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담은 영화를 찍고 있나요?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카를라 시몬 감독의 ‘알카라스의 여름’ 부산영화제서 큰 인기...순식간에 매진 전작 이어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 바탕 솔레 가족 통해 가족과 인생의 가치 돌아봐
<알카라스의 여름>은 스페인의 여성 감독 카를라 시몬이 연출한 영화로, 2022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알카라스의 여름>은 시몬 감독의 두번째 장편 영화인데, 두 번 만에 큰 영화제에서 대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로써 시몬 감독은 황금곰상을 수상한 최초의 스페인 여성 감독이 되었고 <알카라스의 여름>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시네마 부문에 공식 초청돼 순식간에 매진됐다. 지난 11월3일부터 시중 영화관에서 상영중이다.
인기 스페인 감독의 두번째 작품
시몬 감독은 데뷔작인 <프리다의 그해 여름>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해 관심을 끌었으며 <알카라스의 여름>으로 연결시켰다. 두 작품 모두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번역된 제목이긴 하지만 우연찮게도 두 영화 모두 제목에 여름이라는 계절을 담고 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은 어린 시절의 그녀에게 어떤 인상을 남긴 것일까.
감독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두 영화가 정서적으로 끌리는 이유는 그만큼 미세한 감정선이 살아있고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되도록 훌륭한 연출로 엮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대단한 반전이나 충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끌어당긴다. 노련한 연기력이 아닌 순수함과 진정성을 구현하기 위해 시몬 감독은 연기 경험이 없는 연기자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을에서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을 출연시켰다. 어떤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지, 감독의 의도가 짐작된다.
첫 작품인 <프리다의 그해 여름>은 고아가 된 프리다가 삼촌 집에 살면서 겪게 되는 심경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른들의 오해를 사면서 악역의 위치에 서게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억울하지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던 순간을 한 번쯤은 다 겪어봤을 것이다. 어른들은 고정된 사고방식을 통해 가장 상식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판단을 한다. 자신의 부모가 아닌 삼촌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름의 방어 작전을 펼친다. 그러나 사고를 치고 거짓말도 섞는 아이를 바라보는 친척 어른들에게는 성숙하고 따듯한 시선이 있다. 그런 어른들이 있어서 상처받은 아이는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복숭아 과수원 가족 3대 이야기
<알카라스의 여름>은 스페인 카탈루냐 주의 작은 마을 알카라스에서 복숭아 농장을 하면서 살아가는 ‘솔레’ 대가족의 이야기다. 3세대가 함께 살면서 각 세대에 속하는 가족 일원의 시선을 보여준다.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세대, 그리고 그 자식들의 세대는 각각 삶을 바라보는 다른 사고방식과 태도를 지니고 있다. 카메라는 그들의 눈빛과 태도를 통해 생각의 차이를 보여준다.
할아버지와 그의 여동생인 할머니는 늘 과거의 이야기를 한다. 할아버지의 조상은 과거에 한 가족의 목숨을 구해줬고 대가로 땅을 받아 복숭아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계약서를 쓰지 않았던 것이 문제가 된다. 목숨을 구해줬던 가족의 손자가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아버지 세대는 계약서를 쓰지 않은 할아버지를 비난한다. 할아버지는 그 당시에는 그렇게 신뢰를 바탕으로 약속을 했고 의심한다는 것 자체가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할아버지 세대는 늘 과거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을 반복한다.
땅은 생산물을 재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아버지와 바뀌는 현실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충돌한다. 농촌에 태양열 사업이 추진되면서 나무들이 베어지고 집열판이 설치된다. 마을 청년들은 돈이 되는 태양열 사업에 참여하고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마찰을 빚는다. 대기업은 농촌의 땅을 사들이고 복숭아를 헐값에 구매하려 한다. 수익을 올리려면 태양열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이지만 아버지는 대대로 물려받아 운영해온 복숭아 과수원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복숭아 농장은 아버지에게는 생계와 수익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젊은 세대는 농장 일을 돕지만 피가 끓는 나이라 밤에는 또래끼리 모여 춤을 추며 젊음을 즐긴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갈등을 빚는다. 무조건 복숭아 재배를 고집하는 아버지를 전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법을 근거로 밀고 들어오는 대기업의 세력을 막을 방법이 없다. 시대의 변화는 알카라스에 사는 솔레 가족의 삶에 균열을 가져온다.
카를라 시몬 감독은 대가족 일원들의 끈끈한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알카라스의 여름>을 보면서 김보라 감독의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2019년 개봉작 <벌새>를 떠올렸다. 김보라 감독 역시 자신이 사춘기때 겪었던 정서적 경험을 바탕으로 서사를 꾸몄다. 그리고 그 서사 안에는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던, 성수대교와 삼풍 백화점 붕괴 등 충격을 안겨줬던 굵직한 사건들이 들어가 있다. 개인사와 역사적 사건들의 만남이 얽혀 있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에게 향수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그에 비해 알카라스라는 외국의 한 지방 특유의 정서를 완전히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보다는 한국에서 일어난 그 시대의 굵직한 사건을 바탕으로 개인사의 교차점을 묘사한 김보라 감독의 영화에 더 공감하기가 쉽다.
지켜야하는 아버지, 이유를 몰랐던 아들
그러나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인 정서가 있다. 지금은 기성세대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의 견고한 사고의 틀을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을 분명히 간직하고 있다. 힘들어하는 가족 어른들의 편을 들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반발심도 존재한다. 왜 굳이 농장 사업을 고집해야 하는지, 현재의 흐름에 따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지에 대한 갈등이다. 아무리 땅에 대한 강한 신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에 꿋꿋해보였던 아버지의 눈물은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대기업의 행태에 항의하는 시위에 아들이 참여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복숭아를 집어던진다. 시위 도중에 마주치는 아버지와 아들의 눈길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담겨 있다.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을지라도 가족의 끈끈한 관계는 이어진다. 끊임없는 삶의 변화 속에서도 영원한 것은 존재할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떤 것일까. 아이들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 영화의 OST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린 몇 부작 영화를 그리고 있는 중일까
카를라 시몬 감독의 영화를 보면 어린 시절에 겪었던 경험이 얼마나 그 사람의 삶에 중요한 동기가 되고 큰 역동성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다. 자라면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정서를 되새김질하고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해석을 하려고 노력한다. 감독 역시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어린 시절 각인됐던 아픈 추억을 스스로 치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가족사를 바탕으로 한 3부작을 계획 중이라고 한다. 이제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니 나머지 한 작품이 남아 있다. 이미 구상은 끝난 것 같다. 마지막 3부작의 주인공은 성장한 프리다라고 들었다. 기대가 된다.
그녀의 영화를 보는 관객인 우리 역시 누구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서사를 간직하고 있다. 거기에는 아픈 추억과 즐겁고 감동적인 추억이 겹쳐져 있을 것이다.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지는 못할지라도 우리 마음속에는 우리만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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