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제대로 민주공화국답게 만들려면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폭주기관차’ 같았던 취임 100일 검찰공화국조차 안되는 나라 만들어 말로만 ‘공화국’ 아닌 ‘새 비전’을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민주공화국은커녕 검찰‘공화국’도 아니다

이번 8.15 대통령 경축사를 듣고 있노라니, 놀랍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공화국’을 언급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취임사에서는 ‘자유’라는 말만 줄곧 되뇌었는데,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그랬지만, 한 번 뿐이라도 민주공화국도 들먹인다. 특히 흥미로웠던 건 8.15를 대한민국 건국일로 하자는 우리 우파의 지난 주장을 반복하는 대신, 독립 운동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수립을 위한 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민주공화국이 곧 자유민주주의체제임을 강조하려 했던 모양이다.

철학적으로 따지자면, 할 말이 많다. 틀림없이 그는 자신이 말하는 자유 개념이 얼마나 복잡한 개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공화국의 이념을 제공했던 공화주의 전통에서는 자유를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불-간섭(non-interference)’이 아니라 ‘비-지배(non-domination)’로 이해했으며, 만약 우리 독립운동이 정말 자유라는 가치를 추구했다면 그 자유는 공화주의적인 자유 개념으로 가장 잘 해석될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지 싶다. 외세를 포함한 외부의 타자가 행사하는 자의적인 권력 행사로부터 벗어나자는 게 ‘비-지배 자유’ 개념의 핵심인데, 이런 자유 개념은 그가 강조하는 ‘규제 완화’ 따위와 연결되는 ‘불-간섭 자유’ 개념과는 규범적 초점이 많이 다르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런 철학적 논의에 익숙하지 않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나는 우파 대통령이 드디어 민주공화국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일단 만족하고 싶다. 자유 개념이나 민주공화국이 곧 그 자체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의미하는지 따위의 논의는 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당장 떠오르는 생각은 취임 100일 동안 그가 보여 온 정치 행보는 그야말로 가장 반-공화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가령 대우조선소 노동자들의 파업을 공권력으로 진압하겠다고 협박했던 건 비-지배 자유라는 공화적 가치에 가장 전형적으로 반한다.

지난 100일 동안 그가 보여 준 정치 행보는 그야말로 무슨 폭주기관차 같았다. 측근들을 죄다 검찰 출신에다 이런저런 연줄이 있는 사람들로 채우더니(놀랍게도 이런 인사를 ‘능력주의’라고 포장하더라), ‘좌동훈 우상민’이라는 최측근들을 통해 검찰과 경찰을 장악했다. 그러고 나서는 법인세와 종부세를 감면하는 등 친기업, 친기득권 정책들을 하나하나 펼쳐나가려 한다. 특히 달랑 시행령 하나만 고쳐 행안부 안에 경찰국을 신설하고 검찰의 수사범위를 확대하는 짓거리를 보고 있노라니, 이 검찰정부는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는 달리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다운 법치국가가 어떤 것인지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함이 틀림없어 보였다.

무슨 ‘검찰공화국’ 이야기야 진작부터 많이 했더랬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보노라면, 지금 이 나라는 결코 ‘공화국’이라고도 할 수 없다. 정치적 상대에 대한 어떠한 존중도 예의도 없고, 타협도 양보도 없다. 자기편이 아닌 세력이나 개인에 대해서 ‘국기 문란’이니 ‘쿠테타’니 하는 프레임을 씌워 ‘엄정 대처’하겠다고 나서고, 심지어 이준석 같은 이가 내는 내부의 다른 목소리도 참지 못하고 억누른다. 무슨 ‘전제정’이라고 하는 건 섣부를 수 있지만, 최고 통치자가 이런 식으로 정치를 하는 나라를 정상적인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수 없음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도대체 무슨 공화국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비록 지지율도 받쳐 주지 않고 당장은 의석도 부족해서 제대로 추진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로서는 윤 대통령이 새로운 종류의 권위주의체제를 추구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편이다. 실제로 후발 민주주의 국가 중에는 윤석열 같은 ‘스트롱 맨’이 선거를 통해 집권한 이후 새로운 권위주의 체제로 전락한 나라들이 꽤 있다. 푸틴의 러시아, 오르반의 헝가리, 에르도안의 튀르키예 같은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외형상 선거가 치러지는 등 민주주의의 형태는 유지되고 있지만, 통상적인 민주국가의 정치 규범이나 국민의 기본권 보호, 삼권분립 같은 제도적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나라마다 사정과 맥락이 다 다르긴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나라도 그 반열에 들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우리 민주주의의 ‘공화화(共和化)’가 필요하다

