범죄혐의자라 해도 그 인권은 소중하다

먀약혐의로 수차례 경찰의 소환 조사를 받은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이선균 씨. 사진=MBC
먀약혐의로 수차례 경찰의 소환 조사를 받은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이선균 씨.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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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많은 이들에게도 그랬겠지만, 2023년 세밑에 들려 온 배우 이선균 씨의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훌륭한 배우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웠고, 윤석열 정권 들어서 시작된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이 결국 이 사달을 내고 말았다 싶어 씁쓸하고 화도 났다. 재작년의 이태원 참사 때도 경찰은 마약 수사에 몰두하느라 축제를 위해 몰려드는 인파의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해서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의혹이 널리 퍼져 있던 터였다. 이번에도 경찰은 실적을 과시하느라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연예인의 마약 투약 사건을 부각했을 것이고, 이선균 씨가 그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리라.

뒤늦게 이번 사건의 비극성에 주목하고 그동안의 보도 등을 살펴보며 확인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사건은 강남의 유흥주점에서 시작되었다는데, 무슨 이유인지 인천경찰청이 이선균 씨를 소환 조사했다. 인천은 이선균 씨의 주거지도 아니다. 어떤 첩보에서 시작된 사건이라는데, 경찰은 언론이 다 알게끔 그를 공개 소환했다. 특히 마지막 공개 소환은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 객관적 증거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선균 씨 변호인이 비공개를 요구했는데도 경찰은 다시 이선균 씨를 포토라인에 서게 했다. 경찰이 모종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선균 씨 혐의를 활용했다는 짙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배우 이선균은 결코 무슨 ‘공인’이 아니다. 그는 그저 유명 연예인일 뿐이다. 무슨 ‘국민의 알 권리’가 그가 지닌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를 함부로 무시하고 침해해도 좋은 정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경찰은 언론에 내사 사실을 흘리고 공개 소환이라는 이벤트를 연출함으로써 이선균 씨를 압박했다. 몇몇 언론과 유튜버들은 혐의와 직접 관련도 없고 확인되지도 않은 이선균 씨의 사생활을 보도하며 그를 매도했다. 믿기지 않는 건 다름 아닌 공영 방송 KBS가 그런 보도에 앞장섰다는 사실이다. 그 배경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도 크게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선균 씨의 심성이 아무리 굳건하다 해도 이런 식의 부당한 모욕적 상황을 견디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많은 이들의 지적처럼, 그의 죽음은 결국 경찰이라는 국가 권력과 선정적 언론이 공모해서 저지른 사회적 타살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 만큼 우리 사회는 여느 때처럼 이번 일을 단순히 연예인 개인의 부도덕한 사생활과 관련된 비극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많은 반인권적 부조리와 사회적 야만을 드러내고 있는 정치적 사건이다.

수사 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는 부당한 국가 권력 남용으로, 시민에 대한 억압적 지배의 방식이다. 지금껏 주로 검찰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런 범죄적 방식을 남용해 왔는데, 이제는 경찰마저 따라 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 선정적 언론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단순한 피의자를 무분별하게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야만적 폭력도 그냥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때부터 이런 문제들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결을 외쳐 왔지만, 나아진 건 없고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 각성이 필요하다.

프랑크푸르트의 ‘마약방’ 실험

이참에 우리는 우리 사회의 마약 문제를 지금처럼 무슨 ‘전쟁’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강력하게 처벌하는 방식으로만 접근하는 게 정말 바람직한지도 진지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마약이 공중보건의 관점에서나 사회질서의 차원에서나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최우선으로 존중한다는 사회가 이 문제를 그런 식으로만 접근하는 게 반드시 옳은지는 모르겠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어떤 행동을 범죄라고 단죄할 것인지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확립된 원칙이 있다. 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고전 중의 하나인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이 확립한 ‘피해 원칙(harm principle)’이 바로 그것이다. 한 마디로 어떤 개인의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만 사회가 정당하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범죄적 행위가 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가령 ‘도박’처럼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망칠 뿐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보기 힘든 행위를 범죄화하는 일은 쉽게 정당화될 수 없다.

마약은 어떨까? 마약을 즐기는 사람이 그 행위로 인해 타인에게 심각하게 해를 끼친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적어도 대마초 같은 마약은 담배보다도 중독성이 약하고 간접 흡연의 피해도 적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의 많은 주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대마초가 합법화되거나 묵인되고 있다.

