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어디로?...② ‘민주적 공화주의’의 길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민족주의적 편향’ 벗어난 민주적 애국주의를 통일 대신 평화를, 평등한 시민의 목소리를 ‘진리의 정치’ 아닌 ‘의견의 정치’를 실현하자
앞선 칼럼에서 내가 민주당에게 제안한 민주공화주의적인 시민적 진보의 길은 다양한 차원에서 우리의 통상적인 정치적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특히 이 길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1980년대식 진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제 이런 차원에서 민주공화주의적인 시민적 진보의 길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조금 더 구체적인 수준에서 살펴볼까 한다. 중요한 몇 가지 문제에만 집중하자.
민주적 애국주의
민주적 공화주의는 ‘민주적 애국주의’라는 시민적 이상을 필요로 한다. 이 애국주의의 핵심은 민족주의에서처럼 민족과 국가를 동일시하며 그에 대한 희생과 사랑을 요구하지 않고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이상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는 데 있다. 여기서는 민주주의가 민족 같은 가치보다 우선하며,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요구하지 않는다.
민주공화국에서도 시민들은 자신이 속한 민주공화국의 번영과 안녕을 가장 우선적인 정치적 관심사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이 우리 시민들이 주권자가 되어 우리 모두의 자유와 존엄을 보호하고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치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이런 민주공화국 안에서만 자유와 존엄을 지키고 실현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런 만큼 내 삶을 자유롭게 하고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실현하게 해주는 이 민주공화국의 특별한 삶의 양식에 대한 일체감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요구되는 민주적 애국심은 국가의 신성화나 절대화에 기초하는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 애국심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차이는 무엇보다도 시민불복종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난다. 민주적 애국주의는 단지 민주공화국이라는 민주적 헌정 질서의 기본 이념과 가치 및 제도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기에, 만약 현존하는 정치 질서가 그러한 이상에 미치지 못한다면 우리 시민은 그 질서에 대한 비판, 견제를 통해 그 이상에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도덕적 책무를 져야 한다고 여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의 법과 정책 등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게 애국심의 표현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밖에 민주적 애국주의는 자민족중심주의나 민족 우월의식을 거부하며, 다른 국가들과의 호혜적 연대를 추구한다. 이 애국주의는 말하자면 ‘세계시민주의적 애국주의’로도 나아갈 수 있다.
하나의 정치 노선으로서의 민주적 애국주의는 우선, 한국 보수 기득권 세력의 중요한 정치적 무기인 ‘반공 국가주의’(애국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의 반공 국가주의는 공산주의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는 보통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강조하는 시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가치를 뒷전으로 몰아내며 시민들에게 전체주의적 가치를 강요했다.
그리하여 반공적 질서와 가치에 대한 반대나 비판은 국가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했다. 말하자면 국가보안법이 헌법을 압도했다. 민주당은 민주적 애국주의를 통해 이 반공 국가주의에 맞서야 한다. 민주당은 자유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인 민주공화국의 이념에 가장 충실한 정치세력임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혈연적·종족적 민족주의로 맞선 민주당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민주-진보 세력은 그동안 이런 반공 국가주의에 대해 혈연적-종족적 민족주의로 맞섰다. 민족을 국가보안법의 논리에 앞세우며 ‘민족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설정했다. 사실 1980년대식 진보의 가장 큰 한계 중의 하나는 이런 배경 위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된 ‘민족주의적 편향’이다. 이 편향은 그동안 민주당을 포함한 한국 진보의 노선 정립에 여러 차원에서 많은 혼선을 초래했는데, 민주적 애국주의는 이에 대한 치유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의 건설을 가로 막는 가장 큰 장애인 분단체제 문제와 관련해서만 보자.
