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2세·3세 지도자를 볼 수 있을까
엘리자베스 2세가 칭송받는 이유와 찰스 3세가 비난받는 이유는 똑같아 ‘사회적 책임’ 다하는 지도자를 바란다
지난 8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52년 25세의 나이에 여왕에 오른 이래 70년 동안 집권하였기에 여성 국가 원수로는 세계 최장 집권 기록이고 남녀를 통틀어도 72년을 집권한 루이 14세(Le Roi Louis XIV)에 이어 역대 2위이다.
2세· 3세 왕들이 출현한 배경은
우리가 흔히 엘리자베스 여왕이라고 간략히 부르지만, 정확히는 ‘엘리자베스 2세(Queen Elizabeth II)’다. 서양의 왕들은 이렇게 이름 뒤에 숫자를 붙이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사실 엘리자베스 2세가 왕위를 물려받은 아버지도 ‘조지 6세(King George VI)’였고 뒤를 이어 즉위한 아들도 ‘찰스 3세(Charles III)’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를 찾기가 더 힘들 정도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인류가 이름만을 가지다가 성(姓, surname, family name)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는데 일찍부터 ‘성’을 사용했던 동양권과 달리 서양에서는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도입되었다. 그런데 성이 등장한 이후에도 서양에서는 ‘샤를 대제(Emperor Charlemagne)’와 ‘프란체스코 교황(Pope Francis)’처럼 왕과 교황의 경우에는 단일명(mononym)을 사용했다. 이는 왕과 교황에게 일반 백성과 다른 차원의 사람이라는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다만 이름이 같을 경우에는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이름 뒤에 수식어를 붙이고는 했다. 예컨대 ‘위대한 왕 찰스(Charles the Great)’, 미남 왕 펠레페(Felipe el Hermoso)’, ‘경건 왕 루이(Louis le Pieux)’와 같은 식이다.

그러다가 이름 뒤에 숫자를 붙여 구분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왕이 살아 있을 때는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매우 예외적으로, ‘현자(賢者) 샤를(Charles le Sage)’만 생전에 샤를 5세(Charles V)로 불렸을 뿐이다. 그 이후의 왕들에게는 지속되지 않았다. 예컨대 루이 13세도 루이 13세가 아니라 ‘정의왕 루이(Louis le Juste)’로 불렸던 것이다. 숫자는 사후에 역사가들에 의해 명명되는 것이 상례였다. 실제로 일반 국민들은 숫자없이 단지 ‘루이왕(le Roi Louis)’, ‘우리 루이 왕(notre Roi Louis)’으로 불렀다.
그러다 역사학자들의 노력으로 19세기에 들어서부터는 과거의 왕들뿐아니라 재위하고 있는 현왕까지도 숫자 부여 방식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모든 문제를 가장 단순화하고 표준화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서양의 왕들에서 동명이인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이러한 명명 체계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루이(Louis)’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프랑크왕국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위에서 언급한 샤를 대제(Charlemagne)의 아들인 ‘경건 왕 루이(Louis le Pieux)’가 스스로를 왕국의 시조(始祖)인 ‘클로비스(Clovis)’의 이름을 따서 ‘루이(Louis)’라 칭한 것이 시초다.
‘루이’는 ‘클로비스’의 발음이 변이한 형태인데 스페인어에서는 ‘루이스(Luis)’, 독일어에서는 ‘루드비히(Ludwig)’가 되었다. 그가 이렇게 스스로를 ‘루이’라 칭한 이후에도 후대 왕들이 계속해서 ‘루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여러 명의 루이 왕들이 나타내게 되었다.
선대의 후광을 이용하려는 의도
이처럼 국민의 존경을 받은 훌륭한 선대 왕의 이름을 자신에게 붙이는 것은 그 이름이 주는 권위와 이미지의 후광을 입어서 자신도 존경받고 인기있는 왕이 되는데 도움을 받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이는 하나의 문화가 되어 꼭 왕족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아들이 물려받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두 사람의 이름이 같아서 구분이 필요할 때는 아버지를 ‘시니어(Mr. X senior)’, 아들을 ‘주니어(Mr. X junior)’라고 구분하면 그만이다.
물론 이웃 나라인 중국, 일본도 그러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는 예가 없다. 그러나 선대 지도자의 후광을 입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는 많이 있다. 예를 들어 1997년 15대 대선 때 이인제 의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모나 말투를 흉내낸 경우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버지의 이미지를 많이 활용한 사례 등이 그것일 것이다.
위대함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로부터
서양에서 위대한 선대 정치지도자가 주는 후광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아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다. 프랑스어인 이 말은 영어로 직역하면 ‘Nobility obligates’로서 고귀함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국가를 이끄는 왕가나 귀족들, 오늘날로 하면 정치 지도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즐기는 쪽에 치중하는 반면에 국민에게 해야할 의무를 다하는 데는 소홀히 하는 듯하여 그 의미가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 말이다.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인해 서양에서는 왕과 귀족들이 전쟁이 나면 반드시 참가하였고 오늘날에도 그 정신이 이어져서 참전을 하거나 군 복무를 완수하지 않으면 정치지도자로 나설 수 없는 사회적 묵계가 형성되어 있다. 엘리자베스 2세도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때 영국 여군 부대인 ATS에 입대해 참전한 바가 있다. 엘리자베스 2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인기가 있었던 것은 이외에도 자신과 왕가의 이익보다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많은 언행을 보인 것에 기인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한마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충실한 것이 그 존경과 인기의 원천이라 할 것이다.
그 결과 영국 정부가 추모 기간 가이드라인으로 민간에 특별한 요청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민간 단체들이 앞다투어 여왕의 서거에 대한 애도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도 10~12일 예정된 경기를 연기하기로 하였고, 영국 중앙은행도 다음주로 예정된 금리 결정 회의를 연기하기로 했으며, 파업을 벌이던 영국 공공부문 노동자들도 파업을 중단하였다.
찰스3세가 비난받는 이유도 생각하길
반면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왕위를 아들 찰스 3세에게 빨리 넘겨주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그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인데, 이는 분명히 찰스 3세가 영국민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부족한 사람으로 비쳤기 때문이리라. 영국의 사례는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 존경을 못 받는 이유를 잘 설명해 주는 듯하다. 군 입대를 회피하고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존재는 한국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우리도 이제 서구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으면 정치지도자가 정치판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도록 할 수 없을까? 한번만이라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다한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우리에게도 그의 이름을 붙인 2세, 3세 동명이인의 정치 지도자들이 탄생할지 모른다는 웃픈(?)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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