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정말 민주개혁세력의 맏형이 되려면?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참된 다당제’ 위해 준위성정당도 포기해야 중요한 건 의석수 계산보다 정치적 비전 비전으로 반윤 민주개혁연대가 압승하고, 이 토대로 분권형 대통령제의 7공화국 열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당직자들이 지난 5일 광주 5.18묘역에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당직자들이 지난 5일 광주 5.18묘역에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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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선택, 그러나 미심쩍은

이재명 대표는 옳은 선택을 했다. 이토록 오래 저울질할 문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병립형으로 회귀하지 않고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기로 했다니 참 잘한 일이다. 본인의 의중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측근들의 요구였는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전혀 논란거리조차 되지 말았어야 할 사안을 너무 크게 키웠더랬다. 이 대표 본인과 민주당이 여러 번 강조해 온 정치개혁을 위한 선거제 개편 약속을 뒤집는 건 어떤 변명을 대더라도 결국 정치적 ‘자해 행위’가 될 터였다. 명분을 잃어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민주당의 고민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른바 ‘위성정당’ 문제 때문이다. 제한된 의석수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지지율과 의석수를 연동시키려는 이 선거제도에서 위성정당은 모종의 ‘정치적 신사협정’을 통해서만 온전히 막을 수 있다. 위성정당 방지법이 발의되었지만 입법되지 못했던 건 바로 이런 협정이 전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를 빌미로 병립형 회귀를 고집하고 위성정당을 창당하겠다고 협박했는데, 민주당으로선 매우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준연동형 제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니 박수 받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온전히 개운하지는 않다. 준연동제를 유지하겠다면서도 ‘대통합비례정당’ 형식으로 국민의힘이 만드는 위성정당에 대응하는 ‘준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하니 말이다. 그것도 ‘민주개혁세력의 맏형’을 자부하며 민주당이 주도하겠단다. 그 준위성정당이 선거 전략상 만드는 ‘플랫폼 정당’ 형식이고 여러 소수 정당들과 함께 하겠다고는 하나, 어쨌든 민주당이 중심에 서고 아마도 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게끔 그 정당을 설계하겠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4년 전 ‘더불어시민당’ 모델을, 그것도 민주당 중심으로 반복하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왜 다시 ‘꼼수 위성정당’인가?

현행 선거법의 준연동제의 취지는 제한된 범위 안이긴 해도 국회의 의석 분포가 국민의 다양함을 닮게 하고 각 정당들이 지지율만큼의 의석수만 갖도록 하자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이 제도는 의석수 배분 방식이 복잡하다고 비판받지만, 사실은 아주 간명한 원칙을 따른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지지율 이상으로 의석수를 차지할 수 없도록 하고, 다양한 소수 정당들은 최소한 그 지지율만큼은 국회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민주당이 준위성정당을 만들겠다는 것 역시 취지에 어긋나기는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표는 현실론으로 준위성정당 구상을 정당화하지만, 설득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가 말하는 현실론의 핵심은 총선에서 민주당이 윤석열 정권을 확실하게 견제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가 공언한 대로라면 민주당은 과반인 151석 이상을 갖는 제1당이 되어야 그 목표가 달성된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 윤석열 정권에 반대하는 다른 군소 개혁정당들이 좀 더 많은 의석을 가지면 윤석열 정권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왜 새로운 플랫폼 정당을 꼭 민주당이 주도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 대표와 민주당은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는 권투 시합에서 상대는 칼을 들이대는데 하다못해 냄비 뚜껑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민주당 주도의 준위성정당 계획을 합리화했다. 이해한다. 다른 반윤 야권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플랫폼 정당 형식으로나마 국민의힘이 만드는 위성정당에 대응하겠다는 접근은 나름의 고육지책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게 준연동형을 기본 원리로 하는 비례대표 의석 배분 과정을 꼭 민주당이 주도해야 하는지를 정당화할 충분한 명분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준연동형의 기본 취지는 적더라도 국민의 지지를 얻고는 있지만 의석 수 확보가 쉽지 않은 소수 정당에게 기회를 더 주자는 데 있으니 말이다. 곧 민주당 같은 거대 정당은 그 과정에서 중심이 되기는커녕 숟가락조차 얹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르게 말하면, 민주당이 아예 준위성정당 창당을 포기하는 게 준연동제를 수용하는 것과 제대로 부합한다. 민주당이 정말 다당제를 수용하는 정치개혁을 원한다면, 비례대표 의석을 깨끗이 포기하는 게 맞다. 여러 이유로 플랫폼 정당에 민주당이 참여하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최소한 민주당은 주도적 역할을 포기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칼을 들었다고는 하나, 그걸 핑계되는 건 민주당이 여전히 양당제의 틀 안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 양당제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진보 개혁연합 신당 구상을 밝힌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오른쪽 끝). 사진=연합뉴스
진보 개혁연합 신당 구상을 밝힌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오른쪽 끝). 사진=연합뉴스

