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얼마만큼 이상한가요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특별한 능력’ 환상 담은 서사의 매력

영화 '템플 그랜딘' 주인공의 실제 인물.
영화 '템플 그랜딘' 주인공의 실제 인물.

자폐인은 변호사가 될 수 없을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면서 자폐인이 변호사가 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에는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다. 헤일리 모스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로 3살 때 자폐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으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 거라는 예상을 깨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는데 성공했다. 그녀 역시 우영우처럼 한번 보면 바로 외워 버리는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단은 자폐인이 변호사가 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검증이 된 셈이다. 2019년 개봉한 한국 영화 <증인>에서 자폐증을 가진 유일한 목격자 지우(김향기 분)가 자신은 변호사가 되고 싶지만 자폐증 때문에 변호사는 될 수 없으니 대신 증인이 되겠다고 말했던 대사와는 달리, 자폐증을 지녔어도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증인>에서 지우 역시 특별한 능력을 지닌 것으로 설정됐다. 청각 능력이 거의 초능력 수준이라서 맞은편 아파트에서 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결정적인 증언을 할 수 있었다.

영화 '증인'의 한 장면.
영화 ‘증인’의 한 장면.

결정적인 집중력, 세상을 바꾼다

2010년에 제작된 미국 영화 <템플 그랜딘>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템플 그랜딘은 4세 때 자폐 진단을 받았지만 꾸준히 치료와 교육을 받았고, 동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영화에서 템플 그랜딘은 소의 행동에 집중한다.

소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느끼는지 파악한 그녀는 소들의 공포를 최소화한 도축장을 설계한다. 미국에 있는 도축장 시설의 대부분은 템플 그랜딘의 설계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템플 그랜딘은 세계를 언어가 아닌 영상으로 인지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으며 늘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다닌다.

생전에 수천편의 시를 썼던 시인 에밀리 디킨슨에게도 자폐 증상이 있었다. 그녀 역시 소리에 민감했으며, 타인들과 접촉을 꺼린 탓에 평생 자신의 집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공간적으로는 제약됐지만 그녀의 영혼은 시를 통해 자유를 누렸으며, 정원 가꾸기에 몰두한 덕분에 식물에 관해서는 거의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췄다.

‘서번트 증후군’ 자폐인은 실제할까

실화를 바탕으로 했든, 가공의 인물로 서사를 꾸몄든 영화나 드라마로 재현된 주인공 캐릭터들은 장애를 지녔지만 특별한 능력이나 천재성을 지니고 있다. 자폐인들이 어떤 한 가지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증상은 일반적이지만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천부적 재능을 지닌 자폐 장애인들은 실제로는 드물다.

우영우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졌음에도 전교 1등을 하고 국내 최고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해 변호사가 됐다. 단순히 자폐장애라고 하지 않고 ‘자폐스펙트럼 장애’라고 칭하는 이유는 자폐증상의 정도가 사람마다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영우는 자폐증 환자들의 일반적인 증상을 보여준다. 접촉을 꺼리고, 눈 맞추기를 피하고, 소리에 민감하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반복적으로 한다. 하지만 우영우는 상대방과 교류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보다도 학습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 단순한 암기 능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응용할 줄도 알고 종합적으로 판단할 줄도 안다.

알게 모르게 자신을 돕는 동기 변호사에게 ‘봄날의 햇살’이라는 별명을 붙여 줄 정도로 비유적인 묘사까지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동료에게는 같은 방식으로 비꼴 줄도 알고, 자신을 버렸던 생모 앞에서 원망 어린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 수시로 엉뚱한 소리를 해대고 상대방과 사이에 결코 허물 수 없는 단단한 벽이 자리 잡고 있는 자폐증자와는 많이 다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몇년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굿닥터>와 비교된다. 우영우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승소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듯이 <굿닥터>의 자폐증 의사 역시 마치 환자의 몸을 투시하듯이 증상의 원인을 파악한다. 두 드라마에서는 결정적인 순간 주인공들이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때 판타지 영상을 넣는다. 우영우가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단서를 잡아낼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는, 고래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장면을 삽입한다.

두 드라마 모두 자폐인이 가진 특별한 재능을 축으로 서사를 펼친다. 우영우는 천재성을 지닌데다 솔직하고 천진난만하다. 자신을 포장할 줄도 모르며 자신이 자폐인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노출한다. 현실의 자폐인들과는 달라서 큰 격차를 느낄 수 밖에 없지만, 드라마에서 우영우의 자폐장애는 그녀를 더 인간적으로 보이게 하고, 사랑스럽게 만들기까지 한다.

KBS드라마 '굿닥터'
KBS드라마 ‘굿닥터’

아스퍼거 증후군 캐릭터와 사이코패스 캐릭터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된 장애인들이 실제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두 드라마에서처럼 극적 효과와 재미를 위해 가공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특별히 인기 있는 장애 캐릭터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자폐스펙트럼 장애’중에서 지능이 높고 고기능인 아스퍼거 증후군 장애인과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졌지만 두뇌가 뛰어나고 냉철한 사이코패스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들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면서 극적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적임이다. 그러니까 자폐증을 지녔지만 일반인들이 갖지 못한 뛰어난 능력을 가졌거나,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졌지만 두뇌가 명석하고 감정에 휩싸이지 않아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완벽주의 캐릭터다.

후자의 경우 <양들의 침묵>에서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했던 한니발 렉터 박사가 대표적인 예인데, 렉터 박사는 사이코패스임에도 불구하고 조디 포스터가 분한 스털링 요원에게 연민과 애정을 보인다. 이런 캐릭터들은 실제와는 다르게 극적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

우영우가 되어, 세상을 바라본다

어떤 분야에서건 천재성을 띤 사람들의 이야기는 관심을 끌어모은다. 장애와 천재성이 결합됐을 때는 더 강한 효과를 낸다. 장애와 결합한 천부적 능력은 보상심리 기대와 특별한 능력을 갖고 싶은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런 심리를 판타지로 변환시킨 영화가 슈퍼히어로 시리즈물들이다. 대표적인 영화가 엑스맨 시리즈다. 엑스맨들은 돌연변이라서 왕따를 당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지만 남들과는 다르게 초능력이 있는 인물들이며 세상의 악과 싸우게 된다.

앞서 말한 캐릭터들처럼 우영우 역시 시청자가 원하는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허구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자폐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사를 따라가는 동안, 우영우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대신, 어느 순간 그녀의 눈이 되어 다른 일반인들이 그녀를 향해 보내는 야릇한 시선을 느끼게 된다. 한순간이나마 그녀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은 그녀와 같은 타인들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 아니겠는가. 이 드라마의 가치를 그 점에 두고 싶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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