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에서 RV까지, 캠핑을 떠나라

[김유진의 미국 사는 이야기] 한국이민자들이 못따라하는 ‘캠핑’ 미국 캠핑인구 엄청나...자연친화 시설 예약 힘들고 거리 멀지만 열심히 추억쌓기

Carpinteria State Beach. 내게는 예쁜 추억이 많이 남겨진 곳이다.
Carpinteria State Beach. 내게는 예쁜 추억이 많이 남겨진 곳이다.

캠핑? 정말 부지런해야

필자는 20대 초반에 미국으로 건너 왔지만 한국에 있을 때에도 캠핑을 무척 좋아했다. 스무살 무렵에 이미 지리산 종주를 세 번이나 했고, 설악산, 덕유산, 치악산 등을 누비며 손바닥만한 땅에 텐트를 치고 벌레소리, 바람소리와 텐트를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야영하는 것을 즐겼다. 설악산에선 밤중에 온 큰 비로 텐트가 물에 통채로 휩쓸려 갈 뻔한 적도 있었고, 덕유산에선 길을 잃어 굶어죽을 뻔한 일도 있었지만, 도시를 떠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그 당시의 내게는 유일한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별나고, 고리타분하다고 했지만 개중에는 나를 따라 여행길에 동행하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미국에 건너온 직후엔 학업과 일 때문에 캠핑은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결혼하고 큰 아이가 두어 살이 됐을 무렵부터 다시 캠핑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미국은 그 넓은 땅만큼이나 가봐야 할 곳들이 너무나 많았다. 사실 미국인들만큼 한국인 이민자들이 즐기고 있지 못하는 것이 이 캠핑문화이다. 먹고 사는 것이 바빠서, 엄두가 나지 않아서, 위험하고 불편해서, 전화가 안되는 곳이 많아서 등등이 이유가 되겠지만 정작 용기를 내서 다녀 보면 이 좋은 것을 왜 못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캠핑을 가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미국의 유명한 캠핑장들, 특히 국립공원 내의 캠핑장들은 적어도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만 한다. 미리 여행계획을 잡지 않고 충동적으로 ‘캠핑 한 번 가 볼까’ 해서는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 없다.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중 하나인 로스앤젤레스에서 약 80마일(120km) 떨어진 바닷가 캠핑장인 Carpinteria State Beach는 약 250개의 텐트 및 RV(레저용 차량) 사이트가 있는데, 만일 8월 15일 주말을 끼고 캠핑을 계획한다면 6개월 전인 2월 15일 오전 8시부터 10분만에 모든 사이트의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정신차리고 제 날짜에 예약준비를 하더라도 경쟁이 치열해서 어느자리로 할까 망설이는 순간 자리는 다 없어져 버린다.

이 곳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화장실, 샤워장 등의 부대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기도 하지만 해변에서 불과 100m도 안되는 곳에 자리잡은 캠핑장 뒷쪽으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싸고 있어 바닷가임에도 바람이 많이 불지 않고 파도도 높지 않아 아이들을 풀어 놓고 놀게 하기에 안성마춤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1년에 한 두 번정도 이곳에 가는데 이젠 아이들이 다 커 버려서 잘 따라 나서지 않지만 부부 둘이서만 가도 며칠 푹 쉬다 오기에 아주 그럴듯한 장소다.

Carpinteria State Beach. 내게는 예쁜 추억이 많이 남겨진 곳이다.
Carpinteria State Beach. 내게는 예쁜 추억이 많이 남겨진 곳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 킹스 캐년, 세코이아 국립공원 등 유명 국립공원 캠핑장도 최소 3개월에서 6개월 전에 예약해야만 한다. 미국 최초, 최대의 국립공원 옐로스톤에는 약 360대 정도의 RV가 주차할 수 있는 Fishing Bridge라는 캠핑장이 있다. 이곳은 1년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그외에 먼저 오는 순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First-come-first-served) 캠핑장도 많은데 이런 곳들의 자리를 잡기 위해선 새벽에 도착해야 하니 밤새워 운전해야 하는 수고가 뒤따른다.

필자는 스마트 폰에 알림 설정을 해 놓고 6개월 전부터 무조건 예약을 해 놓는다. 캠핑 계획은 일단 예약을 하고 난 후에 잡는다. 혹여 나중에 못 가게 되는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양도하든가 예약을 취소하면 된다.

