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자유는 차갑고 메마르다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그의 ‘자유’ 개념, 기득권을 위한 신자유주의적 “자유는 약자가 부당한 지배에 맞서는 무기” 윤 대통령에게 자유를 빼앗기지 말자
또 자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는 무려 35번,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33번, 이번 유엔 총회 연설에서도 다시 21번이나 자유를 외쳤다. 무슨 자유의 전도사 같다. 아니, 자유의 철학자라고 해야 하나? 그는 이번 연설에서 진정한 자유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자아를 인간답게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꽤 심오해 보인다. 그는 검찰총장 시절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해서 ‘공정’의 화신처럼 떠받들어지면서 대통령이 되었는데, 이제 무슨 ‘자유의 투사’로 자신을 자리매김할 모양이다.
좋다. 자유는 정말 ‘보편적 가치’이고, 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이 나라를 모든 국민이 제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럼으로써 이 세계에 공헌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조금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동안 검찰총장과 대통령으로서 보였던 행보를 보면 그가 얼마나 제대로 우리 사회의 자유를 지키고 신장시킬 수 있을지 커다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참에 자유에 대한 그의 철학을 살짝이라도 따져 보면 좋겠다. 도대체 그의 자유는 어떤 자유일까?
자유의 철학자, 윤석열?
윤 대통령이 자유에 대해 무슨 논문을 쓰거나 책을 쓴 게 아니니 그가 어떤 자유 개념을 가졌는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밀턴 프리드먼을 좋아한다는 그의 고백이 단순한 둘러대기가 아니라면, 또 그가 평소 내비친 정치적 신념과 행보를 보면 그는 모종의 ‘(신)자유주의적 자유 개념’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자유는 기본적으로 타인이나 외부의 간섭이 없는 상태, 곧 ‘불간섭’으로 이해된다. 자기가 마음먹은대로 행동하는 게 자유고, 이때 그 행동의 선택지가 어떤 이유로 제한되면 자유에 대한 침해가 일어난다. 자유에 대한 흔한 이해 같다. 그러나 윤대통령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이런 자유 개념을 무턱대고 신봉할 때, 그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윤 대통령은 언젠가 ‘불량식품이라도 사 먹을 수 있는 자유’를 말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 자유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런 것도 자유란다. 또 그는 주52시간제나 최저임금제도에 대해서도 부정적 인식을 보이기도 했는데, 마찬가지다. 역시 가난한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갈아넣을 정도로 일을 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가 걸핏하면 기업 활동을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외치거나 정부가 부자들을 위해 종부세나 법인세 등을 감면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자유가 적용되는 대상은 다르지만,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 싶다.
그런데 이 자유 개념에 따르면 모든 종류의 법은 어떤 강제를 함축하고, 따라서 자유로운 사회에서 법은 질서의 유지 같은 최소한의 수준에서만 필요하다.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이른바 ‘야경국가’ 개념이 나온 배경인데, 오늘날에는 윤 대통령도 강조하는 ‘작은 정부’에 대한 지향으로 발전했다. 여하튼 질서 유지는 사회의 중요한 과제이고, 그래서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감시와 엄단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어쩌면 ‘검찰주의자’ 윤 대통령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검찰의 중요성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고, 또 그래서 검사 출신들을 정부 요직에 등용시키는 게 ‘법치’의 일환이라고 강변하는 것이지 싶다.
당장 의문이 든다. 가령 어떤 학생의 진학 과정에 쓰인 자기소개서나 표창장마저 하나하나 법의 잣대로 판단해서 그 과정을 도운 부모와 관련자를 기소하고 감옥까지 보낸 그의 검찰 시절 전력은 과연 이런 자유 개념에 얼마나 부합할지 모르겠다. 국가는 개인의 삶에 최소한으로만 개입해야 한다는 자유 개념과 그의 그런 행보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인다. 또 그는 대통령 취임 이후 그의 측근들이 달랑 시행령 하나를 고쳐 행안부 산하에 경찰국을 신설하고 검찰 권한을 강화하게 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그가 말하는 자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모든 시민의 보편적 자유를 존중한다면 경찰과 검찰 같은 권력기관을 다룰 때 최소한의 민주적 정당성이 있어야 할 텐데, 그건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도 국회를 통한 입법 과정을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고 해야 한다.
게다가 그의 자유 개념은 지나치게 편향적이기도 하다. 지난번 대우조선해양의 하청 업체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 ‘불법 파업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던 걸 생각해 보라. 자못 법질서 수호를 외치는 검찰 출신다운 발언 같지만, 경제 발전에 대한 공헌을 이유로 범죄자 재벌총수들을 대대적으로 사면한 그였다. 그동안 그는 너무도 노골적으로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나 강자 편에 섰다. 그리하여 그가 말하는 자유는, 말하자면 기업가들이 별다른 규제 없이 약자들을 착취하고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자유는 될 수 있어도, 노동자들이 “자아를 인간답게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유는 아닌 게다. 그의 자유는 이렇게 메마르고 차갑다. 그는 노동자들의 그런 열망은 왜 그렇게 불법이라며 매몰차게 무시하고 말았을까?
