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은 심리전이다...그래서 예측은?

[김유진의 미국 사는 이야기] 백인 인구 77%...멕시코·러시아계도 트럼프, 철저히 백인들 심리 이용해 빼앗긴 권리 찾겠다는 백인들 Vs 백인이 가진 것 차지하고 싶은 비백인들 트럼프 심리전술 먹혀들고, 해리스는 밀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인종차별적인 질문들

미국에 살면서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면 꼭 듣는 말이 세가지가 있다.

“Your English is good, where are you from? (야, 너 영어 잘하는구나, 너 어디에서 왔니?)”

미국에 살면서 미국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미국 회사에서 일하고, 미국인들과 섞여 살면 당연히 늘 수밖에 없는 것이 영어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는 ‘영어 잘하는 외국인’, ‘미국 시민권을 가진 외국인’ 그 이상은 아니다.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네가 우리들과 동급이 될 수는 없어”라며 선을 긋는 그들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말이다.

“한국(Korea)에서 왔다”고 대답하면 여지없이 이어지는 그 다음은 “North냐 South냐?”는 질문이다. 미국과 수교가 되어 있지 않은 북한에서 미국으로 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이들이 모를 리 없다. 미국인들에게 북한 사람은 주머니 속에 사제폭탄 하나쯤은 감추고 있을 법한, 뿔 달린 테러분자이자, 약간의 두려움과 경멸의 대상이다. 뚱뚱하고 못생긴 김정은 따위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약간 모자란 민족이라는 인식도 가지고 있다. North냐 South냐는 말 속에는 그러한 경멸이 숨어 있다.

한가지 더 든다면 “Are you really good at math?(너 정말 수학을 잘하니?)”라는 질문이다. 그 질문 역시 수학을 잘해서 존경스럽다는 뜻이 아닌, ‘너희 한국(중국)인들은 숫자(이익, 돈)만 지나치게 밝히는 민족이다’라는 비아냥이 다분히 묻어 있는 그들 특유의 sarcasm(빈정댐)이다. ‘왜 이리 기운이 없어, 또 돈 세느라고 밤 샜구나?’와 같은 맥락의 질문이다.

필자는 요즘 이런 질문들을 받으면 오히려 정색을 하고 이렇게 대답해주기도 한다. “나 북한에서 온 거 티 많이 나니?”, 혹은 “나는 밀입국한 정치테러범인데 김정은과 CIA에게 동시에 쫓기고 있으니 제발 모른 척 해줘”등의 대답으로 시치미를 떼면 그들은 당혹감과 웃음이 뒤섞인 묘한 표정을 짓는다.

'다인종국가'처럼 보이는 미국.
‘다인종국가’처럼 보이는 미국.

백인들의 나라, 멕시코 출신조차

일찌감치 이민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전세계 인종들이 다양한 문화를 이루고 사는 미국이지만, 여전히 미국은 백인의 나라이고 백인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2020년 Census 인구조사에 나타난 미국 백인의 비율은 약 77%이다.(필자는 유럽계 백인 비율을 약 60% 정도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이 백인이라는 민족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의 후예인 앵글로 색슨(Anglo-Saxons)만을 백인으로 인정한다면 그 비율은 현격히 줄어들 것이지만, 미국에서 “백인”이라고 할 때는 일반적으로 유럽계 출신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는 주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의 유럽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온 사람들을 포함하며, 그 외에도 중동 및 북아프리카 출신의 사람들과 유태계, 동유럽과 러시아계도 포함될 수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멕시코계들조차 자신들을 백인으로 분류해주기 원하고 실제 많은 유태계나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인구조사 설문지에 자신들을 백인이라고 답한다.

멕시코 이민 4세인 우리 옆집 Ben도 자신이 백인임을 굳게 믿고 있다. 결국 “백인”이라는 용어는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인구조사 설문지.
미국의 인구조사 설문지.