초라한 시설? 깊은 뜻이

대부분의 캠핑장, 특히 국립공원 캠핑장의 시설들은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다. 편의시설을 만들 줄 몰라서 안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정말 최소한의 시설만 갖추어 놓기 때문이다. 화장실에는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들도 많아 밤에는 손전등을 켜고 가야 한다. 밤에 혼자 화장실 가기 무서워하는 아이들 때문에 필자는 텐트 옆에 설치하는 간이화장실을 가지고 다녔다.

전화는 국립공원 인근에 접근하면서부터 먹통이 된다. 공원 내에 전화나 데이터를 연결할 수 있는 기지국이나 안테나 설치가 허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내게는 캠핑을 가는 이유가 된다. 하루에도 수백통씩 들어오는 이메일들이 이 때만큼은 멈춘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도 비로소 전화를 손에서 내려 놓고 흙장난, 물장난을 하며 자연을 즐긴다. 물론 가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들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정지된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라이센스를 사지 않으면 낚시도 할 수 없거니와 야생동물을 함부로 잡았다가는 큰 곤욕을 치러야 한다.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 같은 곳으로 캠핑을 가면 어렵잖게 사슴, 곰 등을 볼 수 있는데 절대 가까이 가지 말고 먹을 것을 주지도 말라는 경고 싸인이 붙어 있다. 텐트 옆에서 고기를 굽다가 갑자기 나타난 사슴들 때문에 기겁을 하기도 한다.

곰이 음식냄새를 맡고 내려와 차를 부수는 일이 많기에 음식은 지정된 철제 캐비닛 안에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아이스박스 하나당 100달러 이상의 과태료 티켓이 발부된다. 보통 오후 10시가 되면 모두 불을 끄고 잠든다. 간혹 깨어 있는 젊은 친구들도 모닥불 주위에 앉아 두런두런 담소를 나눌 뿐 술에 취해 떠들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공원관리국에서 고용한 ranger(관리원)들이 계속 순찰을 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먹고 마시는 한국의 문화와는 달리 자연을 즐기고, 낮에는 하이킹이나 낚시 등을 하며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쉼(break) 그 자체를 만끽하는 것이 미국의 캠핑문화이기 때문이다.

캠핑용품은 월마트나 아마존닷컴에서 살 수 있는 저렴한 것들부터 전문용품점에서나 구할 수 있는 고가의 장비까지 천차만별이다. 음식을 보관하는 아이스박스 하나만 해도 저가의 제품들은 50달러 정도면 살 수 있지만 YETI 같은 고급 제품들은 그 스무 배를 줘야 하는 것들도 있다. 슬리핑 백도 영하 20도에서도 견딜 수 있고 무게가 채 2.5㎏이 나가지 않는 고가의 제품들도 허다하다.

음식을 해 먹는 스토브들도 작고 가볍고 화력 좋은 제품들이 많지만, 필자는 오래 전 창고세일(garage sale)에서 15달러 주고 산 오래 된 Coleman 스토브를 아직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쓰고 있다. 개스만 연결하면 바로 불이 켜지는 요즘 제품들이 아니고 액체연료를 넣고 펌프질을 해야 하는 구식 모델인데 Coleman은 아직까지도 이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신제품을 마다하고 아직까지 이 고물 제품을 쓰는 것은 백두산보다 더 높은 해발 7천~8천 피트 정상에서는 화력이 강한 버너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게 물건을 팔았던 나이 지긋한 노인은 지금쯤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다. 그 분이 내게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Young man, you’re not only buying this but the great memories for just $15 (젊은 친구, 단 15달러에 이놈이 가지고 있는 멋진 추억까지 모두 사 가는 것이라네).”

어려워 보이지만 일단 해 보고 나면 참 편한 RV 여행.
어려워 보이지만 일단 해 보고 나면 참 편한 RV 여행.

노마드 생활을 꿈꾸며

RV(Recreational Vehicle) 캠핑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필자는 약 2년 주기로 RV를 렌트해서 여행을 다니는데, 올 여름에도 오랫만에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다녀 왔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옐로스톤이 있는 와이오밍(Wyoming)까지는 편도 1700km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가는 데만 꼬박 이틀이 소요된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고유가 시대에 무슨 RV여행이냐고 했지만 우리 식구 일주일 여행비로 3천달러를 썼으면 요즘같은 고물가 시기에 꽤 잘 쓴 지출이라고 자평한다. 비싼 기름값 걱정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도 가지 못하지 싶다.

