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또 권력 남용...미국식 배심원제 도입하자

[김유진의 미국 사는 이야기] 검찰, 고발사주 김웅 무혐의·김건희 불기소 한국 판검사들의 판단, 정말 공정한가? 배심원제의 도입해 사법부조리 없애야

미국 재판정내에서 배심원석 모습.
미국 재판정내에서 배심원석 모습.

한때 도마에 올랐던 배심원제

영미권에서 채택하고 있는 Jury System이라 불리는 배심원 제도는 오랜 전통을 가진 형사 사법제도로 미국과 영국, 스페인, 러시아 등에서 채택하고 있고,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들은 이를 더 강화한 참심제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배심원제는 법조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사법절차에 참여해 기소 여부 및 유무죄에 대한 결정을 하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 연방헌법은 6개월 이상의 구금형에 해당하는 죄로 기소된 사람은 배심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배심원 제도는 재판 공정성을 확보하고, 소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시민들에 의한 민주주의의 실행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많은 제도다.

지난 1995년 풋볼스타 O.J. 심슨(Simpson)이 이혼한 전 부인 니콜 심슨(Nicole Simpson) 과 그의 남자친구 로날드 골드만(Ronald Goldman) 두 사람을 살해한 혐의로 받았던 재판에서 배심원들의 평결 불일치로 무죄가 되었던 사례 등을 이유로 배심원 제도의 맹점과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유죄로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했기 때문이었지 배심원들의 판단에 어떠한 인종적, 정치적 영향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백인 아내를 살해했다는 흑인 풋볼스타의 유죄 혐의를 믿는 대다수의 여론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했을 뿐이다.

물론 전문적인 법률 지식 없이 무작위 선택에 의해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사건에 대해 법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법이라는 것도 일반 상식이라는 기본 토대 위에 문서화된 것이고, 재판 과정에서 검사 측과 변호인 측의 공방을 모두 듣고, 충분한 자료도 받고, 따로 모여 회의도 하는 등 보장장치도 있다. 배심원 선정도 아주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배심원, 실제 어떻게 운영되나

필자도 미국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두번이나 참여한 경험이 있다. 미국 시민은 누구나 배심원 제도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진다. 정당한 이유 없이 배심원 참여를 거부하면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미국에는 대배심원(Grand Jury)과 소배심원(Petit or Trial Jury) 제도 등 두 가지가 있는데, 배심원은 차량 관리국에 등록된 만 18세 이상의 성인들 중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무작위 선별된다. 선발되면 각자 개인적으로 통지서를 받는다.

그러나 통지를 받는다고 누구나 배심원석에 앉게 되는 것은 아니다. 배심원 통보를 받고 법원에 출두하면 먼저 상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와 있음에 깜짝 놀라게 된다. 보통 일반 소배심(Trial Jury) 재판에는 12명의 배심원들이 필요하다. 재판 과정에서 급한 용무로 결원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명의 예비배심원을 추가로 뽑는다. 그래서 총 14명의 일반 시민이 배심원석에 앉게 되며 예비배심원 2명은 전체 재판 과정에 배석할 수는 있지만 결원이 되기 전에는 재판에 참여할 수 없다.

배심원을 선정하는 과정도 녹록지 않다. 14명의 배심원을 선별하기 위해서 약 120~150명 정도의 일반시민이 출두 통지를 받는다. 배심원 후보들은 법정에 앉아 하루 2~4시간씩 3~5일간 검사, 변호사의 질문에 대답하고 인격적 결함은 없는지, 재판의 성격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소양을 갖췄는지, 인종차별적이거나 선민사상을 가지지 않았는지 등등에 대해 선별하는(screening)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 검사 측과 변호사 측이 모두 동의하는 사람만이 배심원석에 앉게 된다.

배심원에 탈락하기도 하는데

필자가 배심원에 참여한 재판의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실제로 있었던 재미있는 대화 몇 토막을 소개한다.

검사: 스미스 씨, 18세에서 21세 미만이 충분히 성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민: 아닙니다. 걔들이 무슨 어른이에요. 그들은 몸만 컸지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어요.
검사: 저 사람 탈락시켜 주세요.
판사: 스미스 씨, 집에 가셔도 좋습니다.

