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눈 딱 감고 나서지 말까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영화 ‘용감한 시민’과 ‘스프린터’ 기간제 교사라는 갈등의 최약체 눈감고 참으면 정교사의 기회 오는데. 상황은 정의와 가치를 택하게 만들고...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통쾌한 복수를 펼치는 소시민(신혜선 분).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통쾌한 복수를 펼치는 소시민(신혜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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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작년과는 달리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막연한 희망을 품게 되고 열심히 살자는 취지의 새로운 결심을 한다. 그런데 그동안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도 함께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양쪽 다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을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내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을 만큼의 무게를 지녔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내 미래와 안위를 생각해 눈 딱 감고 지나치는 게 현명한 선택일까. 나의 순간적인 결정은 내 미래를 막는 걸림돌이 될까. 아니면 어느 순간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 나를 괴롭힐 것인가.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유튜브를 보면 이런 종류의 사회적 실험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연기자들에게 고등학생 역할을 하게 만들고 길거리에서 모여 담배를 피우게 한다. 그리고 훈계하는 나이 많은 어르신을 조롱하는 연기를 하게 한다. 고등학생 역 연기자들은 주변 행인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고함을 지르면서 어르신(이 분도 연기자다)에게 막말을 해댄다. 카메라는 그때 시민들의 반응을 살핀다. 쳐다보다가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다가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 전화를 걸어 인근 파출소에 신고를 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나라면 그 광경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까.

소개할 두 편의 한국 영화, <용감한 시민>과 <스프린터>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을 때, 도의적 책임과 선택에 대해 묻는다. 영화를 보면서, 정의가 승리하기를 기대하는 관객의 심정은 비슷하다. 극적 설정이긴 하지만 현실과 흡사하기 때문에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어떤 결정이든 결코 쉽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 보는 기대감과 자신이 직접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심정은 같을 수 없다. 제 3자의 욕망과 당사자의 욕망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 입장이 충돌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 '용감한 시민' 포스터.
영화 ‘용감한 시민’ 포스터.

눈 감으면 정교사의 안정된 삶이

박진표 감독의 <용감한 시민>과 최승연 감독의 <스프린터>의 공통점은 주인공 캐릭터가 기간제 교사이며 정교사가 되어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정교사의 안정된 삶을 얻기 위해서 눈 딱 감고 넘어야 할 걸림돌 때문에 주인공들은 심하게 갈등한다.

<용감한 시민>은 참을 수 없는 부당함에 대한 분노를 상승시키면서 해결 방법이 없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답답함을 안겨준다.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판타지가 섞인 방식으로 해소의 쾌락을 선사한다. 판타지와 코믹이 섞여 있어서 가볍게 보이는 영화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문제들은 심각하다.

<용감한 시민>의 주인공 소시민(신혜선 분)은 기간제 교사로 한 고등학교에 부임한다. 교문 위에 걸린 학교폭력예방근절 우수학교라는 현수막은 겉과 속이 전혀 다른 한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소시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정교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이뤄내고 싶어서 다른 교사들이 시키는 잔 심부름은 물론이고 교감의 성추행까지도 참아낸다.

정교사인 선배 교사는 새내기인 소시민에게 생존을 위한 여러 조언을 한다. 정교사가 되기까지는 무슨 일이든 참아내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소시민에게 다짐까지 받아낸다. 그중에는 ‘불의에 눈감는다’라는 말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칼하다. 경험 많은 선배 교사의 조언에 의하면 눈 감고 귀 막고 투명인간이 되는 게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매우 현실적인 조언이라는 데 소시민도 동의한다. 그래서 ‘나서면 손해다’라는 다짐을 스스로 반복한다. ‘현실과 타협해 안전한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교사라는 직분에 맞게 잘못을 바로 잡으려 노력해야 할까’라는 도덕 교과서 같은 명제를 놓고 영화에서 묘사되는 상황은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넘는다.

다른 사회에 비해 모범이 되어야 할 학교라는 공간이 오히려 더 폐쇄적이고 불의와 부당함을 보호해주는 극단적인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학교 체계의 맨 꼭대기에 있는 권력자는 놀랍게도 ‘한수강(이준영 분)’이라는 학생이다. 그는 막강한 집안 배경을 지니고 있고 문제를 일으켜 자퇴와 전학을 반복한 탓에, 이미 미성년자의 나이를 넘어섰다. 교감도 한수강의 눈치를 볼 정도이며 기간제 여교사 한 명은 한수강에게 시달리다가 자살한 적도 있다.