필자는 그밖에 유타 주의 아치스(Arches) 국립공원, 캐나다의 밴프(Banff) 등 꽤 먼 곳들도 RV를 이용해서 다녀왔다. 재작년에도 캐나다 밴프에 가려고 RV며 비행기표며 전부 예약했다가 코로나 대유행으로 캐나다가 국경을 봉쇄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계획을 접어야했지만 내년이나 후년쯤 다시 계획해 볼 생각이다.

미국의 RV 시장 규모는 실로 엄청난데 지난 코로나 19 팬데믹(COVID-19 Pandemic) 기간동안 RV 수요가 더 급격히 늘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2년동안 RV 판매가 평년 대비 33.8%가 늘었다고 하며, 2019년까지 등록된 미국내 RV 차량 숫자는 약 790만대였으나 2021년 말을 기준으로 9백만대를 넘어섰다고 한다. 미국 열 가정 당 한 가정 정도는 RV를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요즘은 연비 좋은 디젤 엔진을 장착한 중소형 캠퍼들은 주문해서 차를 인수받기까지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하고 중고캠퍼의 가격이 새 차 가격을 넘어서 거래되는 일도 흔하다.

9백만대의 트레일러(이동식 주택) 중에서는 RV를 아예 주거지로 삼는 사람들이 약 100만 명 가량 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지난 2021년 오스카상을 받은 프란시스 매도먼드(Francis McDormand) 주연, 클로이 자오(Chloe Zhao) 감독의 영화 노마드랜드(Nomadland)에서처럼 RV나 트레일러를 집 삼아 한 곳에 상주하거나 이리저리 떠돌며 생활하는 노마드(Nomad) 족들이 바로 그들이다.

미국내에는 사설 RV 파크가 약 1만3000여개, 그리고 주정부나 연방정부에서 운영하는 퍼블릭 시설이 약 1500개 정도가 있다. 사설 RV 파크는 이용자가 개인 차량을 가지고 가서 주차할 수도 있지만, 빈 몸으로 오는 손님들을 위해 붙박이처럼 트레일러를 설치해 놓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Nomad RV족들은 한 곳에 짧게는 3개월, 길게는 몇 년까지 상주하기도 한다. 아예 주소지로 설정해 놓으면 우편물이 배달되기까지 하며 주위에 꽃들을 심고 울타리를 쳐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을 접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빈 땅을 사서 RV 공원을 만들어도 된다. 상하수도 시설과 정화조, 그리고 약간의 조경 정도만 하면 저렴한 부지가 금싸라기 부동산으로 변신이 가능하다. 대도시에서 벗어날수록 허가를 받기도 쉽다. 필자는 은퇴 후에 조용한 곳에 가서 RV 공원을 만들어 노후에 소일거리로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대충 성향이 비슷한 와이프지만 그까지는 아직 동의를 하지 않고 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가족들과 추억을 만들자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나는 여전히 1년에 두어 번씩 캠핑을 떠난다. 이제 큰 아이와 둘째가 성인이 된데다 막내가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어서 다섯 식구가 시간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도 바쁜 아이들을 독려해서 짐 싸고 푸는 귀찮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길을 떠나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평생 가지고 갈 기억 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고생스럽고, 여행 탓에 바쁜 일정을 조정해야 하고, 때로는 말 안듣는다고 길바닥에서 쥐어터지는 일이 있더라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아이들이 나처럼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소소한 행복을 맛보게 해주고 싶어서다.

큰 아이가 어렸을 적에 생일 카드에 이런 글을 써 준 적이 있다. 한글로 바꾸면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생일인 오늘이 1년 중에서 가장 기쁜 날이길 바라. 네가 다 큰 후에 어느날 영문도 모르게 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면 그건 아마도 오늘의 행복한 기억이 네 속에서 되살아나 너를 간지럽혔기 때문일거야.”

사람은 추억을 먹고 자란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좋은 기억들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며 선하게 만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좋은 기운을 가진 기억들을 사기 위해 시간을 모으고, 일을 하고, 돈을 번다. 내가 얻는 것을 생각하면 별로 아깝지 않은 거래다.

글쓴이

김유진 칼럼니스트

필자인 김유진(Eugene Kim)은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도미(渡美), 2004년까지 로스앤젤레스(LA) 소재 다국적 광고대행사 PanCom International에서 Creative Director 및 카피라이터로 근무했다. 현재는 커머셜 전문 보험회사 Cal-Kor Insurance의 부사장이자 프리랜서 번역가, 카피라이터 및 포토그래퍼로 활동중이다. 두루 아는 것은 많지만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는 잡학서생(雜學庶生)이라고 자신을 평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