민주당이 그동안 이 분단 체제를 허물 ‘한반도 평화체제’의 가능성을 열려고 노력해 왔던 것은 꽤 평가해 줄 만하고, 그런 만큼 평화에 대한 지향은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지향은 ‘민족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완수한다는 식의 알맹이 없는 민족주의적 열망에만 주로 기대고 있었다. 이런 노선은 실질적이고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이뤄내지 못했고, 국내외의 정세에 따라 다시금 분단체제가 공고화되고 마는 결과를 막지 못했다.
민주적 애국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분단체제와 그에 기생하는 반공 국가주의를 궁극적으로 극복하는 길은 어떤 종족주의적 민족주의에 기대 ‘하나의 민족은 반드시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야 한다’며 ‘민족통일’을 추구하는 데에 있지 않다. 그런 식의 민족통일은 남과 북이 채택하고 있는 체제나 이념의 근본적 모순이라는 문제를 무시한다. 그러나 민주적 애국주의는 민족을 위해 민주주의를 양보할 수 없고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포기할 수 없다고 본다. 민주적 애국주의의 관점에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평화, 곧 실질적이고도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다. 평화 없이는 민주주의도, 민주공화국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국가’라는 냉엄한 현실에 기초하여 한반도의 평화 그 자체에 초점을 두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꼭 통일을 배제하지는 않더라도, 한반도에서는 다른 극적인 변수가 없다면 불가피하게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우리 한민족이 만든 두 개의 나라가 장기적으로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민주당이 상투적인 통일에 대한 집착을 넘어 그러한 ‘1민족 2국가’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상호인정’하면서 항구적으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국내적이고 국제적인 법적-제도적 장치들과 질서를 창출하도록 노력하는 길에 나서주길 바란다.
민주주의적 정의
한편 민주적 공화주의는 모든 시민이 우리 정치공동체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정의’라는 이상을 추구한다. 모든 시민의 존엄성을 보호하려는 도덕적 목적을 지닌 민주공화국의 이상은 원칙적으로 그 기본 제도들과 법체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장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관련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함께 고려되어야 하며, 누구도 무시되거나 지나쳐 버려서는 안된다는 게 이 이상의 초점이다.
이 정의는 우리 사회에서 숱하게 논의되고 있는 공정성 개념이나 다른 분배정의 원칙보다도 더 우선적인 것으로 이해되는데, 사회의 모든 성원이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정치적 결정 과정에 평등하게 참가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와의 대담에서 마이클 샌델이 강조한 대로, 빈부격차 해소나 계층 상승의 사다리에 오르기 위한 공정한 기회 제공만큼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이 함께 공동선을 논의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는 일도 (사실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차원의 정의가 없다면, 결국 누구에게 얼마만큼을 나누어 줄 지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힘 있는 자들의 관점에서 결정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다양한 차원에서 이 정의의 이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일단 우리 민주주의의 근간적 제도들부터 문제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하게 하는 불충분한 권력 분립 상황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단순다수결 소선거구제’에 따라 고착화된 양당제의 폐해가 심각하다. 이런 제도적 틀 안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지향을 갖는 많은 시민이 정치적으로 제대로 대변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이런 배경 위에서 지역주의의 고착화도 심화된다. 이 양당제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도 한 민주당으로서는 곤혹스럽기는 하겠지만, 우리의 정치 제도를 민주적으로 좀 더 정의로운 방향으로 개혁해야 할 사명을 자임해 주기를 바란다.