변호사: 엘리엇 씨, 결혼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민: 저는 독신입니다.
변호사: 독신인지 묻는 것이 아니고 결혼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었습니다.
시민: 왜 결혼을 해서 한 여자에게 평생 묶여 살아야 하죠? 결혼제도는 한 여자하고만 섹스를 하라는 악습입니다.
변호사: 알겠습니다. 판사님, 엘리엇 씨 탈락시켜 주세요.
판사: 엘리엇 씨, 집에 가셔도 좋습니다.
시민: 왜요, 독신이면 배심원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겁니까? 당신들은 지금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겁니다.
판사: 미국 법원은 기소 측과 변호인 측의 판단에 따라 배심원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나가 주세요.

검사: 윌슨 씨, 직업이 뭔가요?
시민: 네 저는 방송국에서 메이크업하는 일을 합니다.
검사: 오, 그래요? 어떤 프로그램을 주로 하시나요?
시민: 저는 CSI라는 프로그램에서 사고로 죽은 사람들 특수분장을 합니다.
검사: 그러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보는 일이 일반 사람들보다는 덜 무섭겠네요?
시민: 글쎄요, 실제로 죽은 사람을 보진 못해서…
변호사: 판사님, 지금 검사는 사건에 힌트를 줄 수 있는 질문들을 하고 있습니다.
판사: 인정합니다. 검사는 다른 배심원들에게 bias(영향)를 줄 수 있는 질문들을 삼가해 주세요.
시민: 이 사건이 살인사건인가 보죠?
판사: 그것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변호사: 판사님, 저분 탈락시켜 주세요.
판사: 윌슨 씨, 집으로 가셔도 좋습니다.

배심원 선정 장업이 끝날 때까지 시민들은 자신들이 참여할 재판이 어떤 사건인지 알지 못한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렇게 하나씩 걸러 내는 작업은 고되고,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법원은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이러한 과정들을 꿋꿋이 감수한다. 배심원에 참여하는 동안 일을 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급여 손실은 직장에서 보장해 주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정부에서는 배심원 참여 기간 동안 점심 식사비와 주차비 정도를 보상해 줄 뿐이다.

직장인이 아닌 자영업자는 일을 하지 못함으로써 입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육아 문제, 경제적 문제 등으로 배심원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은 정당한 사유서를 제출해서 면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은 배심원으로 봉사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와 명예로 여긴다.

“배심원 참여는 국민의 권리이자 명예”

대배심원(Grand Jury)은 검사의 기능을 갖는다. 즉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15~23명(연방법원에서는 16~23명)으로 구성되는 대배심원은 피고(용의자)에 대한 검사의 기소장을 중심으로 비공개적으로 조사를 실시해, 기소 여부를 담당 검사에게 통보한다. 이 과정에서 대배심원은 여러 증인들을 채택해 증언을 듣지만 용의자를 직접 만나지는 않는다. 담당 검사는 대배심원의 기소 결정에 승복해야 하며 승복하지 않을 경우 항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소배심원(Trial Jury)은 대배심원 제도와는 달리 재판 과정에서 직접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를 결정한다. 12명의 만장일치로 유무죄를 결정하는데, 판사는 유죄가 나올 경우 법적 양형 기준에 따라 형량을 정할 뿐이다. 만장일치가 되지 않는 경우를 의견 불일치(Hung Jury)라고 하는데, 이 경우 판사는 다시 14명의 배심원을 소집해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할 수도 있고, 검사가 재기소를 포기하면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받는다. 소배심원은 대배심원이 비공개 비밀리에 진행되는 것과는 달리 재판 과정에 참석해 검사, 변호인, 피고, 원고, 증인들 등의 증언을 듣고 Jury Room에 모여서 유무죄를 결정한다. 배심원 중 한 명이 이 결정을 공개된 재판정에서 판사에게 전달한다.

