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 전주 국제영화제 폐막작 남편의 급사,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인공 어떻게 죽은 이를 애도하고 보낼까에 대해 아이폰 시리의 답변에서 따온 제목 ‘눈길’
7년만에 한국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24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은 김희정 감독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다. 이 영화는 김희정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김애란의 동명 단편소설이 원작이고 전주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배우 박하선이 주인공 명지 역을 맡았다. 김희정 감독은 이전 작품에서는 시나리오 작업만 5년이 걸렸는데, 좋은 소설을 만나니 2주만에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원작에서 디테일한 부분들을 약간씩 변형했고 원작에는 없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첨가했다.
7년만에 한국영화가 폐막작으로
주인공 명지는 김치를 담그면서 만족한 표정을 짓다가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움찔한다. 손에 김치 양념이 잔뜩 묻은 비닐장갑을 낀 상태라서 처음에는 무시한다. 그러나 연이어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불길한 예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차가운 영안실 앞에 명지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중학교 교사인 남편 도경은 자신의 반 학생인 지용이 물에 빠지자,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함께 숨졌다. 남편의 시신을 확인한 후로도 명지는 남편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다. 잠자리에서도 평상시처럼 옆자리에 누워 있던 남편의 손길을 느끼며 놀라서 깨기도 했다.

그러던 중 폴란드에 살고 있는 사촌 언니가 여행으로 집을 비우면서 명지에게 자기 집에 와서 쉬라는 전화를 한다. 폴란드에 간 명지는 그곳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자신의 친구이자, 남편의 친구이기도 한 현석과 만나게 되는데, 남편의 안부를 묻는 현석에게 명지는 도경이 죽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도경에게 전화를 걸어보자는 현석의 말에 화를 내다가 도경과 헤어졌다고 거짓말을 해버린다.
남편의 죽음을 숨기는 주인공
명지는 아직도 도경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도경의 죽음과 화해하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남들에게는 차마 표현하기 힘든 섭섭하고 미묘한 감정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급한 순간에 도경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학생의 손을 잡았을까. 홀로 남겨질 명지 생각을 잠깐이라도 했을까. 학생을 구하지도 못했고, 자신도 목숨을 잃었으니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명지는 상실감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 영화는 명지가 남편의 죽음과 화해하고 위안받는 애도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가장 가까운 이를 잃은 사람들이 애도하는 방식과 과정을 그린 영화들은 많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애도하는 과정은 곧 위로의 과정이기도 하다. 김희정 감독의 최신작을 보면서 떠오르는 두 편의 외국 영화가 있다. 피에로 메시나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일본 영화 <걸어도 걸어도>다.
아들의 죽음을 숨기는 엄마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에서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안나(줄리엣 비노쉬 분)는 아들이 죽기 전에 집으로 초대했던 여자친구가 아무것도 모른 채 도착해 며칠 머무는 동안, 끝까지 아들의 사망을 알리지 않는다. 엄마의 감정 속에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들에 대한 원망도 담겨 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명지가 그랬듯이, 안나는 사랑하는 이의 사망 선언을 유예하고 싶어 한다. 사랑했던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할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들의 죽음을 숨긴 채, 그의 여자친구 모습에서 아들을 느끼며 위안을 받는 어머니의 모습은 기이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버티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 원인을 원망하는 부모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기를 기대했던 큰 아들 준페이는 바다에 빠진 요시오라는 사람을 구하고 사망한다. 요시오는 준페이의 기일 때마다 찾아오는데, 10여년이 지났는데도 요시오를 보는 준페이 부모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아버지는 초라한 행색을 한 요시오가 가고 난 뒤, “저런 놈 때문에 우리 애가 희생되다니”라며 화를 억누른다. 어머니는 겉으로는 친절하게 굴지만 속내는 다르다. ‘요시오군은 이제 그만 오게 해도 되지 않냐, 우리 가족을 보는 걸 힘들어하는 것 같다’라는 둘째 아들의 말에, 싸늘해진 눈빛으로 내뱉는 어머니의 말은 그녀의 애도 방식을 보여준다. “그래서 오게 하는 거야. 겨우 10년 정도로 잊으면 곤란해, 그 아이 때문에 우리 준페이가 죽었으니까. 증오할 상대가 없는 만큼 괴로움은 더한 거야.”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의 애도 과정은 두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폴란드에서 돌아온 명지는 우편함에서 죽은 지용이의 누나 지은이 보낸 편지를 꺼낸다. 그리고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명지의 눈에서 그동안 얼어붙었던 눈물이 드디어 쏟아진다.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놓여요. 이런 말씀 드리다니 너무 이기적이지요? 평생 궁금해하면서 살겠습니다. 혼자 계시다고 밥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드세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지은의 편지는 명지가 사태를 보는 시각을 바꾸어놓는다. 여태 자신의 입장에서만 도경의 죽음을 생각했던 명지는 처음으로 지용의 입장에 선다. 그리고 그 순간 남편이 어떤 입장이었을지도 생각하게 된다. 그가 뛰어든 곳은 죽음이 아니라, 지용의 삶 속이었다. 이제 명지도 도경의 죽음을 껴안을 수 있고, 어디선가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지켜봐 줄 사람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도 받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명지는 폴란드에 있는 친구 현석에게 이메일을 쓴다. 명지는 도경이 죽었다고 쓰면서 이 이메일은 보내지 못할 터이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모두 다 이야기해주겠다고 한다. 그것은 실은 자신에게 보내는 메일이었으며, 이제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도경의 죽음을 선언할 수 있게 됐다.
이 영화에서는 감당키 어려운 상실감이 신체증상으로 나타난다. 지용의 사고 소식을 듣고 누나인 지은은 쓰러져 신체 반쪽이 마비된다. 원작 소설에서는 사고 이전에 지은은 이미 몸이 아팠던 것으로 나오지만 감독은 이 부분을 바꿈으로써 마음의 치명적인 상처를 외부로 드러내게 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그리고 명지는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긴다. 폴란드에 가서 처음 발견했던 한 두 개의 반점은 피부병처럼 온몸으로 퍼진다. 소설에서는 명지가 지은의 편지를 읽으면서 흘리는 눈물이 반점 위로 떨어진다고 묘사된다. 배출되지 못했던 고통이 눈물로 나갈 길을 찾았으니, 아우성치듯 올라오던 반점도 이제 사라질 것이다.
가까운 이들을 어떻게 떠나보내야 하나
영화를 보면서 온 국민을 비통하게 만들었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은 수많은 상실감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을 반복하지만 극복이 불가능한 상실감도 있다. 애도는 살아남은 자가 남은 세월을 견디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애도의 방식은 지극히 따듯하다.
이 영화의 제목,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스마트폰 음성인식 프로그램의 대답에서 따왔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명지의 물음에 아이폰의 시리는 “어디로 가는 경로 말씀이세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라는 동문서답을 한다. 마치 커다란 상실로 삶의 길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6월에 상업 영화관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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