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2주기, 뒤늦은 반성문

2년전 야당 국회의원의 미숙한 대응 尹 정부의 2차가해에 대응했어야 민변· 정의구현사제단이 지켜낸 유족 이제 진상규명 특조위 활동 본격화 국민들, 尹정부 은폐·탄압 잊지 않을 것

국회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된 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회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된 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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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참사 대응법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났다. 그날 밤 유튜브를 보던 둘째 아이가 이상한 일이 난 것 같다며 달려와 함께 유튜브 속 혼란스러운 장면을 보던 순간이 생생하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 붕괴처럼 보기만 해도 대형 참사가 난 걸 알 수 있는 그런 상황도 아니었다. 여기저기 소리 지르는 사람들과 길바닥에 파란 비닐 같은 것으로 덮힌 사람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그리고 확인된 1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온 어처구니없는 압사사망 소식. 곧바로 2014년 TV를 통해 전 국민에게 생방송되었던 세월호 참사가 떠올랐다.

너무도 큰 충격과 혼란 속에 맞은 아침에, 언론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참으로 주도면밀한 즉각 대응에 나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비상긴급회의를 해 지침을 결정하고 대국민담화도 발표했다. 일주일 간 국민애도기간을 가지며, ‘압사’ 단어 사용 자제를 요청하고, 일선 지자체에 ‘참사’라는 용어 대신 ‘사고’라는 용어를, ‘희생자’ 대신 ‘사망자’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하며, ‘근조’ 글자 없는 검은 리본을 착용하라는 지침공문을 내렸다.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한 이들을 파악해 지원하는 참사수습이 우선이어야 했던 상황에서, 한밤중에 모인 정부 책임자들이 내린 결정으로는 너무 이상했다.

1년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야4당과 함께하는 진실행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1년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야4당과 함께하는 진실행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제 역할 못한 국회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충격과 혼란의 공기에 압도당한 상태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물론 몇몇 언론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이런 방침이 정부 책임회피와 사고축소 의도라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공문으로 내려간 정부방침을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가지려면 몇 개 언론사의 문제제기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4일 후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정부 지침공문 내용에 대한 야당의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수정공문을 내리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다. 모두들 ‘국민애도기간’이라는 저들이 쳐놓은 장막에 갇힌 셈이었다.

결국 희생자 파악도 안 된 상태인 참사 바로 다음날부터 분향소를 차려놓고 국민애도기간이 진행되었다. 영정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에 추모객 발길이 이어졌다. 그러더니 곧 일각에서 ‘놀러갔다 죽은 아이들’이라는 공격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희생자들에 대한 혐오와 비난여론이 일어나 추모나 애도 대상도 아니라는 희생자 폄훼 분위기도 만들어졌다. 얼마 후 희생자 명단을 파악하고 공유하는 것이 범죄로 규정되고 희생자 명단을 발표한 언론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압수수색까지 이루어졌다. 이런 분위기는 희생자 가족들과 생존자들을 위축시키는 잔인한 ‘2차 가해’였다.

참사 직후 윤석열 정부가 취한 모든 조치들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이런 대처는 이후 일관되게 확인된 ‘참사축소’와 ‘책임회피’를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때를 놓친 우리의 대응

윤석열 정부가 비상식적 대응을 하는 바로 그 때 강력한 문제제기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때를 놓치고 윤석열 정부의 페이스대로 끌려갔다. 윤석열 정부는 참사 직후 기선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 셈이었다. 그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의 대응 실패를 교훈삼은 듯한 행동을 했다. 이 점에서 항상 저들은 치밀하고 집요하며 용의주도한데 반해 우리는 너무 안이하고 때론 비겁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아니 나는 그 때 영정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와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애도기간, 희생자 명단 발표를 범죄시 하는 저들의 말도 안 되고 고압적인 대응에 맞섰어야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은 고도로 계획된 폭력에 다름없었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자식이나 가족, 친구를 잃은 이들은 모두 각자 고립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희생자들을 폄훼하고, 유가족들이 서로 소통하는 것을 막는 것이야말로 윤석열 정부에게는 절체절명 과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태원 참사를 제2의 세월호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가능한 모든 조치들을 강구했다. 여전히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저들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유족과 시민단체가 지킨 진실찾기

나는 당시 국민대표 임무를 맡고 있던 국회의원이었음에도 국민을 대신해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 희생자 이름을 공유하는 것이 공무상비밀누설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죄라는 가당치도 않은 주장은 49재를 앞두고 유가족들 손으로 설치한 이태원 분향소에서 바로 탄핵되었다. 국민대표인 내가 나서지 않을 때 시민단체인 민변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이 나섰다. 고맙고 미안했다. 분향소에 갈 때마다, 이태원 참사 관련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후회와 미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이 모든 어려움과 정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태원 유가족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그 사이 국정조사가 실시되고 ‘이태원참사 특별법’이 통과되어 이제 곧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이 본격화된다. 긴 시간 자식과 가족을 잃은 고통을 견디며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 만들기로까지 나아가고 있는 유가족과 묵묵히 유가족 옆을 지키며 2년 여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시민대책위 분들께 감사드린다.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탄핵의 가장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되었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가 아무리 외면하고 부정하고 탄압하려 해도 이태원 참사 기억을 가슴 속에 담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이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 참사 2주기를 맞아 뒤늦은 반성문이자 사과문을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분들, 그리고 안전한 세상을 바라는 시민들께 올린다.

글쓴이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민정은 서울의 한 사범대학을 졸업해 25년 가까이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혁신학교와 혁신교육지구(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통해 혁신교육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명퇴 후 교육시민단체에서 교육정책 관련 연구 및 강의, 집필 등을 통해 교육개혁운동 활동가로 복무하다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국회에서 4년 간 교육상임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의원임기 만료 후 국회 밖에서 여전히 교육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고 강의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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