적어도 배심원석에 앉게 되는 사람은 보편타당한 기본적 지성과 인성, 이해력, 한쪽으로 휩쓸리지 않는 중립성, 감정보다는 사실관계(facts)에 우선한 판단 능력 등을 갖춘 사람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격이 특이하거나 모난 사람들,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들은 배심원 선정 작업에서 거의 90% 이상 탈락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필자가 미국 법원의 배심원석에 앉아 보았던 경험은 자부심을 가져도 될만한 일이라 스스로 평가한다. 필자가 참여했던 재판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밝힐 수 없다. 배심원 선서 때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참여했던 필자를 비롯한 나머지 11명의 배심원들은 정말 열심히, 그리고 냉정하게 듣고, 의논하고, 판단했다. Jury Room에서 약간의 언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한 증거와 자료에 입각해서 객관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한국,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 있나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배심원제는 상당히 합리적인 법제도라 할 수 있다. 개인의 감정이 아닌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주의에 입각해 일반 시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많은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한국처럼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외부 압력에 의해 판결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도입이 시급하다고 본다.

다만 그 과정이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기까지는 상당한 검토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2008년부터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참여 재판제도라는 한국식 배심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영미의 배심제와 대륙의 참심제 중 어느 것을 도입할지 아니면 혼합제도를 도입할지 고민 중에 있다고 하지만 현행 헌법상 적법한 법률에 의거하여 중립적인 재판을 받을 시민들의 권리가 실현되는 일은 아직 멀어만 보인다.

죄지은 사람은 벌 받고, 무고한 사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지극히 기본적인 보편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 국가는 국민을 통제할 기능을 상실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떠한가?

필자 또래들이 어렸을 때,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에 두엇은 곧바로 ‘판검사’라고 대답할 만큼 검사는 출세의 상징이자 권력과 부귀영화로 직진하는 일방통행로 같은 직업이었다. 대한민국의 검찰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아무리 중한 범죄를 저질러도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처벌 받지 않았고, 반대로 빵 하나를 훔쳐도 검사에게 밉보이면 중형을 면치 못한다. 오죽하면 기소로 명성을 얻고, 덮는 수사로 부를 얻는다는 말까지 있을까.

“검찰이 공정하다”는 믿음 없어져

대한민국의 검사가 소위 ‘정의’와 ‘공정’을 상징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다. 그 대신 ‘칼잡이’, ‘영감님,’ ‘조폭 집단’ 등의 별명을 가진 국민적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 부조리를 과연 무엇으로 깨부술 것인가. 어떤 형태든 한국의 사법제도는 개선되어야 하고 검찰은 개혁되어야 한다. 검찰개혁의 가장 우선과제는 기소권과 수사권의 완전 분리라 믿는다. 배심원 제도는 그 이후에나 도입이 가능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가치, 즉 ‘공정과 상식’은 불과 100여 일 만에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오히려 가장 불공정하고 가장 상식적이지 못한 절대적 검찰 권력을 앞세워 국민들을 겁박하고 있는 정부의 모습을 본다. 수십 가지 범죄 의혹으로 얼룩졌으면서도 법의 구속력 저만치 바깥에 서서 모두를 조롱하고 있는 대통령 내외. 역시 각종 비리와 범죄 은닉 혐의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집권당 의원들과 정부 관료들. 국민들은 권력의 곁에서 빌붙을 것인지 아니면 남자가 애를 낳게 하는 것 빼고는 없는 죄도 만들어낸다는 그들의 시퍼런 칼 앞에 납작 엎드려 살아가야 하는지 선택해야 한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원했던 검찰개혁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이런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12세기 무렵 영국에서 시작된 초기의 배심원 제도는 당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교회와 봉건 영주들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권력이 과도하게 한쪽으로 치우치면 균형을 잃게 되고 그에 따라 억울한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을 900년 전 영국의 민주주의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과감히 개혁을 시도했던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최소한 9백 년 전 영국의 수준까지만큼은 따라갈 만한 용기와 결단력을 가졌는가?

글쓴이

김유진 칼럼니스트

필자인 김유진(Eugene Kim)은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도미(渡美), 2004년까지 로스앤젤레스(LA) 소재 다국적 광고대행사 PanCom International에서 Creative Director 및 카피라이터로 근무했다. 현재는 커머셜 전문 보험회사 Cal-Kor Insurance의 부사장이자 프리랜서 번역가, 카피라이터 및 포토그래퍼로 활동중이다. 두루 아는 것은 많지만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는 잡학서생(雜學庶生)이라고 자신을 평한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