물론 이들 나라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게 나의 요점은 아니다. 대마초 합법화가 이 글의 주제도 아니다. 다만 나는 왜 우리 사회는 이런 차원의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도 없이 마약을 명분 삼아 연예인을 비롯한 많은 개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일에 이토록 무심한지 묻고 싶어질 따름이다. 그리고 왜 바로 그런 인권 유린의 일상화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정치적 선동이 아무런 비판도 없이 수용되고 있는지를 묻고 싶기도 하다.

유럽 사회 일반이 그렇지만, 독일에서는 마약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한다. 여기서는 진작부터 마약 투약 행위 자체보다는 마약의 제조나 판매 행위만 범죄화하여 처벌한다. 여기에 더해 프랑크푸르트시(市)에서는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가 들어선 후 오래전부터 공적으로 ‘마약방(Fixerstube)’(그냥 순화하여 ‘소비공간Konsumraum’이라고도 한다)을 운영하는 실험도 하고 있다.

믿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마약중독자들이 무료로 처벌에 대한 아무런 걱정 없이 세금으로 마련된 순도 높은 마약을 투약할 수 있다. 중독자들을 방치할 경우, 그들은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다 죽음으로 내몰리거나 마약을 구하려고 범죄의 유혹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래서 오히려 사회가 나서 그들을 보호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마약이 야기하는 문제를 완화시켜 보자는 것이다.

독일 뒤셀도르프에 있는 마약방. 공공시설인 이 곳에서 마약중독자가 스스로 마약주사를 맞고 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 있는 마약방. 공공시설인 이 곳에서 마약중독자가 스스로 마약주사를 맞고 있다.

여기에는 마약중독자가 범죄자가 아니라 ‘희생자’이자 ‘환자’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하기도 힘들고 사실 독일에서도 논란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사회가 그 구성원을 존엄한 존재로 대우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한 모범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사회는 어떤 이유에서든 마약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삶을 이어갈 수 없게 된, 보기에 따라서는 도덕적으로 매우 큰 흠결을 지닌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도 소중하게 여기고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이상(理想)도 결국 정치를 통해 해석되고 실현된다.

누구의 인권이든 소중하다

다시, 나는 여기서 우리가 저런 정책을 무턱대고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한국의 상황은 독일과는 아주 다르다. 프랑크푸르트시의 정책이 정말 성공했는지도 따져 볼 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현실을 한 번쯤 성찰해 볼 필요는 있지 싶다. 독일처럼 우리나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고 보호하는 것을 최고의 헌법적 가치로 삼고 있다. 그런데도 왜 마약 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서로 이리도 다른 것일까? 분명한 것은 경찰의 이선균 씨에 대한 모욕주기 식 수사와 언론의 무분별한 도덕적 매도는 어떻게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마땅한 헌법적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과 같은 경찰의 ‘못된’ 정치적 수사의 배경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살을 한 많은 이들이 결국은 검찰의 철저한 수사 때문에 여죄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서 그랬을 뿐 검찰의 잘못은 없다는 취지의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건강한 양식을 가진 이라면 분개할 수밖에 없을 이야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이야기를 자랑삼아 떠들었던 이가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최고권력자가 수사를 받는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신념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데, 경찰로서는 이선균 씨의 명예와 인권을 존중하는 수사를 해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기 힘들지 않았을까?

검찰통치체제에서 경찰은 여러 면에서 검찰을 준거로 삼았을 것이다. 그래서 마약 문제에 대해서도 그저 단속하고 닦달하며 처벌하는 식의 접근밖에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몇 건을 단속하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처벌하는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연예인 같은 유명인들을 처벌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법은 쉽게 시민에 대한 자의적 지배의 수단이 되고 시민 개개인의 인권은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물론 마약 투약 행위를 쉽게 옹호할 수는 없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다. 무슨 시민불복종을 전개할 요량이 아니라면, 일단 법을 지키는 것이 옳다. 그러나 누군가 그런 범법 행위를 했다고 해서 그의 인권이 송두리째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설사 이선균 씨 같은 유명 배우가 범죄혐의자라도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의 인권이든 소중하다.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적 공정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민주적 평등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한 <공정의 배신>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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