이 정치적 차원에서 또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정치를 규정하고 있는 ‘정치적 능력주의’다. 우리 민주주의는 지금 사회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 엘리트 집단에 의한 과두정의 양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그런 정치적 능력주의의 한 정점을 상징한다. 문제는 민주당조차도 그 양상에서 아주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을 주도하고 있는 정치인의 구성을 봐도 그렇고, 그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소외되고 주변화되어 있는 많은 평범한 시민들의 이해관계와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민주적 정의의 이상은 이러한 정치적 불의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차원의 제도적 모색을 요구하고 있다. 가령 여러 국가적 현안을 다룰 ‘시민배심원단’이나 ‘시민의회’의 도입 같은 걸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적 정의는 모든 시민이 기본적인 수준에서나마 절대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경제적-물질적 전제가 확보될 수 있을 때에만 온전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전제들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할 때 시민들은 생존의 위기는 물론 경제적 강자들의 자의적 지배와 횡포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제대로 된 시민적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시민은 민주공화국이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권리(사회적 기본권)의 형식으로 그런 경제적-물질적 전제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을 혼란스럽게 했던 기본소득론과 복지국가론의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복지국가의 초점이 모든 시민이 시민적 삶에 필요한 물질적 전제를 최소한의 수준에서나마 절대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하자는 데 있다면, 기본소득이든 다른 복지 급여나 공적 서비스의 강화든 모두 그 적절한 수단에 관한 문제가 될 것이다. 관건은 실현가능하고 또 지속가능한 최대한의 수준에서 모든 시민이 사회적 기본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 뿐, 두 접근법을 화해불가능한 방식으로 대립시킬 일이 아니다.
‘진리의 정치’를 넘어
민주적 공화주의는 기본적인 정치의 양식과 관련해서도 그동안의 우리 진보 정치와는 다른 길을 갈 것을 제안한다. 통상적인 진보정치는 많은 경우 말하자면 ‘진리의 정치’에 집착해 왔다. 이 정치는 옳은 것이나 정의로운 것, 한마디로 진리로 설정된 정치적 목적을 비타협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둔다. 때문에 이견과 차이에 적대적이고, 상황에 대한 실천적 개입에 따른 조정과 새로운 가능성의 모색을 꺼려한다.
정치에 대한 이런 이해는 서양에서라면 유일하게 올바른 정치적 진리에 대한 통찰을 강조했던 플라톤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도덕적 명분과 이상에 집착했던 성리학적 정치 전통의 영향 탓이 커 보인다. 어쨌든 사회의 개혁이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진보 정치는 아주 쉽게 그런 정치 이해에 빠지지 쉬운데, 곧잘 진보 정치를 망치는 ‘진보의 분열’은 이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다. 설사 정치적 진리라는 게 있다고 해도, 그 진리는 발견되는 게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고 그 구성된 진리도 언제나 오류가능성에 열려 있다고 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토론을 통한 통치’다. 그래서 민주정치는 관련된 행위자들의 다양성과 의견의 차이를 전제하고, 상호존중과 상호이해의 가능성, 역지사지를 통한 공감, 자신의 오류가능성에 대한 인정과 적극적인 오류 수정의 자세 같은 일련의 전제들이 제도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확보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민주정치는 진리의 정치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의견의 정치’(한나 아렌트)다.
그동안 통상적으로 ‘자유주의’ 정치 세력을 대변한다고 이해되어 온 민주당에서 그와 같은 의견의 정치를 위한 ‘리버럴한’ 정치 문화가 부재했다는 건 사실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우리 진보 진영이 그동안 적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싸우는 데는 익숙했지만,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지금, 여기’의 다양한 실천의 장소에서 ‘선취’하여 실현하고 가꾸어내는데는 미숙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앞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와 가치 지향 등의 불가피한 다원성을 인정하고 모두가 함께 추구해야 할 공동선을 설득과 소통의 방식으로 추구하는 민주공화주의적 정치의 양식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정당이 되기를 바란다.

글을 맺으며
지금까지 이 글에서 다룬 철학적 수준의 논의들이 구체적인 현실정치의 장에서 어떤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런 추상적인 수준의 논의로부터는 다양한 정치적 선택지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고, 현실정치에서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살펴 본 문제들과 관련하여 최소한의 수준에서나마 공유된 인식도 없는 정당을 정당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글의 제안은 그야말로 제안일 뿐이겠지만, 민주당이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철학과 가치를 새삼 분명히 하면서 강령적 정체성을 재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단순히 국회의원들만이 아니라, 일반 당원들은 물론 지지자들도 이런 차원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공부하며 토론할 수 있는 일상적 정당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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