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센 강의 부키니스트, 책과 행동!

[박만규의 에티모버스(Etymoverse)] 책의 나라 프랑스, 문화유산 휴업하려 센 강의 부키니스트는 어떻게 생겼나 book은 행동의 언어...이들을 응원한다

파리 센강변 고서적상 거리를 지나는 아이들. 사진=게티이미지
파리 센강변 고서적상 거리를 지나는 아이들. 사진=게티이미지
  • ‘에티모버스’(Etymoverse)’는 어원을 뜻하는 Etymology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를 필자가 합성한 말이다. 어원에는 옛사람들의 사고가 비유 속에 담겨 있어 세계에 대한 인류의 다양하고 심오한 사유를 알게 해준다. 이는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내년 파리 올림픽의 희생양

요즘 프랑스는 내년에 치를 올림픽 준비에 분주하다. 특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해 줄, 오직 파리 올림픽만의 독창성을 보여주기 위해 온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센 강변에서 열리는 수상(水上) 개막식이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운동장이나 땅이 아니라 물 위에서 펼쳐지는 개막식인 것이다.

2024년 7월 26일, 206개 대표단 약 1만 500명의 선수들이 경기장이 아니라 강변에서 열리는 전례 없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퍼레이드를 펼칠 것이고, 이를 보기 위해 수십 만 명의 인파가 센 강변으로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요즘 이의 준비 과정에서 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고 있다.

개막식 행사를 위해 센 강변의 명물인 ‘녹색 상자’(boîtes vertes)를 철거하는 문제 때문이다. 녹색 상자란 ‘부키니스트’(bouquinistes)라 불리는 고서상(古書商)들이 오래된 책과 중고 서적을 담아 진열해 놓는 일종의 상자형 좌판대이다. 센 강변 4km에 이르는 거리에 200여 개의 이 같은 중고 서점이 1000여 개의 상자를 관리하며 약 30만 권의 책과 수많은 인쇄물, 잡지, 수집가 카드 등을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이 녹색 상자를 경찰과 파리 시당국은 안전상의 이유로 철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랫동안 센 강변의 명물로 자리잡아 파리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 녹색 상자를 철거하라니, 부키니스트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하고 있다. 당국은 폭발물 설치에 악용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이유로 내걸고 있지만, 사실은 개막식의 화려한 공연을 보다 잘 볼 수 있도록 관객과 시청자들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들은 확신한다.

파리 시는 경찰청과 함께 이들을 달래기 위해 녹색 상자를 개막식이 끝난 후 가능한 한 빨리 재설치하고 파손된 것들에 대한 리노베이션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지만, 파리 시민들까지 함께 나서서 이 같은 조처에 항의하며 이들 부키니스트들을 응원해 주고 있다.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 구상도. 파리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제공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 구상도. 파리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제공

센 강변의 고서적상, 부키니스트

이런 모습은 파리 시민들이 이 중고 서점들에 대해 얼마나 커다란 애착을 갖고 있는지 잘 설명해 주는 것이다. 녹색 상자의 역사는 16세기 무렵 서적 행상(colporteurs)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한때 서점 길드의 압력에 따라 1649년 규정으로 서적 행상과 강변의 노점이 금지되었었다. 그러다가 계몽주의와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지식의 습득과 사상의 자유를 강조하는 문화 기조가 형성되어 융성하면서 파리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 잡았다.

파리의 센 강변(les Rives de la Seine à Paris)이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patrimoine mondial de l’Unesco)으로 지정된 이후, 프랑스는 2019년 이 센 강변의 ‘부키니스트’를 프랑스의 국가무형문화유산(Patrimoine culturel immatériel de l’inventaire français)으로 지정하였다. 이 조처의 최종 목표는 이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patrimoine culturel immatériel de l’Unesco)에 등재하기 위함이다.

이토록 국민들의 사랑받는 문화유산이고, 16명으로 노벨문학상을 가장 많이 배출한 문학의 나라답게, 매년 세계 최고의 도서 애호가 행사가 열리는 도시답게, 세계 서적의 수도라는 자부심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들 부키니스트들이 이제는 개막식의 안전을 핑계로 내몰리는 처지가 된 것이니 어찌 충격이 아닐 수가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그들의 항거는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파리 센 강변의 고서적을 전시해놓은 진열대.
파리 센 강변의 고서적을 전시해놓은 진열대.

