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한국 정치

[고수석의 정치가 왜 이래]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시대 월급쟁이 아닌 큰 정치인은 없나

김진표 국회의장(가운데)과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왼쪽),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8일 본회의 일정에 합의한 후 손뼉을 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가운데)과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왼쪽),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8일 본회의 일정에 합의한 후 손뼉을 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정치를 하고 있다.’

현재 한국 정치를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금리는 빅스텝으로 뛰고 있는데 정치는 빅스텝으로 뒷걸음질하고 있다. 국민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정치는 여전히 국민과 따로 놀고 있다. 정권 교체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내 삶이 조금은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건만 현재까지는 그렇지 못하다.

양당은 협치를 상실하고 적으로 대해

국민의힘은 집권한 지 두 달 만에 내홍에 쌓여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에 추월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심이 무심하다고 섭섭해할지 모르지만 자업자득이다. 0.73% 근소한 차이로 이겼으면 더 잘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자만해 보이는 모습에 국민이 실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과 지선에서 ‘졌지만 잘 싸웠다’는 아전인수식 인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의석수가 과반을 점하고 있으니 현실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정치인들이 현실을 느끼는 순간은 왼쪽 가슴에 있는 배지가 떨어졌을 때라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야당이다. 그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양당 모두 자신을 뽑아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내분과 남 탓에만 골몰하고 있다.

한국 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국민이 정치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민만 바라보겠다는 정치인들에게 협치는 구호일 뿐이다. 협치가 그렇게 어려운가? 과거에는 국회에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 후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하면서 흉금을 털어놓고 다음 날 협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 옛날이여’가 돼 버렸다.

국민만 생각한다면 가능할 듯 한데도 말이다. 정치인들에게 여야는 이제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 적이 돼 버린 것 같다. 국민은 그때그때 자신들에게 이롭게 활용하는 대상일 뿐이다.

2027년 대선도 고만고만한 대결일 듯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은 여의도가 아닌 곳에서 나왔다. 검찰총장과 경기도지사 출신의 대결이었다. 여의도 정치인들이 두 후보보다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덜 받았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게다가 두 후보 모두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0선이었다. 여의도 정치인들이 깊이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이 두 후보의 경쟁은 ‘누가 더 좋은 사람인가’ 보다 ‘누가 덜 나쁜 사람인가’였다. 두 후보의 도덕성이 부각되면서 고만고만한 대선이 돼 버렸다. 정치 혐오증이 더 부각된 선거였다. 문제는 2027년에는 달라질까다. 2024년 총선에서 새로운 정치인이 들어오더라도 2027년 대선에 출마하기는 무리다. 결국 기존 출마자들이나 0선 후보들의 경쟁이 될 수 밖에 없다.

요즘 오랫동안 정치를 지켜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제는 과거 김영삼‧김대중‧노무현 같은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불굴의 의지로 소신을 갖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거인’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반면 ‘월급쟁이’ 국회의원이 계속 늘어나면서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 소신 없이 시키는 일만 하거나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정작 할말은 못하니 국민이 보기에 고만고만해 보인다. 그리고 그 그릇에 맞게 고만고만한 정치를 하게 된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은 잊어야 할 판이다. 그들과 ‘월급쟁이’ 국회의원을 비교하면 자괴감이 들 뿐이다.

현실을 무시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하다가 ‘찍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우면 정치를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국민이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었으니 그들을 믿고 국민의 편에서 할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국민보다 당 지도부나 강경 지지자를 더 두려워하니 한심한 노릇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 ‘찍히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지금처럼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인은 그때그때 눈치를 보면서 전략이라고 자신을 변명하겠지만 국민의 눈에는 다 보인다. 국민을 바보로 착각하지 마라. 그런 정치인은 국민에게 매력이 없다.

큰 정치인이 그리운 시대다. 왼쪽 가슴에 배지를 붙여주면 권력에 도취돼 공중부양하지 않고 두 발을 땅에 딱 붙이고 현실을 직시하는 무거운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런 정치인은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게 하고 생업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다. 우리 국민은 기회를 만들어주면 신바람 나게 뛴다. 그리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역량을 발휘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국민을 다시 신바람 나서 뛰게 할 수 있는 큰 정치인이 어디 없소?

글쓴이

고수석 북한학 박사

고수석은 중앙일보 기자로 20여년 동안 통일이 한국의 성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통일․북한 분야를 취재했으며 고려대에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중앙일보에 ‘고수석의 대동강 생생 토크’, 중앙SUNDAY에 ‘평양탐구생활’을 기획연재했다. 저서로는『북한을 움직인 30인』, 『김정일과 IT혁명』등이 있다. 지금은 정치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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