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으로 사랑해도 될까요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박찬욱식의 모순화법으로 부각된 사랑이야기
다시 만나는 박찬욱 특유의 상상력
<헤어질 결심>으로 칸느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은 관객이 이 영화를 어렵게 받아들일까봐 걱정했다며, 그냥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본인의 바람과는 달리,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편하게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기존의 영화 문법을 뛰어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갈등의 고조와 해소로 쾌락을 주는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감정의 찌꺼기를 수습하느라 힘들다.
그렇다고 그의 영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화려한 카메라 워킹과 더불어 강하게 끌리는 매력을 거부할 수가 없다. 박찬욱의 카메라는 상상력과 함께 움직인다. 있을 수 없는 장면들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에서 카메라 렌즈는 죽은 이의 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섬찟하다.
영화는 범죄스릴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어쩌면 사랑에 빠진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모색하는 과정 자체가 스릴러와 비슷하다.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늘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서.

사랑이란, 상대를 내 중심에 두는 것
사망사고 사건을 담당한 형사 장해준(박해일 분)은 끊임없이 망설이고 의심한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의구심과는 달리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은 너무나 짧고 강력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감시하는 대상이 욕망의 대상으로 바뀌고 송서래(탕웨이 분)에게 빠져든다.
다만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표현하겠다는 결정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서래는 굳이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랑을 읽는다. 서래는 사랑이라는 말의 모순을 잘 안다. 입으로 사랑이라는 말을 하면서 상대보다는 자신이 중심에 있는 사람과,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지만 자신보다는 상대를 중심에 놓는 사람의 차이를 안다.
해준과 서래는 각각 문제점을 안고 있는 부자연스러운 캐릭터다. 부자연스러운 두 사람이 사랑하는 방식 역시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겉으로는 둘 다 멀쩡해 보인다. 하지만 해준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고 그런 탓에 안구건조증에 시달린다. 그래서 틈만 나면 눈에 인공눈물을 넣는다. 잠이 오지 않기 때문에 잠복근무를 자청한다는 해준은 서래의 집 근처에서는 잠복하다가 잠이 든다. 서래는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 남편이 휘두른 폭력의 흔적을 감추고 있다. 서래의 첫 번째 남편은 모든 소지품에 자신의 이니셜을 새겨둔다. 서래의 몸에서도 남편의 이니셜이 발견된다. 남편에게 서래는 소유물에 불과했다.
두번째 남편은 말끝마다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서래의 담배연기도 참지 못한다. 그런 서래에게 해준이 던진 것은 ‘사랑해’ 라는 표현이 아니라, 자신이 ‘붕괴했다’는 표현이었다. 자신을 무너뜨리면서 하는 사랑은 또 있다. 또 다른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산오(박정민 분)는 감옥에 가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살인을 하고 검거되기 직전에 자살한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자신의 삶을 파괴한 연인에게 ‘네 덕분에 나의 삶이 공허하지 않았다’라는 한 마디를 남긴다.
싸워도 섹스는 쉬지 말아야 한다는 해준의 아내(이정현 분)가 사랑과 섹스를 동일시하는 것과는 달리 서래와 해준은 섹스를 하지 않는다. 대신 서래는 해준의 불면증을 치료해주기 위해 해준의 호흡에 자신의 호흡을 맞춘다. 해준이 아내와 육체적으로 섹스를 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장면과는 대조적으로, 서래와 해준이 호흡을 맞추는 장면은 섹스를 연상시킨다.
불편한 의사소통이 주는 절절함
서래와 해준은 완벽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서래는 어떤 사람과 처음 만날 때, 자신의 이름과 함께 ‘저는 중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가 서툴다’라는 소개를 잊지 않는다. 해준과 대화를 나눌 때도 급할 때는 휴대폰에 중국어로 녹음을 하고 자동 번역된 한국어를 들려준다.
해준과 서래가 사용하는 다른 언어로 인해 발생하는 여백과 시차를 채워주는 것은 서로를 향한 표현하기 힘든 절절함이다. 서래와 헤어진 후, 해준이 불면증 치료를 위해 아내와 함께 병원을 방문했을 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소리를 하는 의사가 나온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피할 수 없는 불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할 마음이 없으면,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
박찬욱은 왜 굳이 아름다움을 말할까
박찬욱 감독이 영화에서 거부할 수 없는 추동력으로 내세우는 것은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지고 논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살인자로 검거됐던 금자(이영애 분)의 눈부신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아가씨>에서 신비로운 분위기의 중심에는 아름다운 히데코(김민희 분)가 있다. 히데코를 처음 본 숙희(김태리 분)의 입에서 “염병 이쁘면, 이쁘다고 미리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아름다움이다.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는 아름다움 덕분에 추방되지 않았고 목숨을 건졌으며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영상과 분위기로 미인이라는 전달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박찬욱의 영화에서 여주인공의 아름다움은 꼭 언어로 표현되어야 하고 그것도 여러 번 강조된다. <헤어질 결심>에서도 서래의 아름다움이 여러 번 언급된다. 해준의 동료 형사는 피의자인 서래를 보고 “미인 담당은 내 전문인데”라고 말하고, 해준의 아내는 서래를 처음 보는 순간 남편이 서래에게 빠졌음을 짐작하면서 떠보듯, “그 여자 예쁘더라”라고 말한다.
해준은 감시를 하려는 것인지, 추앙을 하려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서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쁘다. 그리고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서래에게 들켰을 때, 들릴락 말락하게 작은 목소리로 “그래도 예뻐요”라고 말한다. 서래는 그 작은 소리 한 마디를 놓치지 않는다. 예쁘다는 말을 수 없이 들었을 서래에게 들릴 듯 말 듯한 해준의 이 말은 특별하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해준이었기 때문이다. 서래는 그 말을 중국어로 다시 해달라고 주문하고 해준은 순순히 시키는 대로 한다. 서래는 휴대폰에 저장된 해준의 목소리 녹음을 반복해서 들을 때 행복하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 추앙보다 더 진실한 ‘붕괴’
서래는 해준이 칭한 ‘붕괴’라는 단어를 들으며 자신이 치러야 할 사랑의 대가를 생각한다. 해준 역시 서래의 스마트 워치에 녹음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서래가 말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자. 굳이 사랑이라는 낡고 식상한 말을 꺼내지 않아도 상대가 사랑한다고 느낄 수 있게 표현하자. 상대가 날 사랑하냐라고 묻게 만들었다면 당신의 사랑 방식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죽을 각오로 살아가는 삶이 다를 수밖에 없듯이 헤어질 결심으로 하는 사랑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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