여기서 잠시 ‘부키니스트’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자. 프랑스어에서 책은 livre(리브르)라고 한다. 그리고 책을 판매하는 서점은 librairie(리브래리)라고 한다. 이 말이 영어에 들어가 library(라이브러리)가 되었는데, 유통과정에서 조금 착오(?)가 생겨서 서점이 아니라 영어에서는 ‘도서관’이라는 뜻이 되었다. 그런데 프랑스에 서점상을 뜻하는 libraire(리브래르)라는 단어가 이미 있는데 센강의 고서상인만은 특별히 bouquiniste(부키니스트)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비록 속어이긴 하지만 프랑스어에도 책을 뜻하는 bouquin(부캥)이라는 단어가 있다. ‘고서’(古書)를 가리키거나 또는 단지 일반적인 ‘책’을 가리키는 속된 말인 이 말은 영어의 book(북)과 어원이 같다. 15세기 중세 네덜란드어 bœc(작은 책자)에서 프랑스어에 들어온 말이다.

이는 원시게르만어 *bōk(ō)-에서 기원하여 여러 게르만어로 퍼진 말로서, 독일어에서는 Buch(뷔흐), 네덜란드어에서는 boek(북), 스웨덴어에서는 bok(복), 그리고 영어에서는 book이 되었다. 그런데 책을 뜻하는 이 *bōk(ō)-는 본래 너도밤나무를 가리키는 *bokiz에서 파생된 말이다. 너도밤나무를 뜻하는 영어의 beech도 여기에서 유래한 말로서, 옛날에 주로 이 너도밤나무에 글자를 새겨넣었다 보니 이로부터 문서나 책을 뜻하는 말이 된 것이다. 라틴 문자를 받아들이기 이전에 게르만족이 사용하던 문자인 룬(Runes) 문자가 새겨진 나무 조각들이 발견되면서 이 어원은 사실로 입증되었다. 이는 또한 책을 뜻하는 독일어의 Buch(뷔흐)와 너도밤나무를 뜻하는 Buche(뷔허)를 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발음과 철자가 거의 동일하지 않은가?

책 관련된 book, library, bible의 어원

영어에서는 이 book이 동사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책에) 적다, 기록하다’라는 의미로 1200년경부터 쓰였다. 이후 1841년 ‘좌석이나 장소의 이름을 기록하다’, 즉 ‘등록하다’, ‘(철도 등의) 티켓을 발행하다’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그러다가 호텔의 방에 이름을 등록하거나 항공기의 좌석에 이름을 기록하는 것, 즉 예약하는 행위로까지 발전했다. 이 말은 동명사형인 ‘booking’(부킹)의 형태로 한국어에도 들어와 예약의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영어의 library를 낳은 프랑스어의 livre(리브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에서는 libro(리브로)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이들 역시 book과 마찬가지로 식물에서 온 말이다. 이들은 ‘나무의 속 껍질’을 뜻하는 라틴어 liber(리베르)에서 기원한 말로서, 나무의 껍질을 벗겨내어 그 안쪽에다 글자를 새겨넣었기 때문에 ‘문서’, ‘책’이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liber는 영어의 leaf(리프)와 만난다. 많은 어원학자들은 나무의 속껍질을 가리키는 liber가 환유(metonymy, 어떤 것을 자신과 인접한 다른 대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에 의해 ‘껍질’과 인접한 대상인 ‘잎’을 가리키는 말로 전이되었다고 본다. 독일어 Laub(라우프)와 네덜란드어 loof(러프) 등도 마찬가지로 잎을 나타낸다.

leaf는 ‘잎’의 의미로부터 은유(metaphor)를 통해 모양이 유사한 ‘종이 한 장’과 ‘책의 페이지’ 등의 의미로 확장되면서 ‘책’과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어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의미의 단어들을 파생시키기도 하였다.

우선 떠오르는 것이 ‘숙소, 숙박업소’를 뜻하는 lodge이다. 이는 프랑스어 loge에서 들어온 말인데, 이는 본래 나뭇잎으로 지붕을 두른 그늘길(산책길), 혹은 나뭇잎 지붕으로 가려진 오두막집을 뜻했다. 현대 독일어에는 Laube의 형태로 이 단어가 여전히 존재한다.