이 그림을 보자. 인구조사 설문지에 나타난 백인의 분류는 무척이나 심플한 반면, 타인종들을 구분하는 항목들은 얼마나 친절하고(?) 상세한가. 만일 당신이 이 설문조사를 마주한다면 자신을 나타내는 인종구분에 “백인”이라고 체크하고 싶은 2, 3세대 이후 이민자들의 심리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백인 Vs 비백인들의 대결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은 미국 대선은 이번에도 역시나 ‘백인’과 ‘비(非)백인’들의 대결 양상으로 가고 있다. 이번 선거가 유색인종들에게 빼앗긴 경제권과 일자리, 복지혜택을 되찾고 싶은 백인들과, 백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와 기득권, 그리고 그들의 민족적 우월감까지 차지하고 싶은 비백인계들의 대결이라 하면 너무 비약한 것일까?

필자는 이번 대선전에서 처음부터 트럼프 우세를 점쳐왔다. 백인우월주의가 이 미국 땅에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를 40년 가까운 미국 생활을 하며 처절하게 체험해 왔기 때문이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는 미국이 드디어 백인우월주의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지만, 지난 2016년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에 승리했을 때는 역시 이 나라의 주류가 사수하고자 하는 백인우월주의를 무너뜨리려면 ‘아직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하겠구나’ 하는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인구 3억 5천만명을 가진 최강대국의 대통령을 뽑는데, 이번 선거 역시 미국인들은 ‘광인 트럼프’와 ‘별로 특별할 것 없는 해리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더 잘나고 능력 있으며 희망적인 사람을 뽑고 싶은 마음이 미국인들이라고 왜 없을까? 여담이지만, 한국의 대통령과 영부인이 보여주고 있는 현재의 절망적이고 참혹한 모습을 유권자들이 선거 전에 알았더라면, 단언컨대 윤석열은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너무나도 다른 선거 전의 윤석열과 대통령 당선 후의 윤석열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 알려진 트럼프의 부적절함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트럼프는 윤석열처럼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인물이 아니다. 미국인들은 트럼프가 젊은 시절부터 어떻게 사업을 꾸려 왔으며 어떤 사상을 가진 인물이고, 어떤 물에서 놀던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남성 우월주의자이고, ‘이민자들은 모두 범죄자’라는 확신에 가득차 있으며, 수많은 의혹과 범죄에 연루되어 있고, 그 얕디얕은 어휘력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선동적이고 궤변에 넘치는 발언들을 일삼으며, 광기가 넘치는 인물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반에 가까운 미국인들은 트럼프에게 표를 던져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트럼프가 줄기차게 내세우고 있는 가치(?)인 “Make America Great Again(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그동안 이민자들에게 야금야금 빼앗겨 온 백인들의 기득권을 트럼프가 다시 찾아줄 것이라는 백인들의 기대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하는 고도의 심리전술이다. 백인들에게 이민자들은 겉으로는 경멸의 대상일지 몰라도, 이미 걸리적거림을 넘어 불편한 존재가 된지 오래다. 어쩌면 불편함을 넘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인들의 자존심 포드와 GM은 도요타와 현대차에, 애플은 삼성과 샤오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화웨이와 TCS등에 자리를 위협받은지 오래다. NASA나 Google등 최고 기술기업들의 수석 엔지니어 자리는 이미 인도계, 중국계 등이 꿰차고 있다. 영화, 음악 등 예술계 분야조차 유색인종들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2024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에서는 애론 저지의 뉴욕 양키스가 떠오른 아시아의 샛별 오타니 쇼헤이의 LA다저스에 힘도 써보지 못하고 시리즈 전적 1대 4로 패했다.

아시아인종 오타니의 LA다저스가 백인종 애론 저지의 뉴욕 양키스를 꺾고 2024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아인종 오타니의 LA다저스가 백인종 애론 저지의 뉴욕 양키스를 꺾고 2024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먹혀드는 트럼프의 심리전술

트럼프의 심리전술은 이런 백인들의 무너진 자존감과 불안심리를 100% 이용하고 있다. 그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 ‘미국의 민족주의’를 강조해 왔다. “America First”라는 슬로건을 통해 백인 유권자들에게 그들의 문화와 가치를 보호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공포와 불안을 조성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민자와 범죄를 동일선상에 올려 백인 유권자들에게 위협감을 조성한다. 물론 그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자신’ 뿐이다.