한수강 패거리들은 취약한 환경에 있는 학우 한 명을 정해 끔찍할 정도로 괴롭히고 교내 방송을 통해 공공연하게 중개할 정도로 대담한데도 문제는 그의 패악질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기간제 교사인 소시민 역시 농락과 협박을 당하지만 아무도 감히 한수강을 건드리지 못한다. 학생을 선도해야 할 교사가 뒤탈이 두려워 몸을 사리고 경찰도 마찬가지라, 보호망이 전혀 없는 학폭 피해자는 자살밖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정의를 택하면 좋은 기회를 잃는데

영화는 상식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수강이 휘두르는 음지의 폭력을 양지로 끌어내 정당한 방식의 폭력으로 바꾸어 응징하는 복수를 택한다. 나쁜 폭력이 좋은 폭력이 되는 순간을 십분 활용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여기에는 소시민이 전직 권투선수였으며 국가대표급 실력을 갖췄다는 판타지를 끌고 온다. 한수강은 고양이 탈을 쓰고 자신을 응징하던 사람이 소시민이라는 사실을 안 뒤, 그녀에게 공개 권투 시합을 제의하고 교장의 허락까지 받아낸다. 그는 소시민에게 합법적인 폭력을 휘두를 목적으로, 소시민이 이길 경우 자신의 패악질을 담은 학폭 동영상을 스스로 공개하겠다는 조건을 건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고 법 위에 군림하면서 폭력을 일삼던 한수강이 자존심을 걸고 택한 승부 역시 권투라는 스포츠 방식을 빌린 ‘정당화’된 폭력이다. 영화는 한수강의 방식대로 복수를 한다. 두 사람이 링에서 싸울 때 교우는 물론이고, 교사와 심지어 한수강의 패거리까지 한 목소리로 소시민, 즉 정의를 외친다. 그들은 소시민이라는 방패가 있을 때야 비로소 정의를 외치는 모습을 보인다. ‘지켜야 할 선’을 지켜내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응원으로 발산한다.

하지만 소시민이 시합에 응한다는 것은 정교사직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부하려고 했지만 정교사직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택한다. 그 배경에는 예전에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현실과 타협해 돈을 받고 져줬던 기억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평상시에는 억압돼 있던 트라우마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의 의식을 강타한다. 그녀는 외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지켜야 할 정신을 잃은 삶은 껍데기의 삶이라는 인식이 그녀를 링 위에 오르게 만든다.

영화 '스프린터'. 2021년 제47회 서울 독립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하다.
영화 ‘스프린터’. 2021년 제47회 서울 독립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하다.

희생을 감수하고 지켜야할 가치는 있는가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가 또 있다. 2023년에 개봉한 최승연 감독의 <스프린터>는 <용감한 시민>과는 결이 다른 영화다. <스프린터>에는 달리기와 관련 있는 사람들의 강한 욕망이 나열된다.

실현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가대표의 욕망을 놓지 못해 안간힘을 쓰는 30대, 기록을 위해 금지 약물을 주입하면서까지 버티는 20대, 그리고 육상부 해체 위기에도 국가대표 선발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10대 고등학생이 나온다. 그리고 정교사와 육상부 코치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기간제 교사, 지완(전신환 분)이 있다.

학교 측에서는 지금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육상부가 해체되면 지완을 정교사로 전환시키겠다고 한다. 정교사는 코치와 겸직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육상부를 유지하고 코치로 남으려면 정교사를 포기해야 한다. 정교사가 되는 것이 지완의 오랜 꿈이었지만 끝까지 국대 선발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제자 때문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 자신이 정교사를 택하면 제자의 꿈은 사라지게 된다.

그는 제자에게 “국대가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고 자기처럼 코치나 하게 될 거”라면서 운동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라는 조언까지 하면서 자신의 욕망과 타협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도 알고 있다. 자신이 그랬듯 운동 밖에 모르고 지냈던 아이에게 다른 길을 찾아보라는 말은 공허한 말이며, 정교사가 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위한 정당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영화의 끝부분에서 보여주는 지완의 선택은 희생을 감수하고 지켜야 하는 가치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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