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무역은 무엇을 남겼나?

[박만규의 광복절 기획 칼럼]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만든 이유④ 阿대륙에 전쟁과 불신·분열, 갈등 심화시켜 노예무역이 활발했던 지역, 경제발전 지체 한국 젊은이들, 일제 만행 잊지 않고 있나

노예무역은 사라졌지만, 아프리카 대륙에는 불신과 갈등이 남았다. 부족간 전쟁이 끊이지 않고 경제발전도 지체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노예무역은 사라졌지만, 아프리카 대륙에는 불신과 갈등이 남았다. 부족간 전쟁이 끊이지 않고 경제발전도 지체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해마다 광복절이면 우리가 독립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다른 나라에 예속되어 타민족에게 우리의 자유를 구속당하고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지 못하고 남에게 부림을 받는 처지가 된다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어디 있겠는가! 예속의 정도는 법적, 사회적, 경제적, 인격적 측면에서 참으로 다양하다. 그 가운데에서 인류의 역사상 가장 혹심한 흑인 노예의 실상을 필자가 얼마 전 다녀온 세네갈을 중심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 ① ‘고레 섬’, 노예 무역의 상징 ② ‘노예의 집’ 스토리텔링의 안팎 ③ 왜 인간은 다른 인간을 노예로 만들까? ④ 노예 무역은 무엇을 남겼나?

흑인 노예 무역을 통해 노예선의 선주들과 도매상인들은 막대한 부를 끌어모았다. 영국의 리버풀(Liverpool)과 프랑스의 낭트(Nantes)는 대표적인 노예선 출항지였는데 이들 도시는 삼각 무역을 통해 5배 정도의 남는 장사를 했다고 한다. 노예 무역은 결국 유럽과 아메리카라는 두 대륙의 발전과 아프리카라는 한 대륙의 파괴를 결과시켰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현재 아프리카의 가난 및 비참함과 일치한다.

캐나다의 경제학자 네이선 넌(Nathan Nunn) 교수와 아프리카 서부 국가 베냉(Benin)의 정치‧경제학자 레너드 원치콘(Leonard Wantchekon) 교수는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내전의 근본적인 원인이 노예무역에 있음을 밝혔다.

노예를 포획하기 위한 납치와 약탈, 부족간의 전쟁 등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개인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집단간의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나아가 사회 제도와 법규의 와해를 초래해 시장 거래와 같은 상호작용 자체를 저해함으로써 아프리카의 경제발전을 근본적으로 지연시켰다고 한다. 넌 교수와 원치콘 교수는 과거 노예무역이 활발했던 지역일수록 현재 경제발전이 지체되고 있음을 통계 분석을 통해 정확히 입증했다.

사실 흑인 노예 매매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이주였다. 4세기 동안 1200만~1400만명(다른 통계로는 2000만명)이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강제로 끌려갔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인간 사냥, 약탈, 생포를 위한 전쟁 등으로 100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했다. 이는 평화로이 살던 아프리카의 많은 왕국들을 붕괴시켰고, 당시 경제의 축이었던 농업 생산의 안정성을 완전히 파괴했다. 이는 또한 사회 및 정치 구조의 해체에 그치지 않고 가족 단위의 해체를 초래했다, 특히 사춘기와 청년기의 남녀를 선택적으로 데려감으로써 대륙의 인구를 지속적으로 감소시켰다.

아직도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아프리카가 여전히 재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프리카 국가의 일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세네갈에 도착한 다음 날 ‘노예의 집’이 있는 고레 섬에 가기 위해 승선장에 도착했을 때 겪은 무질서가 바로 그들의 현재 모습이었다.

고작 2㎞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코앞의 섬에 가는 그 길이 그토록 오랫동안 밀고 당기고 몸싸움을 해야 하는 고행길이 될 줄은 몰랐다. 토요일이라 배를 타려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밀치고 당기고 하는 바람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한두 시간째 계속되었던 것이다.