그는 언제나 선정적이고 상징적인 언어들을 사용한다. 그런 단어들과 이미지를 사용하여 백인 유권자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그들이 느끼는 소외감이나 불만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남이가?”라는 동질감을 부각시킨다. 또한 ‘나를 뽑지 않으면 우리(백인)를 대변해 줄 사람은 절대 없다’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다. 이러한 심리전은 그들의 정체성과 불안감 그리고 소외감을 지속적으로 자극하여,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고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선거전에서 조 바이든이 내려가고 카멀라 해리스가 등판하던 날부터 여론조사는 널을 뛰었다. 해리스가 앞선다 싶으면 여지없이 트럼프가 따라붙고, 또 트럼프가 치고 나간다 싶으면 해리스가 금새 추격하는 양상이 반복되었다. 급기야 지난 10월 22일에서 24일까지 3일간 실시된 한 언론사(The Telegraph)의 현재 7개 경합주(아리조나, 조지아, 미시간,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제는 둘의 차이가 1~2% 정도밖에 나지 않고 오히려 트럼프가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이들 7개주에서 대등하거나 큰 폭의 차이로 우세하다는 여론조사를 등에 업고 선거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네바다를 제외한 나머지 6개 경합주에서 모두 패배했다. 선거 당일까지도 언론들은 힐러리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백인 유권자들은 이러한 여론조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통렬히 결과를 뒤집었다.

이번엔 어떨까? 불과 한달 전만 하더라도 해리스의 우세를 점치던 언론들은 학습의 효과 탓인지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엔 “비백인들의” 해리스가 보란듯이 이 예상을 뒤엎는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까? 그러러면 지난 2016년처럼 막판에 대결집한 백인들의 응집력 같은 힘을 비백인 유권자들이 보여주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해리스의 지지자들에게 그런 응집력은 없어 보인다.

해리스는 비백인계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는 아무런 실마리도 찾아내지 못했다. 트럼프와 구별되는 확실한 펀치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이 아닌 차기를 염두에 두고 대선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감수해야 했다.

유색인종 사회의 불안감 커질 듯

이번에 누가 당선되던 경제정책, 의료보건, 환경정책 등에는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트럼프는 세금과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공약한 반면, 해리스는 부유세 도입과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것에 차이가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미국은 다시 분열할 것이다. 아직도 미국은 “백인의 나라”라고 믿는 백인들과, 미국은 “다인종국가”라고 생각하는 유색인종간의 갈등은 지난 2016년보다 더 깊어질 것이 틀림없다.

트럼프는 강력한 이민 단속과 국경 보안을 강조해왔다. 이민자들은 더 많은 압박을 받을 것이고, 이민 규제가 강화될 경우 가족 분리나 추방의 위험도 증가할 수 있다. 인종 차별 문제는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로 인해 유색인종 커뮤니티 내에서 불안감이 증대하고, 사회적 긴장이나 인종혐오 범죄율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또한 보건 의료, 교육 및 사회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이 축소될 경우, 유색인종 커뮤니티는 이러한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될 수 있다. 트럼프는 지금도 말많은 경찰의 권한을 더 강화할 것이며, 이는 유색인종 커뮤니티에 대한 과도한 단속이나 차별적 대우로 이어질 것이다. 더불어 트럼프의 경제 정책이 특정 산업이나 지역에 집중될 경우, 유색인종 커뮤니티와 소수 민족 기업들에 대한 지원이 감소하게 된다.

11월 5일 선거에서 필자의 예상이 빗나갔으면 좋겠다. 이전 칼럼들을 읽으신 독자들은 짐작하겠지만 필자는 민주당 지지자라기보다는 그냥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의 인간됨과 범죄이력, 독선과 고집, 삐뚤어진 사상 등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품성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뒤 미국은 그의 손을 들어줄 것 같다. 암울한 4년의 시간이 기다린다. 그 시간을 부디 지혜롭게 버텨낼 수 있기를.

글쓴이

김유진 칼럼니스트

필자인 김유진(Eugene Kim)은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도미(渡美), 2004년까지 로스앤젤레스(LA) 소재 다국적 광고대행사 PanCom International에서 Creative Director 및 카피라이터로 근무했다. 현재는 커머셜 전문 보험회사 Cal-Kor Insurance의 부사장이자 프리랜서 번역가, 카피라이터 및 포토그래퍼로 활동중이다. 두루 아는 것은 많지만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는 잡학서생(雜學庶生)이라고 자신을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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