새 정치질서에 대한 비전이 필요하다

물론 이재명 대표가 이번 결정이 지닌 논리적 모순 내지는 허점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결정을 설명하면서 몇 번씩이나 사과를 한 건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 말고 다른 소수 정당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정치 질서의 건강함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갑작스럽게 병립형 회귀를 저울질했던 것도 단순히 의석수 계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런 믿음의 부재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민주당이라는 같은 당의 틀 안에서도 그동안 이른바 ‘반명계’ 의원들은 계속해서 이재명 대표를 괴롭혀 왔다. 그런데 이제 반윤 민주개혁세력이라고는 하나 민주당이 아닌 다른 정당에 소속된 의원들이 많으면 정치 과정이 훨씬 더 복잡해질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자칫 민주당이 중심에 두는 아젠다를 관철시키는 데서 정치적 ‘형제’라고 믿고 있는 다른 정당들이 온갖 요구를 해대며 훼방을 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다당제 정치개혁은 바로 그러라고 하는 것이다. 이해관계도 다르고 지향하는 가치도 다른 여러 정당들이 양당제 ‘전쟁 정치’가 가로막고 있는 다양한 의제들도 발굴하고 이런저런 타협도 하며 조율도 하는 문제해결적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이런 정치에서는 정당들이 좀 더 선명하고 예리하게 정책을 가다듬는데 더 많은 초점을 두어야 하고, 합리적 다수를 형성하기 위해 때로는 진영도 뛰어넘어야 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이 대표의 말마따나 그냥 이상적이기만 할 수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그동안 정의당을 비롯한 다른 소수 정당들이 반드시 바람직한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그동안 우리 정치를 강하게 지배했던 양당제 전쟁정치의 문법에서만 사안을 봐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 문법을 깨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과 시도가 부족했음을 탓해야지, 이상의 공허함을 지적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진짜 중요한 현실은 다른 데 있다. 이번 총선의 제1과제는 윤석열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 행위를 저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걸 위해 민주당이 제1당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의힘을 100석 이하로 묶고 윤석열 정권에 반대하는 개혁적 보수와 민주진보 진영이 합쳐 거부권을 거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탄핵도 할 수 있고 개헌도 할 수 있는 200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불가능할 것 같은가?

문제는 정치적 비전이다. 민주당은 단지 의석수가 아니라 이러한 비전을 통해 민주개혁세력의 맏형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맏형은 자기 이익을 위해 욕심을 내기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통 크게 양보도 하면서 형제들의 갈등을 대승적으로 조율해 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당은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일반 민주주의’의 틀을 지켜내고 가꾸어 오는 데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지금 민주당은 다른 수준에서 그 정체성을 새로이 입증할 필요가 있다.

그 비전의 핵심은 지금의 양당 중심의 정치체제를 참된 다당제가 빚는 새로운 합의제 민주주의 정치질서로 만들어내는 데 있다. 그런 질서에서만 다양한 국민을 닮은 민주정치가 펼쳐지는 ‘민주주의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나아가 그런 정치질서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한 ‘분권형 대통령제’ 같은 새로운 권력구조도 도입해야 한다. 결국 ‘제7공화국을 위한 연대’가 필요하고, 거기에는 당연히 범진보진영뿐만 아니라 개혁보수도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개혁보수를 포함한 반윤 민주개혁연대가 총선에서 압승하고 제7공화국을 위한 개헌을 앞당길 수 있다면, 추후 논의가 더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꼭 탄핵이 아니라도 윤석열 정권을 조기에 종식시킬 수 있는 합법적 토대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대표와 민주당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비전이지 소소한 의석수 계산이 아니다. 부디 ‘꼼수 위성정당’의 덫을 벗어 던질 수 있는 담대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적 공정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민주적 평등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한 <공정의 배신>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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