고레 섬 행 선박 탑승 줄
고레 섬 행 선박 탑승 줄

가까이 가보니 단지 사람이 한꺼번에 많이 몰린 것이 원인이 아니었다. 문제는 한 사람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작은 문에 서로 먼저 들어가기 위해 각자가 더 강한 빽이 있음을 보여주려는 싸움으로 인해 지체되는 것이었다. 그냥 질서 있게 줄을 서게 해 들여보냈으면 벌써 배에 올랐을텐데 말이다. 필자는 배를 늦게 타게 만든 무질서의 세네갈보다, 죄없는 그들에게 서로에 대한 불신과 사소한 권력 투쟁을 만들어 놓은 서구 열강이 더 미웠다.

고레 섬의 언덕 위에 오르면 배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기념비가 있었다. 이 ‘고레 섬 기념비(Le Mémorial de Gorée)’는 더 이상 노예무역 같은 비극적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노예선이 뒤집혀 침몰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선진국의 수탈에서 벗어나 실제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단지 ‘소리 없는 선언(declaration)’만으로만 남아 있는 기념비이기에 그 모습이 외로워 보였다. 세네갈이여, 어서 일어나라!

고레 섬 기념비(Le Mémorial de Gorée)
고레 섬 기념비(Le Mémorial de Gorée)

서구열강은 반성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서구 열강은 자신들이 자행한 이러한 만행에 대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는가? 우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ean Paul Ⅱ)가 1992년 세네갈을 방문해 노예 무역에 대해 사죄한 바 있다.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삼는 일을 정상적인 일로 간주했던 가톨릭 선교자들을 포함해 노예 무역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를 용서해달라고 했다. 또한 1998년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프리카 우간다를 방문해 노예제도의 잘못을 사과했다.

2006년 5월 10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유럽 국가로서는 최초로 ‘노예제도 희생자 기념일(la première journée consacrée à la mémoire de la Traite négrière, de l’esclavage et de leurs abolitions)’ 추모식을 열었다. 2006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영국이 아프리카 무역에서 담당했던 역할에 대해 사과했다. 그런데 이들의 사과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분명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볼 수 없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처럼 자신들의 명백한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서구 열강들은 결코 기꺼이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컨대 프랑스의 낭트 시에서 노예무역에 관한 서류들이 발견되기 전까지, 프랑스의 예수회 사제 한 사람은 고레 섬에서 매매된 노예가 한 해에 단지 200명에서 500명밖에 안 된다며 그 규모와 의미를 축소하려 했다. 이처럼 낭트는 과거의 흑인 무역에 대한 자신의 어두웠던 기억을 애써 잊으려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이제 낭트는 달라졌다. 1980년대 이후 여러 단체들이 나서서 역사학자들의 자료에 근거해 어두운 역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들은 ‘낭트 역사 박물관(Le musée d’histoire de Nantes)’에 모든 자료를 전시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공개하고 반성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그 박물관에 오랜 시간 머물면서 그들의 반성의 진정성을 확인했고 벅찬 감동을 느꼈다. 이제 시작이다.

기억해야 하는 이유

서구 열강들은 형식적인 사과를 제시한 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즉 공적 개발 원조를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을 도와주려 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그들은 원조가 아니고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이 옳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것은, 서구 선진국들이 아프리카의 경제적, 정치적 낙후성을 이용해 여전히 착취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필자가 만난 세네갈의 가이드는 이 점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 대륙은 부유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여전히 커다란 불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인적 자원을 약탈당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금, 다이아몬드, 텅스텐 등의 자원을 약탈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형태의 노예제도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노예화는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 것으로 보아 불행하게도 인간의 속성 가운데 하나인 듯하다. 인간은 하나의 예속을 폐지하면 다시 새로운 형태의 예속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하고 여기에 저항해야 한다. 조제프 은디아이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용서하지만 잊지는 않습니다(Nous pardonnons mais n’oublions pas).”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어떤가? 문득 필자가 서대문 형무소에 방문했을 때 혼자서 되뇌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의 젊은 세대는 일제의 만행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 기억하려 하고 있을까?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베가북스)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씨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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