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은?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원더플 라이프’와 ‘카페 벨에포크’ 생의 끝에 추억 하나를 고른다면

영화 '원더플 라이프'에서 쿄고는 약혼자와 공원에 앉아있던 순간을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택했다. 극중 약혼자인 모치즈키는 그후 사망했다.
영화 '원더플 라이프'에서 쿄고는 약혼자와 공원에 앉아있던 순간을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택했다. 극중 약혼자인 모치즈키는 그후 사망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필자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임종을 맞았는데 코마 상태에 들어가기 전, 아직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담당 의사가 했던 말이 평생 잊히지 않는다. 의사는 덤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시라고 했다. 그 말에 아버지는 감기는 눈을 살짝 떠서 의사를 쳐다봤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잠시 생각하시는 듯했다.

필자는 그 순간 모든 사물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슴을 아리게 하는 슬픔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의사가 화두처럼 던졌던 말은 살면서 수시로 수면 위로 떠오르곤 했다. 이 세상과 영원히 작별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만 가져간다면 가장 무겁게 생각되는 순간을 의외로 가볍게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순간을 포착한 영화들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일본 영화, <원더풀 라이프>와 니콜라스 베도 감독의 프랑스 영화, <카페 벨에포크>는 각기 다른 의미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원더풀 라이프>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중간쯤에 위치한 느낌을 준다. 대중적인 재미를 노린 영화가 아니라서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 극적인 긴장감이 크지 않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느끼는 관객도 있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순간의 숭고함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 깊이감에 몰입되는 관객도 있다.

영혼의 대합실에서 ‘추억 재현’

<원더풀 라이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1998년에 두 번째로 만든 작품으로 ‘사후 세계’를 고레에다 특유의 방식으로 연출한 영화다. 이승을 떠났지만 아직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 영혼들이 죽음 역의 대합실로 모인다는 독특한 설정이다.

이 영혼들은 일주일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좋았던 추억을 골라야만 죽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추억의 한 순간을 고르면 대합실의 직원들이 그 장면을 똑같이 재현해준다. 그러면 그 기억만 간직한 채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대부분은 행복했던 추억을 쉽게 고르지만 끝까지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기 시설에 남아 직원으로 일하게 된다.

영화는 대기 시설로 들어온 죽은 이들의 추억 고르기를 돕기 위해 인터뷰하는 장면을 다큐 형식으로 삽입하는데, 배우가 아닌 일반인들을 출연시켜서 사실감을 높인다. 실제로 저런 자리에 앉아서 가장 소중한 순간을 고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출연자들처럼 처음에는 당황해하지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여러 가지 일화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될 것 같다. 특별한 기억을 찾지 못한 사람에게는 생전의 그를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하면서 생각할 시간을 준다는 설정도 재미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 놓치고 있었던 사소하지만 소중했던 순간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가장 행복했던 추억은 타인이 고른 것과 비교될 수 없는 각자의 고유성이 담긴 순간이다. <원더풀 라이프>에서 의외로 매우 소박한 순간을 고르는 출연자들을 보면 행복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보게 된다.

지진을 피해 대나무 숲에서 주먹밥을 먹던 순간, 놀이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던 순간, 아팠을 때 죽을 끓여 입으로 호호 불어 먹여주던 여인에 대한 기억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벽장 속에 갇혀있던 순간을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일반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선택을 한 사람도 있다.

<원더풀 라이프>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을 선택하지 못하면 죽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는 설정에는 큰 의미가 있다. 추억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경험의 소중함을 찾지 못한 채, 공허함이 그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재현을 위해 행복했던 순간의 느낌과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의 표정은 밝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의 눈빛은 어둡고 허공을 헤맨다. 소중한 추억을 선택했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든지, 떠나는 순간에는 자신과 화해하고, 지난 삶을 수용한다는 뜻이다.

예술치료에서는 미리 자신의 죽음을 경험해보는 기법이 있다. 관처럼 검은 색 박스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몇 분간 자신이 죽은 후를 상상해본다. 주변 사람들이 슬퍼하는 소리,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어본다. 만감이 겹쳐질 수밖에 없다. 폐소 공포증이 있거나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은 피해야 할 기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죽음을 미리 경험해보는 기법도 있고 몇 십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미래를 경험해보게도 한다. 미래를 경험한 뒤,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지금의 나에게로 다시 돌아왔을 때, 현재를 대하는 느낌은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 컷.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 컷.

내 인생 가장 설렜던 때는 언제였던가

또 다른 영화 <카페 벨에포크>는 시간 여행을 경험하게 해주는 회사가 배경이다.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과거 한순간의 향유를 위해 기꺼이 고액의 대가를 지불한다. 시들어가는 삶에 활력을 주기 위해 가장 설레고 행복했던 순간을 골라 똑같이 재현하면서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삶에 활력을 줬던 지점을 찾아 현재의 무력감, 공허감, 상실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를 다룬 <원더풀 라이프>와 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가치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주인공인 빅토르(다니엘 오떼유 분)는 은퇴한 후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무미건조한 삶을 보내고 있다. 아내와도 이혼 직전이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아들은 시간 여행을 권유한다. 빅토르가 돌아가고 싶다고 택한 과거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설렜던 순간, 바로 자신의 아내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다. 첫사랑을 만났던 카페와 그 당시의 분위기, 주변 인물들이 그대로 재현된 상태에서, 당시의 감정에 빠져들고 빅토르의 삶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잊고 있었던 정서를 되찾는다는 점에서 <원더풀 라이프>와 통한다.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생활에 지쳐 우리가 잊고 있었던 소박하면서도 소중한 추억은 무엇일까, 그리고 행복했던 화양연화를 다시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들이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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