지배로부터 해방될 자유
비록 윤 대통령은 철학자연 하고 있지만, 아마도 그는 정치철학 전통에서 자신이 외치는 자유 개념은 지극히 협소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으로 서구에서 주도적이었던 자유 개념은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이었다. 이 자유 개념은 ‘비-지배’, 곧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본질적 의미로 가진다. 누군가가 제멋대로 나를 제약하고 통제하는 게 지배인데, 이로부터 벗어나는 게 자유다. 이 자유 개념은 서양 고대 로마에서 비롯한 것으로, 여기서는 노예가 아닌 사람을 ‘자유인’이라 불렀다. 자유인은 기본적으로 타인, 곧 주인의 자의적인 간섭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당당하게 자기 뜻대로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자유에 대한 지향이 단지 서양에서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일제의 식민 지배에 맞서 독립을 추구하는 가운데 지금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세운 건 우리 국민들이 바로 그런 의미의 자유, 곧 외세의 지배로부터 해방되기를 열렬하게 염원했던 결과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자유 개념은 오늘날에도 커다란 사회적, 정치적 함의가 있다. 예를 들어 고용주가 자기 편한대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부당한 지시를 가하는 ‘갑질’을 일삼을 때, 또는 우리나라 검찰처럼 기소권과 수사권을 편의적으로 사용하면서 일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할 때, 바로 그런 지배가 일어나는데 그런 데서 해방되는 게 자유다.
지금 민주당의 강민정 의원 등이 발의한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보자.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노동자들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짓밟는 행위를 막아보자는 게 이 법의 골자다. 진작부터 이런 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지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의 파업 이후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파업 노동자들에게 470억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당연히 기업들은 크게 반발한다. 그런 법은 기업 활동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자유의 투사를 자임하는 듯 보이는 윤석열 대통령 정부와 국민의 힘도 그런 기업들 편에서 이 법에 반대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실 신자유주의적 자유 개념으로 보면, 이 노란봉투법은 어떻게든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싶어하는 기업에게는 심각한 자유의 침해일 수 있다. 심지어 위헌이기까지 하단다.
그러나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에서 보면,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남발하는 일은 노동자들을 경제적으로 위협해 어떻게든 기업의 부당한 횡포에 굴복시키려는 자의적 권력 행사, 곧 전형적인 지배 행위다. 저 옛날 서구의 노동 운동에서 규정했듯이, 그렇지 않아도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고용주의 자의적인 통제에 노출된 ‘임금 노예’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많은 노동자들은 그런 기본 상태에 더해 신자유주의가 발명한 복잡한 원하청 관계 같은 노동 통제 장치들 때문에 역사적으로 확보해 온 여러 노동기본권을 행사할 수 없어 더 심각한 예속 상태에 처해 있다. 이런 지배 상태로부터 벗어날 자유는 노동자들에게 너무도 절실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법은 바로 이런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왜 자유를 보수가 독점하도록 방치하나
그런데 윤 대통령만이 이런 자유 개념에 대해 무지한 것은 아니다. 최근 민주당은 새 대표 선출과 함께 강령 개정 작업도 진행했다. 그런데 흔히 자유주의적 정당으로 이해되곤 하는 이 당은 이번에도 자유를 당의 핵심 가치로 삼는 걸 피했다. 아마도 국민의 힘과 보수 진영에서 너무 자주 자유를 외치고 있어서 민주당마저 자유라는 가치를 내세우는 건 어떤 진영적 정체성을 배반하는 일이라고 여긴 때문이리라. 참으로 놀랍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동안 민주당을 포함한 우리 진보 진영 일반은 자유라는 가치를 색안경을 쓰고 보아왔다. 그건 기본적으로 우리 보수가 자주 자유 개념을 악용해 왔기 때문이다. 가령 유신체제를 자유의 이름으로 옹호한다거나 재벌과 기업이 시장논리를 앞세울 때처럼 말이다. 최근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 때부터 준비해 오던 새 역사교과서 서술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빠졌다고 또다시 이념 시비를 걸고 있는데, 이런 사정 때문에라도 자유는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내세울만한 가치가 아니라고 여기는 걸 게다.
그러나 내 생각에 민주당이나 진보 진영이 이 자유라는 가치를 보수 진영이 독점하게 내버려두는 건 철학적으로도 옳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자유는 그 본성상 사회적 약자나 피억압 계층이 권력자들과 기득권층의 부당한 지배에 맞서 싸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치적 무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자유 개념은 윤 대통령이나 보수 진영이 강조하는 바와는 매우 다른 내용과 지향을 가지지만 말이다.
사실 많은 시민들은 일상적으로 기득권자들과 권력자들의 자의적인 간섭과 횡포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꿈꾼다. 언제 해고될지 몰라 또는 복잡한 원하청 관계 때문에 이런저런 부당한 대우를 감수해야 하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이 그렇고, 자칫 일감을 배정받는 데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 불리한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그렇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에 언제 범법자로 전락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시민들이 그렇고, 공무원들의 선의가 없으면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복지 혜택조차 받을 길이 없어 세상을 등지도록 강요받는 시민들이 그렇다.
문제는 자유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자유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유라는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만 하면, 그 가치는 결코 기득권 세력의 편이 될 수 없음을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제대로 이해된 자유는 언제나 기득권층의 불의를 드러내는 잣대로 작용하고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시민들의 동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윤 대통령의 저 메마르고 차가운 자유 때문에 자유라는 가치를 멀리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자유를 윤 대통령에게 빼앗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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