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건(大建)과 안드레아, 그리고 우리

[박만규의 에티모버스(Etymoverse)] 바티칸 대성당에 동양 성인으로는 최초로 서양 이름에 ‘대건’ 세레명 등장할 날도 ‘클 大, 세울 建’은 어떤 의미로 추모될까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부 벽감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성상이 세워졌다. 성상은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한국의 16개 교구가 제작비를 지원했다. 성상 제작에 사용된 대리석은 이탈리아 카라라 지역에서 나는 대리석이다. 사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부 벽감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성상이 세워졌다. 성상은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한국의 16개 교구가 제작비를 지원했다. 성상 제작에 사용된 대리석은 이탈리아 카라라 지역에서 나는 대리석이다. 사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 에티모버스’(Etymoverse)’는 어원을 뜻하는 Etymology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를 필자가 합성한 말이다. 어원에는 옛사람들의 사고가 비유 속에 담겨 있어 세계에 대한 인류의 다양하고 심오한 사유를 알게 해준다. 이는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지난 16일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 바티칸 대성당에 세워졌다. 이는 한국 가톨릭 교회사뿐 아니라 전 세계 가톨릭 역사를 통틀어서도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성 베드로 대성전에 동양의 성인상이 세워진 것이 역사상 처음이다. 이는 이제부터는 성인(聖人) 시성(諡聖)에 있어 동서양의 차별이 없어지고 모든 지역 교회가 더불어 함께 걸어갈 것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실제로 성상 축복식의 주례를 맡은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도 “김대건 신부 성상을 시작으로 이제 각 민족과 나라를 대표하는 성인들의 성상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세워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또한 그동안 한국 신자들만 알고 있던 김대건 신부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실질적인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이미 1984년에 김대건 신부가 성인의 반열에 올랐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성상 봉헌을 계기로, 그간 일방적으로 한국의 신자들이 외국의 성인들을 경배하는 불균형에서 벗어나 이제는 외국의 신자들도 한국의 성인을 경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한국인 신자들이 요셉, 프란치스코, 미카엘, 테레사, 크리스티나, 도미니카 등 서양인 이름 일색인 현재의 세례명에서 나아가 ‘대건’(Taegon)이라는 한국인 이름이 외국인들에 의해 사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서양 사회에서는 일찍부터 세례명(洗禮名, Christian name, baptismal name)이 일상적인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다. 영어권만 보더라도 Paul(폴)은 세례명 ‘바오로’에서 온 것이고, Peter(피터)는 베드로(Petrus), Jackob(제이콥, 약칭 Jack(잭))은 야곱(Iacobus), John(존)은 요한(Johannes)에서 온 것이다. 유럽 각국에서는 이처럼 성인의 이름을 자기네 언어로 표기하면서 세례명을 폭넓게 받아들였는데, Paul, Peter, Jack, John은 프랑스어로는 각각 Paul(폴), Pierre(피에르), Jacques(자크), 쟝(Jean)이 되었다. John의 경우 독일어로는 Johann(요한), 스페인어로는 Juan(후안), 이탈리아어로는 Giovanni(죠반니), 러시아어로는 Иван(Ivan, 이반)이다. 이처럼 세례명이 보편화되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인 독재자 스탈린(Stalin)도 Ио́сиф(Iosif, 이오시프)라는 이름을 가졌었는데 이는 Joseph(조세프), 즉 요셉(Iōsēph)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기독교의 세례명이 거의 모든 서양인의 일상적인 이름이 되었을까?

사실 서양 사회가 처음부터 이렇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본래 그들은 이름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었다. Smith(대장장이), Sailor(뱃사람), Carpenter(목수), Baker(제빵사)처럼 직업명이나 Woods(숲), Dupont(뒤퐁, 다리 근처) 등과 같이 주거지나 출신지, 그리고 Great, Little, White, Red 등과 같은 신체적 특성, Wise(현명함), Béatrice(베이트리스, 행복), Sophie(지혜), Victoria(승리) 등처럼 정신적 특성 혹은 가치 등을 이용해서 지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세가 AD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380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국교로 인정하면서부터, 기독교의 여러 의례가 일상 생활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개인의 작명 방식에도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기독교 성인(聖人, saint)의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성인들의 이름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 아이의 세례명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왜 하필 성인의 이름이었을까?