또 하나의 단어는 lobby(로비)이다. 우리가 흔히 큰 건물 현관 입구의 넓은 공간으로, 또 사람들을 만나거나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나뭇잎으로 지붕을 덮은 길을 중세 라틴어에서는 laubia(라우비아) 또는 lobia(로비아)라고 했는데, 16세기에는 이런 길이 수도원 건물에 많았다. 그러다가 이것이 수도원을 떠나 정치 분야로 옮아가서 1630년대부터는 영국 하원(House of Commons) 건물에 있는 길을 가리키다가, 아예 하원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79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이 단어는 입법 기관 입구의 큰 현관을 가리키게 되었는데, 이것이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국회나 호텔의 로비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나아가 국회의 로비에서 입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이 만나서 교섭을 하다 보니 ‘로비’는 그 같은 정치적인 교섭행위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무엇일까? 단연 성경, 즉 Bible이다. 그런데 이 Bible도 원래는 단지 책을 뜻하는 말이었다. Bible(성경)은 그리스어로 ‘ta biblia to hagia’(성스러운 책)라고 하는데 이의 라틴어 번역이 ‘biblia sacra’이다. 여기에서 형용사 ‘성스러운’을 뜻하는 sacra를 빼고 ‘책’을 뜻하는 biblia만을 남겨 bible(바이블)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책’을 뜻하는 biblia는 어디에서 온 말일까?

이는 ‘종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biblion에서 온 말이다. 이것이 중세 라틴어 biblia에서 책의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고대 프랑스어 bible(비블)이 되고 이것이 영어의 bible(바이블)이 된 것이다. 또 우리가 논문 뒤에 붙이는 참고문헌을 흔히 영어에서 bibliography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앞부분인 biblio에도 이 어근을 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어 biblion(종이)은 어디에서 온 말일까? 이는 byblos에서 온 말로서, 이집트어의 papyrus(파피루스, 즉 나일강에서 자라는 수생 식물로서 그 풀 줄기의 섬유로 종이를 만들었던 식물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papyrus는 고대 프랑스어 papier(파피에)를 거쳐 현대 영어의 paper(페이퍼)로 변신하여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book의 후예’ 부키니스트를 응원하며

정리해 보자.

book은 너도밤나무(beech)에 글자를 새겼기에 책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서 ‘기록하다’, ‘등록하다’, ‘예약하다’와 같은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진화하여 왔다.

livre(리브르)는 나무껍질 안쪽에 글자를 새겼기에 책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보관하는 library를 파생시켰다. 또 껍질과 인접한 leaf(나뭇잎)를 통해 나뭇잎 지붕이 덮인 길, 나뭇잎 지붕이 덮힌 집을 뜻을 거쳐 집과 숙소를 뜻하는 lodge를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 지붕 덮인 입구와 현관, 그리고 현관의 안쪽 공간을 가리키는 lobby까지 다양한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한편 bible(성경)은 이집트의 papyrus에서 출발하여 그리스어의 biblion(종이)를 파생시키고 이어 biblia(책)를 거쳐 궁극적으로 성경이라는 책의 ‘콘텐츠’에 이르렀다.

요약하면 책을 뜻하는 세 어휘는 모두 책의 재료가 되었던 식물에서 출발한 공통점을 가지면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의미를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bible은 성경이라는 ‘콘텐츠’로, livre는 도서관, 집, 현관, 로비라는 ‘공간’으로, book은 기록과 등록, 예약이라는 ‘행위’ 쪽으로 의미 영역을 키워 온 것이다.

프랑스의 ‘부키니스트’들은 ‘행위’를 추구하는 book(북)의 후예답게, 책의 판매 행위를 기본으로, 고객들과의 지적인 대화를 통한 지식의 교환 행위(사실 이들은 일반 서점 주인에 비해 훨씬 더 많이 고객들과의 대화에 치중하고, 비록 돈은 많이 못 벌지만 그것을 이 직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들어 꺼져가는 독서 행위를 지켜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프랑스인들에게 책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배양하는 매체이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비판 정신’을 기르기 위해 책은 필수적인 존재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준하는 바칼로레아(baccalauréat)에 철학을 시험과목에 넣고 있다. 정답의 존재를 굳건히 믿고 언제나 객관적 기준으로 당락을 결정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도입할 수 없는 제도이다.

주지하다시피 프랑스는 표현의 자유를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이다. 그러면서도 타인의 표현의 자유도 내 목숨처럼 지켜 주기 위해 관용의 정신, 톨레랑스(tolérance)를 함께 추구하는 나라이다. 이런 프랑스에서 책은 이 모든 것을 지켜 주는 등불과도 같은 존재이다.

오늘도 책을 지키기 위해 세느강으로 출근하는 부키니스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베가북스)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씨엘) 등이 있다. 현재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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