물론 기우일 것이다. 우리 시민들이 우리나라가 그런 방향으로 가도록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야당인 민주당의 의석이 압도적으로 많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민주당이라고 우리나라를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보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당 역시 그동안 ‘공화의 정치’가 아니라 ‘전쟁정치’에 몰두해 왔더랬다. 앞으로 새로운 당 대표와 지도부가 들어선다고 이런 양상이 바뀔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지점에서 나는 두 정당 모두에 대해 지금 우리 민주주의를 ‘공화화(共和化)’하는 과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이대로 머물러서는 안 되며 아직도 많은 개혁 과제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정치적 갈등의 수준이 너무 높고 그 질도 낮아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과 대가가 너무 크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런 문제가 단순히 더 많은 민주화를 추구하거나 그냥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고 호소하는 것으로써는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사실 민주주의와 공화국(정)은 쉽게 어울릴 수 있는 개념들이 아니다. 민주주의 개념이 인민(시민)의 직접적인 주권성과 참여를 강조하는 반면, 본디 ‘혼합정’을 의미했던 공화정의 개념은 평범한 시민과 엘리트(귀족) 사이의 타협과 균형에 대한 지향을 담고 있다. 현실의 민주공화국에서도 그와 같은 긴장은 어떤 식으로든 표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도 그랬지만 오늘날의 조건에서도 순수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기도 하고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만 볼 수도 없다. 민주주의는 단지 공화정의 형태로서만 실현될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근대 이후 삼권분립이나 견제와 균형 같은 민주적 헌정 체제의 원리가 확립되고 제도화되어 온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사실에 대한 새삼스런 확인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민주주의를 공화화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가 이제 온전한 상태에 도달했으니 다른 과제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여겨서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제대로 된 공화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출발점이다. 인민주권/시민주권의 실현이라는 민주적 이상에 충실하되, 그것이 정제되지 못한 시민적 열망의 바다에서 허망하게 흩어져 버리지 않고 국가 권력에 대한 이성적이고 실질적인 시민 통제로 이어질 수 있게끔 잘 작동하는 헌정적이고 제도적인 틀과 장치들을 정비해야 한다는 게 요점이다.

민주주의를 공화화하자는 건 또 결코 다양한 정치 세력이 타협하고 양보하는 정치 양식만이 무조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적절한 견제와 저항이 없다면 권력을 가진 세력은 모든 걸 마음대로 하려 들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저항과 견제가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로 귀결될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어떤 정치 체제에서도 근본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회 집단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그 갈등과 대립 상태를 파국이 아니라 ‘생산적 긴장’ 상태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에 대한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안정적인 존립과 번영을 위해서는 그 안에서 대립하는 사회 집단들이 갈등하는 지점과 서로의 차이를 분명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규범과 절차를 확립하고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또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존중, 어느 쪽에도 일방적으로 유리할 수 없는 경쟁의 절차, 경쟁의 승자라도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없도록 하는 권력의 분점이 필요하다. 대립하는 상대가 ‘절멸시켜야 할 적’이 아니라 더 나은 공동선의 모색을 위해 ‘경합하는 상대’일 뿐임을 인정하고, 공동선을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모든 구성원의 안정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제7공화국’을 열자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소선거구제와 제왕적 대통령제를 핵심으로 하는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는 충분히 공화적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우리의 정치 체제는 기본적으로 승자독식을 원리로 하고 있으며, 또 그런 만큼 경쟁하는 세력이나 집단 사이에 극한적인 대결을 유도할 수밖에 없다. 이긴 쪽과 진 쪽이 얻는 보상의 격차가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다 보니, 경쟁 과정에서 어떤 수단과 방법도 불사하게 한다. 우리 민주주의를 공화화하기 위해서는 민주적으로 정의로운 절차를 통해 권력을 분점하고 적극적으로 공동선을 모색할 수 있도록 우리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말로만 민주공화국을 외치지 말자. 공화국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도 말자. 우리가 갖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돌아보며, 이 체제가 진짜 공화적이 될 수 있도록 해보자. 흔히 ‘87년 체제’라고 불리는 지금의 ‘제6공화국’ 정치 체제가 강요하는 적대적 양당제 속의 정치 양식으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어떠한 근본적 개혁 과제도 해결하기 힘들고 또 마주하게 될 어떠한 미래의 도전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정치적 질곡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념적, 정치적 지향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해 분열과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를 일상이 되도록 만들고 있는 승자독식 원리의 단순다수결 선거제도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도 심각하다. 우리는 이런 제도적 틀 위에서 고착화된 지금의 87년 체제를 끝내고, 새로운 공화적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공화국, 곧 ‘제7공화국’의 비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경합하는 세력들 사이에 서로의 차이와 이견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평화적인 공존의 틀과 절차를 유지할 수 있는 ‘시민적 예의/시민다움(civility)’의 문화가 확립되지 않으면, 민주공화국은 제대로 건설될 수도 유지될 수 없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갈등적 사안이라도 서로에 대한 존중을 잊지 않는 ‘시민적(방식으로) 불화(하기)’와 함께, 서로의 다른 처지나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같은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잊지 않는 ‘시민적 우애’가 중요하다.

돌이켜 보면, 민주공화국은 우리 대한민국의 가장 근원적인 정체성이고 우리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노래까지 불러가며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정치권과 시민들은 우리 민주주의 체제를 제대로 공화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새삼 우리 민주공화국을 제대로 민주공화국답게 만드는 일에 모두가 나서주길 바란다.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적 공정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민주적 평등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한 <공정의 배신>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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