기독교에서 성인이란 영적인 삶을 살았거나 영웅적인 덕행을 쌓다가 순교하여 신도들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세례명으로 이 같은 성인의 이름을 따는 것은 우선 그 성인을 평생을 통틀어 나를 보호하고 지켜 줄 사람으로 정하고 의지하기 위한 것이다. 즉 그 성인을 보호자로 삼아 존경하며, 그 성인을 통하여 하느님께 청원하며, 하느님의 보호를 받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일종의 동일시 심리로서, 세례명으로 선택한 성인을 롤모델로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면, 나 자신도 그 성인과 동일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김대건 신부 자신도 성인의 이름을 자신의 세례명으로 취했다. 그가 택한 세례명은 Andreas(안드레아)였다. 그는 왜 안드레아로 정했을까? 안드레아의 어떤 점을 닮고 싶었을까? 예수의 첫 제자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일까? 아니면 Andreas가 그리스어(Andros)로 ‘남자, 남자다움, 강함’을 뜻하는 말이라서 그랬을까? 사실 4대에 걸쳐 순교한 집안의 아들이라 항상 따라다니는 죽음의 예감과 싸우는 용기가 그에게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비록 선천적으로 병약한 체질이어서 많은 병을 앓고 살았지만 실제로 그는 그 어떤 고난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기개를 보였다.

Andros는 이러한 의미 때문인지 여러 나라 언어로 유입되어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사용되고 있다. 영어로는 Andrew(앤드류), 프랑스어로는 André(앙드레), 이탈리아어에서는 Andrea(안드레아), 스페인어에서는 Andrés(안드레스), 독일어로는 Andreas(안드레아스) 러시아어로는 Andrey(안드레이)라고 한다. 스칸디나비아어에서는 Anders(안데르스)라고 하는데, 여기에 아들을 뜻하는 sen이 붙어 Andersen(안데르센)이 되었고, 영어에서 Anderson(앤더슨)이 되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다가 요즘은 스마트폰 운영체제의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 android(안드로이드)도 Andreas와 어원이 같다. 다만 여기서는 ‘남자’가 아니라 ‘사람’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한편 Alexander(알렉산더)도 Andreas와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이름인데, alexein(물리치다, 방어하다, 보호하다)와 andros(사람)의 구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결국 사람들을 지켜주는 사람인데, 알렉산더 대왕의 경우 국민의 보호자 쯤 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성화.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성화.

한편 김대건의 부모는 왜 그를 ‘대건’(大建)으로 지었을까? 이름을 성인의 목록에서 선택하는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이름을 짓는다. 한자 한 글자 한 글자의 의미를 생각하고 획수까지 고려하여 짓는다. 클 대(大), 세울 건(建)이니, 아들이 크게 건강하기를 기원해서였을까? 하지만 그는 육체적으로는 이름처럼 건강하지는 못했다. 아니면 그가 뜻을 ‘크게 세울 것을’ 기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앞서 언급하였듯이 사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굽히지 않았다. 안드레아(Andreas)답게 남자다웠다.

사실 김대건 신부의 성상을 제작한 한진섭(요셉) 조각가도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통해 그의 담대함과 배짱, 용기를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성인을 가리키는 말을 영어에서 saint라고 한다. 이 말은 프랑스어 saint(e)(생(트))에서 도입한 말로 스페인어에서는 Santo/Santa(산토/산타)’, 이탈리아어에서는 san(산)라고 하여 이와 유사하다. 그런데 본래 영어에는 saint 외에 holy라는 단어도 있다. 이 말은 원시인도유럽어(PIE) *kailo-에서 비롯된 말로 추정되는데 이는 ‘전체의, 손상되지 않은’을 뜻한다. 실제로 이 holy는 whole(전체의, 온전한)과 health(건강)와도 어원이 같다. ‘건강’도 몸 전체가 손상되지 않고 온전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요컨대 ‘성스러움’은 불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조금의 손상도 없이 전체를 그대로 유지하는 ‘완전한’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인 것이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그는 25년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사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완전한 삶을 살았다. 그의 성스러움(holyness)은 바로 그 완전성에서 나온다.

쉴새 없이 찾아온 어려움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온몸으로 당당하게 부딪쳤던 김대건 신부의 아름다운 용기를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본받기를 기대한다. 서양처럼 선택을 하건, 동양처럼 작명을 하건, 이름에는 의미가 담겨있다. 특히 부모들의 바람이 스며있다. 이제 세계인들에게 김대건 신부의 이름 ‘Taegon’은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어떤 의미로 선택이 될까?

이제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베가북스)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씨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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